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이끌 60인] 기부문화 심은 ‘희망 전도사’ 박원순 | | | 인권변호사와 참여연대 사무처장, 아름다운 재단과 아름다운 가게의 상임이사에서 최근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 이르기까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일거리를 들고 나타나는 박원순 변호사(50)를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권인숙 성고문사건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을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든 그는 91년 돌연 유학을 떠나 2년 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공부하면서 시민사회운동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참여연대에 몸담으면서 소액주주운동 등을 성공시키며 우리 사회의 ‘1세대 시민운동가’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머물지 않고 2002년 8년 동안 몸담았던 참여연대를 떠나 ‘아름다운 재단’을 설립하면서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2년여 만에 아름다운 재단이 본궤도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21세기 실학운동’을 기치로 ‘희망제작소’를 설립, 대안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변화무쌍한 그의 행보에 대해 사람들은 혀를 내두르지만 그는 “완전히 새로운 일들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고민의 연장선에서 발견한 ‘틈새’를 찾아가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재단’ 설립 주도-
2002년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생소한 이름으로 우리 사회 기부문화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킨 박변호사. 그가 본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가능성은 상당히 희망적이다. 박변호사는 “5년에서 10년이 지나면 우리 사회 기부문화의 빅뱅이 올 것”이라고 단언한다. “내기를 걸어도 좋다”고 말할 만큼 그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다.
박변호사는 아름다운 재단에서 “기부문화에 대한 우리나라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공동체문화’ 그리고 ‘정’을 중시하는 민족정서 등을 고려할 때 기부문화의 기본적인 토대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 “다만 식민시절과 독재,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받았던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 민족에게는 이웃을 돌볼 여유가 없었을 뿐”이라고 박변호사는 분석한다.
박변호사가 우리나라의 기부문화가 폭발적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데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타인’을 돌아볼 만큼 물질적·정신적으로 성숙한 사회로 진입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규모 10위권의 경제 강국, 국민소득 2만달러에 육박하는 눈부신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사회적 양극화와 이념갈등 등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러나 박변호사는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할 만큼 사회적 각성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박변호사는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빠르게 변화해온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은 이런 믿음에 대한 확신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기부문화 정책 전기 마련-
박변호사는 “지난 10년은 시민의식이 성숙하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보지 못하고 미처 손대지 못한 사회의 그림자에 대해 일반 시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활발히 참여하면서 우리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왔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박변호사는 “시민운동이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민주주의란 다양한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쏟아져나오는 것인 만큼 시끄럽고 복잡한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나아가 그는 “오히려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와 움직임들이 없는 상황을 경계해야 할 것이지, 지금의 상황은 바로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성숙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걱정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운동의 정체 위기’와 관련해서 박변호사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그는 “시민사회운동의 위기가 새로움의 부재에서 촉발된 것”이라면서 냉장고를 예로 들었다. “매년 변함없이 똑같은 냉장고를 만들어 판다면 어떤 고객이 그 냉장고를 사 가겠느냐”는 것. 그는 “똑같은 냉장고라도 포장을 새롭게 하고, 뭔가 새로운 것들을 심어야 시장에서 팔려 나가는데, 지금의 시민운동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모을 ‘새로움’이 부족한 상태”라고 비판한다. 그는 “매번 진행되는 낙선운동을 보면 예전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면서 “시민운동도 마치 냉장고를 팔 때처럼 많은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도록 만드는 고민을 그치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박변호사는 “과거엔 주장하기만 하면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만큼 사회에 문제가 많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고,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낼 이슈가 부족한 상태”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민단체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박변호사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다음 정부에 대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한 나라 지도자의 철학이 담긴 취임사를 보면 항상 부러웠다”는 그는 “갈등과 분쟁을 어떻게 봉합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것인가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철학’을 담은 정치인과 세력이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소득증대와 일자리 창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런 부분들은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해야 할 일이고, 기업들이 잘 할 수 있도록 정부는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법보다 한 국가의 정신적인 방향성과 가치를 담아내는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정부가 탄생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철학가진 통합의 지도자 필요”-
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지난 3월 문을 연 ‘희망제작소’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크고 작은 사업들이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기 때문. 지난달에는 민선 4기 시장·군수 등 당선자들을 모아 ‘시장학교’를 개최하기도했다.
희망제작소는 앞으로 대한민국을 어떻게 디자인해 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에 걸맞은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는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사회창안가)들이 모인 순수 민간연구소다. 생소하기는 하지만 기존의 국책연구소나 대학·민간연구소들이 들여다보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 작은 부분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자는 취지에서다.
그는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어린이들의 놀이터 문제라든지 임산부들을 위한 배려 등 실생활에서 느끼는 문제들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토론하면서 대안을 찾아 내는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희망제작소가 전체가 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실험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박변호사는 “이제 나를 ‘소셜 디자이너’로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매번 새로운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해온 그가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희망제작소’를 꾸려 나갈지 주목된다.
◇ 박원순은 누구
▲1956년 경남 창녕 출생
▲1974년 경기고 졸업
▲1975년 서울대 법대 입학/중퇴
▲1978년 단국대 사학과 입학
▲1980년 22회 사법고시 합격
▲1996~2002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1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운영위원장
▲2002년~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
▲2006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막사이사이상 수상
〈이호준기자 hjlee@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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