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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북(BOOK)끌림 … 치료와 소통의 인문학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 / 안용태 지음 / 생각의길 (2014)
“삶의 위로를 영화로 풀어내는 메디컬 무비(medical movie) 인문학……. ”
꾸물꾸물 잿빛 먹장구름이 잔뜩 뭉쳐진 날에는 어릴 적 눈에 보았던 풍경 한 조각이 드리워진다. 조각공처럼 기억을 새김질 하다 보면 시나브로 빨간 석유풍로가 보인다. 석유풍로에서 활짝 피어나 동그랗게 둘린 파란 불꽃은 화끈화끈 열기를 뿜어낸다. 온갖 것들을 지지고, 끓이고, 볶아내는 분주한 소리가 둥둥 떠다니는 반딧불이 꼬리를 따라 반짝 거리다 하늘로 올라가고, 이제는 얼굴도 희미한 할머니의 레퍼토리가 꾹 참았던 빗방울로 후둑 후두둑 쏟아져 내린다.
가족의 먹거리가 달린 밭일로 시도 때도 없이 구불구불한 산비탈 좁은 길을 오가시던 어머니는 갑자기 닥친 장맛비에 미처 대비를 못하신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비를 맞은 무거운 어깨를 떨구고 축축한 걸음을 찰박이며 대문 안을 들어오셨다.
“에구구……. 무릎이 시큰 거리는 걸 보니 올 것이 오는 게지.” 어찌 아시는지 비가 오기도 전에 할머니는 석유풍로의 심지에 불을 두르시고 부침개를 지지셨다. 고소한 기름으로 반질거리는 석유풍로 앞에서 얼굴이 숯불처럼 달구어진 어머니는 서글픈 하소연을 날실처럼 풀어내셨다. 어머니 입에서 뿜어지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푸념을 듣는 둥 마는 둥 할머니는 바쁘게 손을 놀리셨다. 그러다 갑자기 “에쿠쿠...” 신음소리 같은 것을 내뱉으시며 주전자 귀때에 입을 대고 차가운 우물물을 벌컥벌컥 들이키셨다.
“내가 살아 온 일을 글로 쓰면 한 편의 소설이여!”
“아이고, 우째 살면서 이래저래 별별 일이 다 있던지 텔레비(TV) 드라마지, 드라마여!”
“그래도 니들 때매 그냥 버티고 살았지. 한번은 말이야 니 오라비가....” 한바탕 늘어놓으시는 할머니의 고단한 생의 역사를 듣고 있으면 옛날이야기 같아 재밌기도 하고, 매번 들리는 원망 섞인 거친 억양이 진저리나기도 했다. “난 엄마 같이 살기 싫어요.” 이 말을 대구로 입술을 비죽이며 부침이 한 점을 덥석 손에 든 어머니는 뽑아내던 푸념을 오물오물 삼키셨다.
할머니의 레퍼토리는 분명 치료제였다. 한 편의 소설 같고, 드라마 같고, 영화 같은......, 하늘이 흐리면 한 귀퉁이 쪼각문을 열고 찾아오는 레전드적 할머니의 고단한 삶의 구전은 팍팍한 일상을 적시는 달달한 단비다.
우리 할머니의 레퍼토리 같은 책을 만났다. 『영화 읽어주는 인문학』에는 스무 편의 영화에서 찾아낸 거울에 비친 자신의 객관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저자는 영화를 통해 인문학을 읽어 내려가며 우리 사회에 얽혀 있는 불안, 아픔, 무기력 등을 풀어낸다. 이 책을 읽다보면 보고 싶은 영화가 많아질 것이고, “아~, 그 영화가 그랬던가!” 하고 다시 보고 싶어지는 영화도 있겠지만, 분명 전과 같은 관점이 아님을 스스로 깨닫게 될 것이다. 아마도 한층 더 성숙해진 안목으로 말미암아 깜짝 놀라지도 모르겠다.
책 속 이야기Ⅰ| P. 9 | 이터널 선샤인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터널 선샤인 >
감독 미셸공드리
2005년 개봉
그 순간의 감정은 강한 유대를 가진 무언가를 통해 다시 되살아나기도 한다. 클레멘타인은 어렴풋한 감정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떠올린다. 다만 스스로 삭제해버린 기억이기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을 뿐, 사랑했던 시간과 흔적은 온몸에 각인되어있다. 그래서일까? 조엘마저 기억이 완전히 삭제된 이후 그들은 우연히 바닷가에서 다시금 만나 사랑에 빠져든다. 비록 사랑했던 이유는 사라졌으며, 아마도 같은 이유로 지겨워지고 싸울 것도 뻔하지만, 그 감정의 흔적은 남아 있기에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억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사랑했던 이유는 생각나지 않더라도 그 순간의 감정이 다시금 나타났을 때 과거는 현재에서 재현된다.
