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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이야기]가난한 날의 행복 -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2011-02-14
엄마는 부자로 살려고
결혼한 건 아니야
그저 행복하게 살려고 …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로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누가 따스한 저녁을 지어놓고 나를 기다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박수근(1914-1965)은 이런 나의 로망을 살짝 건드리는 화가랍니다. 옛 국어교과서에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어요.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위해주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는데, 박수근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아요.
평생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던 박수근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붓을 놓은 일이 없을 만큼 예술을 사랑했고 예술적 의지가 강했어요. 그러나 생활인으로서 박수근은 무력했습니다. 일생을 두고 그가 직업을 가졌던 기간은 도청직원으로, 또 미술선생으로, 그리고 간판그림을 그리며 미군부대를 잠시 거쳐 갔던 시절까지 전부 합쳐 5년 정도였어요.
박수근의 그림 속에는 머리에 광주리를 인 아낙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낙은 나물 몇 다발이 든 광주리를 내려놓고는 해가 다 가도록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요.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면 여인들은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두드리며 겨우 일어나 팔다 남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총총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인을 그린 그림이건만 고운 꽃분홍색도 한 가닥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건조하게 갈라진 흙벽 같은 그림의 표면에서 궂은 일로 꺼칠꺼칠해진 여인의 손등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수한 갈색조의 바탕색은 여인이 입은 구겨지고 흙 묻은 흰 무명옷을 생각나게 하지요. 이 여인도 틀림없이 매끌매끌한 비단 치마에 구슬 박힌 작은 손가방으로 멋을 내고는 수줍은 표정으로 남편을 따라 나들이 가고 싶었을 텐데요.
박수근의 그림에서 늘 모델이 되고 있는 아내 김복순은 단 한 번도 그런 나들이를 꿈꿔보지 못했습니다. 궁핍한 생활에 시집 식구들의 밥을 챙겨주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정작 자신은 콩 몇 알에 냉수만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으니까요. 박수근이 ‘절구질하는 여자’를 그리고 있었을 때 그림 속의 아내는 만삭이 된 몸이었고, 등 뒤로 아이를 업은 채 온갖 일을 하다보면 저녁 무렵에는 다리가 온통 마비된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6·25 동란이 터졌을 때에는 서울로 피난을 내려오는데요. 씩씩했던 부인은 온 가족이 다 같이 가면 남편이 위험해질까봐, 남편만 혼자 먼저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짐을 싸서 내려오는데, 도중에 인민군에 체포되기도 하고, 지뢰밭을 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사투 끝에 서울에 도착하였지요. 마음을 조이며 날마다 마을 어귀까지 나와 가족을 기다리던 박수근은 이후로도 날마다 아내 마중을 나오게 되었답니다. “나는 외출해서 돌아올 때 우리 집 용마루만 보여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하고 그는 습관처럼 말하곤 했어요. 뭐가 그리 사랑스러우냐고 여쭈면, “저 집안에 죽었다 살아온 나의 처자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도 기쁠 수가 없어”라고 하셨지요.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박수근은 따스하기 그지없는 자상한 남편이었어요. “어느 날엔, 그이가 성남이를 데리고 마중을 나왔는데, 다른 남편들은 한 분도 안 나왔는데 말예요. 기분이 언짢지는 않더라고요. 집에 와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내 밥을 아랫목에 파묻어 놓고 화로에는 찌개를 얹어 놓았더이다.”
부인의 소원은 남편 박수근의 그림이 밀레의 그림처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오는 것이었어요. 그 소원은, 비록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뜬 후이기는 하지만, 이루어졌습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싫어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 성남이에게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부자로 살려고 결혼한 건 아니야.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지…” 남편 박수근의 사랑을 떠올리니 그림 속 절구질하는 여인도 마냥 힘겹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주은 성신여대
결혼한 건 아니야
그저 행복하게 살려고 …
하루 종일 이 일 저 일로 시달리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누가 따스한 저녁을 지어놓고 나를 기다려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박수근(1914-1965)은 이런 나의 로망을 살짝 건드리는 화가랍니다. 옛 국어교과서에 ‘가난한 날의 행복’이라는 수필이 실려 있었어요. 비록 가난하지만 서로 위해주는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였는데, 박수근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않아요.
