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남자처럼’ ‘여자처럼’ 그게 뭔데 - 아이슬란드

여자반, 책상 오르내리는 신체활동 여자아이들의 강화교육 시간. 신체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책상을 타고 오르고 창밖을 내다보며 담력을 키운다.

여자반, 책상 오르내리는 신체활동 여자아이들의 강화교육 시간. 신체활동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책상을 타고 오르고 창밖을 내다보며 담력을 키운다.

성평등 국가로 이름 난 아이슬란드에서 성별로 반을 나눈다? 
어릴수록 ‘전통적 성역할’에 갇혀 장난감·옷 고르고
‘남자는 저러면 안돼’ ‘여자는 저러면 안돼’라는 역미러링에 빠져
성분리 교실에선 젠더편향적 책이나 교구 없이 ‘강화교육’ 
아이들 성별 눈치보지 않고 스스럼없이 표현하고 관계 맺어

교실 문을 여니 경쾌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여름 햇살이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월요일 아침.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 중심가에 자리 잡은 햐틀리 뤄이파우스보르그(Hjalli Laufasborg) 유치원 3층에서는 ‘강화교육’ 수업이 펼쳐지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은 여자아이들이 온몸으로 책상을 타고 올랐다. 엎드린 채로 배를 밀어 책상 끝까지 이동하면 다시 내려갈 차례. 아이는 앉은 채로 엉덩이를 걸치고 앞으로 뛰어내렸다. 다음 아이는 뒤로 돌아 배를 걸치고 내려갔다. 창틀로 올라서면 뜰 아래를 내려다보며 옆 창문으로 이동했다. 마지막 창문을 등지고 선 아이는 바닥으로 뛰어내리며 외쳤다. 

“나는 강하다.” 

낯선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것도 잠시뿐. 아이들은 줄을 지어 계속 책상을 오르내렸다. 입은 옷도 제각각이었다. 다들 유치원 로고가 그려진 유니폼이지만 파란색으로 위아래를 맞춘 아이도 있고, 빨간색 티셔츠에 파란 바지를 입은 아이도 있었다. 아침마다 아이들 스스로 입고 싶은 색을 고른다.

문을 열고 옆방에 들어서니 남자아이들이 두 줄로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역시 빨간 옷과 파란 옷을 입은 아이들이 섞여 있다. 창문을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머리빗을 들고 창을 등지고 마주 앉은 아이의 머리를 빗겨줬다. 낯선 사람이 보이니 자꾸 돌아보며 눈을 맞췄다.

머리를 다 빗고 나자 선생님이 창을 등지고 앉은 아이들의 손바닥에 차례차례 로션을 따라줬다. 아이들은 로션을 마주 앉은 상대의 볼에 발라줬다. 아이 한 명이 간지러운 듯 키득키득 웃자 주변 아이들도 키득거렸다. 

“매니큐어 바를 사람?” 

아이들은 먼저 선생님이 나눠준 로션을 손에 골고루 발랐다. 그다음엔 두 손을 바닥에 대고 조용히 기다렸다. 

첫번째 아이의 작은 손톱 열 개에 매니큐어가 발라졌다. 호호 불면서 마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두번째 아이가 양손을 단풍잎처럼 펼쳤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남자반의 강화교육은 서로 껴안아주기로 마무리됐다. 상냥한 인사말도 나눴다.

“좋은 친구야, 너는 눈이 예쁘구나.” 

“좋은 친구야, 넌 심장이 아름답구나.” 

■ “남녀 분리만으로 아이들이 달라져요” 

1989년 9월 문을 열어 30년째를 맞은 햐틀리 유치원은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의 반을 나눠 교육한다. 성평등 국가로 이름난 아이슬란드에서도 드문 일이다. 

이 유치원 아이들은 ‘남자 같다’ ‘여자 같다’라는 말을 사용할 일이 없다. 여자반 아이들은 씩씩한 행동을 하는 친구를 보아도 ‘사내애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기준이 될 남자아이들이 교실에 없기 때문이다. 남자반에서도 상냥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계집애 같다’고 놀리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행동이라는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이다. 

성분리 교실은 전형적 성역할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이다. 햐틀리 유치원 설립자 마르그렛 파울라 올랍스도티르는 30여 년 전 유치원 교사 시절 남자애들은 여자애들을 괴롭히고, 여자애들은 패거리를 지어 노는 행동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했다.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유치원 남자반 따로 여자반 따로…여자는 씩씩, 남자는 상냥해졌다

“어린아이일수록 전통적인 성을 기준으로 장난감이나 옷을 골라요. 남성성과 여성성을 너무 작은 상자에 가두기 때문이죠. 가능하면 더 어린 나이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아이들은 자신과 다른 행동을 하는 친구를 보면 ‘저건 진짜 여자애의 행동이 아니야’ ‘저건 진짜 남자애의 행동이 아니야’라고 판단한다. 상대 성의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 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올랍스도티르는 상대의 행동에 대한 반발로 전통적인 성행동이 고착되는 것을 ‘역미러링’(reverse mirroring)이라 표현한다. 그가 역미러링을 막기 위해 한 일은 딱 한 가지다.

