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대장 존」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 」 등으로 유명한 존 버닝햄의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여자애는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요. TV도 보고, 장난감도 가지고 놀지만 늘 외롭고 쓸쓸하지요. 하지만, 아이의 옆에는 항상 신비한 토끼 알도가 있습니다. 외로운 아이의 내면과 판타지의 세계가 잘 어우러져 나타난 수작이에요.
알도는 짖궂은 친구들로부터 주인공을 보호해 주고, 무서운 꿈을 꾸었을 때는 곁에 살짝 와 줍니다. 아이가 생각해 낸 상상의 친구 '알도'는 장난감도, TV 보다도 '사랑'과 '위로'를 바라는 아이의 바램을 간절하게 나타내고 있어요. '나는 행복해' 하면서도 별로 즐거워보이지 않는 소녀의 얼굴이 그림책을 읽는 이에게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자 소개
존 버닝햄(John Burningham)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데려다놓아도 친구들하고 어울리지 않고 무심한 얼굴로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아이였고, 청년 시절에는 병역을 기피하면서까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완강히 자신을 지키는 좀 독특한 성향의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는, 관습을 거스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기로 유명한 닐 섬머힐 학교를 다녔다. 미술 공부는 런던의 센트럴 스쿨 오브 아트에서 했는데, 거기서 헬린 옥슨버리를 만나 1964년에 혼인하게 되었다. 같은 해에 첫 그림책 《보르카》로 케이트 그린어웨이상을 수상했다. 헬린 옥슨버리도 남편의 영향을 받아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해서, 뛰어난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이 되었다.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 스미스,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책 표지 글
파르끼리한 노란색 스웨터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한 플리츠 스커트를 입은, 결코 세련되었달 수 없는 여자 아이가, 키도 자기하고 엇비슷하고, 자기만큼이나 세련되지 못한 토끼와 어깨동무를 하고 앞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단춧구멍만한 눈과 얄팍한 입술은, 이 꼬질꼬질해 보이는 못난이 토끼 인형이 너무도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다. "얘가 바로 알도예요!" 이렇게 신이 나서 외치는 달뜬 목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다.
어른들이 이제는 있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어린 시절을 돌이켜볼 때에 떠올리는 모습대로, 이 아이의 환한 표정은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어만 보인다. 하지만 정말로 어린 시절을 어렴풋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어린 시절은 언제나 이런 모습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어린 시절에도 그 나이만큼의 고민거리와 걱정거리가 있게 마련이니까.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정말 신이 나게" 맛있는 선데이를 먹고 있을 때에도, "아주 많은" 장난감을 갖고 놀 때에도, 언제나 부러운 눈으로 다른 아이들을 힐끔거리는 이 아이의 굳은 얼굴은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좀체 펴지질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뚱한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가장 환한 얼굴로 바꾸어 놓는 마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알도"라는 마법의 주문이다. 마음 맞는 짝패나 마음을 터 놓는 친구는 어른이 되어서도 당연히 가질 수 있지만 알도 같은 친구는 꼬마들이 아니면 절대로 가질 수 없다. 스누피 이야기에 나오는 라이너스의 때가 꼬작꼬작 앉은 아기 담요나, 밀른이 지은 푸우 이야기에 나오는 크리스토퍼 로빈의 푸우나, 아니, 멀리 갈 것 없이 하얀 고깔 봉지에 담긴 번데기나 뽑기 냄새와 함께 떠오르는 잠자리를 지켜 주던 곰 인형 같은 친구는, 어린 시절에만 가질 수 있으며, 어린 시절을 풍요롭고 행복한 시절로 만들어 주는 데에 빠져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알도와 이 아이가 만들어 낸 환상의 세계에는 둘말고는 아무도 끼여들지 못한다. 버닝햄이 아니라면 평생 만나지 못할 것만 같은 겨자색 봄 벌판, 한밤중 손엔 촛불을 들고 외줄타고 지나는 이국적인 도시 풍경, 인상파 화가 터너의 그림 속에서 그대로 오려 붙인 듯한 황금빛 들판에서의 그네 타기에서는 한마디 설명 없어도 아이들만이 맛볼 수 있는 환타지 세계의 풍요로움이 그대로 배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세계를 언제까지나 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아이도 막연하게나마 자기가 언제까지나 어린 아이로 남아 있을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알도를 잊고 지낼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이가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쭉 입고 있는 창백한 노란색 웃도리 소매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것은 미처 그 점까지는 생각 못한 작가의 부주의 탓은 아닐 터이다. 아이는 자라지만 아이가 "찾아 낸", 이 아이의 속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토끼 인형의 목에는 아이의 방 안 침대 옆에 깔려 있는 깔개와 똑같은 무늬 목도리가 한결같이 매여 있다. 보자기 한 장만으로 진짜 황금박쥐가 될 수 있었던 때에는 누구나 갖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과 꼭 닮은 친구의 이야기이다.
