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ation

2010_1218 ▶ 2011_0130 / 월요일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성유진_우윤진_이충열_김신혜_강주현_이경훈_류미현_문재일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1월 1~2일 휴관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GUROARTSVALLEY GALLERY 서울 구로구 의사당길 12(구로동 101번지) Tel. +82.2.2029.1700~1 www.guroartsvalley.or.kr

이번에 소개할 'Relation'라는 주제는 사람과 사람사이, 사람과 사물사이, 사물과 사물사이의 관계가 갖고 있는 의미에 대해 각기 다르게 해석하는 작가들의 작품들을 소개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아티스트들이 생각하는 '관계'와 이를 통해 스스로의 '관계'를 뒤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자 준비하였다. '관계'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다고 정의 하고 있다. 넓은 뜻으로는 둘 이상의 사고의 대상을 어떤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경우, 이 대상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사람(人)이란 상형문자는 사람이 서 있는 모습, 하늘을 올려 보는 모습, 서로 기대어 있는 모습 등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왼쪽 사람이 오른쪽 사람에 기대어 있는 듯한 형상을 지닌 모습에 주목을 하려고 한다. '서로 공생해야 살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진 이 문자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암시하고, 그러기 때문에 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서 수없이 많이 이루어 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다. 나아가 동양의 전통적 자연관으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천인합일(天人合一), 물아일체(物我一體) 등으로 하늘과 인간, 사물과 나는 하나라는 것이다. 즉, 자연과 인간, 사물과 나,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는 것으로, 이러한 사상은 인간세계를 이해하는 기초가 되기도 하였다. ● 사회의 구성원인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대상들과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고 있다. 대상들에게 의지하고 또는 갈등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존재를 재인식하고 있다. 여기서 '관계'란 맺을 대상이 중요하기도 하지만, 우선 나 자신이 제대로 세워져야만 되는 것 이다. '내'가 없으면 '대상'도 없고, '관계'도 없으므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의 눈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형성이 어떠한지, 그러한 세상속의 관계에 부대껴보고, 스스로 느끼면서 관계와 대상과 나의 진실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란다. ■ 구로아트밸리 갤러리

성유진_Cloth Doll_천에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0

예술은 놀이, 즉 정신의 놀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주된 놀이인 것이다. 여기 순간적으로 헝겊뭉치를 쳐다보는 아이가 있다. 어떤 생각이 이 아이의 머릿속을 스친다. 아이에게 헝겊뭉치는 이제 인디언이다. 아이는 이 헝겊인형을 인디언이라고 믿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진짜 인디언들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헝겊인형을 두려워하기로 결심한다. 실제로 아이는 헝겊인형이 무섭다. 물론 그렇다고 아이가 이것이 단순한 헝겊뭉치라는 것을 모를리 없다. 어차피 애초에 인형을 인디언이라고 결정하는 것 자체가 다분히 장난끼의 발동이다. 아이는 헝겊인형을 인디언이라고 믿기로 결심하면서 실제로 그렇게 믿게 될 것임을 알고 있다. 아이는 바로 이런 식으로 정신이 작동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를 매혹시키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정신적 과정의 실험과 검증이다. 아이는 마치 아이가 작은 발을 움직이면서 노는 것처럼 이렇게 자신의 정신을 움직이면서 논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 성유진

우윤진_당신의 조각들_디지털 프린트_각 21×15cm_2010

나의작업의 주된 관심사는 도시의 물리적 환경과 생활이 사람들의 행동와 심리에 끼치는 영향이다. 어떤 것을 무엇으로 생각하고 경험하는 방식의 구조는 때로 집단적으로 유지되는 듯하다. 사회에 속한 한 개인으로서 그것을 벗어나려는 욕구가 고정되어 있는 듯한 생활의 결을 움직이려는 노력을 하게한다. ■ 우윤진

이충열_마트_종이에 펜_122×100cm_2009

추락하는 사람들이 이루는 사슬같은 것을 욕망하도록 배운 사람들은 같은 것을 두고 경쟁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경쟁은 공평하거나 공정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의 의지나 능력과 상관없이 경쟁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우리는 경쟁의 장(場)에 설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어디서든 이미 만날 수 있다. 떨어지는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결국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로 연결된 사슬과 같은 구조를 이룬다. ■ 이충열

