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과 언론, 정치사회적 메커니즘: 인터넷 언론과 포퓰리즘>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며 우리 사회에서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인터넷으로 무장한 젊은 대중(大衆)이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붉은 악마가 되어 서울 시청앞 광장에 나타났으며,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여 한미간의 불공정한 관계를 고쳐나갔다.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내었고, 그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반대하였으며, 최근엔 총선에서 여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할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해주었다. 그들은 여론을 만들어 나갔으며, 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들을 가능케 해준 것은 인터넷이었다. 우리나라 사람 둘중 한명이 이용하는 인터넷은 현대인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필수적인 매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한국 사회에서의 인터넷의 성장은 가히 비약적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초고속 통신망의 인프라를 조기에 구축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좀 더 자율적이고 실천적인 젊은 신세대가 등장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니 어찌 보면 젊은이들의 실천적 특징은 본래적인 것이라기보다 인터넷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은 그만큼 참여를 본질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현대의 다른 매체들처럼 단지 하나의 새로운 기술적 결과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게 해주는 매개자 역할을 다른 매체들로부터 하나씩 떠 많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인터넷은 이제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참여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또 ‘오마이뉴스’, ‘프레시안’으로 대표되는 인터넷 언론은 이제 대안 언론으로서의 위치를 넘어 주요 언론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더 나아가 인터넷은 기존 언론 매체의 정치사회학적 역할과 기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인터넷 정치’가 지금 한국에서 시험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단순한 소통의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참여의 수단으로서 말이다. 인터넷은 이제껏 정치에 무관심했던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럼으로써 젊은이를 사회의 ‘한’ 계층에서 사회의 ‘주도적’ 집단으로 부각시켜놓았다. TV와 라디오, 신문으로 대표되는 기성 매체를 통해 그저 일방향적으로 보고, 듣기만 하던 기성세대와 달리, 쌍방향성을 특징으로 하는 인터넷으로 무장된 젊은 세대들은 이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론은 정치사회적 맥락에서 여론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여론은 언론 매체와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 기존의 언론 매체들과 인터넷 언론은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기존의 매체와 달리 인터넷은 단순히 일방적인 정보의 공급 수단에 머물지 않고 대중들의 참여의 통로로 활용되면서 ‘인터넷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 또는 ‘인터넷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사회정치적 현상을 낳고 있다. 그런데 둘 중 어느 것인가? 참여민주주의인가, 포퓰리즘인가? 우리의 궁금증을 풀기 위한 첫 단추는 여론과 기존 매체에 대한 이해 방식을 살펴보는 것이다.


