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깁고, 베끼고, 중복 게재…대학가 ‘논문 부조리’
입력: 2006년 07월 28일 18:12:24
대학가의 논문 부조리가 심각하다. 베끼기와 짜깁기, 중복 게재 등이 ‘관행’의 이름으로 묵인되면서 학문적·도덕적 몰이해가 대학가에 만연돼 있다. 동일한 내용과 결론의 ‘자기복제’ 논문이 다른 학술지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김병준 교육부총리의 자기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논란도 ‘빙산의 일각’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다보니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진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홈페이지에서 통합연구자 정보를 검색해보면 3년 동안 300편의 논문을 발표한 사람도 있다. 한해에 100편을 쓴 것이다. 기네스북에 오를 만하다.

하지만 이 논문들엔 대부분 ‘공저(共著)’로 적혀 있다. 새로운 연구 결과가 담긴 논문이 몇 편이나 되는지는 교수 자신이 잘 알 것이다. 대학교수들의 논문 표절과 연구실적 부풀리기는 ‘관행’의 이름으로 저지르는 ‘범죄’다.

대학사회는 이미 자정기능을 잃었다. 서로의 표절을 눈감아주면서 실적 올리기에 바쁘다. 소수의 양심 있는 학자들의 목소리는 묻혀가고 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은 각 대학들이 교수 연구실적을 국내외 학술지 게재 논문수 등 주로 ‘양’으로 측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학측의 기준 또한 매년 높아지는 추세다.

한양대의 경우 1995년 교수업적 평가제 도입 이후 6차례 재임용 기준 등을 손질했고, 서강대는 올 3월에 승진최소종합평점을 상향조정했다.

논문 표절은 양적기준에 치중한 평가와 교수들의 도덕적 해이가 합작해 빚어낸 것이다.

논문 표절은 대학뿐 아니라 국가의 비극이다. 수준 높은 논문보다는 고만고만한 논문이 양산되면서 학문의 국가경쟁력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과학기술부가 과학논문인용 색인(SCI)급 저널 6,300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논문 수는 2000년 1만2천4백71건, 2004년 1만9천2백79건(세계 14위)으로 크게 늘었지만 논문 1편당 피인용 횟수는 2.8회(33위)로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논문 표절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아직 미흡하다. 올 3월 교육부는 학술진흥재단에 논문표절과 가짜학위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중앙대 정치학과 최영진 교수는 “학술지 등재를 위한 논문 1차 심사과정에서 동료교수들이 ‘잘못된 동료의식’으로 검증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며 “심사 규정을 강화하고 국가예산으로 검증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