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감상의 특징과 지도 방법


차례

Ⅰ. 머릿글
Ⅱ. 미와 미술의 본질 이해

Ⅲ. 미술감상과 미술교육
Ⅳ. 감상지도의 방법적 문제
Ⅴ. 맺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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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미술감상과 미술교육

미술 작품을 작가 자신의 체험과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즉 외부 사물에 대해 각기 작가의 주관이 관계하는 방식과 내용에 기초하여 미술작품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로웬펠드는 감상자가 작가 또는 작품의 주제, 표현방법과 동일화하는 과정을 감상활동의 절대적인 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미술감상의 목적은 그림을 분석하거나 미술작품을 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미술작품에 자신을 의미 있게 관련시킴으로써 작품의 미적 가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감상이란 대상의 미를 발견하는 것이고 대상이 어떠한가를 지적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어는 경우에도 대상을 보아야 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지만, 대상을 알기 위해서는 눈에 비친 표상을 객관적인 지식의 계열에 비출 필요가 있는 반면 대상의 미를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표상 가운데 몰입하면서 거기에 스스로의 생명적 자각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색과 형 그 자체가 그대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색과 형을 보는 가운데 자신이 그 색과 형에 합일하는 것, 다시 말하면 자신이 그 대상 앞에 현재 살아있는 것을 직접적으로 자각하는 것, 따라서 자신의 생의 자각에 호소 하면서 대상을 보는 것이 대상의 미를 올바르게 감상하는 것이 된다. 때문에 감상이라는 것은 단순히 수용적인 자각이나 인식이 아니라 항상 생명적인 자각을 내포하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히 감상도 하나의 자발적 창조작용이라는 것이 된다. 지식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대상이 어떠한 가라는 것인데 대해, 감상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대상과 자신의 직접적 상호작용인 것이다. 작품의 고유한 색과 형에 있어서가 아니면 자각할 수 없는 자신의 생을 자각하는 것이 진실로 그 작품의 미를 감상하는 일이다. 生이란 인간과 대상과의 연관 외에 다름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은 한 인간의 생 그 자체를 담은 결정체이다. 작자는 자신의 생명적 자각을 담아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감상자의 과제는 그와 같은 색과 형으로서 표현된 제작자의 생가운데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침잠 또는 몰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컨대 감상자는 자기의 생명적 자각을 통해 작품으로서 표현된 작가의 생명적 자각 가운데로 일체화하는 것이다. 작품 감상에 수반하는 예술적 감동의 내부에는 항상 이와 같은 일체화된 공감의 계기가 잠재해 있다. 완전한 감상은 대상적 생 가운데 스스로 일체화하는 것에 의해, 말하자면 두개의 렌즈를 조절하여 하나의 초점에 맞추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동일한 작품을 감상한다고 하자. 이때 동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를 기대 할 수 있다. 같은 인간으로서의 공통성을 확신하는 것이 허락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개성적인 존재인 것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감상의 보편성과 동시에 개별성이 생각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보편적인 감상을 목표로 해도 항상 그것이 무엇인가 개성적 내용을 매개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상과 같이 생각해 보면 감상이라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인 작용이 아니라, 제작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독창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다. 본다는 행위가 제작한다는 행위와 동일의 원리로 꿰어지는 것과 같이 감상과 제작과는 실은 동일의 원리에 의해 작용되는 두 가지 사실인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감상지도를 통해 제작활동이 의도하는 바와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또 역으로 올바른 표현 지도에 의해 올바른 감상활동을 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감상의 본질을 위와 같이 해석한다면 감상지도의 목표와 방법도 거기로부터 저절로 규정될 것이다. 우선 감상지도의 자료로는 여러 예술가의 작품이나 동료 어린이들의 작품이 생각될 수 있다. 전자는 미적 감동의 깊이와 다양함에 있어서 뛰어난 것은 물론이지만, 어린이들의 감상력의 발달 단계를 고려하여 선택되지 않으면 무의미하다. 후자는 친근한 공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제작의욕을 자극하거나 하는 역할을 하지만 미의 깊이나 변화에 부족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충분히 그 장단점을 변별한 뒤에 어린이들의 상황에 적절한 자료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에게 성인 예술가의 작품만을 예시하여 보여주는 것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거기에 유일 절대의 미술의 규준을 맹신케 하거나 모방을 하게 하기 쉽기 때문에, 자료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감상에는 지적감상과 미적 감상이 있다. 지적 감상은 예를 들자면 하나의 작품을 두고 그 작품의 역사적 유래, 작가명, 작품의 재료, 구조 등 작품에 관련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하는 감상 방법이다. 이에 반해, 미적 감상은 조형 원리나 조형 요소 또는 미적 특성을 찾아내어 순수한 미감적 입장으로 작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맛보는 감상 방법이다. 본래의 의미에서 감상이라 함은 이 미적 감상이라 할 수 있으며, 지적 감상은 미적 감상을 위한 예비적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상이란 대상을 지적으로 알아 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미를 직관하는 일이다. 묘사되는 대상을 지적으로 파악하거나 작자의 이름, 작품의 제작연대 등을 외우거나 하는 것이 작품감상이 아니라, 그 작품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 환언하면 그 작품의 가운데 용해되어 들어가면서 거기에 살아 있는 자신의 순수한 생명 감정에 빠지는 것이 그 작품의 감상인 것이다. 감상지도의 요체는 어린이들을 이와 같은 올바른 감상태도에로 이끄는 것에 있다.

