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근의 심리치료] 학습심리학② 천재 동훈이는 왜 수업시간에 잠만 잘까?

조선일보 | 맛있는교육

2013.01.22 14:15


내가 만난 동훈이는 사람들이 말하는 일명 천재였다. 심리검사 가운데 포함된, 지능검사에서 140이 넘는 측정값을 보였다. 하지만 나의 지능에 대한 관점은 일반인들과는 다소 다르다. 면담을 해보니 스턴버그가 말하는, 활성지능이라고 할 수 있는 실용지능은 낮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것인지, 제대로 된 교양 학습을 받지 않았던 것인지, 심지어 동훈이는 도덕성 문제까지 약간 의심이 되었다.

동훈이의 증상은 기면증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면증처럼 호르몬 계통의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잠이 쏟아졌다. 수업시간에 너무 잠이 와 주체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상담 초반에는 상담하던 중에 갑자기 쓰러져 자기도 했다.

동훈이는 버릇처럼 애꿎은 학교선생만 탓했다. 오래된 사립학교라서 늙은 선생님들이라 세대 차이가 나고, 수업방식도 자신이 원하는 것과 달라 수업에 집중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잠이 더 온다고 했다.

물론 자기합리화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자존감이 아닌 자존심이 강했던 동훈이는 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검사에서 상당한 불안장애가 포착되었다. 불안이 동훈이를 잠재웠던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은 현대인의 불안이 증가한 이유로 ‘첫째, 사랑이 부족한 생활, 둘째, 속물들이 많아진 사회, 셋째, 지나친 성과주의나 기대감, 넷째 삶의 불확실성’ 등을 꼽는다. 특히 성과주의는 한국인의 불안을 이해하는 중요한 틀이 된다. 과정보다는 결과와 수치로 나타나는 성과에 집착하는 사회문화는 성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쓸 만한 성과를 낸 사람도 늘 무언가에 쫓기는 마음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서울 모대학 교수인 동훈이 아버님은 무척 온화하고 따사로운 분이었다. 상담 내내 겸손하게 경청하는 성품으로 봐서 동훈이의 불안증이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 같았다. 아버지와의 소통 문제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다만 ‘잘난 아버지’의 존재는 동훈이에게 직간접적으로 부담을 주었다.

문제는 동훈이 엄마의 1등 사랑에 있었다. 동훈이는 초등학교 내내 1등을 도맡았다. 중학교 때도 몇 번 1등을 놓친 적은 있지만, 일등 할 때가 더 많았다. 엄마는 동훈이가 1등을 할 때마다 무척 기뻐했고, 다양한 보상과 함께 크게 격려했다. 그리고 은연중에 일등에 관한 자신의 큰 관심을 숨기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함께 쇼핑을 다닐 정도로 엄마와 사이가 좋은 동훈에게 엄마의 1등 사랑은 저버릴 수도 없고, 무시할 수도 없는 난관이었다. 동훈이는 살아오는 내내 1등을 하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동훈이의 엄마는 공부에 관해서만은 ‘모두 괜찮아’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고등학교 들어 친 첫 시험의 실패는 동훈에게 큰 충격이었다. 동훈으로서는 생애 처음 겪는 큰 좌절이었다. 그리고 부모의 양육태도에서 자의반 타의반 형성된 완벽주의 성향 역시 문제였다. 동훈에게는 항상 높은 자기 기대치가 있었고, 이를 이루지 못하면 밤잠을 설치며 걱정과 부끄러움에 시달렸다.

완벽주의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탈 벤 샤하르는 ‘완벽의 추구’에서 긍정적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최적주의자’라고 칭하고, 그와 반대인 잘못된 완벽주의자들이 흔히 갖는 오류 세 가지를 꼽았다. 실패에 대한 거부,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거부, 성공에 대한 거부가 그것이다.

첫째, 실패에 대한 거부는 완벽주의자가 가지는 전형적인 특징이다. 완벽주의자들은 실패에 대해 두려움을 갖기 때문에 때로 모험을 멈추고 도전을 포기하고 만다.