◆ 책 속 이야기 ◆
◎ 6월 북(BOOK)끌림 … 치료와 소통의 인문학
소희의 방 /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2010)
이금이 작가의 성장소설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후속 이야기!
이 시대의 ‘진솔한 이야기꾼'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금이 작가는 20여 권의 작품집을 통해 따뜻한 휴머니티와 진정성이 강한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4편의 동화가 실렸고, 대표작인 『너도 하늘말나리야』, 『밤티 마을 큰돌이네 집』, 『유진과 유진』 등은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보기 드문 책들이다. 그중 많은 사랑을 받은 이금이 작가의 성장소설 『 너도 하늘말나리야』의 후속작『소희의 방』은 독자들의 요청에 의해 선보이는 달밭마을을 떠난 소희의 삶을 그리고 있다.
“달밭마을을 떠난 소희는 어떻게 되었어요?” 작가는 강박과도 같은 독자들의 질문이 명치끝에 달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소희는 속이 깊고 야무진 아이니까 자신의 삶을 꿋꿋하게 잘 살아가고 있을 거예요. 나는 소희를 믿어요.”라는 대답으로 후속작의 기대를 일축해 버렸다. 그렇게 11년이 지나던 어느 날, 칼바람이 맵차게 불던 버스 환승 장소에서 금방이라도 주저앉고 싶을 만큼 피곤한 몸과 메슥거리는 속과 무엇인가 머릿속을 쿡쿡 찔러대는 두통에 시달리면서 화면이 겹치듯 오버랩 되어 달밭 마을을 떠나는 소희의 삶을 떠올렸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작은집으로 살러가는 소희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혈육과도 같은 친구 바우와 미르를 외면한 채 바우 아빠의 트럭에 오른다. 친구 미르가 자기 집에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자존심이 강하고 사려 깊은 소희는 서울 작은집을 선택한다. 몇 해를 작은집에서 더부살이 하던 소희는 자기 방을 갖는 것이 소원이었다. 열다섯 소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욕구지만 사촌들 틈에서 웅크리고 잠을 자던 소희에게는 어림없는 바람이었다. 그러던 차에 신데렐라 호박마차 타는 듯 반가운 소식이 소희에게 전해진다. 음식점을 여러 개 운영하는 사장님과 재혼한 친엄마로부터 같이 살고 싶다는 연락을 받게 된 것이다. 친엄마의 집에서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꿈에 그리던 방을 갖게 되지만 소희에게는 모든 게 낯선 풍경들뿐이고 엄마가 있는 집에서 조차도 정체모를 이방인이란 사실이 살에 콕콕 박힌다. 동생 우혁이는 곁을 내주지 않고, 엄마는 소희에게 진 빚을 값비싼 물건을 사 주는 것으로 대신하려 한다. 좀처럼 대화가 되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에서 소희의 허전한 가슴은 서늘한 냉기마저 느낀다. 그러던 차에 우혁이와의 일로 엄마에게 마음의 상처까지 입은 소희는 목구멍까지 차올랐던 말들을 쏟아놓고 집을 뛰쳐나간다.
소희는 결핍과 상처로 조숙해진 아이들의 결정체다. 『소희의 방』에는 소희와 같은 이시대의 청소년들이 이해와 소통을 통해 상처를 이기고 성장해 가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 속에 내재된 욕망과 억눌린 본성에 대해서도 깊이 공감하게 하는 책이다
책 속 이야기 | P. 213
“엄마는 누나한테 꼼짝 못하고, 아빠도 누나한테만 잘해 주고, 우진이도 누나만 쫓아다니고, 내가 시험을 못 봤으면 혼냈을 거면서 누나한테는 카메라도 사 주고, 그래서 그랬어!”
우혁이의 입에서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누나’라는 단어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소희는 말의 내용보다 그게 더 귀에 들어왔다.
◆ 책 속 이야기 ◆
책 속 이야기 | P. 213
“엄마는 누나한테 꼼짝 못하고, 아빠도 누나한테만 잘해 주고, 우진이도 누나만 쫓아다니고, 내가 시험을 못 봤으면 혼냈을 거면서 누나한테는 카메라도 사 주고, 그래서 그랬어!”
우혁이의 입에서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누나’라는 단어가 마구 쏟아져 나왔다.
소희는 말의 내용보다 그게 더 귀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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