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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도와줄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등록 : 2012.11.26 17:23
열쇳말 - 관계
<알도>존 버닝햄 지음, 이주령 옮김, 시공주니어
<침대 밑 악어>마리아순 란다 지음, 유혜경 옮김, 책씨
* 난이도 수준 : 중2~고1
일본에는 하나시아이테(話し相手·이야기 상대)라는 서비스가 있다. 전화를 걸어 자기가 하고픈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은 돈을 받고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얼핏 황당해 보이는 이 서비스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용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전화한 사람의 고통이 덜어지고, 심지어 마음의 상처가 아물기도 한다고 한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 만큼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한 이들의 소통 욕구가 역으로 낯선 이를 통해 위로받고 있는 것이다.
하나시아이테는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과 그 바람이 좌절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을 드러낸다. 가족이든 친구든 단 한 사람이라도 그런 상대가 있다면 사는 게 크게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관계 맺기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알도>는 이처럼 소망과 현실의 괴리에 있는 외로운 사람에게 나타난 상상의 친구를 주제로 한 ‘그림책’이다. 그림책은 주로 어린이 독자를 가정하고 만들지만 어릴 때만 읽는 책은 아니다. 좋은 그림책은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이 더 이상 줄어들 수 없는 지점까지 응집된 결과로, 나이와 상관없이 감동과 지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림책 중에는 어린 시절 읽었을 때 별 느낌이 없다가 나이를 먹을수록 감동이 점점 깊어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알도>도 그중 하나다.
<알도>를 쓰고 그린 존 버닝햄은 <깃털 없는 기러기 보르카>, <우리 할아버지>,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외 여러 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작가다. 그가 다루는 주제는 죽음, 차별, 외로움, 폭력 등 가볍지 않다. 그런데 존 버닝햄은 이처럼 무거운 주제를 간결한 글과 그림에 고요하게 실어냄으로써 묵직하지만 견뎌낼 만한 아픔으로 승화시킨다.
<알도>의 주인공은 초등학생 정도의 아이지만, 그의 고민은 청소년이나 장년이 되어, 혹은 노년이 되어서도 늘 안고 있을 문제이다. 그런 무거움이 장면마다 담겨 있기에, 단순한 그림과 짧은 글인데도 책장을 후딱 넘길 수 없다.
<알도>는 “난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 아래 주인공 소녀가 독자를 바라보고 서 있다. 소녀는 치마에 잡힌 단정한 주름과 얌전히 걷어 올린 양말과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카락이 좀 산만하다. 그가 속한 가지런한, 혹은 가지런해 보이는 세계에 무난히 섞여들지 못하는 내면의 갈등이 머리카락을 헝큰 건 아닌가 싶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 짐짓 아닌 척하고 있지만 나를 둘러싼 세계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기에 마음 한구석은 늘 소녀의 뻗친 머리처럼 헝클어져 있고, 그래서 사람들과 한참 웃고 떠들고 나서 혼자가 된 순간에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오는 것이다.
<알도>의 주인공 소녀에게는 나름의 고통이 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모님은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히며 싸우고 있다.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와 혼자가 된 시간, 소녀는 커다란 토끼 인형처럼 생긴 상상의 친구 알도를 만난다. 그러고 나서 중얼거린다. “난 행복해, 정말 정말 행복해.”
알도는 소녀와 함께 놀고, 책을 읽고, 어려울 때 도와주는 친구다. 소녀는 알도가 어쩌면 오늘 밤부터는 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도, 언젠가는 자신이 알도를 잊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 점이 이 이야기를 환상에만 머물지 않게 하는 힘이다. 소녀는 알도가 영원히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나름의 대응으로 알도를 불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동물이 등장하는 <침대 밑 악어>를 읽어보자. 이 책의 주인공 JJ는 금융회사에 다니는 평범한 청년이다. 여느 때처럼 출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침 그는 침대 밑에서 악어 한 마리를 발견한다. 그런데 이 악어, 알도와는 좀 다르다. JJ를 도와주지도 않고 놀아주지도 않는다. 다만 침대 아래서 조용히 구두를 먹어치울 뿐이다. 게다가 알도처럼 순하게 생긴 토끼도 아니고, 배를 곯렸다가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아침마다 악어 먹이로 신발 한 켤레를 던져주던 JJ는 고민 끝에 병원에 가게 되고, 악어 병에 잘 듣는다는 약을 처방받는다. 이 약의 성분표를 보는 순간 그는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고독, 불안, 애정결핍증에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적혀 있었던 것이다.
JJ는 <알도>의 소녀와 같은 처지에 있었는데, 그의 환상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알도가 소녀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상상의 친구였다면, 악어는 고독과 불안과 애정결핍이 얽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악어는 정말 JJ를 괴롭히기 위해 나타난 것일까? 겉보기와는 좀 달리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악어가 나타나기 전 JJ는 자신의 일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지만 그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이 상황에서 악어는 자기가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지조차 모르는 일상이 실제로는 심각한 문제이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충고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악어 병에 듣는다는 약을 먹은 JJ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데, 그때 악어가 함께 눈물 흘리고 있는 것을 본다. 악어는 그를 해치기 위해 나타난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도와주러 온 존재인 것이다.
우리의 고독과 불안은 토끼를 불러낼 수도, 악어로 나타날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건 불안과 고독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적극적으로 친구를 찾아 나설 필요가 있다. <알도>의 주인공이 알도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건 결국 현실에서 알도와 같은 친구를 만날 것이라는 희망과 의지의 반영이다. 또 JJ가 자기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난 것처럼, 주위를 둘러보면 도와줄 사람이 적어도 한 명은 있다. 혼자 힘들다면 주저하지 말고 그 누군가를 불러야 한다.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
<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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