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기]김시 ‘야우한와’
‘야우한와’ (野牛閒臥:들소가 한가로이 누워 있다) - 김시, 비단에 담채, 14.0×19.0㎝
김시(金시, 1524~1593)는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문인화가 중 한명으로 소 그림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인물이다. 자신의 혼인날에 부친 김안로(金安老)가 압송되어 사사되는 참화를 겪었던 그는 일체의 부귀와 권세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꼈고, 이후 서화에만 전념하며 일생을 마쳤다. 이런 그에게 소가 상징하는 은일자적한 삶은 늘상 꿈꿔오던 이상이자 다짐이었을 것이다. 앞다리를 가슴팍에 말아 넣고 소 한 마리가 엎드려 쉬고 있다. 어딘가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듯한데 맥없이 풀린 눈을 보면 바라본다기보다는 그저 눈을 뜨고 있을 뿐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다소 따분하게 느껴질 정도로 한가롭고 태평스러운 모습이다. 어지간한 자극에는 반응하지 않는 요즘 우리네 정서로는 참 나른하고 무미(無味)해 보이는 그림이다.

그러나 당대의 거유 퇴계 이황(1501~70)은 그의 소 그림을 보고 “천년 전 도연명의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감탄하게 하는구나”라고 하여 귀거래(歸去來)의 뜻을 읽어냈다. 퇴계의 마음을 빌려 다시 보자. 인적이 없는 야산 한 자락에 천진한 눈망울로 고삐도 없이 누워 있는 소 한 마리, 과연 무심(無心)과 무애(無碍)를 형상화한다면 이보다 적절한 그림을 찾아보기 힘들 듯하다.

생각이 이쯤 미치면 밋밋하게만 보였던 화면 구성과 필치도 다시 보인다. 소는 물론이거니와 원경의 야산이나 소가 자리한 둔덕까지 변변한 윤곽선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순하고 소박하다. 화면 어디에도 눈을 현혹시키는 표현이나 작의적인 묘사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담담한 붓질이 서너 번 지나갔을 뿐이다. 극도의 생략과 함축이 당시 화풍의 전반적인 특성이기는 하지만, 무심과 무애를 그려내고자 했던 화의(畵意)를 잘 살려낸 화법임에 틀림없다.

어렴풋이나마 그림의 뜻에 공감했다 하더라도 눈에 거슬리는 점이 있다. 물에 분 듯 둥실하고 매끈한 소의 모양새다. 조선의 소가 아닌 중국 강남지방의 물소를 그린 것이다. 소는 마땅히 중국의 물소처럼 그려야 한다는 관념이 눈앞에 있는 우리 소의 모습을 가린 탓이다. 이렇게 그려야만 심사가 편한 것이다. 우리가 아닌 중국이 기준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 이념의 한계이다. 그림 속에서 우리 소를 만나는 것은 고유 이념을 바탕으로 진경산수화와 풍속화가 난만하게 피어나던 진경시대에 가서라야 가능하다.

예술은 이념의 뿌리에서 나온 꽃이며 예술작품은 작가의 또 다른 자화상이란 말을 절감하게 하는 그림이다. 이렇듯 하나의 예술작품은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 작가와 만나고, 그가 살던 시대와 만난다. 그래서 예술작품을 정확히 읽을 수 있다면, 그 예술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왜곡 없이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옛 그림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자 놓칠 수 없는 의미다.

〈백인산|간송미술관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