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저, 저는 …" 말더듬이 는다

[중앙일보 2005.10.03 04:18:49]

[중앙일보 정강현.권호] "저, 저, 저는…마, 마, 말하는 게…거, 겁나요…."서울에 사는 허모(20)씨는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심하게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이다. 어릴 적 독일에서 10여 년간 생활했던 허씨는 6년 전 한국에 돌아온 뒤 갑자기 말더듬이가 됐다. 독일어와 한국어 모두 유창했지만,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말을 더듬어 군대에서 따돌림당할 것이 두려워 군 입대도 미루기로 했다. 허씨의 경우처럼 말을 심하게 더듬어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어려운 말더듬이가 늘고 있다.

최근 조기 영어 교육 등으로 아이들의 언어 습득 부담이 늘어난 데다, 컴퓨터 게임 등으로 대화가 단절된 사례가 많아지면서 말더듬이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에 따르면 약 208만 명의 청소년이 인터넷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04년 서울대병원 언어치료실에 온 1623명의 환자 가운데 20% 정도인 325명이 말을 더듬는 증상을 보였다. 이는 2000년보다 두 배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화여대 심현섭(언어병리학) 교수는 "현재 국내 인구의 1%가량인 40만여 명이 말더듬이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들은 정상적인 사회 활동에 어려움을 겪으며, 심할 경우 대인기피증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기도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대를 졸업한 김모(31)씨는 지난 20여 년을 말더듬이로 살았다. 대학 졸업 후, 심하게 말을 더듬어 취직에 연거푸 실패하자 3년 전부터 집안에 틀어박혀 술만 마셨다. 김씨는 결국 알코올 중독에 정신이상 증세를 보여 최근 정신병원을 찾았다.

언어치료 전문가들은 "부모 가운데 한 명이 말더듬이일 경우 자녀도 말더듬이가 될 확률이 높지만, 과도한 스트레스 등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더듬증은 주로 2~7세 때 발생하고, 4세 이전에 30~80%는 자연 치료된다. 그러나 약 10%는 성인이 돼서도 완치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말더듬증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신 언어임상연구소 신문자 소장은 "아직 말이 서툰 아이들이 과도한 외국어 공부에 시달리는 등의 이유로 말더듬이가 점차 늘고 있다"며 "말을 더듬는 아이에게 말을 하도록 재촉하지 말고 가족의 대화 시간을 늘리면 말더듬증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충고했다. 가능하면 서로 천천히 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