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마을에는 특별한 ‘갤러리’가 있다
삶은 여행이다 2011/06/19 16:06 take 5한 소녀가 있었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을 떠난 소녀는 도회지에서 학교를 다녔고 취직을 했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 수년만에 자신의 유년시절 자랐던 그 고향에 돌아왔다. 어른이 되어 돌아온 고향을 본 그 ‘소녀’는 깜짝 놀랐다. 고향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이야기 소리가 들렸던 마을 어귀는 지저분했고 아늑했던 돌담은 무너져내리기 일보직전이었다. 고무줄놀이, 팔방놀이를 했던 마을 공터는 버려져있었다.
'소녀’는 자신의 위치에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소녀의 기억에 용복마을은 감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그리고 골목어귀마다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던 마을이었다. 마을 주민들의 기억속에, 고향을 떠난 많은 사람들의 추억속에 있는 마을을 만들어보자고 결심했고 마을 주민들도 이에 동의했다.

전북 완주군 경천면 용복마을의 이야기다. 2007년 완주군이 실시한 공공미술프로젝트를 계기로 용복마을은 새롭게 변했다. 위에서 말한 ‘소녀’는 완주문화의집의 성현옥씨다. 그녀는 완주문화의집에 발령을 받은 뒤 처음 실시한 공공미술프로젝트에 자신의 고향인 용복마을을 택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마을에는 꽃도 많이 피어있고 담장마다 사람들 이야기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커서 와보니 제 기억속의 마을과는 많이 달랐어요. 물론 누구나 어린 시절 마을이 더 커 보이기 마련이지만요. 그래서 마을 어르신들에게 마을을 이렇게 꾸밀 예정인데 어떠시냐고 의향을 물었죠.”
보수적이고 완고한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는 공공미술프로젝트라는 작업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몇 번의 설득과 토론 끝에 2007년 7월부터 11월까지 지역 미술가들과 자원봉사자들, 지역주민이 한마음이 된 공공미술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처음에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제안했을 때만해도 주민들의 반응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였죠. 하지만 비슷한 사례로 성공을 거둔 다른 지역들을 견학하고 몇 차례의 회의를 통해 동네 주민들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어갔어요.”



마을개발위원장을 맡고 있는 양승학(50)씨의 설명을 듣고보니 조금씩 이 동네 ‘갤러리’ 탄생의 윤곽이 잡히는 듯 하다.
타일을 깨어서 붙이고 색깔을 입히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지역미술가들이 맡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밑 작업은 주민들의 몫이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무너진 돌담을 다시 세우고, 꽃을 심고, 청소를 하는 일에 주민들은 발 벗고 나섰다. 지역미술가들이 알지 못하는 동네의 숨겨진 이야기를 해주는 것도 지역주민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담장에 그릴 그림 소재를 제공하기도 하고, 마을에서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관계도 주민들이 작가에게 물을 떠다주거나 새참을 가져다주면서 점차 부드럽게 풀어졌다. 작가들은 어르신들의 어깨를 주물러드리면서 친숙해졌다. 그렇게 서로가 친해지면서 속을 터놓을때쯤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마을이야기가 주민들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여기엔 마을 공동 우물이 있었어요. 마을마다 물을 길으려면 여기에 다 모였죠. 지금은 여기에 상수도 시설이 들어서서 우물은 없어져버렸지만요.”
잊혀졌던 우물, 주민들 이야기로 되살아나
우물이 있던 그 자리에 우물 그림을 그려놓았다. 우물은 사라졌지만 우물가에서 물 긷던 소리, 옆집 누구네가 어쨌다더라는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은 우물속 그림에서 살아있다. 나그네를 위한 ‘포토라인’도 함께.
가장 크게 바뀐 점은 주민들의 의식이다. 예전에 비해 의사소통이 더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단결력과 협동심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마을의 자산이 되었다.
“옛날에는 뭘 하고싶어도 뭘 어떡해야할지 방법을 몰랐어요. 하지만 마을을 청소하고 가꾸면서 우리 동네에 대해 다시한번 알게됐죠. 우리 동네만이 가지고있는 자원이랄까, 소중한 자원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죠. 

작년까지 이 동네 이장을 맡아서 마을가꾸기 사업에 힘을 쏟았던 국동순(73)씨의 설명이다. 이날 기자에게 동네를 소개하면서도 국씨는 길가의 쓰레기를 줍고, 돌멩이를 치우는 등 연신 손길을 부지런히 놀렸다. 마을이 한 두사람의 힘으로 그냥 이뤄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용복마을은 2008년에는 ‘예쁜마을 컨테스트’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지역을 들른 블로거들과 누리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마을은 점차 알려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용복마을’을 검색하면 그림같은 마을 풍경과 이미지가 떠오른다. 입소문을 타면서 이곳에 일부러 들르는 사람도 늘어났고 찾아오는 사람도 생겼다. 주민들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마을에서 오래동안 방앗간을 운영하고 있는 이복순(70)씨. 이번 작업을 통해 평범했던 시골 농가가 어여쁜 풍경이 그려져있는 ‘그림있는 집’으로 변했다. 처음에 이씨는 오는 사람마다 자기 집을 사진 찍어가는 게 무척 낯설고 이상했단다.
“사람들이 와서 사진도 찍어가고 그러는 거여. 처음엔 왜 와서 사진들을 찍어쌓고 그렁가 싶었지. 알고봉게 이게 다 우리 마을 선전하는 거라하더라고. 기분 좋지. 옛날에는 쳐다도 안보던 집구석에 관심도 가지고 컴퓨터에도 나와서 유명해졌는디 어찌 기분이 안 좋을 수 있댜.”

완주문화의집 성현옥씨는 ‘담장에 그림을 그리거나 타일을 붙이는 등 미술작업은 전문 미술가들이 했지만 주민들의 협조와 지지가 큰 바탕이 되었다’고 말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마을을 깨끗이 보존하고 가꾸는 일이 더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주민들이 그 일을 지금 훌륭히 하고계시더라구요. 프로젝트를 했을때가 늦가을 무렵이어서 꽃을 심지못했거든요. 다음 해에 가니 누군가 마을어귀에 꽃을 가득 심어놓았더라구요. 바로 이 마을에 사는 한 할머니께서 꽃을 심기 시작했고 마을 주민들이 함께 꽃을 여기저기 심기 시작했죠. 어린시절 제 기억에 남아있던 꽃많던 동네를 그대로 만드신거죠.”

작년에 ‘참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에 뽑힌 용복마을은 그때 받은 상금으로 동네에 두부공장을 지었다. 용복마을에서 나오는 콩으로 만드는 두부다. 매주 금요일마다 동네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두부를 만들고 판매도 한다. 일자리 창출과 농가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아직은 직거래이지만 판로를 더 넓혀 용복마을 콩두부를 알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