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반성 없는 말바꾸기·유족 사과 거부’ 양형에 영향

조, 사자명예훼손 실형  경향신문|류인하 기자|입력2013.02.20 22:31

 

2010년 3월31일 조현오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58)은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강당에서 시경 소속 5개 기동단 팀장급 398명을 대상으로 내부 강연을 했다. 조 전 청장은 강연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은 전날 차명계좌가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특검 논의가 나오자 권양숙 여사민주당을 통해 특검을 못하게 막았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이 알려진 직후 조 전 청장은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논란이 커지자 "시위를 앞둔 경찰의 의욕을 고취시키기 위해 한 강연에 불과하다"고 해명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은 그가 경찰청장 후보자이던 2010년 8월 사자명예훼손 및 명예훼손으로 고발·고소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나 그를 경찰청장으로 임명했다.

조 전 청장은 경찰청장이 된 후에도 "출처를 밝힐 수는 없지만 믿을 만한 정부 고위 관계자로부터 들었다"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가족을 찾아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 법원 "피해회복 노력 안 해"
'발언 출처 모르쇠'도 질타
노 차명계좌 논란 일단락


■ 법원 "피해회복 노력 없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선고에 앞서 20여분에 걸쳐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피고인의 발언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민들은 피고인의 계속된 발언으로 '그래도 뭔가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등 고인을 비롯한 피해자들이 피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 개인이 아니라 현직 서울청장이고, 이후 경찰청장까지 역임하게 된 피고인이 한 발언은 강의 당시뿐만 아니라 이후 사회적으로 비중 있게 전달될 수밖에 없고, 위력적인 정보로 작용해 피해자들은 피해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이 같은 언행은 일반인들이 공인인 전직 대통령이 뛰어내리게 된 이유에 관해 설왕설래하고 의혹을 가지고 견해를 표명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처음에는 근거 없는 발언인 것처럼 말하다가 경찰청장이 된 후에는 의미심장한 근거가 있는 것처럼 말을 바꿨고, 검찰 조사와 법정에서 수차례 말을 바꿨다"고 지적했다.

조 전 청장이 끝까지 '발언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버틴 것에 대해서도 질타했다.

이 판사는 "강의 내용이 진정 허위사실이 아니라고 본다면 발언의 근거를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피고인은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피해자 측에 직접 사과하거나 용서를 구한 적이 없었다"며 "강의 내용이 사실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언론 또는 법정에서 피해자 측에 사과한다는 등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으로 사과로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피해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고, 피해회복이 전혀 되지 않은 점도 양형에 감안했다"고 전했다. 조 전 청장의 변호인은 이날 선고 직후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 "차명계좌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를 둘러싸고 3년간 벌여온 논란은 이번 판결로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청장은 줄곧 "청와대 여성 행정관 명의의 계좌로 5~6년간 입금된 누적금액을 모두 합치면 16억원에 달하고 이들의 월급을 제외한다고 해도 10억원이 넘는다"며 "이 계좌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 판사는 "노 전 대통령 관련 수사기록 분석 보고를 비롯한 모든 증거를 살펴본 결과 두 행정관의 계좌에 2005년 이전에 발행된 10만원짜리 수표는 820만원에 불과했다"며 "또 통장 입출내역을 살펴보면 청와대 관저 청소와 물건구입 대금 등 대부분 1만원 미만부터 많아야 수백만원의 입출금이 반복되고 있고 사용처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어 도저히 차명계좌로 볼 수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의혹을 수긍할 만한 새로운 소명자료가 추가로 제시되지 않는 한 피고인은 허위사실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밝혔다.

앞서 검찰도 대검 중수부의 '박연차 게이트' 수사기록을 열람한 뒤 거액의 차명계좌는 사실무근으로 결론냈다.

결국 조 전 청장이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는 '믿을 만한 사람'의 전언 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주장을 오락가락하며 펼쳤다는 게 법원과 검찰의 일치된 판단이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