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턱대고 달려든 벽화그리기, 마을 망칠라”
성북구청 ‘북정마을 벽화사업’ 주민들 반발에 중단
내용조잡·일방행정…“공공미술 지역정체성 고려를”
한겨레 황춘화 기자
» “무턱대고 달려든 벽화그리기, 마을 망칠라”
지난달 26일 방영된 <한국방송> 프로그램 ‘1박2일’에 가수 겸 배우 이승기씨가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에 그려진 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장면이 방영됐다. 이후 이화동 주민들은 예상치 못한 ‘손님들’로 불편을 겪어야 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이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찍었고, 주민들은 소음과 사생활 침해 등으로 고통을 겪기도 했다.

결국 벽화가 그려진 집의 주인이 해당 작가에게 그림을 삭제해주길 부탁했고, 결국 벽화는 지워졌다. 작가는 이후 자신의 블로그에 “그저 허락만 받아 그리면 되는 줄로만 알았던 일이 이렇게 피해가 될 줄 몰랐다”는 글을 올렸다.

마을꾸미기 등을 이유로 벽화 그리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지만, 이화동 사례처럼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내는 것은 아니다. 서울 성북구청이 추진했던 ‘북정마을’ 벽화사업도 그런 경우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3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면, 600년 된 서울성곽 아래로 아담하게 자리잡은 북정마을이 나온다. 마을 꼭대기 노인정을 중심으로 둥근 길이 마을을 휘감고 있고, 그 길을 따라 1층짜리 도시한옥이 골목골목 이어진다. 돌담엔 담쟁이가, 대문 옆엔 화분에 심어놓은 채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조용했던 이 마을은 지난 7월 벽화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겪었다. 구청이 공청회 등 주민들과의 별다른 상의없이 한 건설사의 후원을 받아 16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단을 마을에 불러들인 게 화근이었다. 주민들은 벽화가 그려진다는 사실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는데, 그림을 그리기 사흘 전 건설사 직원이 찾아와 “구청과 협의해 결정된 사안”이라고 주민들에게 설명했다.

더 심각한 것은 벽에 그려질 그림들이었다. 건설사는 벽화가 그려지기 하루 전 통장 등 마을 대표들을 모아 놓고 그림 내용을 소개했다. 주민들은 경악했다. 춘향이와 그네, 신데렐라와 호박마차, 외국 애니메이션 캐릭터 ‘니모’ 등 마을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장 큰 벽에 그려질 ‘견우와 직녀’라는 벽화에서는 오작교를 만들고 있는 까마귀·까치들이 건설사 브랜드가 찍힌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주민들은 만장일치로 벽화 그리기에 반대했고, 결국 작업 당일에 북정마을 벽화사업은 중단됐다. 한 주민은 “저런 그림들이 동네를 휘감는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고 말했다. 마을 벽화작업을 하는 공공미술가이자 지난해 7월 북정마을에 정착한 주민인 로맨스조(34)씨는 “마을 벽화가 진정한 의미의 공공미술이 되려면 지역주민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아야 한다”며 “주민들을 고려하지 않은 공공미술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주민들에게 피해만 주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벽화작업을 하는 공공미술가 상당수는 벽화를 그릴 마을에 오랜 기간 살며, 마을의 특성을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벽화마을로 유명한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경우 벽화작업을 시작한 예술가들이 2007년부터 현재까지 그 마을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