둘째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거부인데, 이는 자신의 실수나 결여에 의해 빚어지는 감정을 회피하는 심리이다. 완벽주의자들의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때때로 심각한 두려움으로 전이되는데, 불안장애는 완벽주의자가 가장 걸리기 쉬운 심리질환이다.

세 번째 성공에 대한 거부는 처음 들어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특징이다. 이는 완벽주의자의 낮은 자존감과 관계가 있다. 심각한 완벽주의의 경우 자신이 한 일이나 성과에 대해 지나치게 낮게 평가하는 특성이 있다. 완벽주의자가 오히려 자기결핍감을 많이 느끼는 원인이기도 하다.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결과라도 완벽주의자는 그곳에서 무언가 부족한 점들을 찾아내려 한다.

쉽게 말해 컵에 찬 물보다는 나머지 빈 공간에 신경이 더 쓰이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이렇게 성공이나 성취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과 자기충족을 잘 느끼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동훈이는 이 세 가지 거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잠을 선택했다. 동훈은 실패를 걱정하는 일을 뒤로 미루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잠시 잊고, 성공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을 떨쳐내는 방법으로 잠을 이용했던 것이다.

수니야 루사 연구진은 완벽주의를 만드는 잘못된 양육의 특징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우선 유복한 가정의 부모라면 자녀 양육에 있어 ‘실패 경험’을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지나치게 많은 물질을 제공하거나, 많은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지나친 간섭이나 물질적 완벽을 기하는 양육은 아이가 삶에 대한 위기감이나 부담감을 자주 느끼게 만든다. 게다가 별다른 노력 없이 일의 성과가 주어질 때 아이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공에 대한 성급한 태도와 실패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이 형성될 수 있다.

또 이런 완벽주의 양육은 아이가 과정보다는 목적 지향적인 인물로 자라게 만들 여지가 있다. 부모의 지나친 교육 간섭이 아이가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다양한 실패와 경험을 통해 성취욕과 자존감을 신장시키는 일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부족함이나 결핍감 없이 지나치게 모든 것이 완비된 상태에서 아이가 자라면, 그런 양육환경 자체로도 완벽주의 성향을 강화한다. 가령 사달라는 장난감을 무턱대고 사주다가는, 나중에 자신이 욕구하는 대상이 빨리 빠짐없이 채워지지 않을 때 심적 고통을 겪는다.

탈 벤 샤하르는 완벽주의 반대 육아와 양육을 ‘아이가 넘어져 울 때, 내버려두라’라는 말로 표현한다. 부모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쫓아다니며 챙겨주다가는 아이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고 자존감을 형성하는 기회를 막고 만다. ‘오냐, 오냐’ 식의 양육은 아이를 망칠 수 있다. 아이가 스스로 불편을 느끼고, 이겨낼 수 있도록 시간과 여유를 주는 ‘기다림과 느림’의 양육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동훈이가 완벽주의에 대한 불안감과 고통을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 극복하고 나자 갑자기 피곤해지거나 수업 시간에 잠드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 냉정히 따져보면 무섭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은 내면의 불안 요소들에 대해서 인지교정을 해나가면서, 자신의 불안감이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감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거나 갑자기 두통이 몰려오는 일도 잦아들었다. 대신 오랫동안 몸에 밴, 일등에 대한 욕심이 문제였다. 자기 기대치를 낮추는 일은 의외로 쉽지 않았다. 상담 과정에도 동훈이는 일등 하는 상상을 수시로 꿈꾼다고 했다. 일등의 쾌감은 마약처럼 중독성이 강하다.

일등은 아이들에게 너무 큰 쾌락을 선사하기 때문에, 그 쾌락을 한 번 맛본 아이들은 또 다시 일등을 달성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심신 에너지를 소비한다. 일등을 계속할 수 있는 아이도 문제지만 일등을 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일등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더 문제다. 이 일등에 대한 무자비한 마음 씀이 때로는 아이들을 깊은 심리적 상처의 수렁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부모가 쉽사리 내뱉는 ‘일등주의 담론’이 아이들의 영혼과 심성에 생채기를 내는 일을 오랫동안 목격해왔다. 우리 부모들은 아직도 정말 어른스럽게 ‘등수보다는 노력하는 과정,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더 아름답고 소중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헬로스마일 소아청소년 심리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