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압도적인 사회 현상에는 그 사회의 구조적 병폐나 모순이 압축적으로 녹아 있게 마련이다. 평소에는 대중의 관심 밖에 있던 모순과 병리가 어떤 구체적 계기를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되고, 대중은 그것을 바라보며 분노를 터뜨리거나 열광적으로 호응하게 되는 것이다. 2011년 개봉된 영화 <부러진 화살>이나 1000만 관객을 넘긴 <변호인>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흥행대박을 터뜨린 것도 재판의 불공정성, 사법 정의의 실종과 같은 한국 사회의 엄연한 사실이 영화를 통해 새삼 대중의 큰 호응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러시아로 국적을 바꾼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선수가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에서 금메달을 따자 그를 둘러싼 칭찬과 비난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안현수는 2006년 2월 토리노올림픽 3관왕에 이어 3월 세계선수권 우승으로 명실상부한 한국의 ‘쇼트트랙 황제’로 등극했다. 그러나 이후 빙상연맹 내부의 파벌 싸움과 패거리 문화, 연맹 유력인사와 지도자의 독선 등으로 상처를 입은 데다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겹쳐 연맹으로부터 ‘버린 카드’ 취급을 받자 좋은 조건을 제시한 러시아를 선택했다고 한다. 지금의 ‘안현수 현상’을 들여다보면 국적을 바꾸면서까지 자신의 꿈을 성취한 안현수에 대한 응원·환호·열광과, 그를 내친 연맹에 대한 비난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안현수의 ‘조국을 버린 행위’에 대한 비난도 있기는 하지만 다수는 아닌 듯하다.
‘안현수 돌풍’이 지속되자 “빙상연맹의 파벌 싸움과 비리 등은 과장됐다”거나 “안현수는 자신의 개인적 삶을 위해 러시아 귀화라는 선택을 했을 뿐 희생양이 아니다”라는 등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우리는 빙상연맹과 안현수 개인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일들의 사실관계를 시시콜콜 따지는 것은 ‘안현수 현상’이 담고 있는 핵심적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의 불공정성을 대중이 크게 공감하고 있으며, 안현수가 겪은 일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온갖 불합리와 부조리를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안현수는 새로운 조국에 금메달을 안겼다. 동시에 그는 ‘옛 조국’에는 사회의 공정성을 확립하고 불공정성을 타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능력있는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핍박받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의미있는 질문을 던졌다. 온갖 역경과 우여곡절을 겪고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라는 성과를 이룬 그에게 다시 한번 축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