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잡스도 안 줬다니까요… 드러누워 통곡해도 절대 흔들리면 안돼

스마트폰, 잡스도 안 줬다니까요… 드러누워 통곡해도 절대 흔들리면 안돼

2019.12.27 17:04 입력 2019.12.27 17: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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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에서 아이를 구하라

“우리가 낳았지만 유튜브가 키웠다.” 연예인의 자녀 교육 방식을 코칭하는 MBC 예능 <공부가 머니?>에서 아홉 살 자녀를 둔 배우 김정태씨가 농담처럼 이 말을 ‘툭’하고 던졌을 때, 그 말이 쉽게 받아칠 수 없는 묵직한 직구 같은 고백이란 걸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안다. 우리 부부도 스마트폰을 달라며 조르는 네 살 아이와 하루 종일 씨름을 한다. 질 때가 더 많다. 산적한 집안일을 하다보면 아이는 ‘심심하다’고 보채고 결국 스마트폰을 내주게 된다. “너무 가까이 봐서는 안돼”라며.

스마트폰은 언어·운동·정서·감각 등 발달 저해…보채다가 안 되면 혼잣말도 하고 역할극도 하며 스스로 놀이 시작, 창의력과 과제 해결 능력은 이 과정서 생성

‘본방 사수’를 못한 아내는 아이를 재우고 뒤늦게 프로그램을 보고는 말했다. “(방송에 나온 전문가들의 조언은) 유튜브가 아이 발달에 영향을 미치니까 좀 덜 보여줘야 한다는 거지? 그래도 저 부모는 아이를 너무 잘 키웠는데…. 조금은 보여줘도 괜찮지 않을까.”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진행한 인생수업에서 “아이가 ‘엄마 심심해, 아빠 심심해’ 하며 보채도 미안해하거나 흔들리면 안된다”며 “아이들은 더 심심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의 운명”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보채다 안되면 포기하고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늘어놓고 스스로 ‘놀이’를 시작합니다. 인형을 가지고 놀며 혼잣말도 하고 역할극도 합니다. ‘별짓’ 다 하는 거예요. 심심해야 별짓을 합니다. 창의력과 과제 해결 능력은 별짓을 하는 과정에서 생기죠.”

■매일 10분 ‘디피’하라

아이는 눈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찾는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오자마자 스마트폰을 본다. 화장실 갈 때도, 잠들기 전에도 보려고 한다. 권 소장은 “스마트폰으로 24시간 보고 듣는 일이 아이의 뇌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뇌 속 신경세포들은 서로 연접해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 연결된 부위를 ‘시냅스(Synapse)’라고 부른다.

인지하고 생각하고 느끼고 경험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시냅스에 흔적을 남긴다. 동일한 일을 자주 하면 시냅스의 연결이 견고해진다. 처음 하는 일이 낯설고 어색하다가 이내 적응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건 시냅스에 처음으로 흔적이 남겨졌고 수차례 반복하는 동안 모양이 견고해졌기 때문이다. 뇌는 이런 방식으로 변화하고 발달한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원래 머리가 좋아서 잘하는 걸까요? 그보다는 영어로 말하고 표현하는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선택이 시냅스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뇌를 만들어내고 바꿀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우리에게 선택권으로 존재한다는 뜻이죠. ‘우리 뇌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이 뇌를 바꿀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적 발견 아닌가요?”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이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스마트폰으로부터 자녀를 구출하는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이 지난 16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에서 열린 인생수업에서 스마트폰으로부터 자녀를 구출하는 방법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은 조언한다 “어린 아이들은 타인의 행동 모방하려는 성향이 강하므로 ‘책 읽어라’ 말하지 말고 직접 보여줘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모방한다. 아이들은 보다 더 적극적이다. 인지기능이 발달하지 않은 신생아들도 부모의 표정이나 행동을 따라 한다. 우리 뇌의 ‘거울 신경’ 때문이다. 뇌과학자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그 행동에 관여하는 신경세포가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의 신경에는 남의 행동에 반응하고 따라 하는 ‘거울’이 있다는 뜻이다.

“신경에 ‘거울’이 달려 있다는 말은 부모에게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아이들은 누군가를 따라 하려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거죠. 무엇을 따라 하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부모는 ‘잘 보여주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과 싸우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싸우는 존재’가 돼야 하는 겁니다. 말로 하는 대신 보여주세요. 아이들이 엄마와 아빠를 본다 싶으면 빨리 책부터 펴세요. 읽지 않아도 돼요. ‘보여주기’라도 하세요. 애 앞에서 매일 10분만 책 읽는 모습을 ‘디피(보여주기)’한다면 아이도 반응할 겁니다.”

