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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출판사가 기획하고 있는 '겨레고전문학선집' 12번째 순서로 조선 후기 문인인 김려의 시와 산문을 담은 <글짓기 조심하소>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 소개된 김려의 작품들과 뒷부분에 실려있는 김하명 교수(북의 대표 국문학자)가 쓴 '김려의 작품세계'를 토대로 하여 김려와 그의 작품과 문학세계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보는 상상인터뷰를 꾸며보았다. 담정은 김려의 호이다.
담정: 평소 사물을 접할 때나 시상이 떠오를 때면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적어놓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소. 그 기록들의 모음이 꽤 적지 아니하였는데 여러 번의 유배와 귀양살이로 인해 그것들을 많은 양 분실했던 것을 못내 안타깝게 생각하였소. 그러던 차에 이번에 남녘의 후손들이 작품의 일부를 한데 모아 펴내니 기쁘기 한량없을 따름이오. 더구나 북녘 문예출판사의 <조선고전문학전집>을 남녘에서 <겨레고전문학선집>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니 더욱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기자: 선생님의 성함과 작품들을 낯설어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글짓기 조심하소>에 실린 작품들을 대상으로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담정: <사유악부(1801)>는 내가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저 옛날 부령유배지의 생활과 그곳 인심을 그리워하면서 적은 것으로 도합 272수의 작품이 실려 있소. <감담일기(1798)>는 강이천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부령으로 유배되어 가는 과정을 쓴 일기체 기행문인데 그 당시 동해 지대의 자연과 생활 실태를 진실하게 재현하는데 진력하였소. <우해이어보(1803)>는 경남 진해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그곳 바닷가에서 본 물고기들의 생김새와 쓰임새 등을 적어놓은 글이며 <만선와잉고(1811)>는 서울 삼청동 집에 살 때 심은 나무와 꽃, 남채(나물)들에 대해 눈에 띄는 대로 읊은 글이며 <의당별고(1818)>는 당나라 시 형식을 본떠 지은 것들로서 아내와 아우, 벗들에게 쓴 글들이 주를 이루오. 또 <귀현관시초(1819)>와 <간성춘예집(1820)>은 일상생활의 정서를 적은 것들로서 그 당시 백성들의 문화와 민속, 풍속을 담아내려 하였소. 이밖에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으나 시대를 잘못만난 '이인'들의 삶을 소설형식으로 쓴 <단랑패사(1818)>와 백정의 삶을 통해 평등의식을 강조한 서사시 <방주의 노래(1801추정)>가 있소. 기자: 좀 막연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만 선생 작품의 특징을 표현한다면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담정: 내가 추구했던 문학이라는 것은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이 아니었소. 크게 어림잡아 이야기한다면 아마 '현실참여'라 할 수 있을 것이오. 현실에서 벗어나 이론과 문학은 내겐 공중누각과 같은 것이었소. 기자: 현실의 모순과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담정: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부정과 부패는 있을 터지만 그 당시 탐관오리들의 부정과 일탈은 말도 못할 정도였소. 하루하루 백성들의 숨통을 조이는 그들의 만행을 보고도 그냥 못 본 척 한다면 그것은 배운 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아니오.
기자: 선생의 시선이 하층민 일반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인 듯합니다. 선생의 작품에는 고단하지만 소탈하고 진실한 삶을 사는 필부필부의 모습들이 자주 보입니다. 담정: 주막집 할멈, 두부파는 노인, 새참나르는 처녀, 전쟁에 나가는 이름없는 청년, 굶주림에 지친 이웃들, 청어장사까지 그들 모두는 나와 시대를 함께 산 사람들이었으며 내 문학작품속의 주인공이 되었던 사람들이었소. 그들은 모두 꾸밈없고 진실했소. 특히 <단랑패사>의 일곱 사람 이야기에서는 세상을 의롭고 줏대 있게 살다간 주인공을 통해 그들이 억압받고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이고 창의적이며 주체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보이고 싶었소. '옥같이 고운 얼굴 백설 같은 그 마음씨/ 백발은 스산해도 웃음소리 다정했지/ 풍류스러운 옛모습 사라졌다 말을 마오/ 사람들은 오늘도 이씨 할멈 추억하리-<귀현관시초> 중 '주막집 할멈 이씨를 애도하여' 일부- '북방의 사나이들 모두가 건장한데/ 그중에서도 젊은이로 지덕해를 먼저 꼽네/ 키는 커서 칠척이오 두 눈썹 청수하고/ 수정같이 맑은 눈빛을 뿜었어라'-<사유악부>중 '지덕해' 일부- 기자: 제 개인적으로 선생의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보이는 선생의 따뜻한 시선과 관심이었습니다. 그 당시 '고추'나 '부추' ,'꽁치' '농어' 또는 '연적' '촛대' '돌팔매싸움' '고을 장날'과 같은 소재는 당시 문인들에게는 썩 환영받지 못한 대상이었을 텐데요. 담정: 앞서 얘기했듯 문학과 현실은 따로이 떨어져 존재할 수 없는 관계요. 그렇다면 문학의 소재는 뭐가 되느냐, 바로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고 접하는 것들이어야 하오. 또한 그것들은 당연히 삶에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될 수 있는 것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소. 내가 알고 있는 지혜나 좋은 방법을 널리 알려서 서로서로 나누면 이것이야말로 배움의 기쁨이 아니겠소. '잘 여문 둥근 호박 국거리 좋고/ 크지 않은 애호박은 전 부쳐먹네/ 더군다나 호박은 위장에 좋아/ 체하는 법 전혀없고/ 몸도 보하네' -<만선와잉고> 중 '호박' 일부- '푸른색 무명치마에 초록빛 창옷입고/ 머리에는 광주리 걸음새도 빠르구나/ 모두들 이르는 말 오늘은 한식이라/ 집집마다 산소찾아 찰떡 드리고 온다누나' -<간성춘예집> 중 '한식날' 일부- 기자: 그렇지만 선생에게도 비판의 목소리는 있습니다. 바로 당시의 왕 '정조'를 맹목적으로 찬양했다는 것과 백성들이 읽기 어려운 한자로 표기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정통 고문에서 벗어나 패사소품 문체를 익힌 선생이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담정: 그 당시는 지금과 분위기가 달라 나라님이 곧 하늘이었던 시대였소. 나라님을 향한 마음은 곧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자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었소. 한자표기 역시 당시 식자층의 한계였다고 보오. 나름대로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체를 시도해보긴 했지만 나 역시 당시의 분위기에서 썩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소. 기자: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인 '글짓기 조심하소'는 무슨 뜻입니까? 담정: <사유악부> 중 '연희가 타이르던 말'에 나왔던 글귀요. 연희는 내가 진해에서 귀양 살 때 알게 된 여인인데 늘 나의 직설적인 문체를 두고 '세상이 어지러워 화 당하기' 쉽겠다며 염려했소. 붓은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힘을 가지고 있소. 자신에게 미칠 화가 두려워 현실의 부정과 비리에 눈감아버리고 찬양일색으로 붓을 놀리고서야 어찌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겠소. 화를 당하더라도 쓸 말은 제대로 쓰고, 할 말은 제대로 할 줄 아는 泳汰?꼭 필요한 세상이오. 무릇 글 짓는 자는 이 '글짓기'의 무서움과 힘을 꼭 깨달아야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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