김신혜_관풍화도觀風花圖_장지에 채색_260×162cm_2009

나의 작업을 통하여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실제의 자연이 아닌 "전환된 자연", 마치 애완동물처럼 "소비사회에 길들여지는 인간", 그리고 세계적인 시장경제 속에서 접하게 되는 "외국상표"에 대한 것이다. 먼저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와 같은 세대는 자연을 자연 그대로 접하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팔리는 상품을 통해서 접하게 된다는 것이다. 음료수 캔이나 포장에 디자인되어 있는 꽃을 전체 화면으로 확장하여 그린 것은 이 때문이다. 다음으로 소비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애완동물을 끌어왔다. 이들은 화면의 중앙에 기념비적으로 그려진 음료와 대조된다. 마지막으로, 수입음료를 소재로 삼아 외국상표의 범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였다. 나는 우리의 전통재료와 기법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상품 이미지에 사용한 채색기법이나 동물 표현에 있어서의 붓 터치, 그리고 여백이 그것들이다. ■ 김신혜

강주현_SKIN SUIT-Rider_PVC, 레진, 디지털 프린트_170×200×100cm_2010

나는 일련의 사진작업들을 통해 사진과 조각과 드로잉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진조각, 사진드로잉의 형식적 가능성을 실험한다.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의 재현적 사진을 입체로 구현해 사진조각을 실현하고, 사진을 중첩된 선들의 집합으로 재구성해 사진드로잉을 실현한다. 그리고 시각의 영역으로만 치부되어지는 사진을 감각의 영역, 즉 이미지의 새로운 재조합과 소비를 유도함으로써 사진의 제한된 형식에서 자유로운 드로잉과 같은 형식으로 이미지의 확장을 이끌어 보려한다. ■ 강주현

이경훈_wake up!_한지에 채색_200×420cm_2009

자유는 인간이 가지고 싶어 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유를 좋아하고 타인으로 부터의 구속을 원하지 않는다. 그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구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며 그 속에서 삶의 가치를 찾으려 한다.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의 모습은 갈등과 고민으로 얼룩진 삶의 표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그런 갈등과 고민들에서 벗어나려 하고, 그 욕구는 분출되기 마련이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밤이라는 특정한 시간을 찾았고 그 안에서 만큼은 자유의지대로 사고하고 행동한다. 도시의 밤 풍경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형형색색의 네온 빛으로 둘러싸인 낮과는 전혀 다른 풍경의 세상이며 각기 다른 화려한 색을 발산한다. 즐거움, 환희, 몽상, 혼란 등의 감정은 여러 가지 색으로 표출되어질 수도 있고, 우리는 그 색에 동화되기도 한다. 이러한 모습은 인간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과 같다. 즉 이런 감정들이 뒤섞여있는 색의 시간은 우리를 취하게 하고, 사랑하게 만들고, 그리고 위로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을 즐기며 일상으로부터의 또 다른 삶을 찾으려 한다. ■ 이경훈

류미현_생을 처음으로 인식한 순간_혼합재료_가변설치_2008

세계는 어떠한 질문에도 대답이 없고 이곳에서의 생은 특별한 목적이나 대상 없이 일방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기만 한다. 마치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인양 마구잡이로 휘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서 가여운 많은 다른 이들이 아무렇게나 잡혀 털레털레 돌아간다. 각각의 생은 무력하고 나약하다. 서로 너무 멀리에 존재한다. 모두는 완벽하게 단절되어있고 분리는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된다. 어릴 때의 환상과 달리 통증은 언제나 개별적이다. 성장하는 것은 분리되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 같이 돌아가고 있음에도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하는 이상한 소용돌이. 이 안에서 정해져 있는 한 가지는 당연히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올 죽음. 살아있는 것들은 점점 더 멀어지거나 죽었다. 생은 점점 많아지는 방향이 아니라 점점 적어지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 류미현

문재일_시간이라는 경계사이에서2_혼합재료_122×195cm_2009

문명구조는 현시존재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그것에 의해 나의 존재는 이름이 붙여지고 의미를 갖게 되며, 살아가게 되는 방향성을 제시받는다. 그 체계화된 구조 안에서 보고, 먹고, 언어를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남들과 같은 인생길을 걷게 되는 규칙적 모순에 빠지고 있는 건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게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규칙성과 상대방에 의해 나의 존재는 나의 시아에 드러나고 있다. 시공간 속에 존재자로써 남아 있는 한에서는 그 시대의 사유체계 범위 내에서만이 나의 사유세계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가? 나는 형이상학적 꿈을 꾼다. 바깥으로의 사유, 빠져나갈 수조차 없이 꽉 짜인 그물망을 벗어나 보고자, 나는 가상현실을 그려본다. 현실이지만 문명이 사라진, 미래이지만 과거가 예측 가능한 모호한 자연과 문명과의 경계, 한 생명체로써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에서의 시간, 알 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의 발생 등등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 속으로 들어가 본다. 화려한 색채로써 살아남기를 갈구했던 형상들은 형상으로써, 언어로써, 의미로써, 얽히고설킨 짧은 이야기들만이 남아 뒷이야기를 전해준다. ■ 문재일

Vol.20101214h | Relation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