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미술작품들 ‘몸살’…어른도 아이도 ‘시민의식 실종’
한 · 중국 작가 40여점 전시
자원봉사자 저지 역부족…“아이 기 죽인다” 항의도
한겨레
» 청계천에서 열린 국제미술제에 출품한 작품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위장토끼>는 전시회가 시작한 지 이틀 만에 왼손에 쥐고 있던 당근이 부러졌고 팔이 부러졌다.
서울 청계천 일대에서 전시되고 있는 설치미술 작품들이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의 손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청계천 일대에는 제1회 청계미술제 출품 작품들이 설치됐다. 환경과 인간을 화두로 한 이 전시회에는 정국택, 김민경, 홍상식, 리쑹화, 가오샤오우, 광위 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젊은 조각가와 설치미술가 18명의 작품 40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전시회가 시작된 지 10여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접근하기 힘들거나 단단한 재질의 작품을 제외한 다수 작품이 관람객들의 손을 타 심하게 훼손된 상태다.

낮에는 자원봉사원이, 밤에는 경비업체 직원들이 작품을 지키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시민들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공공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획됐지만 시민들의 무신경함 탓에 작품 주위에 접근금지 줄이 쳐지고 ‘손대지 말라’는 안내판을 붙여야 할 상황까지 됐다.

자원봉사원 김현준(20)씨는 “망가진 작품을 보면 화가 난다”며 “여러 사람들이 즐기는 작품을 마구 훼손하는 것을 보면서 시민의식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광통교에 설치된 <카 맨>도 망치로 찌그러뜨린 자국이 남았다.
가장 큰 ‘수모’를 겪고 있는 작품은 김민경씨의 <위장토끼>. 버니걸 모양의 이 작품은 원래 1인용 의자에 홀로 앉은 형태였지만 사진 찍는 시민들이 몰리자 작가가 의자를 2인용으로 교체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작품을 아끼는 대신 위장토끼의 팔과 다리, 들고 있던 당근을 부러뜨려 놨다. 작가가 부숴진 작품을 손봐 다시 내놨지만, 당근 등은 이틀 만에 또다시 손상되고 말았다.

김씨의 또다른 작품 <웰빙토끼>도 무사하지 못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하도 흔들어대는 바람에 발 부분을 고정시키는 실리콘이 찢어졌다. 이 작품 앞에는 ‘상식 없는 분에 의해 작품이 손상된 상태이니 눈으로만 봐달라’라는 안내문이 나붙었을 정도다.

도롱뇽처럼 생긴 신현중 작가의 <공화국 수비대>는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탓에 더 고생이다. 올라타지 말라는 경고문이 있는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올라타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가득하다. 아이들을 저지하는 자원봉사원에게는 종종 “괜히 아이 기를 죽인다”는 항의가 돌아올 때가 많다.

심한 경우는 아예 망치로 부순 것도 있다. 중국 작가그룹 ‘언마스크’가 만든 높이 3.의 대형 로봇 조형물 <카 맨>의 성기 부위는 망치 따위로 수십번 내려쳐져 보기 흉하게 찌그러졌다. 이 작품을 다시 중국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서울문화재단은 “이미 보험을 들어둔 상태라 보수해서 돌려보내면 되지만, 중국 작가가 한국 사람들의 문화 수준이 낮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라며 난감해했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 시민들이 공공장소에서 미술품을 감상하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지면 작품을 대하는 시민들의 자세도 좀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유주현 이정애 기자 edign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