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문인을 '인터뷰'하다
<글쓰기 조심하소>의 지은이 담정 김려와의 '상상인터뷰'
안소민(bori1219) 기자
보리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겨레고전문학선집' 12번째 순서로 조선 후기 문인인 김려의 시와 산문을 담은 <글짓기 조심하소>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김려의 작품들과 뒷부분에 실려있는 김하명 교수(북의 대표 국문학자)가 쓴 '김려의 작품세계'를 토대로 하여 김려와 그의 작품과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는 상상인터뷰를 꾸며보았다. 담정은 김려의 호이다.

▲ <글짓기 조심하소> 겉그림
ⓒ 보리
기자: 우선 보리출판사에서 선생의 작품을 한데 모은 <글짓기 조심하소>가 출간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1882년 선생의 손자 김겸수가 선생님의 글을 모은 <담정유고>와 종손 김기수가 <보유집>을 넣어 간행한 이후로 처음인 것으로 아쨉?? 감회가 어떠신지요.

담정: 평소 사물을 접할 때나 시상이 떠오를 때면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적어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소. 그 기록들의 모음이 꽤 적지 아니하였는데 여러 번의 유배와 귀양살이로 인해 그것들을 많은 양 분실했던 것을 못내 안타깝게 생각하였소. 그러던 차에 이번에 남녘의 후손들이 작품의 일부를 한데 모아 펴내니 기쁘기 한량없을 따름이오. 더구나 북녘 문예출판사의 <조선고전문학전집>을 남녘에서 <겨레고전문학선집>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니 더욱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기자: 선생님의 성함과 작품들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글짓기 조심하소>에 실린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담정: <사유악부(1801)>는 내가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저 옛날 부령유배지의 생활과 그곳 인심을 그리워하면서 적은 것으로 도합 272수의 작품이 실려 있소. <감담일기(1798)>는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어 가는 과정을 쓴 일기체 기행문인데 그 당시 동해 지대의 자연과 생활 실태를 진실하게 재현하는데 진력하였소.

<우해이어보(1803)>는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곳 바닷가에서 본 물고기들의 생김새와 쓰임새 등을 적어놓은 글이며 <만선와잉고(1811)>는 서울 삼청동 집에 살 때 심은 나무와 꽃, 남채(나물)들에 대해 눈에 띄는 대로 읊은 글이며 <의당별고(1818)>는 당나라 시 형식을 본떠 지은 것들로서 아내와 아우, 벗들에게 쓴 글들이 주를 이루오.

또 <귀현관시초(1819)>와 <간성춘예집(1820)>은 일상생활의 정서를 적은 것들로서 그 당시 백성들의 문화와 민속, 풍속을 담아내려 하였소. 이밖에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시대를 잘못만난 '이인'들의 삶을 소설형식으로 쓴 <단랑패사(1818)>와 백정의 삶을 통해 평등의식을 강조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1801추정)>가 있소.

기자: 좀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선생 작품의 특징을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담정: 내가 추구했던 문학이라는 것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소. 크게 어림잡아 이야기한다면 아마 '현실참여'라 할 수 있을 것이오. 현실에서 벗어나 이론과 문학은 내겐 공중누각과 같은 것이었소.

기자: 현실의 모순과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담정: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부정과 부패는 있을 터지만 그 당시 탐관오리들의 부정과 일탈은 말도 못할 정도였소. 하루하루 백성들의 숨통을 조이는 그들의 만행을 보고도 그냥 못 본 척 한다면 그것은 배운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니오.

<글짓기 조심하소>는 어떤 책?

보리출판사는 북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조선고전문학선집'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다시 펴내고 있다. 조선후기 문인 김려의 시와 산문을 집대성 해놓은 <글짓기 조심하소>는 북의 문예출판사에서 1990년에 펴낸 <김려 작품집>을 다시 펴낸 것이다.

