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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4억년의 생명력 '이끼(Moss)'가 여는 녹색산업의 미래
'이끼의 재발견'…이끼는 ‘탄소 보물창고’ '산업화의 기초 자양분'
이준택 전 세종대 교수 "이끼는 대한민국 녹색산업의 미래 자원"
- 문기수 기자
- 업데이트 2026.04.24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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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더스트리뉴스 전문가칼럼=이준택 전 세종대 교수] 숲길을 걷다 바위 위에 붙어 있는 작은 초록빛 이끼를 보고 멈춰 서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그 작고 보잘것 없는 이끼 안에는 38억 년 지구 역사 가운데 무려 4억 7000만 년에 이르는 장대한 이야기가 촘촘히 새겨져 있다.
이끼(선태식물, Bryophyta)는 바다에서 육지로 진출한 최초의 식물군 중 하나다. 꽃도 열매도 뿌리도 없이 오직 포자(胞子)와 헛뿌리(假根, rhizoid)에 의지해 수억 년을 살아남은 강인한 생명체다.
영국 엑서터대학교 팀 랜턴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16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약 4억 4500만 년 전 이끼와 지의류가 지구 산소의 약 30%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해 화제가 됐다. 지금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상당 부분이 이끼라는 작은 식물들의 오랜 노동의 결과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끼는 여전히 ‘정원에서 없애야 할 불청객’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잘못된 선입견이나 오해를 푼다면 이끼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자산인지 금세 깨닫게 될 것이다.
한 걸음 나아가 이끼가 왜 기후위기 시대의 ‘대응식물(response plant)’로 각광받으며, 새로운 녹색산업의 유력한 주역으로 떠오르는지도 들여다보자.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탄소 보물창고’
영국 BBC,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 일본 NHK, 독일 ARD는 최근 수년간 이끼 이탄지(泥炭地, peatland) 특집을 잇달아 방영했다. 국제학술지 'Nature'와 'Nature Geoscience' 역시 이끼를 주제로 한 논문을 반복해서 커버로 실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생태학적 흥미를 훌쩍 넘어선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이탄지는 지구 육지 면적의 단 3%를 차지하지만 전 세계 토양 탄소의 약 30%를 저장한다. 훼손된 이탄지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인위적 배출량의 4~5%에 이르며, 이는 항공 산업 전체의 배출량에 필적한다.
물이끼는 자기 건조 중량의 최대 20~25배에 달하는 수분을 흡수할 수 있고, 주변 환경을 산성화해 유기물 분해를 멈춰 세우는 역할을 한다. 수천 년에 걸쳐 탄소를 땅속에 ‘봉인’하는 이 능력 때문에 이탄지는 ‘회복 불가능한 탄소(irrecoverable carbon)’의 저장소로 불린다. 2022년 영국 리즈대와 콩고민주공화국 키산가니대 공동 연구진이 'Nature Geoscience'에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콩고분지 이탄지는 약 290억 톤의 탄소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2023년 'Nature Geoscience'에 실린 논문은 이끼로 덮인 토양이 나지(裸地)에 비해 연간 약 64억 톤의 탄소를 추가로 흡수한다고 연구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결론은 간단명료하다. 이끼를 지키는 일은 숲을 지키는 일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실질적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각국의 이끼·이탄지 정책 비교
국가별 대응의 속도와 규모 차이도 상당하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2012년 시작한 ‘Peatland ACTION’ 프로그램을 통해 2024~25년에만 1만4861헥타르의 이탄지를 복원했고, 2025~26년 예산을 전년 대비 32% 증액한 3550만 파운드로 편성했다. 2040년까지 40만 헥타르 이상의 이탄지 복원을 목표로 한다.
영국 정부 역시 ‘환경개선계획(EIP) 2025’에서 2050년까지 잉글랜드 28만 헥타르의 이탄지 복원을 천명했고, 이를 통해 최대 2300만 톤의 이산화탄소 상당량 배출 감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핀란드는 이미 약 6만 헥타르의 조림(造林) 배수 이탄지를 복원했으며, 아일랜드는 2026년 2월 세계 습지의 날에 1920만 유로 규모의 국경 횡단 프로젝트 ‘PEAT+’를 공식 출범시켰다.