올바른 감상태도를 실현시키는데는 지식적, 관습적인 여러 선입관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하나의 그림이 어떤 대상을 그린 것이라는 것을 아는데는 별반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 그림의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 감정에 침잠 하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그 그림이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든가, 그림은 사진과 같이 자연의 객관적인 진실을 가져다주는 것이어야 한다라는 선입관과 편견을 버리는 것도 올바른 감상에 중요한 일이다.

때문에 규범적인 틀에 제한된 지도방법으로 그들을 구속하거나, 지식적인 탐색을 추구하는데 빠지게 하거나 하는 것은, 감상 그 자체의 본질을 그르치게 하는 것이 된다. 미술의 감상은 사회적 지식의 단순한 응용이나 실험이 아니며, 역사 지식의 단순한 습득과 같은 성격으로 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감상지도의 효과는 교사와 어린이들이 자아동일화의 장을 형성함으로써만이 기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가 일방적인 지도로 어린이들을 강제적으로 통솔해서는 안된다. 또 예술의 감상은 아동의 시지각과 생명 감정에 호소하여 행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사의 감상 내용을 그대로 어린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좋지 않다. 시각 예술에 있어서 감상 체험내용을 한두 마디 언어 표현으로 나타내는 것은 매우 곤란한 일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미를 언어로 나타내 간단히 규정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언어는 그 아름다움의 두셋 특징을 지시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교사가 겉으로 드러난 그림의 내용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어린이의 감상을 이끌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올바른 감상을 저해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보면, 어떻게 작품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가 감상지도의 과제가 된다. 작품과의 대화를 통해 아동의 전인적 인간 형성을 지향하는 것이 감상 지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르네위그의 대표적 저서인 「보이는 것과의 대화」(Dialogueavec le Visible, 1955)는 커다란 시사점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과의 만남을 교사가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하여 작품과의 대화를 가능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감상 지도의 어려움이 미술교육을 표현지도에로 회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교과에 있어서 표현 활동이 중요함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히 미술 교과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표현 활동만으로 미술교육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미술교육이 교과로서 구조가 약한 것은 이제까지의 표현에 편중된 지도 때문이다. 보통 표현력이 높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이나 감각이 연마되었다는 차원의 문제밖에 되지 않는다. 대상으로부터 깊은 감동을 받아 그 감동을 형상화하는 것이야말로 표현력을 높여주는 근원이 되는 것이며, 특히 인격적 행동 변화를 중요시하는 미술교육의 경향으로 볼 때는 더더욱 감상지도가 중요한 것이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소를 하거나, 만들기를 하거나, 무엇을 하든 표현지도만이 인간 형성을 가능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안이한 태도다. 단순한 감각의 연마나 기술의 향상보다도 참된 감동을 수반한 표현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동들의 인적 형성에 기여하는 바가 적다고 할 수 있다.

미적 감동이라든가 예술적 감동이라는 것은 작품을 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감상은 단순히 본다는 것 이상의 차원이다. 즉 감상은 작품과의 대화에 의해 성립되는 것이다. 감상이 다른 작가의 작품과의 대화라고 한다면, 표현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만으로는 문화의 계승과 발전 더 나아가 새로운 가치 창조로 이어지지 못한다. 또, 다른 작가의 작품과의 대화만으로는 자기 자신의 자각을 확인하기 어렵다. 때문에 감상은 표현의 불가결한 요소이며, 표현 역시 감상에 있어 불가결한 요소가 되는 것이다

감상은 작가의 정신 세계를 파악하는 것이다. 물론 기술적인 정보를 알아내는 일도 있지만 감상으로서의 대화는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것에 관한 것이다. 예술가들이 그 시대 그 사회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바라고,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내용을 감지함으로써 어떻게 느끼고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그러한 자기 자신의 확인에까지 이르지 않고 단순한 바라봄으로 그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감상이 되는 것이다.

미술교육에 있어 감상의 대상은 그림, 조소 또는 공예 작품 더 나아가 자연의 아름다움 까지도 포함된다. 이 대상과의 대화는 선, 색, 형태, 매재라는 조형 요소에 의한 것이다. 문학이 문자나 언어에 의해, 음악이 음에 의해 그 소통이 이루어지듯이 미술에서는 이 조형요소에 의해 대상의 아름다움이 전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선, 색, 형태, 매재가 나타내는 것을 파악하고,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바르게 감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른바 「조형 언어」라는 대상에 대한 이해력과 선, 색, 형태, 매재가 지니고 있는 질과 의미에로의 정확한 감수성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