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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오노 나무를 심는 사람 |
한 인간이 참으로 보기 드믄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발견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그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하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한 잊을 수 없는 인격과 마주하는 셈이 된다.
약 40여 년 전이었다. 나는 여행자들에게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고원지대를 오래오래 걸어서 올라 다니곤 했다. 그 고지는 프로방스 지방으로 뻗은 알프스 산맥위의 아주 오랜 고장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지역은 동남쪽과 남쪽으로는 시스떼롱과 미라보 사이에 있는 뒤랑스 강의 중류를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드롬강의 원천으로부터 디에까지 이르는 강의 상류를 끝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꽁따 브네쌩 평원과 방뚜산의 지맥이 그 끝이었다. 그곳은 바스(낮은) 알프스 지방의 북부 전부와 드롬강의 남쪽 및 보끌뤼즈 지방의 일부 작은 지역에 걸쳐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고도 1200-1300미터의 인적 없고 단조로운 곳에서 긴 산책에 나섰는데, 이곳은 야생 라벤더 외에 자라고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였다. 나는 폭이 가장 넓은 곳으로 이 지역을 가로질러 걸었다. 사흘을 걸은 뒤 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황폐한 지역에 이르게 되었다. 나는 뼈대만 남은 버려진 마을 옆에서 야영했다. 폐허가 되어 있기는 하지만 낡은 말 벌통처럼 촘촘하게 붙어 있는 집들을 보니 옛날엔 이곳에 샘이나 우물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과연 샘이 있긴 했지만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지붕이 없어져버리고 비바람에 사그러진 대 여섯 채의 집들, 종탑이 무너져버린 작은 교회는 마치 사람들이 사는 마을 속의 집이나 교회처럼 서 있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그 날은 햇빛이 눈부시게 내리쬐는 유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이 솟아 있는 이 고지 위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곳 없는 땅 위에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난폭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뼈대만 남은 집들 속으로 불어 닥치는 바람 소리는 마치 식사를 방해받은 야수가 부르짖는 소리 같았다. 나는 캠프를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서부터 다섯 시간이나 더 걸어 보았어도 여전히 물을 찾을 수 없었고, 또 물을 찾으리라는 희망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방이 똑같이 모두 메말라 있었고 거친 풀들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에서 검은 작은 그림자가 서 있는 모습이 어른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실루엣을 홀로 서 있는 나무의 둥치로 착각했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은 한 양치기 목자였다. 그의 곁에, 불타는 듯한 뜨거운 땅 위에는 30여 마리의 양들이 누워 쉬고 있었다.
그는 물병을 꺼내 내게 물을 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고원의 우묵한 곳에 있는 양의 우리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는 간단한 도르래를 설치해 놓고 깊은 천연의 우물에서 아주 좋은 물을 긷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고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이지만, 그러나 자신감이 있고 확신 속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모든 것을 빼앗겨버린 이런 곳에 그런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다.
그는 오두막이 아니라 돌로 만든 제대로 된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 집은 그가 이곳에 왔을 때 발견한 폐가를 어떻게 혼자 힘으로 수리해 놓았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었다. 지붕은 튼튼했고 물새는 곳도 없었다. 바람이 지붕을 두드려 기와 위에서 내는 소리가 마치 바닷가의 파도소리 같았다.
살림살이는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릇은 깨끗하게 씻겨 있었고 마루는 잘 닦여 있었으며 총은 반질반질했다. 불 위에는 수프가 끓고 있었다. 그 때 나는 그 역시 산뜻하게 면도한 얼굴을 하고 있고, 옷에 단추가 단단히 달려 있으며, 기운 것이 눈에 보이지 않게 옷이 세심하게 수선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수프를 나누어 주었다. 식사 후 담배쌈지를 권하자 그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개 또한 주인처럼 조용했으며 거칠지 않고 상냥했다.
내가 여기서 그날 밤을 묵어야 한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이라도 하루 하고 반 이상을 더 걸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지역에는 마을들이 거의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곳 고지대의 기슭에는 서로 떨어진 너 댓 개의 촌락이 흩어져 있을 뿐이었는데, 그 마을들은 차가 다니는 길의 맨 끝에, 떡갈나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엔 숯을 만드는 나무꾼들이 살고 있었다. 사람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곳이었다. 여름에도 겨울만큼이나 날씨가 혹독한 곳에 촘촘하게 모여 살면서 모든 가정들은 닫힌 세계 속에서의 이기심만을 키워 가고 있었다. 분별없는 야심은 이곳을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욕망 속에서 정상을 벗어난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남자들은 트럭으로 시내에 숯을 운반하러 갔다가 돌아오곤 했다. 아무리 굳센 품성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여인들은 또한 가지가지 원한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놓고 경쟁했다. 숯을 파는 것을 놓고, 교회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미덕들을 놓고, 악덕을 놓고, 그리고 선과 악이 뒤엉클어진 것들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했다. 게다가 바람 또한 쉬지 않고 신경을 자극했다. 그래서 자살이, 그리고 거의 언제나 죽음으로 몰고 가는 정신병들이 전염병처럼 번졌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그 목자는 조그만 자루를 찾아 들고 와서 도토리 한 무더기를 테이블 위에 쏟아 놓았다. 그는 그 도토리 하나하나를 아주 주의 깊게 조사하기 시작하더니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구별했다. 나는 파이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도와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가 이 일에 기울이는 정성을 보고 나는 더 고집할 수 없었다. 우리의 대화는 그것이 전부였다. 그는 아주 굵은 도토리 한 무더기를 모으더니 그것들을 열 개씩 세어 묶음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그는 작은 것이거나 조금이라도 금이 간 것들을 제쳐놓았다. 더 자세히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해서 완벽한 상태의 도토리가 백 개 모아졌을 때 그는 일을 멈추었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었다.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평화가 있었다. 다음날 나는 그의 집에서 하루 종일 쉴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다. 그는 그것을 아주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그를 방해할 수 없다는 인상을 나는 받았다. 그 휴식이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호기심을 느꼈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는 양떼를 꺼내어 풀밭으로 데리고 갔다. 떠나기 전에 그는 세심하게 골라 개수를 세어 모은 도토리 자루를 물 양동이에 담갔다.
나는 그가 지팡이 대신 대략 길이가 1.5미터 정도 되고 엄지손가락만큼 굵은 쇠막대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산책하며 쉬며 그가 간 길을 나란히 따라갔다. 양들의 목장은 작은 골짜기 아래에 있었다. 그는 작은 양떼를 개가 돌보도록 맡기고는 내가 서 있는 것을 향해 올라왔다. 나의 무례함을 꾸짖으러 오는 것 같아 두려웠으나 전혀 그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가는 길이었다. 그는 내게 달리 할 일이 없으면 자기를 따라 오라고 청했다. 그는 거기서 산등성이를 향해 200미터를 더 올라갔다.
