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 ||||||||
꽤 오래 전에 읽었던 어느 시인의 글귀다. 억눌린 스프링일수록 탄력 계수가 높아지듯 현실의 벽이 높아질수록 벽을 부수려는 힘 또한 커지니, 풍자도 그런 힘의 하나이리라. 사실 나는 요즘 웃을 일이 별로 없다. 먹고살기 힘든데다 어디 하나 정이 갈 곳 없는 세상사. 웃음을 찾기 힘든 거야 인지상정일 테고, 말장난만 일삼는 허섭스레기 같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오히려 허탈할 뿐이다. 정말 신명하는 탈놀이 한 판이 그리워지는 나날이다. 누군가 그랬듯이 본디 풍자는 있는 자의 것이 아니라 '없는 자'의 것이다. 고관대작의 것이 아니라 장삼이사의 것이다. 그래서 풍자는 바로 우리의 것이며, 우리의 고단함을 씻어주는 카타르시스다. 하지만 요즘 풍자를 찾기 힘들다. 냉소 어린 패러독스는 언뜻언뜻 보이지만 가슴을 뻥 뚫어주는 풍자는 만나기 어렵다. 그러던 중 우연히, 아주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사실 명색이 글쟁이과를 전공했던 나조차 보도 듣도 못했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책이 바로 그것이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동화작가가 아니다. 사실 <걸리버 여행기>가 18세기 가식덩어리인 대영제국에게 통쾌한 한방을 먹이는 풍자소설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지만, 스위프트가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란 장르 모호한 글을 남겼다는 것을 나는 정말 몰랐다. 솔직히 이 책은 언뜻 보면 뭐 별로 색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하인' 이야기인가 하는 느낌도 가질 수 있으며, 우리와 처지나 조건이 다른 하인의 풍자가 '또 뭐 그리 우리를 시원하게 해줄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18세기의 하인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오늘의 월급쟁이를 대치해서 글을 읽는 순간, 이런 생각들이 얼마나 얕고 가벼웠는가를 깨닫게 해주는 책이 바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다. 하는 일이야 조금 다를 수 있어도 경제 외적 강제에서 벗어나 '주인님'에게 경제적으로 묶여있다는 점에서는 당시의 하인과 오늘의 월급쟁이가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현대판 '하인'이 아니겠는가? 내가 이 책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책은 18세기 영국의 하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의 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만 보자. "주인의 모든 재산이 자신의 고유 업무에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에서) 자기가 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며, 그 일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음을 윗사람에게 확신시켜주는 것이 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첩경이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한 가지이다. 기사 분량의 제한으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에 실린 스위프트의 촌철살인과 같은 풍자를 좀 더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다. 하지만 오늘의 나를 18세기의 하인으로 등치시키고 읽는다면 오랫동안 잊었던 풍자의 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풍자는 칡뿌리와 같아서 처음 씹을 때 느끼는 쌉쌀한 맛도 놓치기 힘든 맛이면서, 씹으면 씹을수록 흘러나오는 달큰한 맛은 우리를 더 달뜨게 한다.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또한 그러하다. 읽은 내용을 곱씹고, 우울할 때 혹은 짜증날 때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이 우러나오니, 역시 스위프트의 풍자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토리로 연결되는 소설이 아니니 아무 때나 아무 곳을 펼쳐 읽어도 근엄한 '주인님'을 우려먹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을 읽는 한 가지 팁 : 스위프트가 찌르는 풍자의 칼끝이 어디로 향한 것인가를 찾을 수 있다면 책 말미에 나오는 번역자의 '작품해설'을 씹는 맛도 꽤 쏠쏠하다. |
'논술 > 중등논술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논술 인용문 ‘장자’ 가 가장 많다(경향2006년 03월 27일) (0) | 2006.06.23 |
---|---|
EBSi ‘06년 논술첨삭지도 계획 (0) | 2006.06.23 |
리더의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기(이코노믹2006.3.6) (0) | 2006.05.25 |
논술이 공교육 혁신 이끌 수 있을까?(프레시안2005.8.18) (0) | 2006.05.06 |
논술이 희망이다(오태민 2006-02-14) (0) | 2006.04.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