1. 여론

1.1. ‘여론’의 의미
여론(輿論 , public opinion)은 “한 사회의 구성원 전원에 관계되는 일에 대해서 사회적으로 제시되는 각종 의견 중에서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의견”이라고 정의될 수 있다. 더 간단히 “대중들의 공통된 의견”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간단한 정의만 가지고 여론의 의미를 꽤뚫기는 힘들다. 여론의 본질은 훨씬 복잡한 것으로서, 이들 많은 의견의 형성과 표현, 상호간의 경합 ·간섭 ·통합과 같이 복잡하게 얽히는 역동적인 전체 과정과의 관련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1.2. 여론의 형성 : 통합과 대립
여론 형성에 관한 고전적인 이론은 그 형성 과정을, 문제(쟁점) 제기 → 개인 의견 형성 → 집단내 토의(개인 간의 의견조정, 집단의 대표적 의견조성) → 집단간 토의 → 통일적 의견(여론)의 성립이라는 도식으로 설명해왔는데, 이 도식은 여론형성의 실태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현대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대개가 복잡한 내용을 지니며, 그것을 이해하고 해결방책을 찾아내는 데는 대량의 정보와 전문적인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일반 성원이 이러한 문제에 관해 개별적으로 의견을 형성하고, 그것을 순차적으로 조정, 통합하여 일정의 대표적 의견을 구성해나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통상 정당이나 그 밖의 정치단체, 경제단체, 노동조합, 저널리즘 등 각기 어느 입장을 대표하는 조직이 의견형성 기관으로서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저마다 언론 매체 등의 수단을 이용하여 자기들 주장을 대중에 알리며, 대규모의 선전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리고 개개의 조직 안에서는 어느 정도까지 고전적 도식이 성립할 수 있다 해도 조직의 대형화에 따라 작용 범위는 국한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실제의 여론형성은 고전적 견해에서처럼 밑에서 위로 축차수렴(逐次收斂)해 가는 개인적인 토의를 통해서가 아니라, 몇 개의 중심으로부터 방사되는 주도적 의견이 개별의 성원을 조직화하여 그 동조를 얻어내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이 위로부터의 조직화에 의한 여론형성은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게 되는데, 그중 대표적인 문제점은 여론과정이 고전적 형태의 통합적 기능보다도 대립적 국면을 낳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곳에서는 예리하게 대립하는 주도적 의견을 중심으로 하여 그 동조자가 결집하는 결과 상호간의 대화와 매개가 더 한층 곤란하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며, 결국 여론의 분열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또 하나의 문제는 주체적인 참가의 희박화로 여론형성의 주도권이 개인보다도 특정조직으로 옮겨지는 결과, 한편에서는 의견조직화의 그물에서 빠져서 여론의 권외로 밀려나는 성원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제시된 의견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수동적인 동조나 행동 의지를 동반하지 않는 무책임한 지지가 자행되기 쉽다. 전자가 극단화하면 여론이 민의를 충분, 정확하게 반영할 수 없게 되며, 후자가 일반화하면 표면적으로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지배적인 의견의 공동화되어 사회의 진로를 나타내는 지표가 될 수 없을 뿐더러 그 동향을 살피는 단서조차도 될 수 없다. 대중사회에 있어서의 여론상황은 이러한 점에서 많은 경계해야 할 점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론의 사회적, 정치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여론의 형성과 정치적 반영의 과정은 면밀히 분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2. 여론의 사회정치적 중요성

여론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은 프랑스 혁명 직전 재무장관으로 있던 J.네케르였다. 그가 여론을 문제 삼게 된 것은 파탄에 빠진 왕실재정의 책임자로서 신흥 부르주아의 원조를 받아야만 했고, 이를 위해서는 그들의 의향에 신중한 배려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말해 주듯이 여론의 개념은 근대민주주의와 같은 토양에서 싹트고 그 사상과 함께 자라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전에도 민의, 즉 피통치자의 의지나 소망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지배자의 압제와 불법, 어리석음에 대해서 피지배자들은 비판, 항의, 폭동 등으로 반항함으로써 의사를 표하기는 했지만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비합법적이며 단편적인 의사표시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공식으로 정치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권리로서 인정되고 제도에 의해 보장되었던 예는 근세에 이르기까지 극히 드물었다. 그것이 확립된 것은 근세 말기에서 근대 중기에 이르는 장기간의, 그리고 광범한 정치적, 사회적 운동의 성과이며, 그러한 뜻에서 여론의 제도적 승인은 근대민주주의 최대 특징의 하나이며 반대로 일반 보통선거를 비롯한 민주주의적 여러 제도는 여론이 구축해 놓은 빛나는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운동의 초기에 있어서 여론은 주로 변혁을 지향하여 지배자와 대결하는 대립적 특성을 수반하였다. 그 때문에 오늘날에 와서도 반권력성과 투쟁성을 여론의 본질적인 속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남아 있는데, 사회의 모든 성원에게 평등한 발언권을 인정하는 대중 민주주의시대에는 여론의 역할과 기능 또한 크게 변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즉 대중이 통치과정 밖에 놓여짐으로써 그것에의 침투를 기도했던 시대에 대해서는 여론이 투재적, 혁명적일 수 있었으나, 대중이 모두 통치과정에 참여하며 오히려 그들의 정치적 발언을 기대하는 시대가 되면 여론의 대세는 반대로 현상긍정, 보수의 방향으로 기울기 쉽다. 이는 정치에 있어서의 안정과 연속성의 보호와 유지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의미를 갖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개혁에 대한 제동으로서 작용하는 부정적 의미까지 내포하게 된다. 여론에 의한 정치의 제도화가 전술한 바와 같이 도리어 대중의 적극적 참가를 희박하게 하며 정치과정에 대한 민의의 반영이 때로는 저해된다고 하는 현상도 현대의 여론의 기능을 고찰하는 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론이 본래 참여적 성격에서 탄생하였으나 점차 대중들을 참여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변모해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여론, 그리고 여론의 통로가 되는 언론 매체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3. 여론의 통로 : 언론 매체(언론, 매스컴, 매스미디어)

