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은사 

 천은사는 이승휴가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제왕운기를 저술한 곳이다. 창건역사는 경덕왕 17년(738년) 인도에서 두타의 세 신선이 흰 연꽃을 가지고 와서 창건했다는 백련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뒤 흥덕왕 4년(829년)에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건립함으로써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가 중수하고 이 곳에서 대장을 다 읽었다는 뜻에서 간장이라 하였고 조선 선조 때 청허 서산대사가 절을 중건하고 흑악사라 하였다. 다시 1899년 이성계 4대조의 묘인 목조릉을 미로면 활기리에 만들면서,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고 `임금의 은혜를 입었다' 하여 천은사라 불렀다. 한국전쟁 때 큰 불을 만나 완전 폐허가 되다시피 하였는데 1983년 문일봉 스님이 중건하였다.

 

* 동안사

 동안사는 고려말 문인으로 유명한 이승휴의 사당이다.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저술한 인물로 천은사와 관계가 깊다. 그는 두타산 아래 별장을 짓고 인근의 삼화사에서 대장경을 빌려 10여 년을 공부했으며 그리하여 써낸 책이 [제왕운기]이다.

보물 제418호로 지정된 [제왕운기]는 우리 민족을 동아시아의 주인공으로 다루고 있다. 단군신화를 전하며 신라와 고구려, 옥저, 동부여, 예맥이 모두 단군의 자손이라 기록돼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영토를 한반도 넘어 요동까지, 발해 역시 우리 역사라고 풀이했다.

 

 

 

 

 

* 동안사

 

 

* 천은사

 

 

*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의 단군역사기록

 

삼국유사의 단군기록

삼국유사(삼국유사)의 단군에 관한 기록 일연스님이 지으신 삼국유사에는 우리나라의 기원을 설명해 주는 고조선의 성립내용이 들어 있다. 이를 번역하여 소개한다. 고조선(古朝鮮) (王儉朝鮮) “위서(魏書)에 적혀 있기를,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에 단군왕검(壇君王儉: *후대의 제왕운기,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서적에는 檀君王儉으로 대부분 기록하고 있음)이 있었다. 아사달(阿斯達: 경에는 무엽산이라고도 하고 백악이라고도 했는데, 백주에 있다. 혹은 개성 동쪽에 있다고도 한다. 이는 지금의 백악궁이다)에 도읍을 정하고 새로 나라를 세워 조선이라 불렀다. 이것은 요나라(: *의 다른 이름임)와 같은 시대였다. 또 고기(古記)에 적혀 있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帝釋의 다른 이름)의 서자 환웅(桓雄)이 늘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세상을 다스리고자 하였는데, 아버지가 자식의 뜻을 알고 세상을 내려다보니, 삼위태백(三危太白)이 가히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할 만하므로(弘益人間),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어서 내려 보낸 후 하늘의 뜻을 펴도록 했다(理之: 理化世界). 환웅은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태백산은 지금의 묘향산)에 신단수(神壇樹: *후대의 제왕운기, 동국여지승람 등 각종 서적에는 檀樹로 기록하고 있음) 아래로 내려와 이곳을 신시(神市)라고 부르니 이 분을 환웅천왕(桓雄天王)이라고 한다. 그는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먹고 사는 곡식(主穀)과 평생 살아가는 생명(主命),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질병(主病), 잘 잘못에 따른 형벌(主刑), 인간의 선악(善惡) 등을 주관하고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들을 주관했으며,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로 다스렸다(在世理化: 理化世界) 이때 곰 1마리와 범 1마리가 같은 굴에 살고 있으면서 그들은 항상 신웅(神熊: *환웅천왕)에게 사람이 되게 해 주기를 원하면서 기도를 하였다. 이때 신(: *환웅천왕)께서 이들에게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곧 곰과 범은 이것을 받아서 먹고 21일간을 금기하여 곰은 여자의 몸을 얻게 되었으나, 범은 금기를 하지 못하여 사람의 몸을 얻지 못했다. 웅녀는 그와 혼인해 주는 이가 없으므로 항상 단수(壇樹: *후에는 檀樹라고 흔히 기록) 아래서 아이 잉태하기를 축원하였다. 환인은 이에 거짓 사람으로 변하여 이내 잉태하여 아이를 낳으니 이름이 단군왕검(壇君王儉: 檀君王儉)이라 하였다. 단군은 중국 당나라 요임금이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당고가 즉위한 원년은 무신년이다. 그러니 50년이면 정사년이요 경인이 아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스럽다)에 평양성(지금의 평양)에 도읍하여 비로소 조선이라 하였다. 또 주나라 호왕(虎王: 武王)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箕子)를 조선왕으로 봉함에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기었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었는데, 그때 나이 1908세 이었다.(이하 생략) *참고: 위서란 무엇인가? 위서(魏書)란 조조의 아들 조위(曹魏)가 세운 위나라에 관한 역사서를 말하며, 현재 후위서(後魏書: 130), 위략(魏略: 50), 위서(魏書: 47), 삼국지 위지(三國志 魏志: 일부 전래됨) 등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나, 수나라 위담이 쓴 위서(魏書: 107), 당나라 장대소가 쓴 위서(魏書: 100), 배안시의 원위서(元魏書: 30) 등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일연스님은 위서(魏書)를 인용했다고 하므로 아마도 위담이 쓴 위서(魏書)이거나 장대소가 쓴 위서(魏書)가 동일한 명칭이나 이 책이 인용한 책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 제왕운기(帝王韻紀)의 단군기록

제왕운기(帝王韻紀)의 단군기록 이승휴가 지으신 제왕운기는 중국의 역대 왕조와 우리나라의 역대 왕조를 상하 2권으로 나누어서 기록한 책자이다.

