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년째 불치' 과수화상병…충북서 창궐하는 이유 뭘까

송고시간2020-06-14 09:17

 
 

고온다습 환경서 발현, 꿀벌·비·바람·사람 등이 매개체

농진청 수간주사 치료법 모색…감염목 찾아내 묻는게 최선

(청주=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나무가 불에 탄 것처럼 말라 죽는다는 점에서 명명된 과수화상병(Fire Blight)이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된 때는 1780년이다.

과수화상병 걸린 사과나무

[경기도농업기술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당시 미국 뉴욕 허드슨 밸리 근처의 사과, 배, 모과나무에서 첫 의심 증상이 포착됐다.

그러나 첫 확인 후 240년이 된 올해까지 예방·치료제는 개발되지 못했다.

이런 화상병이 충북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2015년 제천시 백운면의 사과 과수원 1곳에서 확인된 이 병은 2018년 이후 연례행사처럼 발생하고 있다.

첫해 0.8㏊(1곳)였던 피해 면적은 2018년 29.2㏊(35곳), 지난해 88.9㏊(145곳)로 늘었고, 올해에는 12일 기준 206.3㏊(339곳)에 달한다. 작년의 2.3배 규모로 증가했다.

◇ 따뜻했던 겨울·봄, 자주 내린 비가 '주범'

화상병 세균은 섭씨 25∼29도의 습한 날씨 속에 나무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발현한다. 34도를 웃돌 때는 활동을 중단한다.

과수원 소독 중

[서천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세균이 땡볕더위보다 무더위 속에서 빠르게 확산하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겨울과 봄철 평균기온은 각 1.2도, 11.6도로 평년보다 2.7도, 0.6도 더 높았다.

지난달부터 주당 2∼3회꼴로 비까지 내리면서 습도가 높아져 화상병이 발현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충북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세균은 고온다습한 날씨를 좋아한다"며 "한반도의 아열대화가 화상병 확산을 부추긴 것 같다"고 분석했다.

◇ 꿀벌·비·바람은 물론 사람까지 매개체

화상병 세균의 잠복기는 짧게 3년, 길게는 20년에 달한다. 세균이 숨어 있다가 기후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 발현한다는 게 통설이다.

가지치기 중인 과수원

[연합뉴스 DB]

세균 수가 많아졌을 때 가지나 줄기에 송진처럼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생긴다. 병에 걸린 나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때이다.

감염 원인과 전파 경로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지만 꿀벌, 바람, 비는 물론 사람이 매개체로는 꼽힌다.

감염된 가지에서 피는 꽃에서도 세균이 검출된다.

꿀벌이나 곤충에 묻은 세균이 다른 나무로 퍼질 수 있고, 가지·줄기로 새어 나온 세균 덩어리가 비·바람에 의해 확산할 수도 있다.

사람도 주요 매개체이다.

통상 11∼12월 이뤄지는 가지치기는 전문가로 이뤄진 작업단이 맡아 한다. 인근 과수원을 돌며 작업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을 시작하기 전이나 마친 후 전지가위 등 도구를 제대로 소독하지 않고 다른 과수원에서 작업하게 되면 세균 확산이 불가피해진다.

◇ 치료제 없어, 농진청 수간주사 치료법 모색 중

화상병이 처음 발견된 후 240년이나 됐지만, 예방·치료 방법은 개발되지 않았다.

폐허가 된 사과 과수원

[연합뉴스 DB]

감염된 나무를 베어내 주변 나무로 세균이 번지는 것을 막을 수는 있지만, 사전에 감염 여부를 진단할 방법은 없다.

세균 밀도가 낮을 때는 검사해도 '음성'으로 나타날 때도 많다. 적은 수의 세균으로는 화상병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얘기다.

세균 덩어리가 가지·줄기로 새어 나오기 시작할 때는 뿌리째 뽑아 묻는 방법 외에는 대책이 없다.

충북 농기원 관계자는 "화상병이 확인된 나무라도 멀쩡한 가지를 검사하면 균이 검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그만큼 감염된 나무를 사전에 찾아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꽃이 피기 전 살균제를 뿌리고 개화 초기부터 항생제를 뿌려주는 게 대책이라면 대책이다.