이 책에는 인터뷰 본문에서 얘기했듯 <사유악부>를 비롯한 김려의 작품들이 잘 갈무리되어있다. 실제로 김려가 남긴 기록들은 귀양이나 유배길에서 많이 분실되었다 하니 그 양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한 가지 흠이라면 900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양때문에 읽기가 주저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짬짬이 읽으면 큰 어려움은 없을 정도로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

이 책의 저자 오희복은 김일성 종합 대학교수로 있으며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북한의 학자가 썼다고 하지만 읽어서 이해하는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쉽고 매끄럽다. 책의 뒷부분에는 작품의 원본과 김하명 교수가 쓴 작품해설이 있어 이해를 돕는다.

'겨레고전문학선집'에는 이외에도 열하일기와 이규보, 이제현, 김시습, 조수삼, 정철, 박인로, 윤선도 작품집이 있으며 임진년의 아홉 의병장을 글을 모은 <임진년 난리를 당하매>가 있다.
'부령땅 젊은 여인 그의 성은 육씨러니/ 밤마다 강가에서 하늘 향해 통곡하누나/남편은 지난가을 황장목을 나르다가/ 홍원 앞바다에서 배가 깨져 죽었다네/ 그렇지만 고을 사또 도망쳤다 꾸며대어/ 늙으신 시부모를 열달동안 고문했네...하늘이여 하늘이여 아느냐 모르느냐/ 어찌하여 유상량을 벼락도 안치느냐'-<사유악부> 중 '황장목 사또' 일부-

기자: 선생의 시선이 하층민 일반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선생의 작품에는 고단하지만 소탈하고 진실한 삶을 사는 필부필부의 모습들이 자주 보입니다.

담정: 주막집 할멈, 두부파는 노인, 새참나르는 처녀, 전쟁에 나가는 이름없는 청년, 굶주림에 지친 이웃들, 청어장사까지 그들 모두는 나와 시대를 함께 산 사람들이었으며 내 문학작품속의 주인공이 되었던 사람들이었소. 그들은 모두 꾸밈없고 진실했소. 특히 <단랑패사>의 일곱 사람 이야기에서는 세상을 의롭고 줏대 있게 살다간 주인공을 통해 그들이 억압받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보이고 싶었소.

'옥같이 고운 얼굴 백설 같은 그 마음씨/ 백발은 스산해도 웃음소리 다정했지/ 풍류스러운 옛모습 사라졌다 말을 마오/ 사람들은 오늘도 이씨 할멈 추억하리-<귀현관시초> 중 '주막집 할멈 이씨를 애도하여' 일부-

'북방의 사나이들 모두가 건장한데/ 그중에서도 젊은이로 지덕해를 먼저 꼽네/ 키는 커서 칠척이오 두 눈썹 청수하고/ 수정같이 맑은 눈빛을 뿜었어라'-<사유악부>중 '지덕해' 일부-


기자: 제 개인적으로 선생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보이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추'나 '부추' ,'꽁치' '농어' 또는 '연적' '촛대' '돌팔매싸움' '고을 장날'과 같은 소재는 당시 문인들에게는 썩 환영받지 못한 대상이었을 텐데요.

담정: 앞서 얘기했듯 문학과 현실은 따로이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관계요. 그렇다면 문학의 소재는 뭐가 되느냐, 바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접하는 것들이어야 하오. 또한 그것들은 당연히 삶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내가 알고 있는 지혜나 좋은 방법을 널리 알려서 서로서로 나누면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기쁨이 아니겠소.

'잘 여문 둥근 호박 국거리 좋고/ 크지 않은 애호박은 전 부쳐먹네/ 더군다나 호박은 위장에 좋아/ 체하는 법 전혀없고/ 몸도 보하네' -<만선와잉고> 중 '호박' 일부-

'푸른색 무명치마에 초록빛 창옷입고/ 머리에는 광주리 걸음새도 빠르구나/ 모두들 이르는 말 오늘은 한식이라/ 집집마다 산소찾아 찰떡 드리고 온다누나' -<간성춘예집> 중 '한식날' 일부-


기자: 그렇지만 선생에게도 비판의 목소리는 있습니다. 바로 당시의 왕 '정조'를 맹목적으로 찬양했다는 것과 백성들이 읽기 어려운 한자로 표기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정통 고문에서 벗어나 패사소품 문체를 익힌 선생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담정: 그 당시는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 나라님이 곧 하늘이었던 시대였소. 나라님을 향한 마음은 곧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자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소. 한자표기 역시 당시 식자층의 한계였다고 보오. 나름대로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체를 시도해보긴 했지만 나 역시 당시의 분위기에서 썩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소.