이번에 교보문고에서 전자검색으로 김경수 씨가 역주한 제왕운기책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중 하권에 수록된 단군관련 내용을 소개한다. ----------- <지리기(地理紀)> 삼가 국사(國史)에 의거하고 한편으로는 각 본기(本紀)와 수이전(殊異傳)에 실린 바를 가려 뽑고, 요순(堯舜) 이래의 경전(經傳)과 제자백가(諸子百家)와 사서(史書) 들을 참조하여 허튼 말을 버리고 이치에 맞는 것을 취하여, 그 사적을 펴고 이를 노래함으로써 흥망한 그 연대를 밝히니 모두 1460언이다.

 

(謹據國史하고 旁採各本紀與夫殊異傳所載하며, 參諸堯舜而來經傳子史하여 去浮辭 取正理하고 張其事而詠之하여 以明興亡年代하니 凡一千四百六十言이라)

요동에 하나의 별천지가 있으니 지역은 중국과 구별되어 나뉘었네. 큰 파도 넓은 바다 삼면을 둘러쌌고 북쪽에 있는 대륙과 끈처럼 이어져 있네(連陸) *1) 가운데 사방천리 여기가 조선이니, 강산의 뛰어난 모습은 천하에 이름이 높네. 농사지어 먹고살고 우물 파서 물마시며, 예의바른 국가이어서 중국인들도 소중화(小中華)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네.

 

(遼東別有一乾坤하니 斗與中朝區以分이라 洪濤萬頃圍三面하고 於北有陸連如線이라 中方千里是朝鮮이니 江山形勝名敷天이라 耕田鑿井禮義家華人題作小中華) <전조선기(前朝鮮紀)> 처음에 어느 누가 나라를 열었던고 석제(釋帝)의 손자로 이름은 단군(檀君)일세. 요임금과 같은 때 무진년에 나라를 세워 순임금 지나 하()나라까지 왕위에 계셨도다. 은나라 무정 8년 을미년에 아사달산에 들어가서 신선이 되었으니 *2) 나라를 누린 것이 128년인데 그 조화는 상제(上帝)이신 환인(桓因)이 전한일 아니던가?

 

(初誰開國啓風雲釋帝之孫名檀君이라 並與帝高興戊辰하여 經虞歷夏居中宸이라 於殷虎丁八乙未入阿斯達山爲神이라 享國一千二十八無奈變化傳桓因)

*1) 본기(本紀)에 기록되어 있기를 상제환인(上帝桓因)에게 서자(庶子)가 있었으니 웅()이라고 하였더라. 기록에 적혀있기를 삼위태백(三危太白)으로 내려가서 홍익인간을 하도록 해라(弘益人間歟)하니 이에 따라서 웅()이 천부인 3개를 받고 천인 3천명을 데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오니 이를 단웅천왕(檀雄天王)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손녀(孫女: *천손 중의 한 여자로 해석함이 올바를 것임)로 하여금 약을 먹게 하여(飮藥: *환인천제가 약을 먹게 시킨 것으로 보임) 사람의 몸을 이루게 한 후 단수신(檀樹神: 檀雄天王)과 혼인을 하게 함으로서 아들을 낳으니, 이름이 단군이다. 조선지역에 머물면서 임금이 되시니 이와같은 연고로 시라(尸羅: 新羅), 고례(高禮: 高句麗), 남북옥저(南北沃沮), 동북부여(東北夫餘), ()와 맥()이 모두 단군의 뒤를 이어온 나라들이라(皆檀君之壽也). 다스리기를 일천 이십 팔년이다가 아사달산으로 들어가서 신(: 山神)이 되시니 돌아가시지 않는 연고이니라. *2) 지금의 구월산이다. 다른 이름으로 궁홀(弓忽)이며 또 다른 이름은 삼위(三危)이니 사당이 아직까지 있다. 나라를 누린 것이 128년이었다.

 

 

*참고문헌: 1) 이승휴. 1999. 帝王韻紀(김경수 역주). 133-136p. 도서출판 역락. 2) 일연. 1993. 三國遺事(김봉두 편역). 34-37p. 교문사. ***올린 글 참고(반기련 역사찾기 게시판 333) 트랙백주소: http://admin.antichrist.or.kr:8081/bbs/tb.php/cor/1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