그가 가려고 한 곳에 이르자 그는 땅에 쇠막대기를 박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구멍을 만들어 그 안에 도토리를 넣고 다시 구멍을 덮었다. 그는 떡갈나무를 심고 있었다. 그곳이 그의 땅인지 나는 물었다. 그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그 땅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저 그곳이 공유지이거나 아니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지도 않는 사람들의 것이 아니겠느냐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 알아볼 생각이 없었다. 그는 아주 정성스럽게 백 개의 도토리를 심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 후 그는 다시 도토리 고르는 일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해 주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를 끈질기게 물어보았다고 생각한다. 3년 전부터 그는 이런 식으로 고독하게 나무를 심어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십만 그루의 도토리를 심었다. 십만 개의 씨에서 2만 그루의 싹이 나왔다. 그러나 산짐승들이 나무를 갉아먹거나 예측할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속한 일들이 일어날 경우, 이 2만 그루 가운데 또 절반가량이 죽어버릴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그렇게 되면 예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던 이 땅에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살아남아 자라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나이가 궁금했다. 그는 분명히 50세가 넘어 보였다. 55세라고 했다. 이름은 엘제아르 부피에였다. 지난 날 그는 평지에 농장 하나를 갖고 있었고 그곳에서 인생을 가꾸며 살았다. 그런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었고 뒤이어 아내를 잃었다. 그 후 그는 고독 속에 물러 앉아 양들과 개와 더불어 한가롭게 살아가는 것을 기쁨으로 알게 되었다. 그는 나무가 없기 때문에 이 곳의 땅이 죽어가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달리 중요한 일거리도 없었으므로 이런 상태를 개선해 보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그 때는 나 역시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독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고독한 사람들의 영혼에 섬세하게 접근할 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정확히 말해서 내 젊은 나이는 나 자신과 관련지어서만, 그리고 어떤 행복의 추구만을 염두에 두고 미래를 상상케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삼십년 후면 1만 그루의 떡갈나무가 아주 멋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만 것이다. 그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만일 삼십년 후에도 하느님이 그에게 생명을 주신다면 그 동안에도 나무를 아주 많이 심을 것이기 때문에 이 1만 그루는 바다 속의 물방울 같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벌써부터 너도밤나무를 번식시키는 것을 연구해오고 있으며 그의 집 근처에 이 나무의 열매에서 길러낸 묘목원을 갖고 있었다. 울타리를 세워 양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잘 보호해 놓은 묘목들, 즉 그의 연구 재료들은 아주 아름다웠다. 그는 또한 지면에서 몇 미터 지하에 어느 정도 습기가 고여 있을 것 같은 땅에는 자작나무를 심으리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우리는 헤어졌다.
다음해 1914년에 전쟁이 일어나 나는 5년 동안 이 전쟁에 참가했다. 나는 한낱 보병 병사의 몸이었으므로 나무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할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한다면 그런 일 자체는 나에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화제 거리라든가 우표수집 같은 것으로 여겼고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쟁에서 벗어났을 때 나는 아주 적은 액수의 보너스를 받았으며, 신선한 공기를 조금이라도 마시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았다. 인적 없는 그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 들었을 때 나에게는 그런 바람 이외에는 다른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곳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폐허가 된 마을 너머 멀리에서 무슨 회색빛 안개 같은 것이 카페트처럼 산등성이를 덮고 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난 여기 오기 전날부터 나무를 심던 그 목자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1만 그루의 떡갈나무라면 꽤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거야.”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엘제아르 부피에 역시 죽었으리라고 쉽게 상상했다. 게다가 20대의 나이에는 50대의 인간들이란 죽는 것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는 늙은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는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아주 활력이 넘쳐 보였다. 그는 생업도 바꾸었다. 양들을 네 마리만 남기고 대신 100여 개의 벌통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린 나무들을 위협하는 양들을 치워버린 것이다. 그동안 그는 전혀 전쟁 때문에 불안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그는 태연하게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나무를 계속 심었던 것이다.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들은 그때 10살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나무들은 나보다, 그리고 엘제아르 부피에보다 더 높이 자라 있었다. 그것은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나는 문자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엘제아르 부피에도 말이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 속에서 그가 키워놓은 숲을 산책하며 하루를 보냈다. 숲은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가장 폭이 큰 것은 11킬로미터나 되었다.
이 모든 것이 오로지 아무런 기술적인 장비도 가지지 못한 한 인간이 손과 영혼에서 나온 것임을 기억할 때마다 나는 인간이란 파괴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는 하느님처럼 유능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는 자기 생각을 꾸준히 실천해 가고 있었다. 내 어깨 높이에 와 닿는 너도밤나무들이 눈앞에 끝없이 펼쳐져 있는 광경이 그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떡갈나무는 빽빽이 자라 있었고, 들짐승에게 갉아 먹혀 피해를 입는 나이를 넘어서 있었다. 신이 자기의 이 피조물을 파괴하려는 섭리를 갖고 있다면 앞으로는 태풍에게나 도움을 청해야 할 것이다.
그는 또 감탄할 만큼 잘 가꾼 자작나무 숲을 보여주었다. 5년 전, 그러니까 1915년 내가 베르덩 전투에서 싸우던 시기에 심은 나무들이었다. 밑에 습기가 있으리라고 정확하게 짐작했던 모든 땅에 그는 자작나무를 심었던 것이다. 자작나무들은 젊은이 같이 부드러웠고 아주 단호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창조란 연달아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의 일을 고집스럽게 추구할 뿐이었다. 마을로 다시 내려왔을 때 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는 늘 말라붙어 있던 시내에 물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주 오랜 옛날 어느 때는 이 말라붙었던 시내에 물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할 때 소개했던 쓸쓸한 마을들 가운데 몇몇은 옛 갈로 로망의 터전 위에 세워져 있었는데 아직도 그 시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한때 고고학자들이 와서 이 곳을 파헤쳤고, 그들은 여기에서 낚시 바늘을 찾아내곤 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약간의 물을 얻기 위해서도 저수통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바람도 몇 가지 씨앗들을 흩어 놓았다. 그래서 물이 다시 나타나자 그와 함께 버드나무가, 골풀이, 풀밭이, 정원이, 꽃들이, 그리고 삶의 이유 같은 것들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그 모든 변화는 아주 천천히 일어났기 때문에 습관처럼 익숙해져서 아무런 놀라움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산토끼나 멧돼지들을 잡으려고 외롭게 산을 타는 사냥꾼들은 작은 나무들이 많이 번식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나 그것은 그저 땅이 자연스럽게 부리는 변덕 탓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무도 이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에게 의심을 두었다면 그들은 그에게 반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는 의심을 느끼게 할 만한 데가 없는 사람이었다. 훌륭하고 고귀한 그의 인격 속에 이처럼 끈질긴 고집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관리들 가운데 누가 상상인들 할 수 있었겠는가?
