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병원은 어린이병원(The Hospital for Sick Children)이다. 의사·간호사·오디올로지스트·특수교사 등 전문가들이 동등한 동료로 서로 협력한다. 이들 의료진은 환자나 가족에게 친절하다. 가정의나 전문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정부와 의료진이 시민 건강을 중심에 두고 논의하고, 진통을 겪으며 지금의 의료서비스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켰다. 사진은 캐나다 토론토 어린이병원 전경.
며칠 전 일이다. 코스트코 계산대에서 돈을 내기 직전에 직원이 말했다.
“어린이병원(The Hospital for Sick Children)에 기부하지 않으실래요? 2달러 이상이면 되는데요.”
코스트코에서는 1년에 서너 번쯤 이런 제안을 받는다. 거절하거나 망설인 적은 없었다. 직원은 내가 산 물건 가격에 기부금을 추가하고, 기부했다는 표시로 노란색 풍선 그림에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노란색 종이풍선들은 코스트코 한쪽 넓은 벽면에 날아갈 듯 가득 붙어 있다.
비록 적은 액수지만 매달 은행계좌 자동이체로 이 병원에 기부해온 지도 올해로 16년째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기부하고, 코스트코에서처럼 제안을 받을 때마다 선뜻 기부하는 것은 토론토 사람들에게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여러 매체나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어린이병원이 어떤 곳인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이병원은 캐나다가 자랑하는 병원이자 캐나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병원이다. 나처럼 자식이 그곳에서 수술을 받은 적이 있기라도 하면 그 고마움은 평생을 가게 마련이다. 말로만 듣던 ‘인술’을 실제로 접한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어린이병원에 기부 안하실래요?”
선뜻 제안에 응하는 토론토 사람들
그곳에서 ‘인술’을 접하고나면
그 고마움에 흔쾌히 기부할 수밖에
아이의 인공와우 수술을 하며 만난
병원 의료진들은 누구나 친절했고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면서
동등한 관계의 동료로 협력했다
회복까지 1년6개월, 날 감동시킨 건
의료 전문가의 존중과 배려의 태도
“환자를 친절하게 대하는 건 당연”
이렇게 문화와 제도가 개선되는 데
진통이 따르는 건 필연적일 지도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큰아이는 15년 전 어린이병원에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아이는 보청기를 끼던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소리를 잘 듣게 되었다. 아이는 올여름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달부터 직장에 나간다.
어린이병원에서 우리가 감동한 것은 아이가 소리를 잘 듣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이병원에서 검사하고 수술하고 특수교육을 받은 1년6개월 동안 우리는 ‘병원이란 모름지기 이래야 하는구나’ 하는 것을 거의 처음으로 알게 됐다.
병원에서 만난 사람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친절했다. 환자를 대할 때 모두가 웃는 얼굴이었다. 그 못지않게 놀라웠던 것은 의사·간호사·특수교사·오디올로지스트(Audiologist, 청력을 검사하고 보청기 같은 청각 관련 기계 상태를 점검·보완하는 전문가) 등 우리가 만난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위아래가 아닌 동등한 관계의 동료로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었다. 한국 병원을 자주 드나들었던 우리 눈에는 조금 낯선 광경이었다. 아이가 두 살일 때 한국의 모 대학병원에서 청각장애 판정을 받고 나서도, 우리는 병원에서 특수교육은 물론 특수학교나 특수교사에 대한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다(우리에게 특수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사람은 우리 같은 부모에게 보청기를 팔러 나온 회사 영업사원이었다). 그 병원에서는 특정 전문가가 다른 분야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시하는 경향마저 있어서, 우리 아이를 가운데 두고 전문가들끼리 의견을 교환하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 벌써 26년 전 일이니 그 병원의 그런 문화도 지금은 바뀌었을 것이다.
우리 아이는 어렵기는 했으나 보청기를 끼고 일상생활을 하고 학교 공부도 부지런히 따라갔기 때문에 캐나다에 살러 와서도 인공와우 수술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느 날 학교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으니 참석하라는 연락이 왔다. 청각장애 학생들을 담당하는 교육청 관계자가 소집한 회의였다. 교장과 2명의 담임교사도 함께한 회의에서 교육청 담당자가 말했다.
