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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11일, 노르웨이가 100년전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한 것을 기념해 바닷가에 면한 오슬로시청 앞에서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웨덴 국왕 부부가 노르웨이 국왕 부부를
이틀전 스톡홀름에서 열린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축구경기에서 노르웨이가 54년 만에 스웨덴을 꺾은 것도 노르웨이 독립을 축하하는 화려한 축포인 셈이었다. 오슬로에 사나흘 머무는 동안 ‘노르웨이 독립100돌’이라는 예기치 않은 행사를 구경하게 되었지만, 정작 여행을 계획할 때 꿈꾼 것은 이루지 못했다. 오슬로 뭉크박물관에 가보지 못한 것이다. 2005년 6월 당시 뭉크박물관은 ‘무기 휴관’중이었다. 2004년일어난 도난사건으로 1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뭉크박물관은 휴관중이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작품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은 <절규(Scream)>다. 이 작품은 <스크림>이나 <나홀로 집에>에서와 같이 영화 포스터가 차용한 것으로도 유명하지만, 그 그림이 보여주는 깊이를 모를 우울과 공포는 현대인의 불안심리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뭉크 자신은 작품 <절규>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두 친구와 거리를 걷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핏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한 줌의 우울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멈춰 섰고 너무나 피곤해서 난간에 기대었다. 흑청색의 피요르드와 도시 너머에는 불로 된 피와 혀가 걸려 있었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었으나 나는 불안에 떨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자연을 통해 울리는 커다랗고 끝이 없는 비명을 느꼈다.”
첫 번째는 드라마 속 ‘미술선생님’ 때문이었다. 90년대초 김운경 작가가 이름을 날린 <서울의 달>에서 미술선생으로 연기한 백윤식이 자신을 좋아하는 윤미라에게 카페의 이름을 ‘뭉크’라고 짓도록 한 것이다. 야비한 건달 한석규와 쓸데없이 콧대만 높은 허영의 채시라도 이름을 얻었지만 인기 주말드라마를 통해서 ‘뭉크’도 한국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뭉크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한 작가가 자신의 소설에서 뭉크를 하나의 아이콘으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내 나이 열 아홉 살, 그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 아홉 살 때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장정일,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 1992) 장정일의 성장소설에서는 뭉크화집이 턴테이블, 타자기와 함께 자신만의 세계를 이루기 위한 상징으로 묘사되었다. 스무살을 앞둔 젊음이 불안과 슬픔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뭉크의 그림을 보았다면, 그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오슬로행에서 아쉽게도 뭉크박물관을 가볼 수 없었다. 뭉크를 사랑한 사람들 중에는 미술선생님과 열아홉살 재수생뿐 아니라, 미술품강도들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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