1920년 이래 나는 1년에 한 번씩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방문했다. 그동안 그가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는 것을 나는 전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느님 자신은 그를 그런 어려움 속으로 종종 밀어 넣었던 것을 아실 것이다. 나는 그가 겪었을 곤란에 대해서는 헤아려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 같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역경과 싸워 이겨내야 했을 것이고, 그러한 열정이 확고한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는 절망과 싸워야 했을 것이라는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는 1년 동안에 1만 그루가 넘는 단풍나무를 심었는데 모두 죽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 다음 해가 되자 그는 단풍나무를 포기하고 너도밤나무를 다시 심었으며, 그리하여 떡갈나무들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런 보기 드믄 인격을 가진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일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너무나도 완전한 고독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말하는 습관을 잃어버리기까지 했다. 아니, 어쩌면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1933년 엘제아르 부피에는 깜짝 놀란 산림관리인의 방문을 받았다. 이 관리는 <천연> 숲의 성장을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집밖에서 불을 피우지 말라는 명령을 이 목자에게 통고했다. 그 관리는 순진하게도 숲이 스스로 혼자 커가는 것은 생전 처음 본다고 말했다.
그 시기에 엘제아르 부피에는 집에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너도밤나무를 심으로 가곤했다. 그때 그는 이미 75세였기 때문에 매일 오고 가는 수고를 덜기 위해 나무 심는 바로 그 장소에 오두막 돌집을 하나 지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해에 그 집을 지었다.
1935년에는 정부의 진짜 대표단이 <천연의 숲>을 시찰하러 왔다. 산림수자원청의 고위관리와 국회의원, 전문가들도 함께 왔다. 그들은 쓸데없는 말들을 많이 했다. 그들은 무엇인가를 하기로 결정했는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단 한 가지 유익한 일을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즉 숲을 국가의 관리 아래 두고 사람들이 숯을 만들러 오는 일을 금지한 것이다. 그들 역시 건강이 넘치는 젊은 나무들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아름다운 숲은 국회의원에게까지도 유혹의 힘을 발휘한 것이다.
대표단의 산림관리관들 가운데 내 친구가 한 사람 있었다. 나는 그에게 이 숲의 비밀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그 다음 주 어느 날 우리 두 사람은 엘제아르 부피에를 찾아갔다. 우리는 대표단이 시찰한 지점에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한참 일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산림관리관은 쓸모없는 친구가 아니었다. 그는 가치 있는 것을 알아볼 줄 알았고 침묵할 줄도 알았다. 우리 셋은 함께 점심 식사를 했고 말없이 경치를 바라보면서 몇 시간을 보냈다. 우리가 지나온 언덕 길은 6-7미터 높이의 나무들로 뒤덮혀 있었다. 1913년에 보았던 이곳의 모습이 생각났다. 황무지가 떠올랐다...
평화롭고 규칙적인 일, 고산지대의 살아 있는 공기, 소박한 음식,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혼의 평화가 이 노인에게 거의 장엄하리만큼 훌륭한 건강을 주었다. 그는 하느님의 운동선수였다. 나는 그가 아직도 얼마나 많은 땅을 나무로 덮을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떠나기 전에 내 친구는 이곳의 토양에 알맞을 것 같은 몇몇 나무 종류에 관해 간단하고 짧게 제안했다. 그러나 그것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내 친구는 나중에 “그는 그런 것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있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한 시간쯤 걸은 뒤에 생각이 떠오른 듯 친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나무에 대해 그 어느 누구보다 훨씬 많이 알아. 그는 행복할 수 있는 멋진 방법을 발견한 사람이야.”라고. 이 산림관리관 덕분에 숲만이 아니라 엘제아르 부피에의 행복도 보호받을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숲을 보호하기 위해 세 명의 산림관리인을 임명했고 이들에게 몹시 겁을 주어서 나무꾼들이 아무리 뇌물을 가져다 준다 하더라도 흔들림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엘제아르 부피에의 작품이 심각한 위험을 맞았던 것은 1939년에 일어난 2차세계대전 때였다. 그 당시에는 적지 않은 자동차들이 목탄 가스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스연료를 만들어 내기 위해 나무들이 항상 모자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1910년에 심은 떡갈나무부터 베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행이도 이 지역들은 모두 도로망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계획은 재정적으로 비경제적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 목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평화롭게 자기 일만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그는 1914년의 전쟁을 몰랐던 것처럼 1939년의 전쟁 역시 모르고 있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엘제아르 부피에를 본 것은 1945년 6월이었다. 당시 그는 87세였다. 나는 황무지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전쟁이 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뒤랑스강의 계곡과 산 사이를 오고 가는 버스가 있었다. 나는 여기서 처음 산책했던 장소가 어디인지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는데, 그것은 비교적 빠르게 움직이는 교통수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버스가 가는 길은 나를 처음 보는 곳으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내가 옛날의 그 황량했던 폐허의 땅에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마을 이름을 떠올려야만 했다. 나는 베르공 마을에서 버스를 내렸다.
1913년에는 열 채내지 열두채의 집으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 단 세 사람만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야만스러웠고 서로 미워했으며 덫으로 동물을 잡아서 먹고 살았다. 거의 선사시대 원시인의 육체적, 정신적 상태에 가까운 삶이었다. 쐐기풀이 버려진 집들의 주위를 덮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조건은 전혀 희망이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하물며 덕을 추구하며 살아갈 상태가 아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공기까지도. 옛날에 나를 맞아주었던 건조하고 난폭한 바람 대신에 향긋한 냄새를 실은 부드러운 미풍이 불고 있었다. 물 흐르는 소리 같은 것이 저 높은 언덕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은 바람소리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것은 못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는 진짜 물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나는 샘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물은 풍부하게 넘쳐흘렀다. 그리고 나를 가장 감동시킨 것은 그 샘 곁에 이미 네 살의 나이를 먹었음직한 보리수 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나무는 벌써 무성하게 자라 있어 의문의 여지없이 부활의 한 상징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더욱이 베르공 마을에는 사람들이 노동을 한 흔적이 뚜렷했다. 사람은 희망을 가져야만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희망이 이곳에 다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허물어진 집들을 치우는 한편, 무너진 벽들을 모두 부수고 다섯 채의 집을 다시 지었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의 수는 28명이 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네 쌍의 젊은 부부도 있었다. 산뜻하게 벽을 바른 새 집들 주위를 채소밭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 채소밭에는 이것저것 섞여 있었지만 가지런히 심은 야채, 꽃, 배추, 장미꽃나무, 부추, 금어초, 샐러리, 아네모네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살고 싶은 마을이 되어 있었다.
