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층 이사 왔어요” 아파트 녹인 일곱 살 꼬마 쪽지

[중앙일보] 입력 2011.12.27 00:17 / 수정 2011.12.27 15:44


‘12층에 이사 왔어요! 자기소개입니다. 힘세고 멋진 아빠랑 예쁜 엄마와 착한고 깜찍한 준희 귀여운 여동생 지민, 저희는 12/16일 날 이사 왔어요, 새해복만이 바드세요-1206호사는 준희올림’ ‘준희야 이사 와서 반가워 앞으로 보면 인사하고 지내자 항상 웃는 얼굴로-605호’ ‘산타할아버지께서 우리 통로에 큰 선물을 주셨구나 ㅎㅎ 모두가 행복해하니 떡 잘먹고 반갑다-406호 아줌마가’.

 충북 청주시 용암동 건영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지난 22일 정성 들여 쓴 꼬마글씨에 알록달록 색칠한 스케치북 벽보가 붙었다. 이 아파트에 이사 온 7살 꼬마 준희는 이웃에 사는 어른들께 첫인사를 했다. 이웃 주민들은 손 글씨로 작성한 메모지로 준희네 가족을 환영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수만 명에게 퍼지는 위력은 없을지라도 따뜻한 손 글씨에 담긴 이웃의 정이 연말 한파를 따스하게 녹이고 있다. 글=강정현 기자

사진=장범종 중앙일보·canon 대학생 사진기자

초등학교 시절 학교 부회장까지 지냈던 여중생이 학교 폭력에 시달린 충격으로 지적장애 판정까지 받은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27일 청소년폭력예방재단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경기도 하남시 모 여중에 다니던A(14)양은 또래 6∼7명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조사결과 이들은 서울에서 이사왔다는 이유로 A양을 괴롭히기 시작했고 발로 배를 걷어차고 몽둥이로 때리는 등 마구 구타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부회장을 할 정도로 활달했던 A양은 폭력에 시달린 끝에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공간지각력이 떨어져 현재 하남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고 있다.

재단 측은 "A양 어머니가 학교 측에 가해 학생들에 대한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지만 교장이 바뀌면서 유야무야 끝났다"고 전했다.

지난 9월 말 서울 구로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던 B(17)양도 같은 급우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 뒤 심장약을 과다섭취해 자살을 시도했지만 어머니가 먼저 발견해 목숨을 건졌다.

가해자들은 협박성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B양의 머리에 가래침을 뱉는가 하면 학교에서 옷을 벗기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B양 가족도 가해학생들에게 강력한 처벌을 원했으나 학교 측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조사에 미온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B양은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다른 고등학교로 전학해 1학년 과정부터다시 공부할 예정이다.

청소년폭력예방재단 유해인 간사는 "심각한 학교 폭력이 발생해도 경찰수사는커녕 학교에서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무마하기에 급급하다"고 말했다.

유 간사는 또 "학교폭력 피해를 당하면 심리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겐 간과되기 일쑤"라고 지적했다.

A양은 위암 2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와 함께 기초생활수급비로 생활하고 있으며,B양은 자폐장애가 있는 오빠, 교통사고로 몸이 불편한 어머니와 살고 있다.
연합뉴스
아는 아들 피해, 반년 넘게 모른 엄마도
[학교폭력 해결, 함께 나서야] <상> 친구들아, 방관하지 말자
신고하면 "찌질" 낙인… 또래집단 침묵 당연시
SNS 이용한 괴롭힘 늘어 교사 지도도 쉽지 않아
입력시간 : 2011.12.27 02:37:38
수정시간 : 2011.12.27 10:21:41
집단 괴롭힘 끝에 지난 20일 투신자살한 대구 중학생 A(13)군 사건은 우리사회 뿌리깊은 학교폭력의 실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주변의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한 피해자, 죄의식을 모르는 가해자, 방관하는 목격자들, 속수무책인 학교와 교육당국이 비극을 키웠다. 사회 전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될 때다. 약육강식의 정글과도 같은 교내 폭력과 괴롭힘 앞에서 학생들은 왜 무기력한지, 폭력이 폭력을 낳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교사와 학교와 가정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3회에 걸쳐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해 본다.

#"어디서 몇 대를 맞았는지, 우리 애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전교생이 다 알지만, 교사나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장님 신세가 되는 게 학교폭력이더라고요."

서울 동작구 N초등학교 학부모 L씨는 지난해 말 아들 P(12)군이 같은 학교 남학생들로부터 집단폭행과 성추행을 당한 일을 뒤늦게 알고 경악했다. L씨를 더욱 충격에 빠뜨린 것은 자신이 반년 넘게 몰랐던 사실을 전교생이 다 알고 있었다는 것. L씨는 "어쩜 그렇게 한 명도 신고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울먹였다.

#학교폭력 상담 베테랑인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클리닉센터 팀장이 자주 듣는 교사들의 하소연이 있다. "우리 반에 '왕따'가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신고하라고 해도 애들이 말을 안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냐"는 것이다.

