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1.15 19:47 수정 : 2013.11.15 20:00

직원들 사전점검차 방문해
임옥상·이강우 작품에 “곤란하다”
임 작가 “기획자도 외압 인정”
미술관쪽 “사실 아니다”

13일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기념 전시회 가운데 ‘자이트가이스트-시대정신’전에서 일부 사회참여적 성향의 작품들이 개관 직전 청와대의 지시로 전시에서 빠졌다는 의혹이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개관 기념식에 참석해 전시를 관람하는 것과 관련해 청와대 직원들이 사전에 전시 작품을 먼저 훑어본 뒤 몇몇 작품을 제외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여러 제보를 종합하면, ‘자이트가이스트’ 전시장 작품 설치가 완료된 7일 오후 2~3시께, 개막식 안전점검차 방문한 청와대 직원들이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임옥상, 이강우 작가 등의 작품에 대해 “곤란하다”는 지적을 했고, 미술관 쪽은 해당 작품을 빼거나 해당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교체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자이트가이스트’전은 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작가 39명의 작품 59점을 선별한 전시로, 정영목 서울대 교수가 전시를 기획했다.

 임옥상 작가는 “믿을 만한 미술계 지인으로부터 개관전 직전 청와대 직원 여럿이 전시장을 돌아보고 내 작품 <하나됨을 위하여> 등 몇몇 작품에 대하여 ‘곤란하지 않으냐’라는 말을 하고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고, “이후 실제 전시에서 내 작품이 빠진 것을 확인하고 전시 기획자인 정영목 서울대 교수에게 12일 확인해보니 ‘솔직히 임 선배 작품과 이강우 작가 작품 두 점이 외압에 의해 빠졌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임 화백의 <하나됨을 위하여>는 통일운동가였던 고 문익환 목사가 남북 분단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넘어서는 모습을 그린 회화 작품이다.

 이강우 작가는 “9월 하반기 정영목 교수한테서 <생각의 기록>을 걸겠다는 연락이 왔다. 소장품이 아닌 다른 작품 출품을 의뢰받았다가 바뀐 것이어서 당연히 걸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개관 다음날 정 교수가 작품을 설치한 뒤에 불가피하게 철수됐다고 통보해 왔다”고 말했다. <생각의 기록>은 8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을 상처나고 일그러진 사람 얼굴로 표현한 작품이다. 이 두 작품 외에 조선시대 단종폐위 사건을 다룬 서용선 작가의 작품도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으로 대체되었고, 전준호 작가의 작품도 전시 직전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전시기획자 정영목 교수는 “민중미술이다 보니 분단 그림이 많아 다른 작품과의 조화와 색감을 고려해 내려지게 됐다”고 설명하고 “작품 선별과 배치는 관장과 수시로 논의했고, 청와대에서 작품을 떼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고 관여한 바 없다”고 말했다. ♣H6s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