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딸 / 그리움의 영상시


미카엘 두독 드 비트 감독의 단편 에니메이션 '아버지와 딸'을 만나게 된 것은 지난 여름 근처였다. 홍대 앞의 자욱한 인파 속에서 도서 세일 행사를 구경하다 친구가 이 동화책을 권해준 일과, 덤으로 매우 잘 만든 에니메이션이 원작이며 그 감독이 동화책으로까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동화책을 딸아이에게 읽어주면서, 나란히 앉아 에니메이션을 보면서, 무엇보다 내가 먼저 순화되어 갔다. 흡사 빛 바랜 무성영화 같은 영상이 시작되면 길고 묵직한 코트를 입은 아버지와 어린 딸이 자전거를 타고 방파제에 오른다. 떠나는 아버지와 남겨진 딸아이의 이별을 시작으로 영화는 사랑의 가장아련한 감정인 그리움을, 그 80년은 됨직한 인생을, 단 8분으로 축약해낸다. 35mm 카메라로 찍은 8분짜리 에니메이션은 놀랍게도 2시간 이상 사람을 지치게 하는 대개의 장편영화보다 내밀한 감동과 깊은 속뜻을 풀어낸다. 끊어질듯 이어지는그리움의 일상과 그 일상의 언어를 대변하듯 쉴새 없이 회전하는 자전거바퀴, 곳곳에서 들리는 3박자의 곡조들, 8분의 시간. 그리고 영화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그리움의 행로를 지탱하게하는, 아버지와 딸이 이별 전에 나누었을 신뢰와 사랑이 보인다. 연탄과 목탄으로만 그려진 이 드로잉들은 우리들 저마다의 가슴에 앙금처럼 남겨진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의 기억과 아픔의 통점들을 건드리고 있다. 몇 번을 되돌려 보며, 알듯 모를듯한 표정이 되는 딸아이를 보며, 나는 먼 훗날 아이에게 어떤 그리움을 남기는 아버지로 남게 될까를 생각한다. 대형스크린도 아닌 고물컴퓨터의 작은 화면 앞에서 앤딩 크래딧이 오를 때까지애잔한 다뉴브강의 물결을 들으며 시선을 떼지 못하는 일은 흔하지 않다. 이처럼 보석 같은 영상을 만나게 해준 친구에게 나는 조만간 감사의 뜻으로 술을 한잔 사리라.
Powered by egloos에서 2007.12.2일에 소중하게 품고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황샘 불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