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력을 자극하려면 글이 아니라 그림을 읽어라

 
김영훈 2019. 0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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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451441_960_720.jpg » 이미지 픽사베이. 무조건 그림책만 많이 읽어준다고, 아이의 직관력이 발달할까? 그렇지는 않다. 아무리 우뇌발달기라도 직관력이 잘 발달하게 하려면 그에 맞는 읽기법이 필요하다. 아이의 직관력이 발달하기를 바란다면, 글이 아니라 그림을 읽게 해야 한다. 여기서 ‘읽는다’라는 것은 능동성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 부모가 이런 책이 좋다, 이것을 봐야 한다고 해서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능동적으로 그림을 읽게 해야 한다.


한때 우리 아이는 하루에 그림책을 이만큼이나 그림책을 읽었다고 자랑하면서 아이가 읽은 몇십 권의 그림책을 찍어서 블로그에 인증샷 올리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아이들 공부에서 논술이나 스토리텔링이 중요해지면서 아이가 읽은 책의 수가 성적이 되는 양, 집착하는 부모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집에는 거실 한 면이나 아이 방이 온통 아이 책으로 꾸며져 있다. 그 책들은 아이가 한 권 한 권씩 골라서 사온 책이 아니라 부모가 미리 좋다는 책을 알아봐서 구매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아이의 뇌에 그림책이 좋다고 자부하지만, 지금 우리 부모들이 ‘그림책’을 대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책으로 한글을 떼는 것을 목적으로 삼거나 너무 많이 읽게 하는 것이다. 유아기는 ‘그림’에 집중해야 그림책으로 뇌 발달에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다. 아이들은 글을 알게 되면, 그 전보다는 그림에 덜 집중한다. 그림에 덜 집중하게 되면 그림으로 볼 수 있는 효과는 조금씩 줄어든다. 글을 보는 아이는 직관적인 생각보다는 논리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여러 가지 해결안보다는 한 가지 정해진 답만을 추구하게 된다.


독서학자인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의 우샤 고스와미 교수는 5세부터 글자 읽기를 시킨 아이들이 7세부터 글자 읽기를 시작한 아이들보다 초등학교 시기의 학업 성취도가 낮다는 결과를 보고한 바 있다. 아이들의 뇌가 글자 읽기에 준비되지 않은 시기에 글자 읽기를 시도하면 학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웃집 아이가 24개월에 그림책을 혼자서 읽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부모들은 마음이 급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책을 읽어야 초등학교에서 경쟁력을 갖출 텐데….’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은 독서가 좌우한다는데 글자를 빨리 알아야지.’ 그래서인지 그림책도 아니고 플래시 카드를 통한 한글 학습이 널리 퍼져있다. 


아이의 뇌가 얼마나 발달해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기어 다니는 아이를 앉혀 놓고도 한글카드를 넘기기도 한다. 돌도 되지 않은 아이는 청각과 시각 정보를 통합하는 뇌는 아직 발달 중이고 읽기를 담당하는 뇌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욕심이 앞서 아이의 뇌에 뭐든 넣어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부모의 몸부림은 부모가 원하는 효과보다 원하지 않은 역효과를 낳곤 한다. 부모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아마도 돌전부터 그림책을 읽어주었더니, 두 돌이 되자마자 띄엄띄엄 한글을 읽더라는 옆집 아이의 능력일 것이다. 그런 아이를 보면 우리 아이가 뒤처지는 듯 조급해지고, 나는 부모로서 옆집 부모보다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단언하건대 옆집 아이의 능력은 부모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발달의 속도가 모두 달라서일 뿐이다.


한글 떼기 용으로 그림책에 접근하면, 아이는 그림책에 쉽게 흥미를 잃는다. 그림책을 읽는 일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는 즐거운 일이 아니라 고된 노동이 된다. 아이가 급하게 글자를 배우면 글자를 소리의 표시가 아닌 그림으로 인식한다. 각각의 단어를 통째로 그림처럼 외우기도 하고, 한 글자씩 모양을 외우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글자를 읽을 때마다 머릿속에서 무수히 많은 통글자를 다 꺼내서 확인하여야 한다. 많은 기억공간을 차지할 뿐 아니라 읽기 효율성도 떨어진다. 한글 읽기는 부모가 그리 노력을 하지 않아도 6~7세가 되면 아이들이 저절로 관심을 갖는다. 한글은 아이가 관심을 가질 때 가르쳐주면 된다.