■‘별짓 다하는 시냅스’를 만들라

‘키가 크고 싶다’는 생각에 밥 잘 먹고, 운동하고, 키 크는 약을 먹어도 성장판이 닫힌 상태면 소용이 없다. 마찬가지로 뇌과학에선 시냅스가 모양을 만드는 데도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발달 단계에서 특정 능력을 습득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시기를 말한다. 예를 들어 언어의 결정적 시기에는 뇌가 언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한다.

으아앙~!! 스마트폰 주세요 달란 말이야

으아앙~!! 스마트폰 주세요 달란 말이야

권 소장은 “언어·운동·정서·감각·주의력·통제력·사회적 기술 등이 만들어져야 할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이런 다양한 발달을 막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배우는 정보의 효율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그는 “자녀들이 유튜브로 ‘언어’를 배웠다는 부모들도 있다. 하지만 언어가 발달하려면 아이들이 소리를 듣고 그걸 의미로 바꾸는 작업을 거쳐야 하는데 유튜브는 시각정보가 워낙 크다보니 ‘소리를 의미로 바꾸는 과정’이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 가다가 술 취한 사람이 하는 말은 집중하지 않죠?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를 맺은 것에는 집중하려 하고, 상관없는 것에 대해서는 집중하지 않아요.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식 중 하나가 ‘질문하고 답하기’인데 유튜브에서는 그런 방식을 기대할 수가 없죠.”

그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기계가 지능을 갖는 시대다. 우리 직업이 기계에 넘어간다. 아이에게 창의력을 키워주려면 별짓 다 하는 시냅스를 만들게 해야 한다. 아이가 스마트폰을 원한다면? 일단 10분만 참고 견디시라”고 말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선보인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자식들에게는 스마트기기 사용을 금지시켰다고 한다. ‘자녀들도 아이패드를 좋아하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잡스는 “아이들은 아이패드를 쓰지 않는다”고 답했다. 잡스의 공식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도 “잡스는 저녁마다 긴 식탁에 앉아 아이들과 책과 역사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아이패드나 컴퓨터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스마트폰이 자녀 발달 과정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대신 묻고 답하기를 통해 아이들과 폭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려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어른도 ‘스마트폰 정지’가 필요하다

아이들에게는 전화만 가능한 2G 휴대폰을 쥐여주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메신저 이용, 자료 검색은 PC를 쓰도록 한다면 제일 좋겠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권 소장은 “실리콘밸리에서는 아이들이 숙제를 위해 아이패드를 쓰는 경우에도 항상 거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쓰도록 한다. 심지어 보모들에게 아이를 맡길 때 ‘스마트폰을 보여주지 말라’는 조항을 집어넣어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며 “스마트폰보다는 PC를 이용하게 하고,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사용하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스마트폰을 ‘스마트폰 보관장소’에 모아놓고, 필요할 때만 갖고 와서 쓰게 하는 방법도 있다.

만약 안드로이드폰을 사용한다면 아이들의 스마트폰을 관리하는 데 보다 용이한 방법이 있다. 구글이 만든 ‘패밀리링크’라는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보자. 부모용 앱은 부모의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자녀용 앱은 자녀의 것에 설치하면 두 스마트폰이 ‘동기화’된다. 내 스마트폰으로 아이의 스마트폰을 관리할 수 있다. 데이터 이용이 가능한 시간대를 설정하고, 자녀가 사용할 앱을 선택할 수 있다. 그는 “어떤 앱을 허용할지는 아이와 상의해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제로 타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권 소장은 “아빠는 퇴근하면 집에서 맨날 스마트폰만 보면서 애들만 못하게 하면 아이들이 동의를 하지 않는다. 초등학생만 되면 반발감이 커진다”며 “우리도 같이해야 한다. 엄마·아빠·아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해서 가족 모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시간대를 만들라”고 했다.

강의를 다 듣고보니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일단 10분을 버텨보기로 했다. 별짓 다 하는 시냅스 만드는 데 부모가 10분 정도 투자 못하겠냐 싶었다. 심심하다고 떼쓰는 아이 옆에서 두꺼운 책을 꺼내 ‘디피’를 했다. 나보다 먼저 이 ‘전선’에 뛰어든 ‘야꿍이’ 아빠, ‘시윤이’ 엄마, ‘지수’ 아빠, ‘승우·지우’ 엄마, 그리고 수많은 동지 부모들, 건승을 빈다.

<시리즈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