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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영재, 기대-착각
» 한겨레신문 자료 사진.
"시댁 방문이 이번 연초부터 점점 부담이 되네요. 이제 3학년이 된 큰 아이에게 시어머님의 기대가 노골적입니다. 동갑내기 외손녀가 유명한 영재진단 기관에 접수하여 대기 중이라는 말씀을 저희 가족을 볼 때 마다 강조하십니다. 게다가 당신 친구 며느리들은 아이들을 영재 반에 진입시키기 위해 유아기부터 요일별로 수학 교실, 과학 놀이학교 등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다는데, 고집 센 우리 며느리가 똑똑한 내 손자를 둔재로 만들 참이냐고 핀잔 섞인 말씀을 자주 하십니다.
다행히 남편의 교육관이 저와 일치하고 흔들리지 않아서 안심입니다. 남편은 어릴 적에 시어머님의 교육열 때문에 조기 교육에 시달린 장본인으로서 피해자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저희 아이들 셋은 누구와 비교할 것 없이 유치원 시기는 물론이고 초등 저학년까지 자유롭게 실컷 놀아야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시어머님의 영재 육성에 대한 성화가 요즘 제 귀전에 맴돌기 시작하네요! 주위에서 자꾸 큰 아이가 아주 똑똑해 보인다는 칭찬들이 또렷하게 들립니다. 혹시 태평스런 우리 부부의 프레임에 갇혀 아이의 재능이 과소평가되고 억압당하는 것은 아닌지 슬쩍 자문해 봅니다. 시부모님의 소망대로 더 늦기 전에 영재 대열의 진입을 시도해 보아야 할까요? 아이 인생의 이런 프로젝트는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교육열이 세계 1위인 나라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영재성과 특별한 재능에 일찍부터 주목하며 심리적으로 기대해 보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이때 부모의 과도한 기대가 착각으로 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영재성이 타고나는 것 보다 육성시켜 만들어진다고 믿는 경우가 더 지배적입니다. 많은 경우 교육열 높은 일부 학부모들은 "영재 만들기"를 위해 조기 교육과 선행학습을 체계적으로 시작하며, 시험 문제를 빨리 잘 풀어서 자녀가 영재 반에 들어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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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학원의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한국형 수재들이 세계적으로 말하는 영재의 자질들을 얼마나 지니고 있을까요? 미국 국립영재연구소의 학자 조지프 렌쥴리는 영재의 세 가지 기본 자질을 내면의 힘으로써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선 뛰어난 지적 능력이 바탕이 되어, 아이는 주어진 문제에 열정과 에너지를 가지고 집중하면서 특출한 과제 집착력을 보이며, 나아가 문제 접근에서 아주 높은 창의적 사고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자질들은 우리 교육 풍토에서 자주 목격되는 영재성 개발을 위한 체계적 종합관리나 영재 대비 선행문제집의 훈련을 통해 쌓아지는 것과 거리가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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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 중인 국가 우수인재 육성 정책이 구체적으로 사회에 얼마나 융화되는 창의적 인재를 키워낼 수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학부모들의 교육열과 맞물려 해마다 이른바 영재학교의 높은 경쟁률은 아이들의 자발적 선택인지 부모들의 선망에 따른 시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심각한 것은, 이런 학교 진학의 고지를 향해 아이들이 그 중간 단계마다 거쳐야하는 관문들 앞에서 겪어야하는 부작용들입니다. 즉, 영재 교육원 기초과정 및 대학 부설 심화학습 등, 주어진 코스를 준비하며 초등 고학년에 이미 고등 수학 공부를 해야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유아기부터 초등학교 및 중학교 과정에서 그런 도전을 시도하다가 도중 탈락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어려운 과정들을 '쉽게' 통과한 경우라 해도, 과중한 학습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훗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되물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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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 육성을 위한 단계별 조기 교육과 체계적인 선행학습은 아이들에게 무엇을 요구할까요? 대부분 이렇게 도전하는 아이들은 이미 또래 보다 더 강한 참을성과 이해력을 포함하여 강도 높은 심리적 부담감을 가지고 학습해야 합니다. 과도한 이런 부담감은 무엇보다 신체적 성장에 직접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데 아이 안에 담겨진 뛰어난 재능이 어떤 종류이건 신체 발달을 전제로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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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성은 발굴이나 육성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출한 재능이나 영재성은 경쟁의 장에서 방해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성숙될 때, 미래의 역량 발휘를 위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Elkind, David: Miseducation, preschoolers at risk, New York 1988)
Q. 담임선생님의 추천 때문에 큰 딸 민영이가 용기를 내어 교육청 영재원 시험에 도전했는데, 불합격했습니다. 선행학습의 뒷받침 없이 이런 시험은 응시하는 것이 아님을 저는 시험장에서 알았습니다. 순진한 엄마가 아이를 무방비 상태로 실험대에 세웠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에게 미안하고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물론 몇 달간 아이는 집중적으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조기교육과 선행학습을 몇 년간 준비한 아이들을 이길 수 없던 것이죠. 시험 결과에 대해 아이가 처음에는 태연하게 반응하더니, 몇 달 지나서 속상한 마음을 전하더군요. 아이가 상처를 받은 것 같아서 걱정입니다.
상황을 세세히 모르시는 시부모님께서는 요즘 영재 발굴단 프로그램을 즐기시면서, 큰 손녀의 수학 영재성을 성장시켜보는 것이 어떠냐고 진지하게 질문하시네요.
A. 저 출산의 나라, 초 고령화 사회의 특성상 대한민국의 어른들 주변에 아이들의 희소가치가 점점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임신부터 출산까지 육아 및 자녀교육과 관련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늘 주목받고 있으며, 양육의 실생활 뿐 아니라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영재성 발굴을 다루는 장면들은 누구에게나 (대리(?))만족도가 높은 볼거리입니다.
내 아이의 재능을 관찰하고 이해하기보다 조금이라도 뛰어난 능력을 보이면 영재로 착각하는 부모들이 참 많은 현실이고, 무엇보다 어떤 분야에 진짜 영재성을 가진 아이들이 학원 훈련을 받은 아이들에게 밀려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도 민영이가 혼자서 자기 주도력을 발휘하여 몇 달간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한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일입니다. 이런 과정을 인정하고 칭찬해 주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구체적으로 아이가 보여준 도전 정신, 의연한 태도, 용기와 자기 책임과 같은 능력들을 언급하시고, 이것이 훗날 수학 뿐 아니라 다른 재능들도 피어날 수 있다는 격려를 해주시면 아이 마음에 긍정적으로 작용합니다. 잠재력은 경쟁을 겨루는 장에서 발휘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 만족하며 자신의 능력들을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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