차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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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한 문장
독자리뷰 (총 7편) 독자평점 :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평가와 리뷰를 남기는 공간입니다. 매월 우수리뷰를 선정해 시상합니다.
그의 작품은 나에게 항상 슬픔을 안겨 준다.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것을 시사하고 있어서 읽고 나면 항상 씁씁해지는 것을 어찌 할수가 없다.
주인공 여자아인 친한 친구도 없고 따뜻한 가족의 품도 멀리 있음에도 난 행복해 하고 소리치곤 한다. 여자아인 나름대로 커다란 인형에게 정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밀려나 있는 아이. 부모님의 맞벌이로 또는 이혼으로 서로 양육을 미루는 가족들 틈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아이들... 주인공 여자 아이처럼 난 행복해 하면서 쓸쓸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아파온다.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로 번역되어 나온 그랑파를 애니메이션으로 본적이 있었는 데, 할아버지와 손녀의 아름다운 추억을 다룬 이 작가의 다른 작품 「알도」는 그랑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놀랬다.
부부싸움을 일삼는 부모에게는 무관심의 대상이고 또래의 친구사이에선 왕따를 당하는 주인공 소녀의 친구는 이 소녀의 상상의 산물인 토끼를 닮은 존재 '알도'뿐이다. 생각만 해도 안쓰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는 데, 이 그림책은 여타의 그림책과는 확연히 다른 점을 보여준다. 동화에서 그림은 동화의 보조적인 존재, 글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친절한 요소에 머문다.
근데, 이 「알도」에서 글과 그림은 상충된다. 글과 그림이 정반대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글은 글대로 그림은 그림대로 꼼꼼하게 봐야된다. 일례로 엄마랑 놀이터에 간다는 글 아래의 그림에서 소녀는 친구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레스토랑에 가면 "신나지"라고 하는 데, 소녀의 시선은 다른 가족들의 화목한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보고 있다.
그림과 반대되는 소녀의 속마음은 그래서 책을 보는 독자에겐 안쓰러움으로 다가온다. 얼마나 외롭고 괴로우면 상상의 존재 '알도'만이 이 소녀의 위안이 되는 걸까. 그렇다고 소녀가 포기만 하는 소녀도 아니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려고 애쓰지만 세상은 소녀에게 가혹할 뿐이다. '알도'는 "언제나 내곁에 있을거야"란 소녀의 위안섞인 글 아래 소녀는 친구들과 즐겁게 그네뛰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아무리 상상의 존제인 '알도'가 위안이 된다해도 상상은 상상일 뿐이다. 언젠가는 깨어날 수 밖에 없다. 소녀도 그것을 알고있다.
그림책이 끝나도록 소녀의 상황이 나아질지, 더 나빠질지는 독자의 상상으로 남는다. 그러나, 이런 소외된 어린이들이 현실에도 있다고 생각하면 착잡하다. 집에서 기르던 사냥개에게 물려 죽은 소년의 신문 기사를 보고 이 그림책을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부디 소녀가 어른이되면 나아질까, 그러길 바라고 싶다.
참 가슴이 아팠다. 요즘의 아이들 가운데 물질적으론 풍요롭지만, 부모의 무관심 속에 ‘나’처럼 방치된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는 부족한 게 없어 보이지만 정말 상처를 많이 받은 존재인 것 같다.
머리칼은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헝클어지고 눈도 다른 그림책에서 보여지는 여느 아이들과 달리 달랑 점하나 찍혀있을 뿐이다. 그 점 같은 눈으로 온전히 세상을 바라볼 수나 있을는지…. 때론 현실에서 사라져버리고 싶은 듯 그림의 선명함이 전혀 없어 현실에서 ‘나’를 점차 지워버리는 듯도 하다.
그렇게 외롭고 힘든 ‘나’에게 ‘알도’는 특별하다. 내가 외로울 때 힘들 때 어려울 때 언제나 나를 돕고, 내가 보살핌을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는 건 어른인 부모가 아니라 친구인 알도다. 그것도 사람이 아닌 토끼….