그 곳에서부터 나는 길을 걸어서 갔다. 우리들이 이제 막 빠져 나온 전쟁은 아직 삶의 완전한 개화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지만 라자로는 이미 무덤 밖에 나와 있었다. 나지막한 산기슭에는 보리와 호밀이 자라고 있었고 좁은 계곡 바닥에는 푸른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 지역 전체가 건강과 번영으로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그로부터 8년의 세월이 흐르는 것만으로 족했다. 내가 1913년에 보았던 폐허의 자리에 지금은 잘 단장된 아담하고 깨끗한 농장들이 들어서 있어서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말해주고 있었다. 옛날의 그 샘들은 숲이 머금고 있었던 비와 눈에서 물을 받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 샘물로 수로를 만들었다. 단풍나무 숲속에 있는 농장마다 샘물이 흘러들어 융단 같은 박하잎 위로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을은 조금씩 재건되었다. 땅값이 비싼 평야지대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와 젊음과 활력과 모험정신을 가져다 주었다. 건강한 남자와 여자들, 그리고 소리내어 웃을 줄 알며 시골에서 벌어지는 축제의 맛을 즐길 줄 아는 소년 소녀들을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가게 된 뒤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모습이 변한 옛 주민들, 그리고 새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수가 1만 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누리는 행복의 빚을 엘제아르 부피에에게 지고 있었다.
단순히 육체적 정신적 힘만을 갖춘 한 사람이 홀로 황무지에서 이런 가나안 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나는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조건이란 참으로 경탄할 만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곤 한다. 그리고 그런 결과를 얻기 위해 가져야만 했던 위대한 영혼 속의 끈질김과 고결한 인격 속의 열정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신에게나 어울릴 이런 일을 훌륭하게 이루어낼 줄 알았던 그 소박한 늙은 농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품게 된다.
엘제아르 부피에는 1947년 바농 요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이청준 줄 |
사내의 이야기는 다시 계속되었다.
그 날 주막에서 허 노인은 운에게 술잔을 따라 주고, 그 날 밤으로 운을 줄로 오르라고 했다.
― 줄 끝이 멀리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단 말이다.
노인은 조용조용 당부를 했다. 그 한 마디 한 마디는 마치 노인의 일생을 몇 개로 잘라서 압축해 놓은 듯한 무게와 힘과, 그리고 알 수 없는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자기의 전 생애를 운에게 떠넘겨 주려는 듯한 안간힘이 거기에는 있는 것 같았다.
― 아버지, 이젠 줄을 그만두시고 좀 쉬십시오.
운이 말했으나 노인은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었다.
― 줄에서 내 발바닥의 기력이 다했다고 다른 곳을 밟고 살겠느냐? 같이 타자.
그 날 밤, 줄에는 두 사람이 함께 올라섰다. 운이 앞을 서고 허 노인이 뒤를 따랐다. 운이 줄을 다 건넜을 때는 객석이 뒤숭숭하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뒤를 따르던 허 노인이 줄에서 떨어져 이미 운명을 하고 만 뒤였다.
여기까지 듣고 나니, 나는 사내에게 더 이야기를 시켜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허 노인이 운에게 마지막 당부를 할 때 그랬을 법한 컴컴하고 무거운 것이 이 사내에게서 쉴 사이 없이 흘러나왔다. 이 믿어지지 않는 집요한 이야기로써 사내가 나에게 떠맡기려는 것의 무게를 나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나는 다음날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다.
“아닙니다, 마저 끝냅시다. 곧 끝납니다.”
사내는 아직도 고집을 세우며 이야기를 이으려고 했다. 그러나 말보다 잦은 사내의 기침 소리를 더 듣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내 방을 나와 버렸다. 부엌 방에는 이제 불이 켜 있었으나 역시 사람의 기척은 없었다. 나는 곧장 어제의 여관으로 돌아와 자리로 들었다. 사내의 이야기는 문화부장이 기대한 것과는 성질이 다를지 몰라도 기사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노인의 운명 ― 그 논리 이상으로 정연한 질서는 허 노인이 죽은 지금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허 노인은 줄을 지배하지 못하고 줄이 그를 지배했다. 그게 아름다움이라는 것인가. 또, 운은 노인의 무거운 운명을 떠맡아 지고 어떻게 자기 인생을 구축해 갈 수 있었는지. 장의사 사내의 이야기로는 운도 마찬가지로 줄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 운은 노인의 인생을 배신할 수는 없었던 것일까…… 그것은 또 운에게 무슨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이런저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는데 어젯밤의 여자가 불쑥 문을 들어섰다. 나는 여자가 좀 수상쩍었으나 이것저것 묻기가 귀찮아서 그냥 옆에 눕게 했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었다. 나는 곧 피곤해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역시 여자는 가고 없었고, 윗주머니의 돈이 꼭 삼백 원이 줄어 있었다. 시계가 열 두 시를 넘고 있었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여관을 나와 다릿목으로 해서(다릿목에서는 장의사의 사내가 의미 있는 웃음을 지으며, “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하고 아는 체를 했다.) 중국집을 들렀다가 어제처럼 입가심을 사들고는 다시 ‘사꾸라 공원’ 중턱의 사내에게로 갔다. 부엌방 문 앞에는 여자 고무신이 어제 그대로인 것처럼 가지런히 놓여 있고, 사내의 방에서는 역시 역한 냄새가 코도 거치지 않고 내장으로 스며들었다. 사내의 숨소리가 어제 처음 왔을 때보다 훨씬 거칠어져 있었다. 사내는 내가 쑥스러워질 만큼 새삼스럽게 반기고는 곧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그 뒤로 운이 허 노인의 당부대로 줄을 탔는지는 알 수 없었지요. 하나 확실한 것은 그 역시 전에 허 노인이 당하던 단장의 꾸지람을 고스란히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꾸지람을 듣고 있을 때까지도 영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멍청히 서 있기만 하곤 했지요. 그런데 나중에는 단장도 그런 운을 늘 나무랄 수만은 없게 되었어요. 활동 사진이라는 것이 갑자기 성하지 않았습니까. 그 쪽에 손님을 다 빼앗기고 나니 우리는 거렁뱅이가 될 판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장이 그래도 그 중 나았습니다. 생각생각하다가 짜낸 것이 결국 구경꾼의 흥을 더 돋구어 줘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지요, 그래 그 방편으로 제일 적합한 것이 운이었습니다. 줄을 그전 때보다 두 배, 세 배로 높이 매달았습니다. 허 노인도 여느 광대보다 높이 줄을 탔기 때문에 가설 극장의 천정 포장을 걷어 내야 했지만 이번에는 거기 비교가 안 될 정도였지요, 우리는 그런 식으로 C읍까지 왔었습니다. 그 땐 가을이었지요.”