독서습관은 아이에게 참 중요하다. 이것은 아이뿐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독서습관은 삶을 더 가치 있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독서습관은 곧 공부습관, 공부와 연관이 되면서 강제로라도 만들어 주어야 하는 ‘무엇’이 되고 있다. 그리고 영유아기에 그림책을 많이 읽으면, 초등학교 때 독서하는 습관이 쉽게 만들어지고,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의 뇌를 알고 발달을 알고 아이의 건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말하자면, 영유아 시기에는 많이 움직이며 활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책읽기 습관을 붙이려고 아이에게 그림책 읽기를 강요하고, 온종일 그림책만 읽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에게 득 되는 독서습관은 그림책을 좋아하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자발적으로 읽으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그림책은 한글을 익히기 위해 보는 책이 아니다. 한글을 익히는 데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에 돌 전부터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짚어가며 읽어주기도 하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이다. 아이에게 그림책은 순수하게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지 한글을 깨치게 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아이에게 그림책을 보여주려면 아이가 글자를 알든 모르든 편안하게 즐겁게 읽어주어야 한다. 한글을 익히겠다는 부모의 기대가 없어야 아이가 그림책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직관력을 키우려면 읽어줘라


아이가 그림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부모가 읽어주는 것이다. 일본 토호쿠대 의학부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책 읽기’가 뇌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활성화시키는 지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 바 있다. 그는 책, 만화책, 게임을 볼 때 뇌의 활성화가 되는 부분이 어떤지를 각각 비교했다. 이 중 뇌의 가장 많은 부분이 활성화되는 것은 책이었다. 게임을 할 때 굉장히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뇌의 대부분의 부분이 활성화되지 않았다. 가와시마 류타 교수는 만 3세 아이를 대상으로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 때와 엄마가 말을 걸 때, 뇌 활성화가 어떤지에 대해서 연구하기도 했다. 결과는 같은 이야기라도 엄마가 말해줄 때 뇌의 더 많은 부분이 활성화되었다. 이는 아빠가 말을 걸었을 때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한 뇌과학자는 12개월 이전의 유아를 대상으로 몇 개의 단어를 제시하면서, 그 단어를 엄마가 읽어줄 때와 모르는 사람이 읽어줄 때, 녹음된 성우 목소리가 읽어줄 때 중 어느 때에 더 유심히 보는가를 알아보기도 했다. 결과는 엄마가 읽어줄 때가 1번, 모르는 사람이 읽어줄 때가 2번이었다. 아이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장 주의를 기울인다. 아이의 뇌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장 많이 활성화된다.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첫 번째 조건은 아이가 글자를 알더라도 부모가 읽어주는 것이다. 유아기 아이는 부모가 관심을 갖는 것, 부모가 좋다고 생각하는 것에 일단 호의적이다. 부모 자신이 그림책을 정말 즐거워하면서, 재미있게 읽어주면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아이는 없다.


간혹 그림책을 재미있게 읽지 못한다며, 그림책 읽어주기를 꺼리는 부모가 있다. 보통 아빠들이 많이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아이한테 재미없다는 핀잔까지 들으면, 다음부터는 읽어주고 싶은 생각이 싹~ 가신다고도 한다. 아빠 중에는 자신이 읽는 것보다 색도 예쁘고 사운드 효과까지 훌륭한 전자책을 읽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데도 그림책은 부모가 읽어주는 것이 좋다. 아이는 그림책으로 부모의 연기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못 읽어도 아이는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을 더 좋아한다. 뉴욕 쿠니센터가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은 화려한 디지털 기기 속 그림책이 아니라 부모가 읽어주는 종이책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다.


직관력을 높이는 그림책 읽기 비법


어릴수록 산만한 이유는 뇌가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다.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는 아직 자신에게 어떤 정보가 필요하고 필요하지 않은지를 알지 못한다. 적절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주변 모든 상황에 민감해야 하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아이는 매 순간 새로운 환경을 만난다. 그때마다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 주의를 빨리 분산시킨다. 따라서 유아기 너무 일찍 공부와 같이 의식적으로 한 가지에만 주의를 집중하도록 하는 것은 아이의 두뇌 본능을 거스르는 것이다. 취학 전에는 아이의 뇌가 발달할 수 있도록 많은 자극에 노출시켜야 하고, 주입식 환경보다는 본인이 스스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직관력을 키워야 한다. 다음은 아이 스스로 집중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직관력을 키우게 하는 그림책 읽기 방법이다.


첫째, 짧은 집중력을 고려하라.