평생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던 박수근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붓을 놓은 일이 없을 만큼 예술을 사랑했고 예술적 의지가 강했어요. 그러나 생활인으로서 박수근은 무력했습니다. 일생을 두고 그가 직업을 가졌던 기간은 도청직원으로, 또 미술선생으로, 그리고 간판그림을 그리며 미군부대를 잠시 거쳐 갔던 시절까지 전부 합쳐 5년 정도였어요.
박수근의 그림 속에는 머리에 광주리를 인 아낙이 자주 등장합니다. 아낙은 나물 몇 다발이 든 광주리를 내려놓고는 해가 다 가도록 길모퉁이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요.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면 여인들은 잘 펴지지 않는 무릎을 두드리며 겨우 일어나 팔다 남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총총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인을 그린 그림이건만 고운 꽃분홍색도 한 가닥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건조하게 갈라진 흙벽 같은 그림의 표면에서 궂은 일로 꺼칠꺼칠해진 여인의 손등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수수한 갈색조의 바탕색은 여인이 입은 구겨지고 흙 묻은 흰 무명옷을 생각나게 하지요. 이 여인도 틀림없이 매끌매끌한 비단 치마에 구슬 박힌 작은 손가방으로 멋을 내고는 수줍은 표정으로 남편을 따라 나들이 가고 싶었을 텐데요.
박수근의 그림에서 늘 모델이 되고 있는 아내 김복순은 단 한 번도 그런 나들이를 꿈꿔보지 못했습니다. 궁핍한 생활에 시집 식구들의 밥을 챙겨주고 나면 먹을 것이 없어 정작 자신은 콩 몇 알에 냉수만 벌컥벌컥 들이켜야 했으니까요. 박수근이 ‘절구질하는 여자’를 그리고 있었을 때 그림 속의 아내는 만삭이 된 몸이었고, 등 뒤로 아이를 업은 채 온갖 일을 하다보면 저녁 무렵에는 다리가 온통 마비된 듯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6·25 동란이 터졌을 때에는 서울로 피난을 내려오는데요. 씩씩했던 부인은 온 가족이 다 같이 가면 남편이 위험해질까봐, 남편만 혼자 먼저 내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어린 두 아이와 함께 짐을 싸서 내려오는데, 도중에 인민군에 체포되기도 하고, 지뢰밭을 넘기도 하면서 그야말로 사투 끝에 서울에 도착하였지요. 마음을 조이며 날마다 마을 어귀까지 나와 가족을 기다리던 박수근은 이후로도 날마다 아내 마중을 나오게 되었답니다. “나는 외출해서 돌아올 때 우리 집 용마루만 보여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몰라”하고 그는 습관처럼 말하곤 했어요. 뭐가 그리 사랑스러우냐고 여쭈면, “저 집안에 죽었다 살아온 나의 처자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도 기쁠 수가 없어”라고 하셨지요.
아내의 기억 속에서도 박수근은 따스하기 그지없는 자상한 남편이었어요. “어느 날엔, 그이가 성남이를 데리고 마중을 나왔는데, 다른 남편들은 한 분도 안 나왔는데 말예요. 기분이 언짢지는 않더라고요. 집에 와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오니 내 밥을 아랫목에 파묻어 놓고 화로에는 찌개를 얹어 놓았더이다.”
부인의 소원은 남편 박수근의 그림이 밀레의 그림처럼 모두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오는 것이었어요. 그 소원은, 비록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뜬 후이기는 하지만, 이루어졌습니다. 엄마가 고생하는 것이 싫어 아버지를 미워했던 아들 성남이에게 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엄마는 부자로 살려고 결혼한 건 아니야. 행복하게 살려고 결혼했지…” 남편 박수근의 사랑을 떠올리니 그림 속 절구질하는 여인도 마냥 힘겹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이주은 성신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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