“지난 2년 동안 아이가 학교 생활을 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인공와우 수술을 받으면 큰 효과가 있을 거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인공와우 수술은 보청기를 끼고도 거의 들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인 줄 알았다.
교육청 담당자가 알려준 대로 우리는 수술신청서를 작성해 어린이병원에 보냈다. 한 달 만에 답장이 왔다. 병원에서 연락해온 사람은 뜻밖에도 오디올로지스트였다. 한국에서는 그저 청력을 검사하는 ‘기사’였으나 캐나다 어린이병원에서는 오디올로지스트가 아이의 검사와 수술, 재활교육에 이르는 모든 일정을 짜고 그 진행을 담당했다. 말하자면 입원 준비부터 퇴원에 이르는 과정을 총괄하는 지휘자였다. 아이는 오디올로지스트가 만든 시간표대로 일주일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청력검사, MRI 테스트, CT 스캔, 언어 능력 검사 등을 6개월에 걸쳐 하나하나 받았다.
모든 검사가 마무리되자 오디올로지스트는 회의를 소집했다. 거기에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와 간호사, 수술 이후 언어교육을 담당하는 특수교사가 참석했다. 그들은 검사 결과를 함께 검토하고 수술이 우리 아이에게 효과가 있을지 여부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아이의 장애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하는 모습도,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것도 처음 보았다. 따지고 보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 당연한 것을 어린이병원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벌써 십수년이 흘렀는데도 우리가 어린이병원에서 보낸 수술 당일의 그 하루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병원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우리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친절하게 안내했다. 아이를 수술실에 들여보낸 뒤 우리는 보호자 대기실에 가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 같은 환자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수술을 마친 의사들이 수술복을 입은 채 수시로 들어와 수술 결과를 가족에게 알려주었다.

필자 자녀는 토론토 어린이병원에서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다. 병원은 퇴원하는 어린이들에게 인공와우 수술 개발 국가인 호주의 상징 코알라 인형을 선물한다. 코알라 귀 뒤에도 수술 자국을 만들어놓았다.
수술실에 들어간 지 2시간쯤 지나자 우리 아이를 수술한 닥터 펩신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두건과 수술복 어깨에 땀이 배어 있었다. 수술을 끝내자마자 마스크를 벗고 바로 오는 길이었다. 벌떡 일어선 우리에게 “앉아서 들으세요”라면서 수술 결과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수술 부위가 안면 신경이 지나는 자리라 조금 까다로웠으나 수술은 잘되었으니 안심하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또 감동했다. 의사가 수술을 마치고 한달음에 달려와 환자 가족에게 그 결과를 알려주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는 해도, 그 또한 우리에게 그리 익숙한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닥터 펩신은 일어설 생각을 하지 않은 채 계속 말했다. “궁금한 거 더 없으세요? 무엇이든 괜찮으니 물어보세요.”
이후 입원실에서 하룻밤을 자고, 퇴원하고, 기계를 새로 받고, 병원에 있는 특수교사한테 교육 받는 과정이 1년 내내 이어졌다. 1년6개월 동안 우리가 쓴 돈은 수술 당일과 그 이튿날 이틀치 주차비로 냈던 17달러가 전부였다. 의료보험 제도 덕분에 병원비가 무료였고 고가의 기계를 무료로 지급받고, 무엇보다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은 더없이 기쁜 일이었으나 정작 우리를 감동시킨 것은 ‘무료’나 ‘뛰어난 의술’이 아니었다. 사람을 존중하고, 특히 장애인이나 환자와 같은 약자들에게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배려하는 의료 전문가들의 마음과 태도에 깊이 감동했다.
병원에서 이런 경험을 했으니 어린이병원 기부 권유라도 받으면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이민 와서 처음 가본 큰 병원에서 이런 경험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나는 캐나다 병원 하면 ‘친절하다’는 느낌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어떤 이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캐나다 의료의 질은 괜찮은지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환자들을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까지 포함한다면 의료의 질은 한국보다 훨씬 낫습니다.”
