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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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란 용어는 서구(西歐)의 타자(他者)로서 생긴 것이다. ‘아시아’는 ‘태양이 뜨는 곳’이라는 의미의 아시리아어 ‘아수’(asu)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아주 고대에는 이 용어가 단지 에게해 동쪽을 지칭하는 말이었고, 기원 후 1세기에는 이 지역이 로-마의 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아시아가 서구의 눈에 의해서만 존재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는 애초부터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원죄를 타고 난 심상지리다. 유럽은 자기문명의 시원의 장소로서 오리엔트(Orient)를 상정했으며, 또 계몽의 전 단계로서 그 스스로가 책임이 있는 미성숙 상태에 대한 자기부정의 대상으로서 오리엔트를 발명했다.

그런데 그 후 우리에게 아시아는 너무나 광대하고도 모호한 공간이다. 세계의 1/3의 땅과, 세계인구의 60%를 차지하는 거대한 구역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아시아대륙을 동아시아. 서아시아, 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로 나눈다. 이 중에서 근대 이후로는 동아시아의 발전이 두드러져 아시아를 대변한다. 따라서 아시아라고 하면 동아시아가 주도적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서구가 오기 전에는 중국중심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중심세계관은 화이론(華夷論), 중화사상(中華思想), 책봉체제(冊封體制)로 대표된다

초기 문명단계에 있어서 동아시아의 중심은 중국이었음은 자타가 공인한다. 그러나 중국(中國)이라는 나라 이름은 처음부터 쓰여진 것은 아니다. 손문(孫文)의 중화민국(中華民國), 모택동(毛澤東)의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부터 쓰여지기 시작했다. 전통시대에는 ‘중국’(中國)이라는 용어보다 ‘중화’(中華)라는 용어가 많이 쓰였다. ‘중화’는 ‘화하‘(華夏), ‘화’(華)라고도 하는데 동아시아의 중심을 의미한다. 그 영역을 ‘중원’(中原)이라고 했는데 은(殷)․주(周) 시대에는 황하(黃河) 중․하류 지역을 지칭했다가 전국시대에는 전국 7웅이 차지했던 지역(禹貢 九州 지역)으로 확대되었고 정복왕조가 들어서면서부터 왕조의 영역인 군현(郡縣)에 포함된 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이를 천하(天下), 육합지내(六合之內), 해내(海內), 우내(宇內), 사해(四海), 사극(四極), 팔극(八極), 대구주(大九州)라고도 한다. 이 경우 천하는 중화(中華) + 사이(四夷)이다. 선진시대의 신(身)-가(家)-국(國)-천하(天下)의 누층적 구조론을 답습해 국(國)의 집적이 천하(天下)로 인식되었다.

 

 

 

 

아시아 연대론 [― 連帶論]일본 침략사상 | 브리태니커

 

 

일본의 아시아 대륙 침략사상.

아시아주의, 아시아연대주의, 범아시아주의라고도 한다. 아시아 연대론은 '19세기이래 계속된 구미 열강의 압력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하고, 나아가서 동양의 평화와 질서를 아시아인 스스로가 확립하며, 동아시아 민족들이 누릴 수 있는 공영의 생활권을 설정하고 운영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이웃국가(한국·중국·일본)는 서로 긴밀한 연대관계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표면상의 대의명분이었다. 그러나 아시아 연대론은 애초부터 선린(善隣)이나 우방(友邦)이 아니라 일본이 동양의 맹주로서 주종관계의 협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일제는 서구제국주의국가들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가 해방되어야한다는 미명하에 침략주의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일제 아시아 연대론은 일제 지배하에서의 아시아의 통일을 의미하게 되었고, 1930년대에는 대동아공영권(大同亞共榮圈)이라는 파쇼적 형태로 변해갔다. 한편 한국에서는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일 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일본에 망명해 있던 일부의 개화파들과 유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본의 아시아 연대론을 수용했다. 아시아 연대주의의 영향을 받아 결성된 일진회는 러일전쟁에서 일본군이 이기는 것이 동양의 평화와 한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믿고, 러일전쟁중 일본군을 위한 군용철도 부설노역 자원, 일본군의 군량미·군수품을 수송하는 북진수송대 참여, 일본군을 위한 밀정첩보활동 등을 통해 일본군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러일전쟁 후에도 외교권의 위임청원, 고종 폐위 주도, 의병진압을 위한 자위대 결성, 한일합병 청원에 이르기까지 한일 간의 합방을 목적으로 일련의 활동을 전개했다.