여론의 사회적, 정치적 역할은 언론 매체들과의 관련 속에서만 의미가 있으며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보다 정교한 이해를 위해서는 여론과 관련된 용어들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3.1. 언론
“언론”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말이나 글로 자기의 사상을 발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개개인이 술자리 같은 사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 행위도 언론의 범주에 넣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는 공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입장에서, 공적인 수단을 이용하여 털어놓아진 것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오늘날의 신문과 방송 등의 매체들을 통하여 발표되어지는 전문가들의 의견에서부터, 조선왕조의 시대에 있었던 선비들의 상소도 언론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다수의 의견’이라는 여론의 정의에서 그 ‘의견’이 바로 언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언론’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사전적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2004년 4월 28일, ‘언론’이란 낱말이 들어간 뉴스를 인터넷에서 검색해보았다.

"동남아에 이은 일본 방문 내용이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되는 등 배용준은 최고 한류 스타로 ..."
"대검 중수1과장이 ‘정치인의 영장 기각은 검찰의 무리한 수사의 결과’라는 일부 언론 보도를 ..."
"정부차원의 직접적인 대응보다는 국제여론 및 언론 등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
"일간지 네이션과 TNA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
"동남아에 이은 일본 방문 내용이 연일 언론에 대서 특필되는 등 ..."

재미있게도 ‘언론’을 검색하여 나온 상위 5개의 최신뉴스 어느 곳에서도 ‘언론’을 그 사전적 의미 그대로 사용하고 있지 않았다. 그 모든 곳에서의 ‘언론’은 ‘언론매체’, ‘매스컴’이나 매스미디어 등을 의미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매스컴’과 ‘매스미디어’는 ‘언론’과 같은 개념이 아니며, 또 ‘매스컴’과 ‘매스미디어’도 서로 같은 개념이 아니다.

3.2. 매스컴
‘매스컴’은 ‘매스커뮤니케이션’(mass-communication)의 약어로서, 사전에선 “신문, 잡지, 라디오, 영화, TV 등의 매스 미디어를 이용하여 대량의 정보나 지식 등을 넓은 지역의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일”이라고 적혀있다. 원래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에서 "매스"(mass: 집단, 다량, 덩어리 등)라는 접두어를 떼어내고서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이라는 단어의 의미만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결국 “대화” 또는 “상호 생각 또는 의견 등의 교류”가 될 것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과 ‘퍼스널’(personal) 커뮤니케이션의 차이는 결국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매스미디어의 차이일 것이다.

