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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모네의 해돋이를 위한 침묵]
황 전
친구에게,
며칠 전 자네가 모네의 [해돋이] 그림 평을 내게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네.
“모네가 해돋이를 출품한 그날부터 많은 그림 평론들이 있었겠지. 물론 그러한 평론들은 그림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네. 왜냐하면 이 해돋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뼈 속까지 스며드는데 도대체 왜 그러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네. 자네라면 이 의문을 풀어 줄 것 같아서 내가 이렇게 부탁하는 걸세, 부탁하네.” 하고
친구여, 지금도 자네의 간절한 음성이 가슴을 파고
들기는 하나 자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네.
친구여, 화가들에게는 평론가가 필요하기는 하나 그 평론은 객관적이어서 지식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네같이 내적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네. 친구여, 한번 생각해 보게나. 누가 있어 예술작품을 평론한단 말인가?
물론 평론을 통해서 작가의 가치를 올리고 그림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좋은 면도 있다네.
그러나 진정한 화가는 그러한 것에는 관심 없다네. 오직 순간순간을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진정한 존재의 비밀을 드러낼 뿐이라네.
친구여, 생각해 보게나. 누가 그림을 보고 작가의 존재 비밀을 평론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할 수 없다네.
미안하네.
자네가 오해를 할까봐 이런 긴 서두를 쓸 수밖에 없네.
친구여, 사실 나도 자네처럼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물안개가 뼈 속까지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네.
친구여, 자네와 내가 똑같이 그런 경험을 했다면 아마 그것은 우리가 젊은 시절에 흑산도(黑山島)에 잠시
여행을 갔다가 생긴 일 때문인 것 같네. 그때 사건을 적어볼까 한다네. 이 글을 본다면 자네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네.
우리가 흑산도에 도착해보니 주변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특히 주변에 많은 섬들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지. 그래서 우리는 이른 아침에 섬들을
구경하려고 해돋이 그림에 그려져 있는 그런 배를
빌려서 서툰 노를 저어가며 방파제를 벗어나
섬들을 향해 가고 있는데, 눈으로 보기에는
가까운 섬들이 막상 노를 젓고 가보니 생각보다
훨씬 멀리 있는 섬들이었지. 그때 우리는 젊어서 두려움이 없었지.
그래서 무작정 섬만 바라보며 노를 저어 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밀려오면서 우리는 순식간에 안개 속에 갇혀 버렸잖아. 누군가 바다는 변덕쟁이라더니 그때 우리가 정말 실감 했었지.
그때 우리는 정말 막막했었네.
밤은 별이라도 떠 있는데 태양이 아직 떠오르지 않는 이른 아침안개는 우리들을 아주 작은 공간에 집어넣고 숨만 겨우 쉬게 만들 뿐, 방향 감각을 잃게 만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노도 젓지 못하고 멍하니 바닷물만 바라보고 있었지.
사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네. 우리는 젊은 나이에 처음으로
서로 오랜 침묵을 했었지.
우리의 침묵이 서서히 굳어 가고 있을 때 갑자기 안개가 옅은 연분홍색으로 물이 들면서 해풍이 불어오기 시작했었네.
해풍이 점점 세차게 불어오자 안개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하면서 붉은 태양이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것이 보이는데 정말로 장관이었잖아!
나는 그때처럼 태양을 아름답게 본 적은 없었다네.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 해맑은 태양이 옅은 물안개와 해풍에 의해 서서히 걷히고 있는 안개에 젖어 있는 모습에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할 말을 잃었었지.
친구야, 태양이 점점 떠오르면서 그 붉은 빛에 젖어가는 옅은 안개와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파란 바닷물 빛, 이러한 빛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모네가 그린 해돋이를 그대로 연출하고 있었잖아.
친구야, 우리가 모네 [해돋이] 그림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은 해돋이 그림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해돋이 그림과 같은 상황에 있었던 추억 때문이라네.
친구여, 나는 모네의 해돋이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모네가 해돋이를 그릴 수밖에 없는 그 상황을
아주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 몇 자
적어봤네.
아마 모네는 많은 화가들이 부유층으로부터 주문을
받아 그린 그림인 낭만주의, 사실주의, 자연주의 같은
그런 틀의 그림들, 다시 말하면 그러한 그림들이 유행이란 이름하에 안개처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눈을 멀게
하여 고정된 시각을 갖게 하고 사람들의 정신을
흐리게 하는 무엇인가를 알고는 있었네.
그러나 그것을 사람들에게 무엇으로든 보여줄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바다로 나가 해돋이를 보고나서 그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자 그 유명한 인상 해돋이가 탄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네.
그래서 모네의 해돋이를 보면 존재의 비밀이 붉은 태양으로 승화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네.
모든 사물들이 단 한순간도 머무르지 않고
변해가는 에너지 파장에 자신의 존재 비밀과도 같은 태양의 파장을 섞어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비밀까지 드러내 보이려는 참된 화가 중에 한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네.
나는 모네를 좋아 하지만 그가 남긴 말을 더 좋아 한다네.
“직접 경험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니면,
나는 그 어떤 것도 믿지 않는다.”
친구여 명심하게. 이러한 의지가 없으면 결코 [해돋이]와 같은 걸작을 그릴 수가 없다네.
친구여, 자네 덕분에 옛 추억과 모네의 해돋이를 다시 생각하게 되어 기쁘다네.
* 모네 수련연작 :: 수련연못/청색수련/흰색수련연못 작품해설
모네(Claude Mnet, 1840~1926)는 인상주의 화가다.
모네는 모든 그림의 주제를 "빛"으로 삼고,
보이는 모든것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다.
모네의 가장큰 업적으로 여겨지는 연작은
189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그려졌다.
건초더니, 포플러, 루앙대성당, 런던풍경,
베네치아 풍경등을 연작으로 그렸고,
그의 나이 57세인 1897년부터 86세로 사망할때까지
수련연작에 매달렸고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모네의 연작이 시작된 계기는 바로 1890년에
모네가 자신의 자녀들과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지베르니에 정착하여 정원의 꽃, 나무,
연못 등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였다.
이때 모네는 직접 정원을 가꾸고 수련과 수생식물,
연못위에 일본식 다리를 짓고, 꽃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정원에 애착과 열정을 보이면서 모네의 작품의
양상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곳에서 모네는 수련연작을 제작하였는데
수련연작의 개수는 250점에 달한다.
사망직전까지 백내장으로 시력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작품들이 추상적으로 단순화 되는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네의 연작중 '수련연작'은 단연 최고의 작품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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