물론 내가 했던 경험이 전체를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어린이병원뿐만 아니라 가정의(패밀리닥터)와 다른 병원의 전문의를 만날 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그 어느 곳에서 만났든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태도는 한결같았다. 모두가 친절했다.
캐나다에서는 응급실을 제외하고는 1차 진료는 가정의를 통해서 하게 되어 있다. 한국 사람이라면 우리말을 할 줄 아는 한국인 가정의를 당연히 선호한다. 한국인 가정의가 이곳 한국 사람 모두를 감당할 만큼 많지는 않아서,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 가정의를 찾아가야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한국인 가정의라 해도 친절하지 않으면 한국 사람들에게도 외면받게 마련이다. 사람들이 가지 않으면 가정의는 수입이 그만큼 줄어들고, 오진이라도 하게 되면 제소되고 나아가 면허정지까지 당하는 경우도 있다.
캐나다 정부는 시민들에게 1년에 한번씩은 정기검진을 받으라고 권유한다. 의료보험 제도로 의료비가 무료인 까닭에 국가는 병의 예방에 큰 힘을 기울인다. 병이 깊어지면 국가가 그만큼 큰 비용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캐나다 시민 대다수는 1년에 한번씩은 가정의를 만난다. 여기서 병의 징후가 보이면 가정의는 2차 진료기관인 큰 병원의 전문의에게 환자를 보낸다.
평소 정기검진을 받지 않다가, 갑자기 심각한 병에 걸린다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전문의를 빨리 만나 수술 일정을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이겠으나 잡지 못하면 오랫동안 대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캐나다 병원 의사들의 태도가 어떠냐고 물어보면 거의 예외 없이 “친절하다”고 답한다. 이곳 의과대학도 진학하기가 어렵고, 의사들이 격무에 시달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너무 힘들어서 우리 아이는 절대 의사 시키지 않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의사도 있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환자에게 그렇게 친절한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나라의 문화도 작용하겠고, 대학을 마치거나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의대에 진학하니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인 스스로 ‘힘든 직업’을 선택한 만큼 소명의식 같은 것을 더 구체적으로 가지게 돼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얘기다. 이곳에서는 4년제 대학 졸업자에게만 의대에 지원할 자격을 준다.
최근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병원 가운데 하나인 마운트사이나이병원 의사를 만나서도 물어보았다. 그는 “의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환자를 치료하는 것인데, 아픈 사람을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뜻밖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마음에 안 들게 진료하거나 불친절한 의사가 있으면 환자가 병원당국에 항의 편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런 편지를 받으면 병원은 의사에게 반드시 경위서를 쓰게 한다. 의사가 잘못한 일이 없다 해도 바쁜 와중에 그런 경위서를 쓰는 것은 번거롭고 때로 불쾌한 일일 수밖에 없다.
만약 의사의 잘못이 확인되면 병원은 의사에게 주의나 경고를 하고, 그런 일들이 쌓이면 이동이나 진급을 할 때 당연히 불이익을 받게 된다(캐나다의 종합병원은 모두 국립이고 의사는 준공무원 신분이다). 의료 소비자들의 평가와 항의는 가정의나 전문의에 대한 좋은 평판도 만들어내지만 최악의 경우 밥줄도 끊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토론토의 버스기사들이 장애인들에게 친절할 수밖에 없는 것과 똑같다. 운전기사가 법이 정한 대로 하지 않으면 승객은 버스회사(공기업이다)에 불만 사항을 적은 편지를 쓰고, 그런 편지가 쌓이면 운전기사는 직업을 잃을 수밖에 없다.
캐나다 병원의 문화와 제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은 물론 아니다. 1960년대 초반 캐나다에서 의료보험 제도를 처음 시행할 때도 큰 갈등이 빚어졌다.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의사들이 파업으로 맞서는 바람에 외국인 의사들을 들여오는 등 큰 진통을 겪었다. 다만 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와 의료진이 시민 건강을 중심에 두고 전향적으로 논의한 결과 오늘 캐나다 시민들이 누리는 의료서비스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켰다. 제도와 문화를 개선하는 데 진통이 따르는 것은 필연적인 일일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