3.3. 매스미디어
“매스미디어”(mass-media)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매스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기술”이다. “미디어”란 매체(媒體), 수단(手段)이란 뜻으로, 불특정 대중에게 공적, 간접적, 일방적으로 많은 사회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신문, TV, 라디오, 영화, 잡지 등이 대표적이다. 미디어는 수단이나 내용에 따라 인쇄 미디어와 전파 미디어로 나뉜다. 전자는 문자에 의해서, 후자는 소리나 영상에 의해 전달된다. 인쇄 미디어로는 신문, 잡지, 서적, 포스터, 전단 등이 있으며, 전파 미디어에는 라디오, 텔레비전, 영화, 레코드 등이 있다. 후자를 종합하여 시청각 미디어라고도 한다. 인쇄 매체는 19세기 중엽 윤전기 등의 발명으로 이루어졌고, 시청각매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에 걸쳐 무선전신의 송수신 기술과 영화기술 등의 발명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등장한 인터넷은 이러한 구분의 틀에 들어맞지 않는다. 인터넷에는 활자도 있고 소리고 있고 영상도 있다. 활자 대 소리-영상이라는 도식적 구분은 인터넷의 차별성을 전혀 드러내주지 못하는 구분이다. 따라서 인터넷은 그것들과 구별되는 제 3의 매체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인터넷은 최근 10여 년 동안 급속한 발전을 이루어낸 역사가 짧은 매체이지만 그 영향력 면에선 현재 다른 매체에 못지않으며, 미래의 발전 가능성 면에선 다른 매체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새로운 매체이다. 그리고 형식에 기인한 매체적 특징에 의해 여론 형성의 측면 까지도 기존의 미디어와 다른 결과를 낳는다. 이것을 알아보기 위해 편의상 미디어를 구분하겠다. 편의상 인터넷 미디어를 ‘뉴 미디어’로 나머지 미디어를 ‘올드 미디어’로 분류하겠다.


4. 언론 매체와 여론의 형성

매스컴이 여론 형성 과정에서 중립적이지 않다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디어는 어떠한 ‘색깔’도 갖지 않는 중립적인 것으로 당연시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기서 “미디어는 곧 메시지다”라는 마셜 맥루언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디어의 형태는 그저 메시지의 형식적 제한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디어는 그 형식에 의해 내용에도 제한을 가져온다. 올드 미디어는 그 형식적 특징에 기인하는 내용적 특징도 동반한다.
과거 매스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경제적, 기술적 조건에 의해 그 기구(機構)는 필연적으로 대규모적이며 과점 내지 독점적인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매스 미디어는 자본주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체제화되어 있었으며, 그런 조직상의 문제로 항상 공정성의 위상이 문제시되어왔다. 그러나 인터넷 언론은 기존 매스 미디어의 조직적 문제점들을 갖고 있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게 가지게 됨으로써 권력으로부터의 외압의 문제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올드 미디어가 자료의 생성, 수집, 배포에 있어서 대규모 언론 매체에 의해 좌우되며, 그로 인해 자료의 수집 배포 형태가 중앙집중식, 수직적, 피라미드 구조를 띄는데 반해, 뉴 미디어는 대규모의 언론 매체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롭게 자료의 생성, 수집, 배포가 가능해졌다. 자료 수집 배포 형태가 개별 분산식, 수평적, 그물 구조를 띄게 되었다. 이렇듯 미디어의 형태에 따른 구조적 특징은 여론 형성 과정에서도 독특한 결과들을 낳는다.