C읍에서 ― 어느 날 밤, 운이 줄에서 내려와 보니 그에게 꽃다발이 하나 와 있었다. 꽃다발이라야 그 즈음 산이나 들에 지천으로 피어난 들국화를 몇 송이 꺾어다 종이 리본으로 묶은 것이었지만, 워낙 처음 있는 일이라 부처님 같은 운도 약간 호기심이 들었다. 꽃다발을 가져온 것은 소녀끼를 갓 벗은 여자라고 했다.
― 잘 해 봐라 이 녀석. 총각 귀신은 제사도 없단다.
트럼펫의 사내가 웃으면서 그 꽃다발을 운에게 건네 주었다. 여자는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같은 일을 하고 갔지만, 언제나 운이 줄을 올라간 뒤에 왔다가 줄에서 내려오기 전에 가 버리기 때문에 정작은 얼굴조차 볼 수가 없었다. 매일밤 꽃다발을 맡았다 운에게 전해 주던 트럼펫이 보다 못해 하룻밤은 일을 꾸몄다.
― 공원으로 가 봐라. 거기 여자가 기다리고 있을 게다.
운이 줄에서 내려오자 트럼펫은 운에게 일러 주었다.
“지금 이야기 중의 트럼펫이라는 운의 친구가 바로 노인이시겠지요?”
나는 갑자기 이 사내 자신에 대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라 그렇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 때부터 나는 나팔을 불고 나면 조금씩 피를 뱉게 되었는데, 그렇다고 입에서 나팔을 뗄 수는 없었습니다. 나팔을 불지 못하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았으니까요.”
“노인께서 여길 떠나지 못하고 주저앉은 것도 폐 때문인 것 같은데 그 때 노인께서는 독신이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독신이었는데, 갑자기 각혈이 심해져서…….”
사내는 말끝을 흐렸다.
정말로 그랬을까? 나는 여전히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그것은 오히려 누군가를 따라 떠났어야 할 이유도 되지 않는가. 그리고 그런 폐를 가지고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가 없지도 않은가. 그렇다면 ― 이 사내는 혹시 운을 찾아오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낀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러나 사내는 내가 입을 열기 전에 이야기를 서둘러 계속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나는 운이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는데, 여자를 만나고 와서도 운은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는 말입니다. 그런 일이 한 주일쯤 계속되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운이 줄 위에서 재주를 피우기 시작했단 말이에요. 단장이나 구경꾼들은 무척들 좋아했지요. 하지만 나는 옛날 허 노인의 실수를 기억하고 있었던 만큼 그게 불안했습니다. 몇 번씩 그런 재주 같은 동작을 하고 줄을 내려온 운은 유독히 땀을 많이 흘리고 있었고, 단장의 칭찬에도 넋 나간 눈만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 나의 생각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어요. 운이 자꾸 귀와 눈을 때리면서 혼자 중얼중얼하는 것이었습니다. 못 견뎌 하는 얼굴이었어요. 허 노인이 운에게 당부했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함성들을 지르고 좋아들 했거든요. 불행한 일이었지만,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은 곧 증명이 되었어요. 어느 날 밤, 줄을 타고 내려온 운은 또 공원으로 갔고, 우리는 나머지 순서와 곡예에 곁들인 연극까지 끝내고 났을 때예요…….”
구경꾼이 막 자리를 일어서려는 참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운이 사례 인사를 끝내고 섰는 무대 위의 단장 앞으로 나섰다.
“―오늘 밤 한 번 더 줄을 타겠습니다.”
“―아니, 왜?”
단장이 의아해서 운을 쳐다봤다. 그러나 단장은 다시 아무 말도 못하고 운에게서 눈을 피했다. 운의 눈에서는 무서운 불길이 일고 있었다. 그 눈은 단장을 보고 있지도 않은 것 같았다. 단장은 한 번 더 줄을 타겠다는 운의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운은 이미 자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운을 비켜섰다. 운은 그대로 천천히 걸어가서 그 높은 항목을 한 번 눈이 부신 듯이 쳐다보고는 이내 그것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단장은 잠시 고개를 갸웃이 기울이고 운의 거동을 살피고 있다가 갑자기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마이크를 힘껏 거머쥐었다.
“―여러분, 앉으십시오. 오늘 밤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하기 위해서 우리 서커스 단의 프로 중의 백미를 다시 한 번 여러분께 보여 올리겠습니다. 그것은 즉 보시다시피 인간의 승천(昇天)입니다. 인간의 승천!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우리 단(團)이 아니면 보실 수 없는 진귀한 구경거리입니다…….”
“그 날 밤, 운은 떨어져 죽었습니다.”
“한데, 그 날 밤 운은 왜 그렇게 이상한 행동을 했을까요?”
“네, 혹시 그 말씀에 해답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마는, 운이 만나던 그 여자의 이야기를 마저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날 밤 나는 아무래도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는 예감이 들었어요. 대강 일이 정리되었을 때 공원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공원이래야 선생님도 보셨겠지만,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땐 벌써 고목이 다 된 벚나무 사이에 촉수 낮은 전등을 몇 개 매달아 놓고, 군데군데 녹색 페인트 칠을 한 걸상들이 놓여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걸상 하나에 여자는 내가 올라갔을 때까지 아직 말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어요. 운이 여자의 목을 졸라 죽이려다 말고 공원을 내려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며칠을 통해 운이 여자에게 한 말을, 여자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운의 말은 불과 다섯 마디도 되지 못했으니까요. 물론 사랑은 배워서 말로 하는 것만은 아니니까, 배우지 않고도 아는 방법으로만 그는 여자를 사랑했겠지요. 마지막 날 이야기가 이랬다고 합니다. 갑자기 운이 여자를 끌어안고서,
―난 이제 줄을 탈 수가 없다. 넌 나하고 같이 살아야 한다.
운은 마치 줄에서 내려왔을 때처럼 땀을 흘리고 있더랍니다. 그런데 여자는 운이 그렇게 가까이만 있으면 언제나 무서워 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 전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 않아요.
―그럼? 그럼?
운은 미친 사람처럼 여자를 안은 팔에 바싹 힘을 주었습니다.
―줄을 타고 계실 때, 그 땐 그런 것 같았는데, 이렇게 옆에만 오시면…… 무서워요.
-아야, 이젠 난 줄을 탈 수가 없는데…….
그러고는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는데, 운의 손이 천천히 여자의 목으로 올라오더니 조금 있다가 그 손은 경련이 난 듯 여자의 가는 목을 조르기 시작하더랍니다. 여자는 별로 반항도 하지 않고 걸상에 쓰러졌는데, 운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또 갑자기 손을 놓아 버리고는 일어서더라는 것이었어요. 그리고는 혼자 중얼중얼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죽이고 다시 줄을 탈 수 있었지만, 아아…… 나는…….
