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자기소개서를 믿는 이유-조선닷컴2016.03.28

[일사일언] 자기소개서를 믿는 이유

• 장병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김도원 화백

 

입력 : 2016.03.28 03:00

장병원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제가 코앞에 닥친 요즘 사무실은 만원(滿員)이다. 단기 스태프들이 대거 입사하여, 처음 보는 얼굴들이 사무실에 둥둥 떠다닌다. 그중 K와 담배를 피우며 이야기했다. "전 영화제 경험이 전혀 없어서 면접에서 떨어질 줄 알았습니다." "자기소개서를 잘 썼잖아." "경력란에 한 줄도 쓸 게 없어서 자기소개서라도 열심히 썼어요." "그래서 뽑은 거야."

홍보미디어팀 소속의 K는 채용 면접에서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한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를 묻는 질문에 사전에 조사한 영화제 관련 기사를 예시로 들어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다. 같은 질문에 다른 지원자들이 제대로 된 답변 대신 자기 과거 경력을 열심히 읊어댄 것과 대조적이었다. 준비된 지원자이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자기소개서가 마음에 들었다.

사람 보는 눈은 저마다 다르다. 나는 경력을 중시하지 않는다. 경력이란 그네들의 경험치에 대한 참고지표일 뿐이다. 경력만 믿고 사람을 뽑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한두 번인가. 한 줄 경력을 위해 입·퇴사를 밥 먹듯 하는 이들에게 느낀 배신의 상처는 또 어떤가. 이 회사 저 회사를 메뚜기처럼 뛰어다니며 쌓은 경력이 제대로 된 경력일 리 없다. 십중팔구 몇 달을 버티지 못한다.

인간 됨됨이를 추정하는 지표로 경력 대신 믿는 것이 있다면 자기소개서이다. 정말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남들에게 체면이나 세우려 일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쓴 '적당한' 자기소개서를 보면 첫 줄부터 하품이 난다. 반대로 진화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맨 사람이 결기를 담아 꾹꾹 눌러쓴 자기소개서는 감동적이다.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해내리라는 그들의 기개(氣槪)는 문장 한 줄로도 전해진다.

단기 스태프 계약을 한 K는 영화제가 끝나면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 할지도 모른다. 입사지원서에 '전주국제영화제' 경력을 한 줄 쓴다면 역시 메뚜기 취업준비생 취급을 받겠지. 설혹 그런 일이 있더라도 '합격만 시켜주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라고 울부짖는 자기소개서는 쓰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