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의 자화상은 왜 눈이 하나일까
한겨레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안에 있는 소마 미술관에서 ‘파울 클레 전시회’가 열렸다. 그의 작품에서 영감이라도 얻은 걸까. 아이들은 미술관을 둘러본 뒤 근처 잔디밭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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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별로 떠나는 체험학습/소마 미술관 ‘파울 클레’ 전시회

아이들과 올림픽 공원에 나가 보았다. 보통 때 같으면 줄넘기를 허리에 묶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거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공원을 일주하거나 하는 계획을 세우겠지만 오늘은 마침 올림픽 공원 안에 자리한 ‘소마 미술관’에서 ‘파울 클레’ 전시회를 열고 있다고 하여 함께 들러 보기로 했다.

파울 클레의 클레(KLEE)는 영어로 클로버라는 뜻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남 3문 주차장 쪽으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 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소마 미술관(somamuseum.org)이다. 소마미술관은 이번에 전시회를 열면서 야외 조각들을 전시한 주변 잔디공원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커다란 은색 공들을 쌓아올린 문신의 조각품 주변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며 즐겁게 노는 아이들과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오후 망중한을 즐기는 가족들의 모습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슨트의 전시설명이 있다고 하여 아이들과 우선 1층의 ‘어린이 미술체험관’에 가보았다. 널찍한 통유리를 통해 시원한 야외 조각공원이 훤히 내다보이는 체험관에서 아이들이 직접 화분에 그림을 그리고 거기에 클로버씨를 심어보는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토기 화분에 크레파스로 예쁘게 그림을 그리자 ‘클레의 이름이 영어로 클로버를 뜻한대요’라고 가르쳐 줬고, 아이들은 ‘아하, 클로버는 아이랜드의 국화인데 클레의 이름이 클로버였구나’하고 재미있어 했다. 씨앗을 심고 나자 이번에는 선생님이 그림을 하나 들고 오셨다. “이 그림은 잘 보면 글씨가 쓰여 있어요.” “정말, 알파벳이 보여요.” 아이들은 신기한 듯 그림을 들여다 보았다. 그림에 쓰여 있는 내용은 ‘그리고, 아, 나를 더욱 쓰라리게 하는 것은 당신이 내가 가슴속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는 겁니다.’라는 시라고 했다. 아이들은 클레의 그 그림을 보고 자신들도 도화지에 글자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려보며 파울 클레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서고 있었다.

파울 클레는 연금술사?
음악과 미술에 둘 다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파울 클레는 죽기 전까지 무려 9100점에 이르는 작품을 남겼다고 한다. 흔히 대가나 천재 화가로 불리는 사람들은 많은 대작들을 남기지만, 클레는 실험과 도전 정신으로 점철된 작품들만 남겼다. 1전시실에는 드로잉 작품이 많았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드로잉 작품에서는 꼼꼼하고 빈틈없는 클레의 모습이 보였다. 그가 살던 스위스 베른의 경치를 그린 연작 드로잉을 보면 이런 과정을 잘 알 수 있다. 클레는 18살때부터 40살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고 자신의 작품을 정리하여 모두 목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의 이런 세심함은 하나하나 손으로 줄을 그어 그린 ‘오르페우스를 위한 동산’이란 작품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작품 활동만 하고 뚜렷한 생계수단이 없던 그에게 친구인 칸딘스키는 여러 가지 직업인터뷰를 권해주기도 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조형예술학교인 ‘바우하우스’에서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 클레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연금술사’란 별명으로 불렸다. 색깔과 색깔을 섞어 혼합하고 끓여보고 실험을 해보는 그의 작업실에서는 늘 연기가 새나왔다고 한다.




2전시실, 3전시실에서 보이는 그림들은 우리가 보아온 추상미술의 대가 클레의 친숙한 그림들이 많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클레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바로 어린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도슨트의 설명을 앞줄에서 흥미롭게 듣는 이들도 바로 아이들이었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했던 클레의 마음은 그의 자화상으로 알려진 몇 개의 그림들 속에서 엿볼 수 있다. 귀가 없거나 한 쪽 눈이 없이 간결한 선으로 그려진 그림은 온화하고 자연스런 색채감 속에서 평화로움을 느끼게 한다.

활기찬 올림픽 공원의 오후
미술관에서 나와 바로 앞에 있는 호돌이 열차를 탔다. 열차는 두 번 서는데 마지막에 서는 피크닉장에서 내리면 바로 앞에 몽촌토성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몽촌토성 역사관’이 나오는데 400년이 넘게 서울을 수도로 삼았던 ‘한성 백제’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몽촌토성을 돌아보고 널찍한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을 먹고 나니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다. 그늘아래 누워 가지고 간 책을 펼치고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엄마 우리 다음주에도 또 소풍와요. 그때는 자전거 타고 신나게 달려보고 싶어요’ 아이들과 다음번 소풍을 약속하며 돌아오는 길 , ‘두 번째 파울 클레와 만남’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다음 주말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