현실에서 내가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할 때, 과연 그 토끼 친구가 나타나 나를 구해주고 위로해 줄 수 있을 것인가? 현실에선 절대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을 내가 너무도 바라고 소망한 나머지 ‘알도’는 ‘나’의 관념의 세계에서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인 것이다.
그만큼 나는 절박하다. 절대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고, 날 위로해 줄 구원자가 필요할 만큼, 난 어른들로부터 상처받고 아픈 존재인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만으로 그 아이의 마음까지 채워줄 순 없다. 아이에겐 사랑과 관심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양식인 것이다.
아동문학 강의 과제를 위해 서점에서 며칠을 고르고 고른 끝에 구입한 책이다. 책 속의 '나'는 친구도 없고, 오로지 혼자인 아니 알도라는 토끼인형을 친구로 알고 지내는 아이이다. 현대 여느 아이들과 비슷한 외로운 아이이다. 부모님은 회사에 가시고, 형제자매도 없이 혼자 있는 아이. 아이는 혼자 이야기도 하고, 알도와 함께 노는 꿈도 꾼다. 마치 알도가 실제 살아난 듯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 장 되지는 않지만, 참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옛생각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다. 어릴 때 그림을 그려서 오려 놀던 종이인형처럼 그림에는 그네 같은 것이 오려 붙인 그림으로 되어있다. 너무 자극적인 그래픽에만 익숙한 아이들에게 하얀 종이 위에 덩그러니 그려져 있는 알도 그림을 보여주면 좋을 것 같다.
알도라는 제목에 시선이 잠치 멈추어 섰어요. 그것은 무슨이름일까? 넘 궁금해지는데 작가를 보니 "존 버닝햄의" 작품이네요. 아이들의 책에서 많이 알려진 작가{검피아저씨의 뱃놀이}로 알게된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때로는 어른이 그렸다는 느낌보다는 아이들이 그린것과 같은 착각이 들때가 많이 있는것 같아요.
알도란 이름은 주인공 여자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토끼의 이름입니다. 제딸의 경우도 토끼가 등장하는 책이든지 문구점에서든지 장난감 상점에서도 토끼등의 인형등이나 놀이감을 만나단면 걷던 걸음을 멈출정도로 토끼에 대한 애정이 아주 깊어요.꼭 저의 딸이야기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있는 시간이 많은 소녀는 텔레비젼도 보고 책도보고 장난감도 가지고놀지만 가끔은 엄마와 놀이터에도 갑니다. 어쩌다 외식도 하구요.하지만 그것은 정말 어쩌다 하는 일과이도 또다시 혼자가 되는 소녀에게는 아주 특별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바로 알도랍니다. 알도는 나만의 친구이고 나만의 비밀이라고 합니다. 나에게 있어서 정말 힘든일이 생기면 언제나 나를 찾아줄 그런 친구가 알도라고 믿고 있는것 같아요.
알도는 소녀를 위해서 근사한곳을 보여주고 늘 함께 하는 알도때문에 소녀는 세상에 무서운것이 한도 없다고 느껴요. 지금처럼 겨울이 찾아오면 알도와 스케이트도 타고 따뜻한 봄이 오면 알도와 함께 봄꽃이 활짝 피어있는곳을 손을 잡고 산책도 합니다.
때로는 놀이터에서 알도가 그네를 밀어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한때를보냅니다. 소녀가 잠이 들때까지 알도는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합니다. 잠이든 소녀는 알도와 함께 넓은 바다에서 배를 타고 함께 동행하는 행복한 꿈속에도 빠져봅니다.
소녀가 바쁠때는 알도가 생각이 나지 않을때도 있지만 너무나 힘든일이 생기면 알도는 내게 아주 큰 힘이 되는 아주 든든한 친구라고 느끼는것 같아요.
알도라는 토끼에게 정말 생명력을 불어 넣어주고 싶어집니다. 물론 이런 알도를 저의 딸에게 선사하고 싶기도 하구요. 엄마와 함께 할때도 있지만 때로는 혼자서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좀 측은 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더욱더 딸아이가 토끼인형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인지 아니면 맞벌이의 부모들이 늘어나서 인지 방안에서 혼자놀고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이런 알도를 모두 나누어 주고 싶어요.
