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서 ‘선장 안전점검 책임’ 면제해줬다

등록 : 2014.04.23 19:37수정 : 2014.04.2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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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해운업계 요구 수용
항만·화물 점검도 축소
안전규제 풀기 20여건 진행

세월호 참사 원인 가운데 하나로 이명박 정부의 노후선박 사용 연한을 늘린 규제완화가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정부에서도 ‘기업 부담 완화’ 등을 이유로 선박·해운 관련 안전규제의 완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안전규제 완화는 철도교통, 공산품 위험 관리, 위험시설물 관리 등 각 분야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진행됐다.

23일 국무총리실 ‘규제정보포털’에 실린 정보와, 여러 정부 부처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선박·해운과 관련해 이미 완화되거나 완화가 진행중인 안전규제는 20건을 웃돈다. 지난해 6월 정부는 해사안전법 하위 법령인 ‘인증심사 사무처리 규정’을 개정해 내항선을 운항하는 선장에게 주어진 안전 관련 부적합 사항 보고 의무와 매년 실시하는 내부 심사를 폐지했다. 선장의 안전 점검 책임을 면제해준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장 등의 페이퍼워크(문서 작업) 부담을 덜어달라는 업계 요구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같은 달 정부는 같은 법 하위 지침 개정을 통해 통상 500t 이하 선박에 해당하는 ‘관리 외 선박’이 주로 드나드는 부두 등 항만 시설에 대해선 ‘해상교통안전진단’을 면제해줬다. 2009년 11월에 도입된 해상교통안전진단제도는 항만 시설의 안전 여부를 정밀 시뮬레이션을 통해 따져보고 그에 따라 시설의 보수·설치 등을 하도록 한 제도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소규모 항만 시설은 안전진단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효용이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완화를 추진중인 규제도 여럿 있다. 현재 해수부는 화물선과 여객선 등에 선적되는 컨테이너에 대한 안전 규제를 담고 있는 선박안전법 시행규칙 개정을 준비중이다. 지방해양항만청이 컨테이너 안전점검 업체에 대한 현장 점검을 ‘연 1회 이상’ 하도록 한 해당 규칙 내용을 점검 횟수를 ‘연 1회’로 못박고 특별한 사유가 있을 때만 추가 점검하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바꿀 예정이다. 규제정보포털을 보면 정부는 이 규정의 완화 이유로 “현장 점검이 과다할 경우 안전점검 업체의 부담이 가중(된다)”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안전 규제 완화들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국정 과제로 규제개선이 추진되면서 부처별 규제완화 경쟁이 불붙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해수부만 ‘안전 강화’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그는 “(규제완화) 발굴 과제는 (해수부) 자체 판단도 있지만 주로 관련 업계 민원에 따른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전 규제’ 완화는 선박·해운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규제정보포털에는 ‘규제개선’ 과제로 850여건이 올라와 있다. 이 중 안전 관련 과제가 119개에 이른다. 여기엔 기존보다 강화하거나 규제 방식을 대체하는 법령도 있지만, 규제 자체를 완화하는 내용도 다수 들어 있다. 개선 과제 상당수가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규정이나 시행규칙, 지침인 것도 특징이다. 한 예로 소방방재청은 지난해 위험물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을 바꿔 위험물안전관리대행 업체의 자격 기준을 완화했다. 소방방재청 쪽은 “사무실 최소면적 기준이 창업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 활성화를 위해 안전 기준 일부를 풀었다는 것이다.

지난해 이뤄진 ‘품질 경영 및 공산품안전관리법’(품공법) 개정도 안전 규제 완화 사례에 속한다. 종전 품공법에선 정부가 안전관리를 위반한 업체가 ‘위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론매체에 공표하도록 명령할 수 있었으나, 개정법에선 위반업체가 정부로부터 조처를 받은 사실만 공표할 수 있도록 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쪽은 개정 이유로 “안전관리를 위반한 업체의 자유와 명예를 과잉 침해할 소지”를 들었다.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장관회의’ 당시 현장 건의로 개선과제에 채택된 ‘자동차 튜닝’ 규제도 안전 규제 완화로 이어질 공산이 높다. 정부는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튜닝 사전 승인 대상을 대폭 줄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김태윤 한양대 교수(행정학)는 “업계와 공무원 간의 이익 동맹이 이뤄진 상황에서는 안전 규제와 같이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규제부터 완화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부처 간 (규제 완화) 실적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런 현상은 짙어진다”고 말했다.

김경락 김소연 기자 sp96@hani.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