4.1. 올드 미디어와 여론
커뮤니케이션의 역사는 인간사회의 성립과 함께한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미디어의 역사도 그와 같이 할 것이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은 당시의 매스미디어 기술의 역량에 의존한다. 기술적으로 15세기 중엽에 개발된 활판인쇄가 매스 커뮤니케이션 본래의 역할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렇다고는 하나 16세기 전반까지는 유럽에도 서적, 팜플렛 등의 평균 인쇄부수는 1,000부에 지나지 않았고, 독자도 소수의 특권층이나 부유한 지식계급에 국한되어 있었다. 뉴스와 정보의 소비가 특정 계층과 계급에 국한되는 시대였다.
그러던 정보가 광범위하게 보급되며 매스커뮤니케이션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일간신문이 등장한 18세기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19세기는 인쇄 미디어의 완성기로서, 현대의 신문, 출판의 주요 요소는 19세기 전반에 모두 갖추어졌으며, 통신사의 출현도 이 무렵의 일이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걸쳐 선진국에서는 격렬한 신문경쟁이 전개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 이들 국가의 대부분은 독점신문의 시대로 들어서고 있었다. 레코드, 영화도 19세기 후반에 발명되었으나 20세기의 1920년대와 1940년대에 각각 실용화된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그때까지 인쇄매체가 중심이었던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양상을 변화시켰다. 하지만 인터넷 미디어가 나오기 전까지의 상황은 여전히 소수의 언론 기관들이 정보의 독점적 공급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른 문제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① 오늘날의 많은 매스 미디어는 대부분 사기업으로 영위된다. 사기업은 이윤의 획득과 경영의 안정이 우선되기 때문에, 내용의 저속화와 안이함 및 타성으로 흐르기 쉬운 데 비해, 독재 또는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정부와 지배정당에 의해서 편집과 제작방침이 좌우된다.
② 과거의 언론은 모든 사람들의 뜻을 담을 수는 없다는 약점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각각 다른 뜻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에 기고하거나 혹은 방송에 얼굴을 비추는 이른바 전문가 집단의 뜻이 마치 사회 전체의 뜻인 것처럼 호도 되는 약점이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현대적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론 형성의 과정에서 대형화되고 권력화 되어가는 미디어 집단에 여론이 의존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③ 인터넷이 나오기 이전까지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사실 한쪽이 다른 한쪽에 일방적으로 대량의 정보 또는 의사 등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세기 이후의 신문매체의 발전, 20세기 중반 동안의 라디오 매체의 급속한 보급 및 발전, 그리고 20세기 중-후반부터의 텔레비전 등의 급속한 보급과 확산은 이러한 상황을 더더욱 부추긴 점이 없지 않으며, 또한 그러한 상황은 소수 권력자들의 정치적 목적―물론 자국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고 또한 그것에 바탕하였을 적에 그들은 그들의 다음 목적을 이루기 위한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등에 이용되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 일방향성은 기정 사실을 정보의 소비자에게 강요하여 침묵의 합의를 만들어 내기가 쉬우며, 따라서 외관상으론 강력한 사회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보인다.
④ 이런 올드 미디어의 특징은 대중들의 정치사회적 역할에 상당한 제한을 가져오며, 일반 대중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무기력증을 낳는 경향이 있다. 현대 사회가 지니는 여러 가지 요인이 상호 관련되어서 빚어내는 사회의 복잡성에다가, 국제적 요인이 더욱 유력하게 작용하는 현대의 정치 문제에 대해서 한 사람이 미치는 영향의 무력성이 실증되고 있는 현실 아래에서는 개인이 정치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새로운 현상들은 대중을 더욱 정치에서 멀어지게 했고, 정치에 대한 무관심 풍조를 낳게 했다.