물론 책속이지만 때로는 상상만으로 가득한 환타지의 세계를 느낄수 있는 곳도 이런 책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상상으로 대신하더라고 함께 기쁨을 누릴수있는 그런 책읽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 때의 아이들은 인형도 생명이 있는 줄 알고 인형과 대화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장난감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인형에 생명을 부여하면서 놀 나이가 지나면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환타지 세계를 독특한 화풍의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외동이로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는 방 안에서 저 혼자 노는 시간이 많은 요즘 아이의 우수어린 한 단면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쭉 입고 있는 창백한 노란색 웃도리 소매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는 것은 미처 그 점까지는 생각 못한 작가의 부주의 탓은 아닐 것입니다. 아이는 자라지만 아이가 찾아 낸, 이 아이의 속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는 토끼 인형의 목에는 아이의 방 안 침대 옆에 깔려 있는 깔개와 똑같은 무늬 목도리가 한결같이 매여 있죠... 보자기 한 장만으로 진짜 황금박쥐가 될 수 있었던 때에는 누구나 갖고 있었던, 내 어린 시절과 꼭 닮은 친구의 이야기입니다..
알도는 조그만 여자아이의 친구이다. 모두들에게 소외당하고, 마음을 둘 곳 없는 아이의 유일한 친구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혼내주기도 하고, 여자아이에게 더 이상 외롭지 않도록 하는 토끼 인형이다. 모두들 한번쯤은 어렸을때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하는 동물이나, 식물, 혹은 무생물(인형) 등에게 삶을 불어넣어 자신의 친구라고 생각한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 소외당하고 외로워하는 이 아이는 알도가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주는 친구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소외당하고 외로워하고 쓸쓸해하는 아이들에게 또다른 알도가 되어줄 것이다.
때론 가깝게 지내는 이에게 우린 얼마나 무심한가..그러다가 힘들고 지칠땐 젤 먼저 찾으면서도..문득 이 그림책을 보면서 가족관의 관계에 대해 잠시 생각했다..그러다가 결국엔 내 엄마..내 엄마를 알도마냥 늘 가까이서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친구처럼 대하다가도 나 힘들지 않고 외롭지 않으면 또 쉽게 잊고...그러나 늘 멀리서라도 날 지켜봐주는 이가 있다라는걸 생각하였던 게 아닌가..그러다 내가 평안하고 근심 걱정이 없을때는 잊고 내가 버겁고 힘들땐 젤 먼저 떠올리며 기댈만한 기둥을 찾고 있는 것처럼.
어린 여자아이에게는 혼자있는 시간이 많아 늘 외로움을 느끼는 한 자녀 가정의 아이를 떠오르게 한다. 요즘엔 한자녀 가정이라고 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늘 함께 사는 것도 아니고 핵가족화 되다 보니 아이를 돌봐주는 이들과 있는 시간이 더 많고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결국엔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이 많다고 염려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종일 혼자서 뭘 하며 지낼까..두명인 우리집경우엔 동생이 누나가 잠시라도 없는 시간을 못 견뎌하고 누나 언제오냐고 하루에 열두번도 묻곤 하던 때가 있었다.그러나 지금 중학생이 되고 누나가 고등생이 되어 시간이 서로 없어 마주 앉을 시간이 없어도 서로 집에 있는 시간이 없으면 찾기는 마찬가지다..물론 토닥거리기도 하지만 서로 의견도 잘 맞고 대화도 통하니 엄마로선 너무나 다행스럽고 대견스럽고 그렇다.
그리고 가끔 내 일에 몰두하다 아이 혼자 둔채 외롭게 놔두진 않았나 생각하게도 한다. 가끔 내가 외로움을 느끼듯이 아이도 외로움이 있을거란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된다..그리고 더 자주 들여다 보고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야지..그림책을 통해서 깊이있게 생각할수 있는 힘을 주는 존 버닝햄의 그림책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책이지 싶다. 그림이 화려하지도 않고 글자도 몇자 아니지만 아이는 아이대로 함께 보는 엄마는 엄마대로 느낌이 많을 책이다.
내 아이가 나를 알도처럼 생각하기도 할것이다..어떤 때는 나를 필요로 하기도 하고 때로는 혼자서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또 다른 알도를 상상하기도 하겠지만 옆에 있는 나에게도 또다른 세계의 알도도 내 아이에게 필요한 영양분임은 분명하니까..그러나 누구보다도난 내 아이의 첫번째 알도이고 싶다. 누구나 그렇듯이 내 아이에게 모든 것을 해줄수는 없지만 외롭게 두고 싶은 생각은 절대로 없으니까 말이다.