“반을 분리했을 뿐인데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여자애들은 씩씩해지고, 남자애들은 상냥해졌죠. 60~70%는 아이들이 스스로 하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할 일은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각각 약한 부분을 강화해주는 것 정도죠.” 

햐틀리 유치원의 여자아이들은 뛰어내리기, 맨발 페인트놀이 등의 신체활동을 즐긴다. 옷이 더러워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고 궂은 날씨에도 야외활동을 한다. 햐틀리 유치원의 남자반은 안아주기와 칭찬하기 등 우애활동의 비중이 높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음식 만들기 놀이나 그림 그리기를 즐긴다.

성분리 교실이 처음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었던 것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로 민주적 투표에 의한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던 나라이기에 강한 여자아이를 키우자는 내용에는 큰 거부감이 없었다. 그러나 남자아이들에게 상냥함을 가르치자고 하니 ‘여성적인 활동을 강요한다’는 오해가 생겼다. 설립자 올랍스도티르는 ‘성을 바꾸려 한다’는 명목으로 고발도 당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부모들의 강력한 지원이 큰 버팀목이 되었죠.”

1997년부터 햐틀리 유치원에서 근무한 옌시나 엣다 헤르만스도티르 원장은 부모들의 만족감은 교사들이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에서 온다고 했다. 

총인구가 35만명 남짓인 이 나라에서 햐틀리 모델을 적용하는 유치원은 총 14곳이다. 전국 미취학 아동의 8% 정도가 이 계열 유치원에 다닌다. 이곳 뤄이파우스보르그의 정원은 107명이며, 현재도 수백명의 아이들이 대기 중이다. 햐틀리 계열 초등학교는 3곳이 있다.

■ 민주주의를 배우는 ‘선택 미팅’ 

이곳 아이들은 최소 하루 3번의 선택을 한다. 그중 하나는 그룹놀이를 위한 ‘선택 미팅’이다.

“공작놀이 할 사람?” 

둘러앉은 13명의 사내아이들 중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방을 나섰다. 다른 아이 한 명도 손을 들고 역시 방을 빠져나갔다. 

“공작놀이는 정원이 찼구나. 블록놀이 원하는 사람?” 

선생님이 손을 든 아이들의 이름을 태블릿 속 블록놀이 자리에 입력했다.

야외놀이를 원하는 아이들은 선택미팅 중간에 자유롭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각자의 옷과 신발, 모자 등이 보관돼 있는 준비공간에서 날씨에 맞는 옷을 갖춰입고 계단에 앉아 나머지 아이들을 기다린다. 선생님이 마지막 아이에게 선블록을 발라주자, 아이들은 차례차례 밖으로 나갔다.

선택미팅에서 공작놀이를 택한 남자아이들. 공작놀이는 정원이 2명뿐이라 금방 마감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남자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선택미팅에서 공작놀이를 택한 남자아이들. 공작놀이는 정원이 2명뿐이라 금방 마감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남자아이들은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선택미팅에서 바깥놀이를 택한 여자아이들. 모래놀이장으로 들어오면서 뛰어내리다 함께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선택미팅에서 바깥놀이를 택한 여자아이들. 모래놀이장으로 들어오면서 뛰어내리다 함께 넘어지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유치원에는 젠더편향적인 책이나 기성 장난감들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나무블록이나 색깔찰흙처럼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교구와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인형들만 갖춰져 있다. 더 단순한 것이 더 많은 생각을 유도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교구는 단순하지만 구성은 체계적이다. 그룹놀이 시간에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놀이는 블록 코너, 공작 코너, 클레이 코너, 놀이방, 실외놀이, 블록방, 물놀이 등 7가지다. 각 놀이의 정원에는 제한이 있지만, 선택하는 순서는 공평하게 돌아간다. 선택이 끝나고 5~10명으로 나뉜 작은 모임이 만들어지면 아이들 중에서 그날의 리더를 정한다. 매일 어떤 그룹놀이를 했는지는 한달씩 통계를 내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자기표현을 어려워하는 남자아이들도 의사표현하는 법을 배운다. ‘선택미팅’은 작은 민주주의를 경험하는 시간이다. 

하루의 대부분 시간은 남녀 분반으로 운영하지만, 하루 한 번의 수업은 남녀 아이들이 함께 어울린다. ‘상호 존중’을 배우기 위해서다. 이날은 남자아이들이 먼저 줄을 지어 서서 여자아이들의 참여를 기다렸다. 카펫에 둘러앉은 여자아이들 중 함께 활동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었다. 공동활동을 원치 않는 아이들은 다른 방으로 이동했다. 

<b>하루 한 번 합반, 함께 활동</b> 남녀 어린이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은 빨강과 파랑 중 원하는 색의 옷을 골라 입는다

하루 한 번 합반, 함께 활동 남녀 어린이들이 함께 손을 맞잡고 춤을 추고 있다. 아이들은 빨강과 파랑 중 원하는 색의 옷을 골라 입는다

남녀 아이들이 함께 서서 스트레스를 푸는 ‘옴~’ 호흡을 하고 있다. 하루 한 차례 있는 남녀 합반 수업은 상호 존중을 배우기 위한 시간이다.