4.2. 뉴 미디어와 여론
인터넷 언론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지가 인터넷판을 내면서였고, 한국의 경우 1995년 3월 중앙일보가 처음 인터넷판을 시작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오프라인 종속형 인터넷 언론으로 시작되었고, 이후 1999년 독립형 언론인 딴지일보, 뉴스보이 등이 나오다가 2000년에는 본격적인 시사형 종합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가 시작되었다. 인터넷 신문 외에 인터넷 방송도 증가하는데 지상파인 KBS가 1995년 처음 인터넷 방송을 시작한 이래 국내 방송사들이 전부 인터넷 방송을 실시하고 있고, 많은 독립 인터넷 방송이 이후 문을 열었다.
이제 인터넷 언론이 중요한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인터넷 언론은 그 매체의 특징에서 기인하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 차이는 여론의 정치사회적 역할과 관련하여 더욱 부각되고 있다. 오늘날 인터넷 매체의 발달은 인터넷을 쓸 수 있거나 혹은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사람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뜻이나 사상 등을 밝힐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언론의 범위는 대단히 넓고 깊어졌다고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론’의 형태가 완성되었다 또는 완성되어져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인터넷 언론은 진정한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해주는 “매스 미디어”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가능케 해주는 인터넷 언론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① 인터넷 언론의 대표적인 특징은 속도이다. 신문과 방송에 비해서 훨씬 빠르게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또 신문과 방송이 가진 장점들을 겸비하고 있다는 것도 인터넷 언론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예를들어, 방송의 특징인 동영상과 소리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신문의 특징인 심도 있는 기사를 제공할 수 있다. 오히려 분량으로 따지자면 신문보다 훨씬 더 심도 있는 분석 기사나 기획 기사를 실을 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선 링크를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② 그런데 이런 장점들 보다 더 중요한 특징은 인터넷의 일반적 특징인 쌍방향성이 인터넷 언론에서 실현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초보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로그인을 통해 자신의 신상 정보와 취향을 미리 지정하거나 통계를 냄으로써 자신의 취향에 맞는 기사를 골라 볼 수 있으며,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인터넷 사용자가 단순한 언론의 소비자에 머물지 않고 리플과 게시판을 통해 공급자의 역할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요즘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의 활성화로 그 개인 공급자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개인의 자료 생산량을 크게 증가시키고, 자료, 뉴스 원천으로 개인의 역할이 증대됨으로써, 그리고 개인이 언론 매체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서 중앙에 집중된 매체 영향력이 상당 부분 개인에게 되돌아옴으로써 개인이 단순한 정보의 소비자에서 정보의 생산자의 역할까지 맡아하게 되었다. 그 결과 수평적 여론 형성이 더욱 강력해지고, 여론 왜곡 현상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게 된다. 그리고 이런 다양한 정보와 뉴스를 공급하는 주체의 등장은 정보의 독점, 과점 현상을 줄임으로써 좀더 싼 가격에 정보를 공급받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인터넷 언론의 단점도 있다. 신문과 비교할 때, TV와 마찬가지로 특정한 기계와 장소를 필요로 한다는 단점과 모니터를 통해 글을 읽어야 하기에 발생하는 피로감의 문제 등이 있다. 하지만 이런 매체 자체의 특징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문제점은 인터넷의 익명성에서 기인하는 신뢰성의 문제이다. 인터넷이란 공간은 워낙에 많은 정보들이 넘치고 그중 상당수가 잘못된 정보이기 때문에 인터넷 언론은 기존의 매체들이 가지고 있는 올드 미디어의 경우에서처럼 ‘공인된’ 신뢰성을 결여한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또 인터넷의 익명성에서 기인하는 윤리적 문제 또한 인터넷 언론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며, 인터넷 언론의 법적 지위의 문제도 남아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가장 심각한 이슈로 떠오르는 문제는 마치 인터넷 언론이 부추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포퓰리즘의 문제이다.


