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 삐삐 삐 삐 삐삐~ 삐삐를 부르는 환한 목소리~ 삐삐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소리. 들쑥날쑥 오르락내리락 요리조리 팔닥팔닥 산장을 뒤흔드는 개구쟁이들~.” 두 갈래로 땋아 위로 삐친 빨간 머리, 유난히 큰 앞니 두 개, 장난스러운 얼굴 가득한 주근깨, 그리고 항상 짝짝이인 양말, 커다란 신발 .........
어릴 적 기억 저편에서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한 ‘말광량이 삐삐’가 너무 반가워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답니다.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을 혼내주고, 금화가 가득 든 보물상자를 들고 다니면서 갖고 싶은 건 모조리 다 살 수 있었던 꼬마 백만장자 삐삐에게 저도 한때는 쑤~욱 빠져 지냈을 때가 있었지요. 이 책을 지은 ‘유은실 작가’도 어릴 적 아름답고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마도 이 이야기를 쓰셨으리라 짐작이 가네요. TV영화를 통하여 보는 삐삐이야기보다 훨씬 더 많은 감동과 재미를 주는 책 ‘삐삐시리즈’의 원작자는 유명한 스웨덴의 아동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에요. 어쩌면 어릴 적 읽었던 린드그렌 책을 통해 성숙하게된 젊은 신인작가 자신의 자전적 동화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은 독특한 구성이 돋보이는 책이에요. 총 10장으로 구성된 이 창작동화는 각 장의 제목을 모두 린드그렌의 작품에서 따왔지요. 저자는 린드그렌의 동화를 주인공 비읍이의 이야기 속에서 차분하게 녹여내고 있어요. 삐삐 동화책에 푹 빠져 저자인 린드그렌을 사모하게 된 열 살 소녀 비읍이...... 비읍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ㄱ, ㄴ, ㄷ, ㄹ, ㅁ?까지밖에 몰랐던 아빠가'ㅂ'을 배운 뒤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 같았던 경험을 떠올려 지어준 이름이지요. 비읍이는 아빠 없이 엄마와 함께 살아요. 치과 간호조무사로 일하는 엄마는 빠듯한 집안 살림을 꾸려가느라 힘들게 생활하지요. 비읍이는 그런 엄마를 안타깝게 바라봅니다. 하지만 엄마를 통해 알게 된 린드그렌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을 공감하지 못하는 엄마가 못내 아쉽지요. 더구나 자전거를 사려던 돈으로 린드그렌의 책을 산 일, 헌 책방에서 만나게 된 '그러게 언니'와 얘기하다가 늦게 온 일, 돈을 아끼려고 헌 책방에서 책 산 일을 호되게 나무라자 가출하기도 해요. 하지만 비읍이는 린드그렌의 책들과 ‘그러게 언니’의 조언으로 엄마를 이해하게 되지요. 또 자기처럼 가난한 친구 ‘지혜’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성장해 갑니다. 비읍이의 책 읽기 과정은 독서가 주는 기쁨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어떻게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 책을 읽으며 어떤 마음이 되고 어떤 생각을 하였는지,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생각과 생활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과정이 자세하고 차분하게 그려져 있어요. 독서가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린드그렌과 그의 작품들은 비읍이 삶의 선생님이 되어 준 것이지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린드그렌 작품에 대한 한 아이의 독서감상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린드그렌 선생님, 낭길리마에서도 어린이 책을 쓰고 계세요? |
| 린드그렌 선생님, 낭길리마에서도 어린이 책을 쓰고 계세요?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에 있는데 거기서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대한민국에 사는 이비읍 아빠를 찾아서 선생님 얘기를 많이 들려 주세요. 그렇다고 얘기에 빠져서 하늘에 뚫린 구멍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걸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말도 전해 주세요. 제가 이름에 불만이 많다는 것도요. 린드그렌 선생님, 저는 ‘인간에 대한 진정한 예의’가 있는 어른이 되어서, 선생님 책을 열심히 우리말로 옯기는 일을 할 거예요. 그러다가 흔들의자에 앉아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는 할머니가 될 거고요. 코끼리처럼 살이 쭈글쭈글해지다가 아흔 여섯 살이 되면 아빠가 있는 하늘나라로 가고 싶어요. 그 때는 선생님한테 가는 길에 비행기표값이 많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이제 ‘스웨덴에 가서 선생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믿는 구슬’을 깨뜨렸으니 편지도 그만 쓸게요. 편지를 쓰지 않고 슬픔을 이기기로 결심했답니다. 선생님,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고 아무 근심 걱정 없는 낭길리마에서 안녕히 계세요. |
| 2002년 2월 8일 이 세상에서 선생님을 꼭 만나고 싶었던 이비읍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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