남녀 아이들이 함께 서서 스트레스를 푸는 ‘옴~’ 호흡을 하고 있다. 하루 한 차례 있는 남녀 합반 수업은 상호 존중을 배우기 위한 시간이다.

남녀 한 명씩 손을 잡은 아이들은 방을 한바퀴 크게 돌았다. 그리고 커다랗게 원을 그리고 둘러서서 “옴~” 하며 호흡을 내뱉었다.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 그런지 사뭇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긴 호흡으로 숨을 내뱉는 이 호흡법은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기 위한 순서다.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나눈 아이들은 다시 손을 잡고 방을 한 바퀴 돌아 원을 만들었다. 아이슬란드어로 ‘머리 어깨 무릎 발’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한 뒤엔, 흥겨운 음악에 맞춰 손을 맞잡고 춤을 췄다. 여자애들은 담담했지만, 남자아이들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꺄르르 웃었다.

90분의 그룹수업이 끝나니 여자아이들이 먼저 말했다. 

“카이리 비누르(‘좋은 친구’의 남성형)야, 같이 해줘서 고마워.” 

남자아이들이 답했다. 

“카이라 빈코나(‘좋은 친구’의 여성형)야, 같이 해줘서 고마워.” 

■ “너는 너 자신이야” 

헬가 라우라 호르데는 졸업한 6살 딸 잉가에 이어 3세 된 아들 하프소르를 이 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그의 아들은 엄마 아빠를 ‘좋은 엄마’ ‘좋은 아빠’라 부른다.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유치원 남자반 따로 여자반 따로…여자는 씩씩, 남자는 상냥해졌다

“처음에는 딸들에게 더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들을 보내면서 남자아이들에게 더 필요한 교육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남자아이들은 은연중에 ‘강해야 한다’는 남성성을 강요받으며 자라요. 그리고 스스로를 잘 표현하지 못하는 편이죠. 이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훈련을 많이 해요. 그리고 아이가 어떤 모습이건 ‘너는 너 자신이야’라고 존중해주죠.” 

상담학을 전공한 그는 햐틀리의 ‘언어’도 중요한 측면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등원하는 아이를 안아주며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들을 우리에게 맡겨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한다. 단체행동 중 혼자 돌아다니는 아이에게는 “너 지금 좀 혼란스럽구나(헷갈리나 봐), 지금은 앉는 시간이야”라고 한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언어를 그대로 배운다. 친구가 나쁜 행동을 해도 화를 내는 대신 “멈춰, 좋은 친구야. 너 지금 좀 혼란스럽구나”라고 말한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유치원이 법정 교육기관이며 만 1세 아동의 47%, 만 2~5세 아동의 95~97%가 유치원에 다닌다. 햐틀리 유치원의 학비는 공립에 비해 15% 정도 비싸다. 그러나 그는 “돈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는 게 행복하다고 매일 말하는 걸요.” 

피에투르 엣게르트손은 몇 년 전 이곳을 졸업한 소르핫들라 로아의 아빠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중 방학을 맞아 계약직 교사로 일하게 됐다. 그는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기 전부터 이미 ‘좋은 친구’와 같은 햐틀리 용어를 육아 전반에 사용했다. 아이엄마이자 지금은 헤어진 여자친구의 어린 막내동생이 이곳에 다녔기 때문에 햐틀리 교육에 대해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성교육, 이젠 젠더교육이다]유치원 남자반 따로 여자반 따로…여자는 씩씩, 남자는 상냥해졌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신생아의 70% 이상(2015년 기준)이 혼외 관계에서 출생한다. 국가에 동거 등록을 하면 결혼한 부부와 거의 동등한 유급 출산휴가, 양육수당, 세제 혜택 등을 받기 때문에 결혼 여부가 출산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 또한 동거 중 아이를 낳아 사회보장번호가 나오자마자 유치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부모 가정이건 부모가 정식 부부가 아니건 부모의 성이 같건, 아이들이 서로의 가정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지금은 집 근처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8세 로아는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모두가 친구였던’ 유치원 시절을 그리워한다. 

“로아가 세 살일 때, ‘너는 내 생일에 못 와’라고 한 유치원 친구가 있었어요. 선생님들이 듣고 ‘아니야, 모두가 친구야. 모든 친구들이 너의 생일에 갈 거야’라고 계속 말씀해주셨죠. 덕분에 남녀 아이들 모두 정말 친하게 지냈어요. 모든 건 존중하고 존중받는 데에서 시작되거든요.”

유엔아동협약을 기반으로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독립단체 ‘어린이옴부즈맨’(UMBOÐSMAÐUR BARNA)의 수석 법률고문 구드리두르 보틀라도티르는 “사회가 다양성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더 어릴 때부터 자기 존중과 타인 존중에 대해 교육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평등은 결국 자신과 타인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되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나이 때부터 이런 존중의 장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030600085&code=940100#csidx89f210bed058ed3b1792d4257e0e8c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