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들, 대통령에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닙니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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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케이블카 반대 ‘엽서쓰기’

“대통령님, 자연은 우리 것이 아니옵니다. 당신 것두 아니구요.”

지난달 31일부터 엿새동안 지리산 국립공원 노고단대피소 앞에서는 이색적인 ‘엽서쓰기’ 운동이 펼쳐졌다.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아 이명박 대통령과 이만의 환경부장관에게 전달하기 위한 자리였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이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등산객들에게 받은 3131장의 엽서. 수신자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만의 환경부장관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모임 제공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 주최한 행사에서는 엿새동안 3131명의 등산객들이 엽서를 썼다. 이 대통령에게 2180장, 이 장관에게 보내는 엽서가 951장이었다. 시민의모임 윤주옥 사무처장은 “준비한 2000장의 엽서가 동이 나 즉석에서 엽서를 더 만들어 나눠줬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부산 영도구의 장만수씨는 “지리산이 울고 있어요. 어머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지 말아 주세요”라는 엽서를 썼다. 서울 노원구의 유덕상씨는 “케이블카 설치는 대통령님께서 주장하시는 녹색 성장과는 역행하는 길입니다. 국민의 목소리를 소중히 생각하십시오”라고 적었다.

윤 사무처장과 3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엽서 모으기는 새벽 5시30분부터 시작됐다. 여름휴가 기간에 자원봉사에 나선 이행래씨(37)는 “새벽 등산객부터 맞다보니 힘들었지만 공감을 표해주는 분들이 많아 기뻤다”고 말했다.

장애인과 어린이들이 쓴 것도 많았다. 광주 광산구에서 온 강은주씨는 “저도 다리가 불편해 장애인을 위해선 (케이블카가)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자연이 다른 방법으로 좋은 걸 주실 거라 믿거든요. 반대합니다”라고 썼다. 서울에서 온 민윤홍군은 “지금도 사람 많은데 너무 늘리려고 욕심 부리지 마세요”라고 일침을 놓았다.

7살, 9살 아이를 데리고 충북 음성에서 온 장현순씨는 “7살 아이가 힘들어해 중도에 포기도 하고 싶었지만 정상에 올라 뿌듯해하며 행복해 하는 모습을 봤다. 쉽게 갈 수 있다면 이 기쁨을 느껴보지 못할 것 같다”라는 엽서를 남겼다.

환경부는 지난 5월1일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기준을 완화하는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거리 규정이 2㎞에서 5㎞로 완화돼 지리산 입구에서 정상 부근까지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해진다. 현재 지리산 인근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 등이 법 시행을 기다리며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 중이다.

시민의모임은 모아진 엽서 3131장을 매일 100장씩 대통령과 환경부장관에게 보낼 계획이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