기자: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인 '글짓기 조심하소'는 무슨 뜻입니까?

담정: <사유악부> 중 '연희가 타이르던 말'에 나왔던 글귀요. 연희는 내가 진해에서 귀양 살 때 알게 된 여인인데 늘 나의 직설적인 문체를 두고 '세상이 어지러워 화 당하기' 쉽겠다며 염려했소.

붓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소. 자신에게 미칠 화가 두려워 현실의 부정과 비리에 눈감아버리고 찬양일색으로 붓을 놀리고서야 어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소. 화를 당하더라도 쓸 말은 제대로 쓰고, 할 말은 제대로 할 줄 아는 泳汰?꼭 필요한 세상이오. 무릇 글 짓는 자는 이 '글짓기'의 무서움과 힘을 꼭 깨달아야 하오.

'글은 곧 그 사람이다'...인터뷰 후기

글은 곧 그 사람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는 건 그간 많은 글을 읽고 그 너머로 알게 된 사실이다.

단순한 서평으로 쓸 수 있었던 이 책을 굳이 '상상인터뷰'라는 형식을 빌렸던 것은 바로 글을 통해 '김려'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면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아마 요즘 태어났더라면 그는 분명 메모광에다 일기쓰기를 즐기며 자잘한 사물이나 대상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많은 사람들과 사는 이야기를 그 누구보다 맛깔나게 즐겼으리라는 추측도 해본다.

새참을 이고 가는 이웃집 처녀나 세상을 뜬 주막집 할머니, 두부파는 노인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는 그는 참으로 소탈하고 꼼꼼하면서도 더없이 여리디 여린 성격이었던 것 같다.

바로 이 책에 소개된 그의 많은 작품들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꿈에서 만난 가족과 벗들을 향한 그리움, 고향에 대한 간절한 향수, 비 내리는 날의 적적한 풍경 등을 읊은 글을 읽다보면 콧날이 시큰해진다. 기존 우리가 접해왔던 고전문학은 대개 정형화된 소재에 정서도 엇비슷한 것들이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산수의 빼어남을 읊거나 충효, 우애, 정절, 신의 등의 정신적 가치를 노래한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물론 김려의 작품에도 그러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려 문학의 진정한 매력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생생한 실생활의 묘사에 있다. 여기에 양반부터 저 하층민인 백정까지 모두가 평등한 존재로 묘사되는 점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정도다.

지금껏 고전문학이 현대인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박제된 옛 골동품'이라고 생각했다면 이 책을 한번 읽고 가능하다면 김려와 대화를 나누어볼 것을 권유한다. 이 책을 통해 얻게 된 뜻밖의 수확은 김려라는 새로운 인물을 발견했다는 것 외에도 200여년전의 글을 통해 충분히 웃고 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데 있다.

김려는 누구?

1776(추정)년에 태어나 1821년까지 쉰 여섯 해를 살았다. 열다섯 살에 성균관에 들어가 강이천, 김조순, 이옥 들과 어울렸다. 이들과 함께 정통 고문에서 벗어나 시정의 세태를 백성들의 상말을 써서 표현하는 '패사소품' 문체를 익혔다. 서른 두 살 나던 1797년에 강이천의 유언비어 사건에 휘말려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를 갔다. 1801년 다시 경상도 진해로 귀양을 갔다. 십여년의 귀양살이는 김려의 문학에 숨을 불어놓고 뼈와 살이 되었다.
글짓기 조심하소/ 김려 씀, 오희복 옮김/ 도서출판 보리/ 35,000원

*김려는 유배에서 풀려난 뒤에 야사와 잡록을 널리모아 <한고관외사>와 <광사>를 펴냈다. <광사>는 모두 200책 472권에 143종의 야사를 실어 조선 시대 야사 총서 가운데 가장 방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가져갔는데 안타깝게도 관동대지진때 거의가 불타고 지금은 20책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