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택배 수레 금지? 604호는 OK♡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폭염과 혹한에도 촌각을 다퉈야 하는 과로노동과 감정노동, 목숨을 위협하는 안전사고, 생계를 위협하는 낮은 임금 등으로 택배 배달노동자들의 고통은 더해만 가고 있다.”

택배 노동자들은 지난 9월 서울 광화문에서 “우리는 배달하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택배업계 종사자들의 힘든 현실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택배 노동자에 대한 갑질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갑질을 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닙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우리 모두의 예상보다 훨씬 따뜻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 어느 아파트에서 벌어진 택배 노동자 수레 논란과 잇따른 주민들의 포스트잇 응원은 우리 안의 배려와 공감을 보여줍니다.

29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느 아파트의 공지문’이라는 제목으로 사진 3장이 올라왔습니다. 해당 글은 30일 오전 10시 현재 8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해당 사진은 수도권의 한 아파트 게시판에 올라온 안내문이었습니다. 27일자 아파트 관리사무소장 명의의 안내문에는 “배송 관련 수레 사용을 금지합니다. 수레 사용으로 인한 소음으로 입주민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배송기사님의 협조 부탁드립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소음 민원이 거셌던 모양인지 ‘배송 관련 수레 사용을 금지’라는 대목은 빨간색 글씨로 강조까지 돼있었습니다.

여기까지는 흔한 안내문처럼 보입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 안내문 위에 뜻밖의 메시지가 붙어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10층은 그대로 수레 사용해주세요. 그게 우리의 민원임. 10층은 수레 오케이!”

노란색 포스트잇에 적힌 글은 또 다른 주민들의 행동을 이끌어냈습니다.

“전 괜찮던데요? 수레 소음 상관없습니다. 계속 이용하세요”

“배송 기사님의 수고에 항상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부끄럽고 인터넷에서나 보던 글을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604호 택배는 전화주시면 찾으러 내려가거나, 부재 시 경비실에 맡겨 주시면 찾아가겠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다음 날 포스트잇은 두배로 늘어났습니다. 이중에는 초등학생 어린이가 고사리 손으로 적은 글도 눈에 띄네요.

“초등학생이에요.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라고 배웠어요. 이제까지 수레소리로 불편한 적 없었어요. 택배 아저씨 고생 많으신데 힘들게 하지 마세요! 택배 아저씨 수레, That’s OK!”

“택배기사님 수레 소리 전혀 시끄럽지 않습니다. 새해엔 배려하는 마음이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1804호입니다. 배송하시느라 고생 많으시네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걱정 마시고 안전하게 배달을 부탁드립니다. 수레 OK♡”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그 다음날 안내문에는 더 많은 메모장이 붙여졌습니다. 포스트잇을 떼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꽁꽁 붙여 놓았네요. 주민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택배 기사님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내 가족을 생각하듯이 조금씩 배려하면 어떨까요? 택배 기사님들 힘내세요”

“택배기사님!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이에요! 수레 소리는 전혀 시끄럽지 않아요. 무거운 택배 상자를 들면 힘이 들 것 같아요. 화이팅 :) 힘내세요!”

2017년 기준 택배노동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하루 13.37시간, 연 3848시간입니다. 이 긴 시간 동안 택배를 이고 지고 나르는 택배 아저씨들이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안내문을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 위에 주민들이 줄줄이 붙인 포스트잇을 본다면 또 어떤 마음이 들게 될까요.

한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해가 다가옵니다. 마무리와 출발이 교차하는 이 시간. 우리 한번 되물어 보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그리고 나는 안내문과 포스트잇, 어느 쪽 편에 마음의 줄을 서는 한해를 살았나요. 그리고 살게 될까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김지은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4078929&code=61171811&sid1=l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