김 팀장은 "고자질하면 같이 당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퍼져있는 또래집단이 침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이들의 입을 하루아침에 강제로 열게 할 방법은 없다. 근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잔인한 방법으로 심화하고 반복되는 학교폭력, 이를 누구보다 먼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가해학생 연령대가 어리면 어릴수록 자신이 남을 때리고 괴롭힌 사실을 영웅담처럼 소문 내기 쉽다는 속성 때문이다. 피해학생도 부모나 교사보다는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하지만 많은 경우 주위 학생들은 입을 다물고 만다. 문제를 가장 먼저 알게되는 학생들이 방관함으로써 자살과 같은 더 큰 피해로 이어지는 것이다.

도우면 같이 당한다

초등ㆍ중학교 시절 3년간 학교폭력과 집단따돌림에 시달려왔다는 서울 노원구 K고 1학년 K(18)군은 "교사에게 말한 사실이 들통나면 더 많은 애들에게 '찌질하다'는 낙인이 찍힌다"며 "이게 두려워서 나도, 같은 반 애들도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휴대폰, 메신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교사나 부모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이버 공간에서 괴롭힘이 이루어지는 사례일수록 이 같은 경향은 심하다.

그러나 학교는 사실상 속수무책이다. 김승혜 팀장은 "보통 학교에서는 학생부 교사에게 신고하라고 하거나, 나무로 된 신고함을 하나 걸어두고 '열심히 신고하라'고 말하는 게 대책의 전부"라고 말했다. 신철균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은 "학업성취도를 이처럼 중시하는 환경에서 교사들도 생활지도보다 수업에만 몰입할 수밖에 없고, 이런 교사에게 학생들이 정서적 유대감을 느끼거나 신뢰를 갖고 도움을 요청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외면=가해' 인식교육 절실

전문가들은 학생들에게 '자신의 외면이 가해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정실 전국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 회장은 "아이들은 직접 말해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나만 아니면 된다', '나는 관계 없어'라고 생각하기 쉽다"며 "외면과 방관이 학교폭력이나 괴롭힘을 유발하는 교실 안 권력을 지탱하는 일종의 가해행위라는 점을 명확하게 말과 글과 영상 등으로 가르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교실에서 방관자의 부정적 면모를 표현한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방관학생 교육'을 한다. 전 회장은 "이런 교육 없이는 학생들이 폭력 장면을 보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재미있어 하면서 제2, 제3의 가해자가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움 찾기 훈련' 의무화해야

이러한 방관학생 교육에서는 단순히 신고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행동이 필요한지 '훈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대부분 청소년들이 신고센터 전화번호를 알아도 '상담사가 불친절할 것 같다',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단순한 이유로 전화를 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대안으로 하 원장은 학교에서 도움찾기훈련(Help Seeking Program)을 의무화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학기초에 상담기관 리스트를 배포하고 직접 방문해 상담사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익명성은 어떻게 보장되는지 보고 듣고 경험하게 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직접 몸으로 겪어 봐야 '신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김승혜 팀장도 "학교의 완전한 무기명 소통체계를 구축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훈련, 홍보를 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방관학생들이 눈을 감지 않고 입을 열도록 하는 노력이 '그물망식 학교폭력 감지 체계' 구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감 낮을수록 남의 불행 즐긴다
  • 2011.12.12 09:21


남의 불행에 속으로 고소해 하는 심리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연구진은 심리학에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용어로 불리는 이런 감정이 우월한 상대에 대한 질투심을 누그러뜨리고 자기긍정을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미국 심리학회가 발간하는 `이모션'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여자 대학생 40명과 남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자신감을 평가한 뒤 누구나 부러워할 자리에 취직할 가능성이 높은 이른바 `잘 나가는' 대학생의 면접 기록 2건을 읽도록 했다.

이어 이 학생의 지도교수가 학생의 연구에서 큰 결함을 발견했다고 밝히는 다른 면접 내용이 소개된다.

그 다음 피실험자들에게는 자신의 `샤덴프로이데'가 어느 정도인지를 나타내는 다섯개의 표현 중 동의하는 것에 표시하라는 주문이 주어진다. 예를 들면 "그에게 일어난 일을 즐겼다" "속으로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등이다.

실험 결과 자신감이 낮은 학생일수록 잘 나가는 학생에 더 위협을 느끼며 더 강한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감의 정도를 불문하고 위협을 많이 느끼는 학생일수록 샤덴프로이데를 더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이어 피실험자의 절반에게 그들의 의견을 매우 중요하게 받아들인다는 인상을 주어 자신감을 북돋워 준 뒤 같은 면접 기록을 다시 읽도록 했다.

이 때 자신감이 낮은 학생들은 여전히 샤덴프로이데를 더 많이 느꼈고 여전히 성취도 높은 학생에게 위협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감이 높아진 학생들은 질투 대상 학생의 실패에서 전보다는 고소함을 덜 느끼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은 "자신감이 낮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든 기분이 나아지려고 애쓰며 이때 남의 불행을 보면 샤덴프로이데를 느낀다. 이 연구에서는 사람들의 자신감이 높아지면 굳이 남의 불행을 보고 기분이 좋아질 필요가 없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료의 작은 실수에 고소함을 느끼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평생 몇 차례는 겪는 일이지만 연민이나 동정심 없이 남의 큰 불행에 깊은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