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 보는 5가지 문 열어드립니다”
탈색한 머리·현란한 명함·필명…너무 ‘튀어’ 예술가처럼 보이지만
본업은 미술평론가에 저술가 따끈따끈한 작품 골라 상냥한 소개
인터뷰/‘새빨간 미술의 고백’ 써낸 반이정씨

누가 보더라도 미술평론가 반이정(36)씨를 보면 ‘튄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얼굴을 반씩 가리고 양쪽을 번갈아 보면 다른 사람을 보는 것같다. 왼쪽은 머리 한움큼을 샛노랗게 탈색해 길게 늘여뜨렸고, 그 반대쪽은 이른바 ‘바가지 머리’같아 끝이 일직선을 이룬다. 이런 머리모양을 유지하려면 제법 수고로움과 비용이 들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서 집 근처 서울대 구내이발소에서 무척 싼 값에 쉽게 해결하고 있다고 한다. 옷차림도 물론 평범하지 않으리란 것은 이미 짐작하셨으리라. 반씨의 명함은, 기자가 사회생활 시작한 이래 받은 명함 가운데 가장 현란하고 개성적인 것이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겠다.(그의 홈페이지 www.dogstylist.com 시작화면 그림에 색을 입혀 명함으로 만들었다)

반이정이란 이름 역시 본명은 아니다. 소중한 친구 세 사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것이다. 이름 때문에 여자일 것으로, 외모 때문에 평론가가 아닌 작가일 것으로 오해를 종종 산다고 한다. 이런 여러모로 볼 때 어려운 말 많이 쓰면서 점잔빼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미술평론계에서 그를 보는 눈길이 두 가지일 것은 당연해 보인다. 자기 블로그 표지에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아있는 사진(어떤 작가가 찍은 작품이다)을 올려놓는 평론가라면 좋아하거나 아니면 싫어하거나 둘 중 하나일 수밖에.

2000년대 초반 활발히 글을 쓰며 등장한 이 평론가는 미술비평판에서도 당연히 튀고 있다. 반씨의 글쓰기는 두 가지. 1번은 본업인 미술평론. 2번은 대중들을 상대로 미술을 들려주는 에세이다. 얼핏 1번 비평글은 차분하고 학술적일 것 같고, 2번 대중용 글들은 역시 반이정스럽게 튈 것 같다. 그런데 그 반대다. 반씨는 ‘좋은 게 좋은’ 주례사식 비평을 거부하며 실명으로 비판하기도 하고, “작가 아무개의 작품 세계는…” 투의 평론 공식을 벗어나 전혀 다른 형식의 평론을 쓰기도 한다.

거꾸로 대중용 글은 무척이나 ‘부드럽다’. <한겨레21>에 연재하는 칼럼 ‘사물 보기’처럼 일반 대상 글은 경어체로, 그리고 조근조근 속삭이듯 말한다. 그의 대중 에세이만 본 사람들은 그를 직접 보면 튀는 외모와 실제로는 속사포처럼 뿜어대는 말투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반씨가 최근 쓴 첫 대중미술책 <새빨간 미술의 고백>은 2번 모드로 쓴 글이어서 코믹하지만 무척 상냥하다. 다루는 작품들은 모두 따끈따끈한 국내외 최신 미술들이다. 우리가 으레 미술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러나 실제 현재 미술판의 흐름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교과서 속 미술과는 다른 ‘진짜’ 현대 작품들만 등장한다. 그리고 반이정식으로 친절하게 요즘 미술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반씨가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일반인을 위한 미술 길잡이 글들이 동시대 미술보다는 미술관속 옛날 미술만 중복적으로 다루고 있어 정작 대중에게 자기 시대 미술을 이해하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책들이 불친절한 것도 불만이었다. 아니면 너무 친절하거나. 현대미술을 다루는 일부 책들이 대중들의 미술공포감을 줄이려고 “현대미술은 쉽다”고 잘라말하는 것도 문제로 보였다. “현대미술은 틀림 없이 어려운데 그걸 쉽다고 호도해선 안됩니다.”




반씨는 “일반관객과 독자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는 예술(가)에 대한 환상은 대개 미디어가 유포한 과장 보도와 광고에 반복 노출된 결과의 산물”이라고 본다. 그러니 독자도 이제 그런 간교에서 벗어나 주눅들지 말고 ‘사물로서의 작품’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면 그 어려운 현대미술을 어떻게 보라고? “현대미술로 들어가는 길목을 짚어 그 문을 보여주면 됩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문을 가르쳐드리고자 합니다.” ‘패러디’, ‘사회비판적 예술’ ‘경량화된 예술’ ‘옥외예술’ ‘장르간 교차와 미디어 친화적 예술의 탄생’이 바로 그 5개의 문이다. 이 다섯가지 답안만 잘 알아도 미술관에서 마주칠 현대미술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문을 열어볼 차례다. 무엇이 보이는지.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