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이 특별함으로 변하는 공간

[주민의 땀방울이 서린 미술관]
“마을미술관 선돌이 위치한 공간은 원래 창고였어요. 수확기가 되면 마을 주민들이 창고에 모여 공동 작업을 했습니다. 각자 수확한대봉감·매실을 가져와 박스에 담고 출하하는 작업을 했어요.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공동 작?은 사라졌고, 창고는 오랜 시간 방치됐습니다.”
한씨는 마을 입구에 있는 미술관 건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마을 이장과 원주민, 귀촌인 그리고 지역 작가들이 함께 방치된 창고의 쓸모를 고민했고, 그러다 생각해낸 게 마을 미술관이었다.
주민들은 미술이나 미술관에 거부감이 없었다. 5년 전, ‘2018 마을미술프로젝트’를 경험해봐서다. 그때 지역 작가들이 악양면에 있는 마을들을 테마로 악양면 곳곳에 작품을 설치했다. 주민들은 마을 미술관이 오히려 마을에 활기를 가져다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난관이 있었습니다. 2020년에 정부에서 하는 ‘작은 미술관 사업’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 보통은 거기서 멈추죠. 하지만 우리는 돈이 없으면 우리가 직접 만들자고 생각했어요.”목공에 능한 한 주민이 먼저 발 벗고 나섰다. 다른 주민들도 틈틈이 작업을 도왔다. 합판으로 벽을 덧대고, 바닥은 에폭시를 깔아 마감했다. 위태롭게 달린 전구는 전시 조명으로 바꿨다. 주민들이 힘을 모은 끝에 드디어 2021년, 마을미술관 선돌이 탄생했다. 크기는 약 25평(82.5㎡)밖에 안 되지만, 없는 거 빼곤 다 있는 작은 미술관이다.“주민들은 그 어떤 지원 없이 스스로쟀 힘으로 이뤄낸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손주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는 미술관 있는 곳에서 산다고 자랑합니다.”
그래서일까. 전국의 어느 마을 미술관보다 주민들의 참여가 적극적이다. 마을미술관운영위원회에 지역 작가들과 함께 운영진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한씨를 포함한 다섯 명의 주민들이 도슨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지역 작가로부터 8주간 도슨트 교육을 받았다. 또 주민들은 지역 작가들에게 미술 교육을 받고 직접 작품도 만든다.
[작가와 작품, 관객이 어우러지는 곳]
마을미술관 선돌에서 2월까지 열린 ‘입석의 얼굴들’은 주민 참여형 전시다. 이 전시를 위해 마을 주민들은 지역 작가로부터 3개월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판화 기법 중 하나인 실크스크린을 배웠다.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자기 얼굴을 잉크로 티셔츠에 새겨 세상에서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었다. 호미와 낫을 쥐던 손으로 붓을 들자니 처음엔 다들 어색해했다. 하지만 이내 잊고 있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벽에 걸린 색색의 티셔츠들이 그 결과물이다.
한씨는 “여기 하얀 셔츠 위에 있는 분은 마을 이장님이세요. 아니, 오늘 놀러 오시라 했는데 감나무 가지를 잘?야 해서 못 오신대요”라고 말했다. 한씨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림에 다시 눈이 간다. 전화 통화로 목소리를 들은 이장님의 얼굴이라니. 작품에 대한 무관심이 이내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작품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주민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미술관엔 작품 말고도 눈에 띄는 게 하나 더 있다. 바로 미술관내부의 ‘벽’이다. 보통의 미술관은 새하얀 벽에 작품을 전시한다. 작품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배려지만, 작품을 보는 관람객은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곳?서는 하얀 벽 대신 나무색이 그대로 드러난 합판 벽 위에 작품을 건다.
“이 합판 벽은 미술관 기획에 함께 참여한 하의수 작가의 아이디어입니다. 관람객이 자유롭게 관람을 하고, 미술관도 자유롭게 우리 삶을 표현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생각해낸 거예요. 무엇보다도 나무의 색은 어떤 작품과도 잘 어울려서 좋아요.”
[마을의 일원이 되는 특별한 경험]
미술관으로 가는 도로 곳곳엔 설치미술 작품도 있다. 2018년에마을 미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역 작가들이 만든 작품이다.고물 버스에 악양면 주민들의 표정을 그려 넣은 작품 ‘악양의 표정들’도 그중 하나다. 버스 뒤로 펼쳐진 산과 드넓은 논밭은 그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이다.미술관의 전시 주제와 작품은 마을미술관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일 년에 다섯 번 정도 전시를 여는데, 3월엔 마을 곳곳에 있는 설치미술 작품들의 제작 과정을 전시할 예정이다(전시 내용과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미술관을 둘러보니 어때요? 도슨트를 하니 이렇게 젊은 친구랑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네요.”인자한 미소로 설명을 해주던 한씨는 이렇게 말하며 편히 더 둘러보고 가라 했다. 나갈 때 불을 끄고 문만 잘 닫아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한씨가 간 뒤, 텅 빈 미술관에 혼자 남아 작품을 하나하나 음미하며 마음껏 보고 즐겼다. 그리고 직접 미술관 불을끄고, 문을 닫고 나왔다. 들어올 땐 관람객이었지만, 나올 땐 마을의 일원이었다.