그러다가 운은 산을 내려가 버렸답니다.”
사내는 그것이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었던 것처럼 열심히, 그러고 상상으로는 미치지 못할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기침을 하지 않으려고 몸을 오그라뜨리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끝까지 이야기를 못하고 기어이 발작을 시작하고 말았다. 나는 사내가 발작을 멎고 나서 다시 이야기를 이으려고 하는 것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지려고 했다. 이제 사내에게 혼자는 더 말을 시킬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운은 처음부터 자기가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두 번째 줄로 올라간 거로군요.”
“그렇습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여자는 왜 운을 사랑할 수가 없었을까요?”
“글쎄 그게 이상합니다만…… 참 이걸 말씀드릴 걸 잊었군요. 그 여자는 한쪽다리를 절고 있었어요. 절름발이였단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실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난 자꾸 그 여자가 좋아한 것은 운이 아니라 운의 다리가 아니었나 해요. 여자는 줄 위의 운이 하늘을 날고 있는 학(鶴)으로 생각했더랍니다. 어떻든 그렇게 운이 죽고 나서 얼마가 지나니까, 이곳 사람들은 광대가 승천을 했다고들 말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 단장의 말을 빌어서 한 비웃음이었겠지요. 그러나 오랜 시일이 지나다 보니 운은 정말로 승천을 했다고 믿어버리게 되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나도 아직 운이 줄을 타는 그 곧고 유연한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데…… 아마 그게 명인(名人)의 풍모가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어요.”
“그럼 그 절름발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나요?”
“그 여자도 뒤에 죽고 말았습니다.”
사내의 눈동자는 처음 내가 찾아왔을 때처럼 나의 머리 위 허공으로 멀리 떠올라 가 버렸다.
소설 읽기8 황석영 아우를 위하여 |
뭔가 네게 유익하고 힘이 될 말을 써 보내고 싶다.
네가 입대해 떠나간 이제 와서 우울한 고향 실정이나 우리의 지난 잘잘못을 들어 여기에 열거해 놓자는 건 아니야.
아무 얘기도 못해 주고 묵묵히 너를 전송했던 형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하여 주기 바란다. 나는 우리가 지금쯤은 의심하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어떤 문제를 확실히 해두고, 또한 장래를 굳게 믿기 위하여 내 연애 이야기를 빌리기로 한다. 너는 십구 년 전에 내가 누구를 사랑한 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아마 놀랄 거다. 따져봐. 내 열한 살 때가 아니냐. 에이, 이건 오히려 형의 달착지근한 구라를 읽게 됐군, 하며 던져 버리지 말구 읽어주렴. 너 영등포의 먼지 나는 공장 뒷길들이 생각나니. 생각날 거야, 너두 그 학교를 다녔으니까. 아침마다 군복이나 물빠진 푸른 작업복 상의를 걸친 아저씨들이 한쪽 손에 반찬 국물의 얼룩이 밴 도시락 보자기를 들고 공장 담 아래를 줄이어 밀려가곤 했지. 우리 아버지두 그 틈에 있었을 거야. 참 그땔 생각하면 제일 먼저 까마중 열매가 떠오른다. 폭격에 부서져 철길 옆에 넘어진 기차 회통의 은밀한 구석에 잡초가 물풀처럼 총총히 얽혀서 자라구 있었잖아. 그 틈에서 우리는 곧잘 까마중을 찾아내곤 했었다. 먼지를 닥지닥지 쓰고 열린 까마중 열매가 제법 달콤한 맛으로 유혹해서는 한 시간씩이나 지각하게 만들었다.
먼지 나는 길, 공자의 담, 까마중 열매 다음에 생각나는 긴 땅에 반쯤 묻혀있던 노깡들이야. 사택 앞의 쓸쓸한 가로를 따라서 가죽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는 하늘소벌레가 살았고, 벽돌벽의 어지러운 선전문 자국들, 창고의 탄환 흔적, 그리고 인가 끝에 상두도가가 있었고, 실개천을 가로지르며 노깡들이 엇갈려 길게 누워 있었지. 노깡 속엔 우리가 그 무렵에 눈이 시뻘개서 찾아다니던 총알이 많이 나오곤 했었다. 총알을 찾으러 캄캄한 노깡 속에 들어갔다가 내가 기절했던 걸 어머니에게서 아마 들었을 거야. 애들이 그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며 전혀 접근을 꺼려하길래 어느날 나 혼자 들어갔지. 안은 아주 비좁구 캄캄했는데 물이 질퍽하게 괴어 있더구나. 손으로 더듬으며 중간까지 가보니까 예상대로 기관포 탄환이 많이 있더랬어. 나는 아이들의 찬탄과 선망을 독차지할 일을 생각하고 온통 가슴이 떨렸어. 탄창 사슬에 끼인 게 한 줄이나 되더라. 나는 정신없이 파구 또 팠지. 한참 동안을 파는데 꺼림찍한 기분이 들구 뭔가 손가락에 걸려 나오는 거야. 나뭇조각인 줄 알았어. 돌보다는 가볍구 나무보단 좀 듬직하단 말이야. 그래 눈앞에 바짝 갖다 대구 들여다보니깐 뼈다귀야. 둥그런 관절두 달려 있는 진짜 뼈다귀 말이지. 이크······ 나는 그게 날 잡구 늘어지는 기분이더라. 양쪽 입구를 보니까 꼭 관솔 빠진 구멍만큼 보이는 거야. 소릴 지르다가 뻐드러졌어. 근처 실개천서 빨래하던 아줌마가 나를 끌어내줬단다. 어머니가 야단쳤어. “너 그런 데 들어가면 귀신이 잡아 먹는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어린애들이 그런 일루 호되게 놀라게 되면 잠잘 때 악몽을 꾸어서 식은땀을 흘리며 경기를 일으키는 거야. 내가 몸이 불편할 때 꿈을 꾸면 말이야, 언제나 그 노깡 속에 들어가 있는 거야. 어느 때는 그게 우리 영단 집의 시멘트 굴뚝 속이 되고, 피뢰침 달린 유리공장의 벽돌도가니 안이 되고, 시궁쥐가 많이 사는 공중목욕탕의 하수도 속이 되는 거야. 끝은 언제나 비슷하지. 양쪽 입구가 무너져, 해골바가지나 뼈다귀 손이 쑥 솟아올라서 내 머리털이나 발목을 말야 꽉 잡구 안 놓는 거야. 상두도가집 아이가 그 자리에 찾아가서 침을 세 번 뱉고 왼발로 세 번 구르면 된다기에 그대루 했는데두 여엉 무서운 기분이 가시질 않았어.