농촌진흥청이 나무의 줄기에 주사를 꽂거나 구멍을 뚫어 약물을 주입하는 '수간주사'로 화상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 매몰 후 재식수·대체작물 재배가 유일한 방법

잠복기가 워낙 길어 세균 박멸의 어려움을 안 뒤 과수원 폐원보다는 관리로 방향을 바꾼 국가가 있다.

매몰 작업 중인 과수원

[연합뉴스 DB]

폐원을 택했던 이스라엘은 요즈음 병이 생긴 가지만 잘라내는 방법을 쓰고 있고, 미국도 해당 가지만 제거하고 있다.

이탈리아와 스위스는 감염된 나무만 뽑아내는 방식을 택했고, 스페인은 감염된 나무와 주변 나무를 제거하고 있다.

이들 국가보다 늦게 화상병이 발생한 우리나라는 과수원의 모든 나무를 매몰하는 방식을 택했다가 올해부터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고 있다.

과수원 내 감염 나무가 5% 미만이면 해당 나무와 주변 나무를 뽑아 매몰하고 5% 이상이면 폐원하고 있다.

충북농기원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매몰 후 3년간 나무를 심지 말고 청정지역으로 만든 후 다시 사과나무를 심거나 다른 대체 작목을 찾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ks@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20/06/14 09:17 송고

 

과수 화상병, 오리무중 전파 경로…‘꿀벌 책임론’ 시끌-2020-06-26

입력 : 2020-06-26 00:0

 

지침대로 소독·방제했지만 원인 파악 안되는 감염 잦아

호주선 꿀벌 차단 통해 성과 반경 2㎞ 내 모든 군집 제거

농진청, 위험성 당부 소극적 양봉업계와 마찰 우려한 듯
 


과수 화상병이 발생한 농가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제기되는 의문은 ‘전파 경로’다. 교육받은 대로 도구 소독을 게을리하지 않고 예방 약제 살포도 시기마다 했는데, 병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는 농가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많은 농가에서 ‘꿀벌을 통한 전파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올해 화상병으로 거의 ‘초토화’된 충북 충주지역 사과농가들도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꿀벌과 같은 곤충이 지역 내 화상병을 확산시켰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목소리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해외에서도 화상병 확산의 주요 원인으로 꿀벌을 꼽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호주가 대표적이다. 호주는 화상병 박멸을 위해 발생지점을 기준으로 반경 2㎞ 이내 모든 기주식물과 꿀벌 군집을 제거하는 방제책을 시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농촌진흥청의 방제지침에도 유사한 내용이 들어 있다. 방제지침은 “방화곤충이 화상병을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발생 과원 내 벌통 폐기’ ‘위험구역 내 벌통 이동 제한’ 등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제지침은 화상병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생한 2015년부터 최근까지 바뀌지 않고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방제지침에도 담겨 있는 내용이 현장에선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꿀벌을 통한 화상병 전염을 공개적으로 경고하거나 발생지역에서 벌통을 폐기하는 등의 사후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진청도 꿀벌로 인한 화상병 전염 가능성을 알리는 데 미온적이다.

농진청이 올해 배포한 12건의 화상병 관련 보도자료에서는 꿀벌 등 매개곤충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내용이 전무하다. 전정도구·의복 등의 소독을 강조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관련자들 사이에선 농진청이 양봉업계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꿀벌의 위험성에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농진청의 한 관계자는 “호주처럼 해당 지역 내 꿀벌을 전부 제거하는 식의 대처는 양봉업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해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했다.

과원 내 또는 인근 과원간 병원균을 매개하는 게 곤충이라면 이보다 좀더 넓은 지역간 감염은 인력·도구 이동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경기 안성·이천과 충북 충주·제천·음성이나 충남 천안에서의 발생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동일 작업권역에서 병이 확산된 것이다. 가지치기(전정)·보식 등 농작업을 위해 고용하는 인력과 이들이 사용하는 도구·신발 등으로 화상병균이 퍼졌을 확률이 높다고 보는 이유다.

경기 연천, 강원 평창의 경우엔 주변에 다발생지역이 없는 데다 작업자의 이동과 같은 외부 역학관계가 확인되지 않아 묘목을 통한 확산 가능성이 의심된다.

김다정·김서진 기자 kimdj@nongmin.co

https://youtu.be/sWKpuM5MAEI

 

https://youtu.be/PhU_xdGi0_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