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일기, 어떻게 하면 잘 쓸수 있을까
세월이 좀 흐른 뒤 들춰보는 일기만큼 옛일을 새록새록 떠올리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초등학생들에게 일기는 숙제거리일 뿐이다.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마음의 짐’이다.

초등학교 2학년인 조민기군은 세상에 일기쓰기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민기 부모님은 저녁마다 일기쓰기 싫다는 아이를 붙잡고 씨름하느라 지쳤다. 아무리 좀더 재미있게 쓰라고 해도 “오늘 학교에 갔다가 태권도 갔다가 숙제하고 잤다”는 유형의 내용은 도무지 바뀔 기색이 없다. 반면 비슷한 또래인 초등학교 3학년 김지아양은 일기쓰기가 재미있는 놀이란다. 1학년 때부터 일기쓰기에 재미를 들여 독후감, 백일장 등 각종 글쓰기 대회도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고 참가해 곧잘 상도 탄다.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최근 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일기쓰기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진 듯하다. 하지만 화려한 영상물 홍수 시대, 대부분의 아이들은 글로 표현하는 일을 점점 어렵게 느낀다. 학부모들도 그 점이 고민이다. 특히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들이라면 글쓰기, 특히 일기쓰기가 커다란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일기쓰기에 흥미를 붙이고, 잘 쓸 수 있을까.


#좋은 일기란

좋은 일기는 자기 생활을 진솔하게 겪은 그대로 전하는 것.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말하듯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일기를 ‘숙제’가 아닌 ‘일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내용이나 구성을 재미있게 꾸민다.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접근하면 ‘지겨운 일기’가 될 수밖에 없다. 20여년간 일기쓰기 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대구 금포초등학교 윤태규 교감은 “일기 쓰는 것이 밥먹고 똥누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몇년전 딸이 쓴 일기를 모아 ‘송민주 일기모음집-나도 일등한 적이 있다’라는 책을 낸 엄마이자 서울 목동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신정애씨는 “요즘 아이들이 너무 학교와 학원 공부에 치여 안타깝다. 일기를 검사하다 보면 너무나 틀에 박혀, 읽고 싶은 일기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도 김천에 살다가 몇년전 서울로 오면서 공부 따라가기가 어려워 제대로 일기를 못 쓰는 상태여서 속상하다고 했다.

‘생각 없는 일기 백날 써봐야 소용없다’의 저자 양혜선씨는 “생각없이 일상만 나열하는 글쓰기는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충고한다.

얼마전 국가인권위에서 일기검사가 인권침해라며 글쓰기 실력은 다른 방법으로 배양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기쓰기를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수단으로 본 것은 핵심을 비켜간 지적이라고 주장한다. ‘일기는 일기일 뿐’이라고 생각해야지, 일기를 글쓰기 실력 등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순간, 일기쓰기 교육은 실패한다는 말이다.



#일기쓰기가 싫어지는 이유

일기쓰기가 싫어지는 이유는 상당부분 교사나 부모의 태도 때문이다. 우선 가장 큰 이유는 일기를 통해서 글쓰기나 국어공부를 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일기쓰기가 공부로 인식되는 순간, 일기는 일기가 아니라 글짓기 숙제가 되어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질 못한다. ‘틀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조금도 하지 않고 일기를 써야 한다. 맞춤법이나 문법도 가급적 지적하지 않는 것이 좋다.

특별한 일을 쓰거나 길게 쓰라고 하는 것도 아이들을 일기와 멀어지게 하는 이유다.

잠자기 바로 전에 쓰라는 것, 반성하는 일기를 쓰라는 것도 일기에 대한 편견. 잠잘 시간에 졸음과 싸우면서 일기쓰는 것은 괴롭다. 될 수 있으면 어떤 일을 겪은 즉시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일기의 생명은 정직이므로 마음에도 없는 반성을 강요하지도 말자. 사실만 쓰지 말고 생각이나 느낌을 많이 쓰라고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일기는 겪은 일을 중심으로 쓰는 사실 기록이다. 사실을 기록한 속에 들어 있는 아이들 생각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 밖에 틀을 만들어 놓은 일기장은 아이들 생각을 틀 속에 가두어 버리므로 보통 공책에 일기를 쓰는 것이 좋다. 부모나 교사들이 염두에 둬야할 점은 아무리 답답해도 성급하게 끼어들지 말고 아이 혼자 힘으로 일기를 쓰도록 하는 것. 또한 가끔이라도 어른들이 일기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보다 좋은 교육방법도 없다.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부모님이나 교사가 간섭은 하지 않더라도 일기쓰는 것을 도와줄 수는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이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이다. 칭찬하고 감동하면서 들어주면 아이는 점점 자세히 얘기하게 되고 그 자체만으로도 말로 일기를 다 쓰는 셈이 된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야, 그거 재미있겠다. 일기로 한번 써봐라” 얘기해 주면 일기쓰기의 반 이상은 성공한 셈.

또한 아이들은 글감을 고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하는데 대화하는 가운데, 일기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부모님이나 친구, 선생님께 들려주고 싶은 일, 자랑하고 싶은 일, 또는 꼭꼭 숨기고 싶은 일이나 억울하고 답답한 일 등도 좋은 글감이 된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깨우쳐 주면 큰 도움이 된다.

보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일기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또래가 쓴 일기 글을 미리 골라 두었다가 보여 주는 것도 좋다. 초등 1학년일 경우 적당한 길이의, 정직하며, 틀린 글자가 반드시 있고, 환경이 비슷하며 누구나 겪을 법한 이야기를 쓴 것이 좋다. ‘나도 그런 일이 있었어’ ‘틀린 글자가 많네’ ‘저 정도면 나도 쓰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글:윤태규, 일기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송현숙기자 song@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