직관력이란 그림책을 읽어주자마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법 긴 시간 그림책 읽어주기를 지속했을 때 아이에게 서서히 직관력이 생긴다. 그래서 이제 막 읽어주기 시작하면서 조급하게 결과를 바라면, 오히려 그림책을 싫어하게 될 수도 있다. 직관력을 키우려면, 아이가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짧은 집중력 시간에 맞게 읽어줘야 한다. 생후 12개월 전후의 아이는 집중하는 시간이, 겨우 5분 이내다. 5분 이내에 읽을 수 있는 5~6장이 있는 그림책을 골라 재미있게 읽어주고 끝내야 한다. 이 시기는 너무 오랫동안 한 페이지를 들여다보게 할 필요도 없다. 아이가 빨리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고 싶어 하면, 그렇게 한다. 그리고 잠깐이라도 아이가 잘 들었으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만약 집에 있는 그림책이 문장들이 좀 많아 5분 만에 읽어주기가 힘들다면, 의성어나 의태어만 들려주고 페이지를 빠르게 넘긴다. 


12개월 전후의 아이는 책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페이지가 넘겨지는 움직임을 보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는다. 오랜 시간 한 페이지를 붙잡고 읽는 것은 아이 입장에서 보면 움직임 없는 물건을 응시하며 참아내야 하는 것과 같다. 빠르게 책장을 넘기며 빠른 장면 전환으로 지루하지 않게 하여야 한다.


둘째, 부모와의 교감이 직관력을 강화시킨다.


“아이가 그림책에 집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솔직히 어린 아이일수록 부모가 읽어주는 그림책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그림책 탓이 아니라 부모 탓이다. 아이에게는 그림책이 어떻게 생긴 지보다 부모가 어떻게 읽어주는 지가 훨씬 중요하다. 취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는 대부분 부모와 함께 하하 호호 하면서 재밌게 읽은 책을 좋아하고, 그런 책을 읽을 때 자신도 집중한다. 


그리고 집중을 하여야 직관력이 생긴다. 아이에게는 부모의 품에 꼭 안겨서, 부모의 체온을 느끼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을 나눈 그림책이 좋은 그림책이다. 한 권의 그림책이라도 같이 읽으면서 서로 교감을 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아이가 한 권의 그림책에 집중하고 감동할 수 없다면, 몇십 권의 책을 읽어도 결국 형식적인 읽기와 듣기에 불과하다. 같이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것은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아이에게 전하는 좋은 방법이자 좋은 기회다.


셋째, 리듬감 있고 짧은 글이 있는 그림책을 골라라.


그림책에서 글은 그림에 비하면 보조적인 역할을 하지만 글이 감각적이면 내용을 더 빨리 흡수할 수 있다. 어린 아이일수록 리듬감 있고 간결하며 생동감이 있는 글에 더 집중을 잘한다. 부모 또한 그런 책이 아이의 짧은 집중력 시간 동안 책 1권을 읽어주기에 유리하다. 리듬감 있는 글이란 대구가 맞게 쓰여 있거나 4~5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에 각운이 맞는 글을 말한다. 리듬은 글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아이들이 동요를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런 글은 시를 외듯, 노래를 부르듯 읽어줄 수 있고, 아이도 쉽게 기억하고 따라 하기 쉬워 어휘력은 물론, 그림책 읽는 재미를 부가시킨다.


밥상 위에 도토리 누구 밥일까?

다람쥐가 쪼르르 도토리 앞에.


밥상 위에 홍당무 누구 밥일까?

토끼가 깡충깡충 다람쥐 옆에.


밥상 위에 좁쌀 누구 밥일까?

병아리가 종종종 토끼 옆에.


밥상 위에 물고기 누구 밥일까?

고양이가 사뿐사뿐 병아리 옆에.


「모두 모여 냠냠냠(이미애 글, 김달성 그림/ 보림)」에 나오는 ‘글’이다. 의성어나 의태어가 있는 대구가 계속 반복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 돌 전후부터 만 3세까지 적당한 그림책으로 말의 재미를 느끼면서 그림책에 빠져들기에 적당하다.


넷째, 재미를 줄 정도만 유창하게 읽어주어라.


그림책은 그 그림책의 그림이나 내용을 잘 감상할 수 있는 정도로만 읽어주면 된다. 아이의 혼을 빼놓을 정도로 지나친 과장을 할 필요도 없고, 교과서를 읽듯 너무 또박또박 읽어줄 필요도 없다. 할머니가 나올 때는 할머니처럼 목소리를 내야 하지만 지나치게 드라마틱하게 연출을 하면 아이가 그림책에 집중하지 못하고 읽어주는 사람한테 집중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는 부모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그림을 보지 못한다. 그림책 ‘그림’이 줄 수 있는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그림책은 적절히 재미를 줄 수 있을 만큼만 유창하게 읽어주면 된다.