한 여자아이와 인형토끼와의 우정을 그린 유아그림책인데 이 책을 보자 마자 미설님의 알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이 책을 보고 알라딘의 닉넴을 알도라 지었다고 하셨었던가??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 존 버닝햄의 그림책이다. 알라디너 미설님의 서재를 처음 알게 되었을때 이 <알도>라는 닉넴이 아주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알고 봤더니 그분은 이그림책을 통하여 감동을 받아 아들의 별명을 부러 <알도>라고 붙였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가라서 눈이 번쩍 뜨였다. 그래서 뒤늦게 나마 이그림책을 알게 된것이 기뻐 얼른 구입했더랬다..^^
읽으면서 왜 내아이에게 알도 라는 별명을 붙이고 싶었는지 그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아이도 한 번, 두 번 자꾸 책을 접하면서 아예 끼고 산다. 우리아이는 가만히 살펴보면 존 버닝햄의 그림의 자유스러움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소재의 친숙함에 푹 빠져드는 것같다. <야, 우리 기차에서 내려>책은 자신이 좋아하는 기차가 나오기 때문에 좋아하고...<검피 아저씨의 뱃놀이>책은 동물들과 배가 나오기 때문에 좋아하고..그리고 이 <알도>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소녀가 그네를 탈 때 알도가 뒤에서 밀어주는 장면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 책이다. 물론 녀석이 요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스케이트 타는 장면이라든지, 배를 타는 장면이라든지, 친구들이 소녀를 괴롭히는 장면을 유심히 쳐다보긴 한다. 버닝햄의 그림책은 아이들과 대화하듯이 올곧게 아이들의 편에 서서 그림책을 만드는 작가다. 그래서 영국의 3대 그림책 작가 중의 한 사람이라는 명칭을 얻고 있는 대작가인가 보다.
이책의 주인공 소녀는 형제,자매가 없는 외동딸이다. 그래서 항상 외롭다..(나는 이부분에서 많이 뜨끔했었다.우리아이도현재 외동인데...늘 혼자 노는 것이 안쓰러울때가 많았기 때문이다..ㅡ.ㅡ;;) 소녀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해서인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에도 서툰 것인지 아니면 나쁜 친구들을 만난 탓인지 친구들에게도 괴롭힘을 당한다..어찌보면 왕따를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의 모습도 잘 보이지 않는다..가끔씩 외식을하거나 놀이터에 갈때 엄마와 함께하는 모습이 비칠뿐이다..엄마,아빠 모두 맞벌이를 하나보다.
외로운 소녀는 이외로움과 쓸쓸함을 달래는 방법을 혼자서 터득하였는데...바로 알도라는 토끼인형을 진짜 사람처럼 생명이 있다고 여기어 하나밖에 없는 내친구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을때 달려와 나를 도와준 것은 바로 다름아닌 알도라고 생각하며..놀이터에서 그네를 탈때 그네를 밀어주는 사람도 바로 알도이며..밤에 잠을 자다 악몽때문에 잠을 깼을 때도 나를 다독이며 달래주고 잠들때까지책을 읽어주는 이도 바로 이 알도라고 생각한다.
어릴적에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장난감이나 인형들이 생명이 있다고 여기는 시기는 다 있게 마련이다. 물론 나도 그랬었다..예쁜 바비 인형을 하나 선물 받았었는데...어찌나 사람 모양과 똑같던지 머리를 빗겨주고 옷을 입혀 주면서 실제로 생명이 있다고 믿어버려 항상 인형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어 몰래 숨어서 바비 인형을 노려보았던 시절이 있었다..ㅡ.ㅡ;; 지금 네 살배기 내아들 녀석도 가만히 보면 인형이나 사물들이 생명이 있다고 믿는 눈치다. 인형들에게 혼자서 뭐라고 뭐라고 대화를 잘한다. 물론 혼자 크기 때문에인형이나화초,열대어들과 친구 삼아 놀라고 내자신이 대화를 하도록 유도한점도 없진 않지만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은 어른이 생각하는것 이상으로 사물들에게 애정을 듬뿍 쏟아넣으며 대화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그림책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도와 함께 하는 소녀의 모습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인형을 너무나 사랑하여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 이상으로 여기는 점은 가상하나...알도라는 존재는 친구라는 편안한 차원을 넘어 일종의 도피처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소녀는알도와 함께하기때문이다. 알도와 함께 놀고, 알도에게 위로 받고, 알도와 함께 웃고, 알도와 함께 잔다. 소녀는 알도와 언제나 함께 하기에 행복하겠지만 내눈엔 소녀의 모습이 측은하면서도 불쌍해 보인다.