 

 

[김환영의 시시각각] 한국과 아시아주의

[중앙일보] 입력 2011.03.23 00:01 / 수정 2011.03.23 10:34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최근 중동·이슬람권에서 부는 민주화 바람을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에 대한 일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문학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자신의 저서 『오리엔탈리즘』(1978년)에서 ‘중동·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잘못된 믿음’을 폭로했다. 오리엔탈리즘에 따르면 중동·이슬람권에서 민주주의가 꽃피는 것은 불가능했다. 중동·이슬람권 사람들은 독재·권위주의와 어울린다는 것이다. 이슬람은 공산주의와 유사한 이념체제라고 주장하며 이슬람을 깎아 내린 학자도 있었다.

 크게 보면 사이드가 말하는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중심주의(Eurocentrism)의 한 지류를 형성한다. 서구중심주의는 세상을 서구중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다. 은연중 서구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이나 서구중심주의는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가 서구에서 퇴조하는 시기에 나온 용어라는 것이다. 서구는 스스로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를 부정한다. 오늘날 서구에서 오리엔탈리즘이나 서구중심주의를 떳떳하게 옹호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리엔탈리즘·서구중심주의는 세계통합주의·세계화·범지구주의·지구주의로 번역되는 글로벌리즘(globalism)으로 대체돼버린 면이 없지 않다.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는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구가 걷어차버린 사다리’인지도 모른다. 세계의 나머지에 대한 우월감을 함축한 오리엔탈리즘과 서구중심주의는 서구의 발전에 일정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구 스스로가 ‘편협한’ 오리엔탈리즘·서구중심주의가 아니라 글로벌리즘을 통해 민주주의·인권·평등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이념을 표방한다.

 글로벌리즘을 맹목적으로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속한 아시아는 아시아주의·범아시아주의(Asianism·Pan-Asianism)를 내세울 수 없다. 아시아에도 분명 지켜야 할 고유의 가치와 이익이 있는데도 말이다.

 글로벌리즘의 세상에서도 아시아주의는 필요하다. 세계와 개별 국가 사이는 텅 빈 것이 아니다. 대륙이 있고 지역이 있고, 문명권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에는 ‘나는 인간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다’ ‘세계인이다’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아시아인이다’라는 대답의 차원이 있다. 아시아주의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양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일본 대지진이나 중동·아프리카의 정치 격변을 휴머니즘이나 민주주의와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로 살펴볼 수는 있다. 그러나 뭔가 허전하다. 아시아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아시아인으로서 할 일이 더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을까.

 우리 눈앞에 보이는 글로벌리즘은 서구에서 출발한 것이다. 서구의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강하게 묻어있다. 서구가 만든 글로벌리즘으로는 예컨대 중동 문제를 영원히 풀지 못할지도 모른다. 해답은 아시아주의에서 출발한 글로벌리즘에 있을 수 있다.

 앞으로 아시아주의의 부상은 필연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다. 국제질서의 중심이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아시아가 세계의 중심이 될 때 그 세 축은 중국·인도·일본으로 예상된다. 3국은 모두 과거에 이미 자국 중심의 아시아주의를 표방했던 역사가 있다. 3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아시아주의가 제시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아시아주의를 선도까지는 못 하더라도 아시아주의의 형성에 참가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리엔탈리즘·서구중심주의 시대에서처럼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없다. 다행히 한국은 아시아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룬 저력이 있다. 이는 아시아 전체와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리 땅에서 인도·중동·중국에서 출발한 불교, 기독교와 이슬람, 유교가 상생의 길을 가고 있다. 종교문화적으로는 아시아 전체가 한국 속에 있는 것이다.

김환영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