미국은 양당합의법에 근거한 ‘PeatRestore’ 프로젝트로 전국적 이탄지 상태 지도와 복원 의사결정 지원 도구를 개발 중이며, 독일은 도시 대기정화에 이끼를 활용하는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중국은 서북부 사막화 방지를 위해 사막 이끼의 대규모 이식·산포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의 현황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일본은 수백 년 역사의 이끼정원 문화를 기반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이끼 산업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교토 사이호지와 야쿠시마 이끼 숲은 세계적 관광 자원이며, 오카야마이끼연구소를 중심으로 이끼 재배·보전·산업 응용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민간에서는 니가타의 ‘그린즈그린’ 같은 전문기업이 2019년 이끼 전용 ‘사나고케 시트’ 특허를 취득하는 등 ‘이끼 농가’가 확산되고 있다. 또한 이끼 시트 한 장(통상 30cm×60cm)이 고품질일 경우 수만 엔에 거래된다. 실외 차광막 재배 기준 이끼 매트 생산 단가가 1㎡당 약 3000~8000엔, 판매가는 5000~2만엔 수준으로 형성돼 있다는 사실은 이 시장의 경제성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수치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이끼를 산업으로 옮기는 5대 핵심기술
이끼가 자연에서 인간의 건축물과 도시로 옮겨 오기 위해서는 자연의 시간을 산업의 시간으로 ‘변환’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 통상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재배기술(Cultivation)이다. 이끼는 종자를 맺지 않으므로 포자 번식 또는 분체(分體) 번식으로 증식해야 한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 연구팀은 모델 이끼인 Physcomitrium patens의 원사체(protonema)를 교반형 바이오리액터에서 2~3주 만에 대량 증식시키는 기술을 확보했으며, 캐나다 라발대학 연구팀은 배수된 이탄지 위에 물이끼 조각을 뿌리고 짚으로 덮어 3~5년 만에 수확 가능한 물이끼 층을 길러내는 ‘팔루디컬처(paludiculture, 습지농업)’ 기술을 상용화했다.
둘째, 포집기술(Collection)이다. 이는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물이끼가 수천 년간 정화해 축적한 ‘정화된 찌꺼기’인 이탄(泥炭, peat)을 지속가능하게 수집·가공하는 기술을 포함한다. 상부 5~10cm만 수확하고 기저부를 남겨 3~5년 내 재생을 유도하는 ‘재생적 수확’이 원칙이며, 영국·독일·네덜란드는 이를 법제화했다.
셋째, 접착기술(Adhesion)이다. 이끼는 ‘헛뿌리’만을 가진 식물이라 경사면·수직면·콘크리트 벽체 같은 인공 구조물에 고정시키는 것이 산업화의 최대 난제였다. 생분해성 황마(jute) 네트와 코코넛 섬유 네트, 대나무 핀을 이용한 물리적 고정과, 전분·키토산·알긴산나트륨 같은 천연 고분자 기반 바이오접착제가 병행 개발되고 있다.
넷째, 유지보수기술(Maintenance)이다. 이끼는 뿌리로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기 때문에 체표면에 직접 수분을 공급해야 한다. 50~200μm 크기 극미세 방울을 분사하는 미스트 관수와, IoT 센서로 습도·일사·기온을 실시간 측정해 자동 관수하는 스마트 유지보수 시스템이 표준이 되고 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역시 이 개념을 응용한 ‘스마트 모스월(Smart Moss Wall)’을 마곡지구에 설치해 실증 운영하고 있다.
다섯째, 재사용기술(Reuse)이다. 수명이 다한 이끼 매트는 살아 있는 상태면 70~90%의 성공률로 재이식(re-transplantation)이 가능하고, 고사한 이끼 바이오매스는 중금속 흡착제, 토양 개량재, 수처리용 필터, 바이오 플라스틱의 원료로 재활용된다.
이끼는 ‘수명 후’에도 여전히 우리 공기를 맑게 해 줄 수 있는 순환자원으로 손색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 부족한 공급… 뼈아픈 국내 현주소
한국의 이끼 수요는 최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옥상·벽면 녹화, 보존이끼 인테리어(모스월·이끼 액자), 이끼 테라리움, 바이오필릭 디자인 공간 수요가 기업·공공기관·가정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3월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선태식물 활용 연구협의회’를 결성해 이끼의 탄소 흡수·토양 복원·도시 녹화 연구를 본격화하며 구체적인 행보에 나서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약 900종의 이끼가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대다수가 법정 희귀식물로 지정되어 있지 않아 수요가 늘수록 자생지 훼손 우려가 커지는 역설적 상황에 직면해 있다.