내가 일단 자기의 공포에 굴복하고 승복하게 되자, 노깡 속에서의 기억은 상상을 악화시켜서 나를 형편없는 겁쟁이루 만들고 말았다. 그런데 어떤 아름다운 분이 나타나 나를 훨씬 성숙한 아이로 키워줬지. 눈빛처럼 흰 여학생 칼라 뒤로 얌전히 빗어 묶은 머리를 길게 땋아 늘였고, 목소리가 노래하는 듯 고운 분이었어.
우리를 위압하고 공포로써 속박하는 어떤 대상이든지 면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의 본질을 알아챈 뒤, 훨씬 수준 높은 도전 방법을 취하면 반드시 이긴다.
그이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분명히 무언가를 배웠는데, 그 무렵엔 꼭 집어내서 지각할 수는 없었지. 이제 와 생각하니 그이는 진보(進步)의 의미와 사랑의 가치를 내게 가르쳐 주었던 거야.
나는 피난지 부산의 학교에서, 수복되고도 수 년이 지난 서울로 전학을 해왔던 첫날, 기분이 잡쳐버리고 말았다.
우리 학교에 미군부대가 들어와 있어서 학년별로 여러 곳에 뿔뿔이 흩어져 빈 창고나 들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흙바닥에 가마니를 깔았고 책상대신 화판을 받쳐 글씨를 썼다. 어둠침침한 창고 교실에서 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우글거렸으니 언제나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게 보였다. 교실이 엉망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학교 애들은 질이 나빴는데 전쟁통에 몇 년씩 학년을 묵은 큰 애들이 열 명쯤 되었다. 백여 명의 아이들을 키 순서대로 세워 놓으면 나 같은 건 겨우 앞줄에서 몇 번째가 될 만큼 작았다. 애들은 내게 아무런 관심도 돌리지 않았으나, 첫 번 일제고사에서 수석을 차지하고 나자 친구가 더러 생기게 됐던 거였다.
나는 담임선생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메뚜기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머리 가운데가 쭉 벗어지고 양쪽 관자놀이 부근에만 곱슬털이 부성부성한 모습이었다. 그는 국민학교 선생님 노릇에 별로 흥미가 없는 것 같았다. 무슨 가게인지를 부업으로 벌여놓고 있었는지라 그는 툭하면 자습시간을 주고선 하루 온종일 밖으로 나돌아 다녔다. 각 학년의 교실들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교장 선생님도 일학년부터 육학년까지 모든 학급을 한 바퀴 돌아보려면 큰맘을 먹어야 했으니 메뚜기 씨께선 만판이었다. 메뚜기가 요행이 교실에 붙어 있게 되는 날도 오후에는 모두 야외로 끌고 나가서 몇 시간씩이나 풍경 사생을 그리게 해놓고는 공부 끝이라는 거였다. 내가 전학가기 전인 일학기까지도 석환이가 반장 노릇을 했으나, 나처럼 몸집이 작고 약골이었던 그애는 큰 아이들이 득실대는 교실의 기강을 잡을 도리가 없었다. 첫째 가다 장판석, 둘째 가다 임종하, 셋째 가다 박은수, 그 이하는 그애들에게 붙어서 알랑대던 떨거지 몇 명이 있었다. 모두 중학 이삼학년씩은 되었을 나이배기들이었다. 내가 입학할 무렵에 세력의 판도가 바뀌게 되었는데 이영래라는 새로운 가다가 신입해 왔던 것이다. 영래는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로 싸젠이 기른다는 아이였다. 술이 주렁주렁 달린 인디언식 가죽 저고리에 청바지를 입고 시계까지 차고 다녔다. 눈이 가늘게 찢어지고 어깨가 바라진 영래는 벌써 다리에 털이 돋은 열다섯 살바기였다. 미군 지프가 신입생과 선물을 싣고 제분 회사 창고 앞마당을 돌며 클랙슨을 뿡빵 울리니까 애들이 모두 환호성이었다. 배불뚝이의 맘 좋게 생긴 싸젠이 초콜릿과 도넛을 애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었다. 그날로 영래를 찬양하며 그애의 가방을 들어다 주는 아이가 생겼고, 얼마 안 가서 둘째 셋째 가다인 은수와 종하까지 그애 편으로 붙었다. 영래가 드디어 첫째 가다 장판석이를 빈 발전실로 유인해다가 몽둥이로 습격해서 항복을 받았다. 판석이는 아래 권위로 밀려나고 영래가 하루아침에 첫째가 되었는데도 아이들은 그런 일에 별로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큰 애들은 뒷전에서 저희끼리 킬킬대며 우리가 모르는 얘기만 지껄이며 따로 놀았으니까.
어느 토요일 아침, 메뚜기가 셔츠 바람으로 들어와 바께쓰에 물을 떠다 교실에서 세수를 했다. 그는 팔목시계를 연방 들여다 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에 또······ 내가 급한 볼일이 생겨서 나갔다 올 테니까 자습하도록, 어이 급장.” 맨 앞줄에 앉았던 석환이가 엉거주춤 일어나려니까, 메뚜기는 그애를 힐끗 바라보고는 곧장 교실 뒷전만 두리번댔다. “장판석이, 판석이 어딨나?” 아이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앗고 누군가 웃음을 참는 소리도 들렸다. 판석이는 괜히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애 바로 앞에 앉은 임종하가 들릴까말까한 소리로 “얘는 나한테두 져요.” 중얼거리자 아이들이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메뚜기가 그 소리를 놓쳤을 리 없었다. “에 또, 학기두 바뀌구 했으니까······ 오늘은 자습 후에 반장 선출을 해보는 것두 학습이 될 거다. 상급생이 됐으니까 그만한 자치 능력도 생겼을 줄 믿는다. 그런데 석환이 말고 누가 의장 노릇을 했으면 좋을까······ 누가 좋겠니?” 메뚜기가 묻자 앞에 꼬마들이 요란하게 떠들어댔다. “이영래요. 걔가 잘해요.” 메뚜기가 영래를 불러내어 “반장과 함께 조용히 자습을 시킨 뒤에, 자치 회의를 해라.” 이르고 훌짝 나가 버렸다. 선생님이 나간 뒤에, 머쓱하게 서 있던 영래가 교탁 앞에 비스듬히 걸터 앉았고 애들은 다음 행위에 잔뜩 기대를 가지면서 그애를 올려다 보았다. 영래가 말했다. “전부들 책을 집어넣어. 오늘 오전에는 씨름 대회를 연다.” 애들이 손뼉을 치며 와글와글 책보를 쌌고 영래는 교탁에 발을 올려놓고 의자를 흔들며 말타는 시늉을 했다. “헌병 대장 사령부, 짜가닥짜가닥 팡팡, 이 새끼들 조용히 해.” 영래가 은수에게 몽둥이를 주워 오라고 명령하니 그놈은 잽싸게 뛰어나가 각목 하나를 주워왔다. “종하 일루 나와.” 비실비실 웃으며 앞으로 나온 종하에게 영래가 말했다. “웃지 마 임마, 이걸 갖구 수틀리게 놀면 모두 조기는 거야. 알았지?” 종하는 가마니를 깔지 않은 흙바닥 통로를 각목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오늘부터 너는 기율 부장이다.” “뭐야 그게······ 반장하군 다른가?” “임마 중학교 교문 앞에두 못 가봤어? 완장차구 서서 잘못한 애들 벌주는 거 말야.” 은수가 항의했다. “그럼 나는 뭐야, 넌 뭐구······.” “이새끼 나는 의장이잖아. 종하는 기율부장, 너는 말이지 총무다.” “반장보다 높은 거냐?” 아이들이 킥킥.