다섯째, 호기심을 해결하는 그림책 읽기를 하라.


뇌는 본능적으로 즐거움과 호기심에 반응한다. 뇌는 뭔가 얻을 것이 있어야 집중한다. 그림책에 집중하게 하려면 호기심이나 궁금증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방법은 두 가지다. 그 자체로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그림책을 고르거나 부모가 미리 읽어본 후 아이가 궁금할 만한 것을 생각해놓고 읽은 중간 중간에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우리 친구 하자(앤서니 브라운/ 현북스)」는 ‘친구 사귀기’에 대한 소재를 담고 있다. 스머지와 찰스는 각각 강아지를 데리고 아빠를 따라 엄마를 따라 산책을 간다. 공원에서 만난 스머지와 찰스는 처음에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다가 조금씩 가까이 가게 된다. 둘이 데리고 온 강아지가 마치 한 마리처럼 뛰노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도 어색하지만 나란히 그네도 타고, 함께 구름사다리도 타고, 나무도 올라가면서 즐겁게 놀게 된다. 아이들은 어느새 친구가 된다. 헤어지면서 찰스는 스머지에게 노란 꽃을 선물하고, 스머지는 그 꽃을 유리병에 꽂아 소중히 간직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이 그림책은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친구가 될 수 있는 예쁜 아이들 마음이 표현되어 있는 동시에, 처음 만났을 때는 어색하지만 어떻게 하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그 방법도 알려준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유발하는 그림책으로 「우리 친구 하자」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림 때문이다. 앤서니 브라운은 조금만 단순해도 지루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아는지, 그림 속에 비밀(?)를 많이 숨겨둔다. 첫 페이지 이층집에는 굴뚝이 있다. 그런데 굴뚝 그림자가 굴뚝 모양 그대로가 아니라 중절모를 쓴 아저씨 모양이다. 두 번째 페이지 담장에는 느닷없이 미키마우스가 손을 흔들고 있다. 정원수가 찰스 엄마의 옆모습과 똑같이 다듬어져 있고, 다섯 번째 페이지의 공원 나무 중 하나는 거인의 발 모양이다.


또 공원에는 강아지 대신 커다란 토마토를 끌고 산책하는 아저씨도 있다. “이 아이들은 서로를 왜 이렇게 빤히 쳐다만 볼까?”, “찰스가 준 꽃을 스머지는 어떻게 할까?” 등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아이와 그림 속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해보자. 스토리는 무시해도 좋다. “앤서니 브라운 아저씨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려놓았을까?” “왜 현관에 커다란 눈이 있을까?” 등의 이야기를 나누면, 아이는 그림책에 더 좋아하고, 직관력도 키워진다. 실컷 그림을 가지고 논 다음, 아이가 “그런데 엄마 이 책은 무슨 얘기야?” 하면 그 때가서 읽어줘도 된다.


여섯째,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만 뽑아서 읽어도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을 수 있다면, 물론 좋다. 하지만 페이지가 많은 그림책이라면, 아무리 아이가 좋아하는 그림책이라도 한 번에 전부 읽기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아이가 특별히 좋아하는 부분 위주로 읽어줘도 된다. 정독하는 습관보다는 호기심을 채우면서 그림책을 즐겁게 읽는 것이 더 중요하다. 아이가 좋아하는 부분 위주로 읽은 후, 아이가 그 책의 전체 내용을 궁금해하면 그때 조금씩 잘라서 읽어준다. 아무리 기다려 봐도 아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안 읽어도 된다. 그림책이 전하려는 스토리나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의 주관적인 느낌이다. 아이가 그 책의 그 부분을 읽고 뭔가를 느끼고 얻은 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이가 부분이라도 그림책을 읽은 후 느낌이나 생각을 말할 때는, 다소 황당하고 부모가 생각하는 정답과 거리가 멀더라도 진심으로 경청해주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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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가톨릭대 의정부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및 소아신경과 전문의. ‘부자 아빠’가 대세이던 시절, 그는 “아이 발달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 말했다. 돈 버느라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 보다는 ‘친구 같은 아빠’가 성공하는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수록 아이의 인성은 물론 두뇌도 발달한다. 6살 이전의 아이 뇌는 부모의 양육방법에 따라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고 그는 강조한다. ‘베이비트리’ 칼럼을 통해 미취학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는 제대로 된 양육법을 소개할 계획이다. <아이의 공부두뇌>, <아이의 공부의욕>, <아이가 똑똑한집 아빠부터 다르다> 등의 책을 펴냈다.
이메일 : pedkyh@catholic.ac.kr       트위터 : pedky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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