5. 여론의 정치와 포퓰리즘

20세기의 마지막 약 10년 동안 급속하게 발전한 인터넷 매체는 “진정한 의미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함께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혹은 신문이나 라디오 그리고 텔레비전 매체 등에 의하여 외면을 받기 일쑤이거나 혹은 “모종의 외압” 등에 의하여 실려지거나 다루어질 수 없는 “(사회정보 등에 대한) 내용까지도 이러한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대량으로”(mass) 그리고 “일반대중들에게 전달되어지는” 상황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이 결과, 만약 10여년 이상의 과거의 경우라면 “만약 정권을 잡고 또한 그것을 유지하고 싶다면 방송망과 언론사들만 장악하면 된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질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아주 작은 사건이 어느 날 낮 시간에 벌어지기만 해도 그 날 저녁때 즈음이면 이미 인터넷 매체 등을 통하여 수많은 대중들 사이에서 공론화 되어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됨으로서, 이제는 더 이상 몇몇 사람들만의 뜻대로 다수 대중이 움직이는 사태는 방지되어질 것이라는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거꾸로 포퓰리즘의 문제 제기가 여기서 시작한다. 대의 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다수의 대중은 현실적으로 정치의 대상이었지 정치의 주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는 대중이 정치의 직접적인 주체는 아닐지라도, 간접적이지만 이전보다는 훨씬 더 영향력있는 주체가 되고자 하는 대중의 정치적 움직임으로 보여진다. 그런데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은 ‘인터넷을 통한 참여 민주주의’인가 단순한 ‘인터넷 포퓰리즘’인가?
일반적으로 민주정치는 시민(국민)에 의한 정치를 말하는 것이므로, 민주정치의 이상은 직접민주정치에 있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하여 지고 국가의 규모가 커진 현대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이 한 자리에 모여 공공문제를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직접민주정치보다는 시민이 선출한 대표에 의한 대의민주정치 또는 대표민주정치가 보편화되어 있다.
지난 3월12일 국회에서 일어난 대통령 탄핵은 많은 사람들에게 대의 민주정치에 대한 회의를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대중을 광장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지만 그 움직임에 대한 각 이해 집단의 상반되는 해석은 대중의 움직임과 그 성과에 대한 평가를 유보하게 만들고 있다. ‘포퓰리즘(populism)’을 있는 그대로 번역하자면 “인민주의”쯤 될 것이다. 그런데 언론들은 앞 다투어 중우정치와 연결하여 ‘대중주의’, 또는 악의를 가득 담아 ‘인기영합주의’ 등으로 번역하고 있다.
‘포퓰리즘’이란 단어가 한국 사회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김영삼 정권 시절 여론과 인기를 의식한 정책에 대해 보수 언론이 던진 경고성 논평기사에서였다. 그러나 이 외래어의 ‘언론판’ 정의를 ‘대중영합주의’로 정착시킨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였다.
외래 한국어가 되어버린 ‘포퓰리즘’은 우리 사회에서 두 가지 기능을 갖추게 됐다. 하나는, 특정 정치인을 동요시키거나 위험한 성향의 소유자로 단정짓고 싶을 때 ‘좌파’나 ‘좌익’이란 말 대신 쓰는 비방어로 작동하며, 또 하나는 민주주의를 타락시키는 중우정치를 연상시킴으로써, 포퓰리즘이라는 낱말을 ‘민중주의’나 ‘인민주의’라는 본래 의미로부터 차단시켰다는 점이다.
문제는 지금의 포퓰리즘 공세가 단순히 수구적 이익에 반하는 정권에 대한 정치적 비방을 넘어, 새로운 미디어에 기초하여 연대적 진보를 추구하는 시민사회의 모든 움직임을 사상적으로 규정하고 봉쇄하는 이데올로기 장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민주주의와 관련한 포퓰리즘의 규정을 다시 세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 포퓰리즘은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정의할 수 있다.

① 정치학적 정의: 특권 엘리트와 대립되는 보통 인민(민중)의 이해관심, 문화적 특성, 자발적 감정들을 강조하는 정치적 운동.
② 역사적 정의: 불완전한 민주주의에서 특권층이 제도적 기득권을 선점함으로써 사회적 이익에서 소외된 대다수 인민들이 계급·계층적 차이를 초월해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정치적 단결.
③ 사회권력적 정의: 사회적 이익 대변의 메커니즘이 탄력성과 참여성을 잃을 경우 체제에 대한 반항성의 즉각적이고 자연발생적인 표출.

이러한 규정을 볼 때 결론적으로, 포퓰리즘은 반(反)민주주의라기보다 전(前) 민주주의 단계의 민주화 지향성을 띠는 운동이며, 한국 사회는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포스트-포퓰리스트 사회 단계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기존의 언론 매체에서 포퓰리즘의 원천이라고 지목하는 일군의 네티즌들이야말로 ‘탈포퓰리즘’의 추진주체로 간주하는 것이 타당하며, 오히려 기존의 언론 매체가 포퓰리즘에 대한 거꾸로 된 시각을 강요한다고 보여진다.
포퓰리즘은 역사적으로 많은 문제점을 보여준 실패한 정치 형태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작금의 현상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 또한 마찬가지로 경계해야 할 발상이다. 오히려 우리는 세번째 정의에서 보여지듯이, 포퓰리즘을 통해 현재 우리 처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포퓰리즘의 문제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지, 대의 민주주의에 관해 포퓰리즘이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인 여론을 읽기위해 선행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