종하는 내 앞을 지나며 공연히 똑바로 앉으라면서 허리께를 각목으로 꾹 찔렀다. 나는 등에 힘을 주고 빳빳이 긴장해서 앉아있었다. 그때 석환이가 안으로 폭싹 기어들어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말야······ 씨름대회는 반대한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며 석환이 쪽에다 불평을 제각기 터뜨렸다. “혼자 잘난 체하지 마라 짜식.” “누가 네 명령이나 듣겠다누.” “영래야 때려줘라.” 영래가 교탁을 쾅 때리며 말했다. “새끼들 조용하라니까.” 임종하가 각목을 땅에다 쿵쿵 찧으며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이들이 잠잠해졌다. 석환이는 가까스로 말할 기운이 났는지 아까보다 더욱 또렷하게, “선생님이 자습을 한 다음에 자치회를 하라구 그랬어. 또 혼자서 마음대로 학급 간부를 지명해서도 안 된다구 생각해.” 바보같은 놈들이 설쳐대는 꼴을 보니 나도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영래만한 통솔력도 없는 터에 모두들 나더러 공부 좀 한다구 으스댄다고 할 거였다. 그 전 학교에서처럼 발언권을 얻어 동의와 제청을 받고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하는 재미있던 판국과는 전혀 딴판이어서, 까짓거 입다물고 구경이나 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몇몇 줄반장 애들은 불만이 있어 보였으나 교실 뒤에 버티고 선 종하 쪽을 연방 돌아보기만 하는 거였다. 영래가 씨익 웃었다. “응 좋아, 애들한테 물어보자. 얘들아 씨름대회를 뒤로 미루고 자습할까?” 반 아이들이 웅성대며 항의하거나, 재삼 석환이를 욕하기 시작했다. “대신에 자치회를 먼저 하자. 너희들 석환이가 반장 노릇하는 걸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한 사람의 손도 올라가지 않았고 뒤늦게 들었던 애들도 대부분 아이들의 드높은 불만의 분위기에 위축되어 슬금슬금 내려버렸다. “다음은 내가 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고 두 번 다 손을 안 든 애들도 많았다. “봤지? 자치회는 이걸루 끝났다.” “그래, 이영래가 오늘부터 우리 반 급장이다.” “반대하는 놈들은 우리 반이 아니야.” 영래는 만족에 가득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밖으로 집합. 야 종하야, 집합시켜서 오목내 다리 밑으루 내려가.” 나는 환성을 울리며 밀려나가는 애들의 뒤를 따라나갔고, 우리 뒤에서 종하가 “빨리빨리 움직여.” 어쩌구 하며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석환이와 몇몇 아이들이 꾸물거리는 걸 보고 영래가 뒷짐을 지고 서서 종하에게 말했다. “야 단체행동에서 빠지는 애는 잡아다 조겨.” 은수도 말했다. “그래 영래 말이 옳다. 개인적으루 놀면 혼을 내야 해. 우리 반 애들이라면 다 함께 해야 한다.”
바깥일에 분주한 메뚜기가 돌아왔을 때, 아이들은 영래의 지시에 의하여 자발적인 대청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메뚜기는 학급에 기강이 서고 자치 능력이 향상된 데 대하여 만족했고, 아이들이 영래를 급장으로 선출한 것에도 별로 이의가 없어 보였다.
우리 부모는 내 상급학교의 진학문제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동네에서 어느 대학생이 개인교사를 한다며 애들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나를 그리로 보냈었다. 거기서 치른 학력 테스트의 결과를 알고 어머니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대학생의 말에 의하면 이런 실력으로는 중간급인 사립 중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밤늦게까지 입시공부에 시달리지 않으면 안되었고, 자습시간이 많았던 학급실정이 오히려 내게는 다행이었다. 따라서 나는 전입생으로서 서먹서먹하던 그 전보다 더욱 학급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영래가 반장이 되고 나서 나는 학교에 가는 일이 시큰둥해진 느낌이었다. 무관심했던 내게도 불편한 사태가 자주 벌어지게 되었는데, 영래가 너무 자기 마음대로만 하려고 그랬기 때문이었다. 은행지점장의 아들이나 공장장 아들, 극장, 양조장집 아들같은 너댓 명의 부잣집 애들은 특히 괴로움을 많이 받았었다. 그애들은 뭔가 좋은 것들, 이를테면 장난감, 극장표, 돈 같은 것들을 갖다 바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내일까지 가져와.” 한마디면 통하는 모양이었다. 대부분의 다른 애들은 평소부터 그애들에게 반감을 많이 갖고 있어서 영래나 종하나 은수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았을 때에 그애들이 교실 뒤에서 엎드려 뻗쳐를 하고 궁둥이를 맞는 걸 통쾌해했던 것이다. 그러나 부잣집 애들도 나중에는 그리 불만스러워하는 것 같지 않았는데, 청소당번을 제외받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애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애들을 혼내주도록 저 세 아이들 중 아무나에게 선물을 하면 되었던 거다.
있으나마나한 부반장으로 영락한 석환이도, 나도, 하여간에 좀 영리한 애들은 끼리끼리 소곤소곤 어린이 잡지나 돌려보면서 그애들의 노는 꼴에 전혀 상관하지 않으려 애썼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어느 정도 기가 죽었으나 그래도 아직은 영래를 신뢰했는데 그는 아이들을 재미있게 하고 동시에 무서운 존경을 일으키게 하는 데 재주가 비상했던 것이다. 영래의 제의로 우리는 두어 차례의 모금을 했었다. 한번은 담임선생 메뚜기네 아기의 돌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다음엔 청소도구를 마련한다는 구실이었다. 판단이 부족했던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기에도 금액이 좀 과했던 것 같았다. 제삼 분단장인 동열이의 머리가 터졌던 건 바로 그 일 때문이었다. 그애가 쑤군거린 얘기를 들어보면 거둔 돈의 절반을 그애들이 쓱싹해서는 학교 앞 찐빵가게에 맡겨놓고 까먹고 있다고 했다. 얘기를 들은 다섯 아이들 중 누군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