주소 경남 하동군 악양면 입석길 38-1 운영 10~18시(월 휴관)
[작아서 오히려 더 좋아! -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작은 미술관들]
유명 미술관의 유명한 전시는 볼거리가 넘친다. 하지만 가끔은 많은 인파 때문에 힐링을 하러간 미술관에서 오히려 심신이 지치기도 한다. 여유로운 공간에서 한?하게 작품을 관람하고 싶을 땐 전국 곳곳에 있는작은 미술관을 방문해보자.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걸 느낄 수 있다. 사진 각 미술관, 청주시·당진시 제공
<바다에 코 닿을 듯 - 경남 남해 스페이스 미조>
어민들이 사용하던 미조항의 냉동창고를 리모델링한 복합문화공간이다.전시관, 공연장, 카페, 루프탑 라운지 등이 함께 있다. 공간은 작지만 전시는알차다. 전 세계의 예술가를 미조항으로 초대한다. 3월엔 실내에 구름을 설치하는것으로 유명한 네덜란드 출신의 아티스트 베른나우트 스밀데의 국내 첫 전시를 만나볼 수 있다.
주소 경남 남해군 미조면 미조로 254 운영 11∼19시(화·수 휴관)
문의 0507-1350-8072
<산토리니 같은 - 전남 신안 둔장마을미술관>
새마을운동 때 지어진 마을회관을 리모델링해만든 작은 미술관. 신안 자은도에 위치해 그리스산토리니 같은 이국적인 풍경이 돋보인다.미술관 담벼락엔 바다·얼굴 등이 새겨진아트타일이 있는데, 자은도 주민들이 직접만들었다. 3월 전시는 아직 계획 중이며, 이전에전시된 작품 중 일부만 볼 수 있다.
주소 전남 신안군 자은면 둔장길 33-4
운영 10∼17시(월 휴관) 문의 0507-1371-8403
<시간이 멈춘 듯한 - 충남 당진 면천읍성안 그 미술관>
우체국이었던 건물을 2017년 작은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우체국의모습을 최대한 살린 게 특징이다. 미술관 옆엔 ‘그 미술관 작은 숲’이있다. 작은 정원을 산책하다 보면 절로 힐링이 된다. 2층에는커뮤니티 공간이 있어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며 창밖으로 보이는정원을 만끽할 수 있다. 3월 4일부터 양귀비꽃을 모티브로 한 강현자작가의 그림이 전시된다.
주소 충남 당진시 면천면 동문1길 21
운영 10시 30분∼17시(월·화 휴관) 문의 0507-1335-0084
<오래된 여인숙의 대변신 - 인천 배다리 잇다스페이스 작은미술관>
복합문화공간 ‘배다리 아트스테이 1930’에 속한 미술관.1930년대에 만들어진 ‘진도여인숙’ 건물을 리모델링했다.수십 년 된 서까래가 눈에 띈다. 3월 중에는 <배다리어반스케치 봄소풍> 전시를 열 계획이다. 어반스케치는 도시의경관이나 거리, 건물을 그린 작품으로 배다리마을의 오래된가게·집 등을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다.
주소 인천 동구 금곡로11번길 1-4
운영 11∼20시(월 휴관) 문의 0507-1322-3834
<사진 찍기 좋은 - 충북 청주 마동창작마을>
서양화가인 이홍원 작가? 폐교된 회인초등학교분교를 개조해 만든 작은 미술관이다. 개인작업실과 무인 카페도 함께 있다. 전시관 외부곳곳에 있는 설치미술 작품이 눈에 띈다.알록달록한 벽화 앞에서 ‘인생샷’을 건져보자.이홍원 작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주소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마동1길 279운영 7∼19시(연중무휴이나 방문 전 문의 필수)
문의 043-221-0793
<총성 대신 문화가 퍼지는 - 경기 김포 작은미술관 보구곶>
우리나라 최초로 접경지역 내 민방위주민대피시설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한곳. 민방위주민대피시설이 지하가 아닌 지상에 위치한 게 특징이다. 2층 옥상에올라가면 마을과 논밭이 한눈에 보이는 야외 휴식 공간이 있다. 3월 22일부터보구곶리의 상징인 매화를 주제로 한 시각예술과 그림 등을 선보인다.
주소 경기 김포시 월곶면 문수산로 373
운영 10∼17시(일·월 휴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