더 큰 문제는 공급 부족현상이 매우 심각하다는 점이다. 국내에는 아직 산업적 규모의 이끼 생산 시설이 본격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다. 농촌진흥청 고령지농업연구소가 이미 지난 2006년 ‘이끼 대량생산 기술’을 발표하고 솔이끼·우산이끼·털깃털이끼 등 8종의 재배 적합 종을 선발했지만 아직 걸음마 수준에 그치고 있다.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상업적 대량공급 체계는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그 결과 조경·인테리어 업계는 상당량의 이끼를 중국에서 수입하는 실정이다. 중국은 구르반통구트 사막의 바이오크러스트(biocrust) 복원 과정에서 축적한 대규모 이끼 배양 인프라를 바탕으로 동북아 시장의 최대 공급자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다양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시장에서는 수입 이끼에 밀리는 이같은 현상이야말로 대한민국 녹색산업 정책의 공백을 여실히 보여주는 민낯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풀어야할 과제는 이제 명확해졌다. 우선 한반도 기후(뚜렷한 사계절, 여름의 고온다습, 겨울의 건조 한랭)에 특화된 저비용 재배 프로토콜을 조기 확립해야 한다. 두번째는 이끼 소재의 품질 기준(종 동정, 생존율, 수분 함량, 오염물질 함량)과 시공 표준을 산·학·관 협력으로 제정하고 G-SEED 등 녹색 건축 인증에서 이끼 녹화의 기여를 명확히 수치화해야 한다.
세번째는 이끼 녹화의 탄소 흡수량을 탄소 크레딧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산정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네번째는 일본의 ‘이끼 마이스터’ 제도에 준하는 전문 자격 제도를 도입하고, 휴경지·유휴 산림을 활용한 ‘이끼 농가’ 전환을 지원해 농촌 소득사업과 녹색 일자리 창출을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꼽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중·일 3국 이끼 산업 협력 체계를 구축해 일본의 재배·조경기술, 중국의 대규모 생명과학생태계산업단지 기술, 한국의 ICT·스마트 관리기술을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 같은 다섯가지 과제에 주력하면 대한민국이 이끼분야에서도 반체체 강국의 위상을 가져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장 작은 식물이 열게 될 가장 큰 가능성
이끼는 크지 않으며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4억7000만 년 동안 빙하기와 사막화, 대멸종의 파고를 견뎌내며 지구의 탄소 순환과 산소 순환에 묵묵히 기여해 온, 가장 오래된 ‘살아 있는 인프라’다.
미세먼지와 열섬, 탄소 배출, 도시 삭막화라는 21세기형 질병을 마주한 지금, 우리는 이 작은 식물에게서 놀랍도록 실용적인 해답을 구할 수 있다. 재배·포집·접착·유지보수·재사용이라는 다섯 기둥의 핵심기술이 성숙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시장이 안착한다면 이끼는 반드시 대한민국 녹색산업의 ‘다음 10년’을 견인할 주역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 확실해 보인다.
중국에서 수입되는 이끼 한 박스를 이제라도 국내 농가의 이끼 한 매트로 대체하는 일에 눈을 돌려야 한다. 이같은 작은 노력이 기후위기 대응이며, 농촌 활성화로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발 밑의 작고 소박한 초록빛 이끼에 대해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아마도 이끼는 그런 여러분에게 건강을 주고 행복 에너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화답할 것이 다. 이끼는 작지만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지닌 대한민국 녹색산업의 미래 자원이기 때문이다.
◆이준택 전 세종대학교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 프로필
광운대학교 경영정보시스템학 경영학박사/국립한경대학교 동물생명과학 농학박사 복합전공 출신으로, 컴퓨터공학 및 정보통신기술과 동물생명과학을 융합한 산업 발전을 위해 오랜 기간 현장에서 활약해온 실용학문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융합기술(정보통신기술+생명과학기술)을 적용해 동물과 식물을 대상으로 생육과 질병을 모두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을 구현한 현장전문가로 통한다. 현재 국제표준기구(ISO/IEC)의 표준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탄소중립을 위한 자연순환해법(NbS)으로 기후변화 및 ESG 대응의 융합기술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이끼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한 '이끼적 사고'를 비롯해 '실전 정보보호개론' 등 11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저명한 국내외 학술지에 20여편의 논문을 게재했으며, 20건의 특허를 등록 및 출원하는 등 활동 반경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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