하지만 나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소녀는 어느덧 성장을 하게 되어 더이상 알도와 함께 할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알도가 있던 자리에 어느새 새로운 친구들이 있다. 그래서 새친구들과 노느라 알도를 까맣게 잊고 지내는 날들이 많다라고 소녀는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녀는 알도를 잊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한다. 아마도 소녀는 알도라는 인형을 버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절대 버리지 않고 자기방에 놓아 둘 생각인가 보다. 마지막 장면은 가슴 한켠이 찌릿 하다. 소녀가 자라 알도는 역시 생명이 없는 인형이란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면서 한 편으론 어딘지 모르게 서운한 감정이 일기도 한다. 아이들만의 순수함을 잃어가는 것 같아 보인다. 그래도 소녀가 알도 외에 새친구를 사귀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 내아들 녀석도 빨리 자라 단짝 친구를 많이 사귀었으면 좋겠다. 그땐 이엄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다 해줄수 없는 것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은 아들녀석과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면서 내가 녀석의 그네를 밀어주면서 엄마가 알도가 되었다라고 말해준다..그러면 엄청 좋아한다...그러고 저도 알도가 되겠다면서 나를 밀어준다. 아직 힘에 부쳐 나를 밀어줄라치면 반동에 의해 녀석이 넘어질 것 같은 상황인데도 끝까지 저도 알도를 흉내 내겠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녀석이 한다는 말은 "나한테는 알도가 그네를 안밀어줘요!..ㅡ.ㅡ;;"한다. 녀석은 알도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나보다. 그리고 놀이터에 가면 알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보다. 아직 버닝햄의 이그림책을 완전히 이해하기엔 나이가 어린가보다. 그래도 친구들이 소녀를 괴롭히는 장면을 보고선 친구들 못됐다고 손으로 책을 치는 것을 보면 어느정도 이해하는 것도 같은데....ㅋㅋㅋ 아들녀석에게 존 버닝햄의 그림책들이얼마만큼 이해되는지 알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즐겨 보아주는 것만으로도 솔직히 고맙고 기쁘다..^^ 이유는내가 더 버닝햄의 그림책들이 재밌고 좋기 때문이다.
어렸을적 누구나 상상의 친구가 있었지요. 이 소년의 친구는 토끼 인형인 알도입니다. 강렬한 색채와 자유로운 선의 그림으로 더욱 빛나는 그림책 입니다. 상상속의 친구이긴하지만 토끼 인형 알도와 주인공과의 우정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인것 같습니다.
이책은 꼼꼼하게 채색되어 있지도 않다. 그렇다고 그렇게 짜임새 있어보이지도 않지만 아이들은 읽으면 정말 좋아한다. 바로 그런책이다. 큼직하면서 알도와 주인공아이가 그의 외로움을 채웠던것처럼 허전함이 가득한 책이다. 만약 이책이 크기가 작았다면 감동이 덜하지만 책의 크기만으로도 주인공의 마음을 느낄 수가 있다. 각각의 페이지속에 담긴 존 버닝햄의 자유로운 표현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 아이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하는 존버닝 할아버지. [2007-06-22 23:24:38]
자유로운 그림체.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 내용. 위태로운 모험을 떠날 때는 과감한 채색으로 긴장감을 주어 곁에서 도와주는 알도의 든든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그림책. 어린 시절 누구나 상상해본다는 상상친구. 존 버닝햄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동심을 잃지않는 신기한 작가. 알도 외에 다른 책들도 통일감을 주는데, 존 버닝햄의 그림책에 어른들은 흔히 발만 나오거나 팔만 나오거나 괴물같은 얼굴로 등장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말을 잘 들어주고 그 세계를 인정하고 함께 놀아주는 어른들은 온전한 모습.^^ 아마도 존버닝햄은 자기의 그림책속에 들어가면 온전한 모습으로 남을거 같다. 그에 비해 나는 허리춤에 손올리고 아이를 혼내는 못된 이웃아줌마로 나올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