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을 파는 가게의 손수건들 가장 아래쪽에는 수수한 들꽃밭이 그려진 손수건이 있다. 사람들은 화려한 문양의 손수건을 선호하다보니 이 손수건은 사는 사람이 없었고 새로운 손수건이 들어올 때마다 밀려 결국 맨 아래쪽에 놓여 있다.
손수건의 꽃밭에는 말벌과 나비, 고슴도치, 달팽이 등 많은 동식물이 산다. 동식물들은 얼른 손수건이 팔려 팔랑팔랑 바람이 부는 밖의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
땀·눈물 젖으면 열리는 ‘비밀의 문’
손수건서 나온 벌 앞엔 죽음의 고비가…
무사귀환 바라는 친구들 사랑도 담아
현실과 환상 넘나드는 판타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 돋보여
그러던 어느 날,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가 마침내 들꽃밭 손수건을 고른다. 사실 손수건에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손수건이 감동적인 땀과 눈물로 젖으면 비밀의 문이 나타나고 그 문을 통해 손수건의 동식물이 진짜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호기심 많은 말벌은 언제나 손수건의 비밀의 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날 손수건을 산 아주머니가 손수건으로 땀을 닦자 진짜 비밀의 문이 나타나고 말벌은 손수건 안 세상을 탈출했다.
뒤늦게 말벌이 탈출한 사실을 안 손수건의 들꽃밭에선 난리가 났다. 무사히 말벌이 돌아오지 못할까 걱정도 된다.
들꽃밭 친구들의 걱정은 아랑곳없이 말벌은 세상나들이에 신이 난다. 그러나 말벌의 기대와 달리 세상은 살아나기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말벌이 나타났다고 쫓아내거나 죽이려하고 말벌은 어디 한 곳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다.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말벌은 다시 손수건 속 평화로운 들꽃밭이 그립기만 하다. 함께 지낼 떈 몰랐던 들꽃밭 친구들과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손수건이 얼른 젖어서 비밀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지만 좀처럼 비밀의 문은 나타나지 않는다.
저녁에 아주머니는 손수건을 들고 산책을 나간다. 그때 어디선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렸고 마음씨 착한 아주머니는 우는 아기의 눈물을 닦아준다. 마침내 손수건이 젖고 비밀의 문이 열리지만 정작 벌이 보이지 않는다.
꽃밭의 식구들은 한 목소리로 벌에게 지금 돌아오라고 소리지른다. 바람이 불며 손수건의 문이 닫히기 직전 말벌이 쏘옥 들어온다.
이 동화는 200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이번에 그림책으로 다시 펴냈다. 시적이고 동화적인 문체와 판타지의 독창성과 흥미로운 사건 전개의 재미를 고루 갖추고 있다.
말벌과 아주머니, 손수건 속 들꽃밭의 동식물을 통해 작가는 작고 하잖지만 훈훈하고 소중한 사랑을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환상과 현실의 경계인 ‘비밀의 문’이 열리는 발상도 재미있고 말벌이 다시 돌아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표현했다.
독자들이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만드는 작가의 글솜씨가 돋보이는 순간이다. 이 책은 판타지 동화의 전형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조희양 글/백명식 그림/고래책빵/40쪽/1만 20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