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도전의 끝은 어디인가 - (이색직업)
사회가 급속도로 변하면서 여러 가지 직업들이 생겨나고, 그 직업의 종류 역시 수백 여 개에 달한다. 또 예전에는 남자가 했던 일을 여자가, 여자가 했던 일을 남자가 하는 등 직업적 성(性) 구분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비해 사람들의 인식은 그다지 빨리 바뀌지 않고 있다. 소위 「이색직업」이란 틀 속에 묶어 놓고 신기한 듯, 심한 경우 거북스런 눈길로까지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눈길이 이들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선구자는 외롭다(?)
우리는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말을 흔히 한다. 이 말은 남녀의 역할과 사는 모습이 태어날 때부터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자는 다소곳 해야하고, 남자는 활발하게 활동해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이 불문율을 깨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직업의 세계에선 더욱 그 현상이 두드러진다.
의뢰인을 보호하기 위한 강인한 체력과 기술을 가진 「보디가드」. 만약 지금 머릿속에 보디가드를 그려보라면 어느 누구도 「그」가 연상되지 「그녀」를 떠올리진 않는다. 사람들의 색안경이 여기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코세스경호대 여성경호원팀 「블루버드」의 임미화 실장. 그녀는 이를 몸소 느끼고 있다. 의뢰인이 요청을 해올 경우 여성경호원을 추천하면 꺼리는 사례가 많다는 것. 이는 '자신의 몸 하나도 가누기 어려운 여자의 몸으로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을까?'란 선입견 때문이다. 업무에서는 남자 못지 않은 강한 정신력과 실력을 갖춘 그들이지만 사회적 편견의 눈은 그들을 맥빠지게 한다.
남자간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간호사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남자 간호사라고 하면 의아하게 쳐다보는 환자들이 많다. 이것은 현재 일하고 있는 남자간호사들이라면 한번쯤 느끼는 문제이다. 삼성서울병원의 김낙주(39) 간호사와 전도진(32) 간호사. 둘 다 경력이 10년 이상인 베테랑급 수간호사지만 아직도'여자 간호사보다 간호능력이 떨어지지 않을까?' 혹은 '거칠지 않을까?'라는 눈초리가 적지 않다는 데 입을 모은다. 남자 간호사에 대한 인식이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미흡하다는 것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다.
사회적 편견이 최고 스트레스
소위 이색직업을 가진 이들이 그 직업을 선택한 것은 누군가가 강제로 시켜서도, 권유를 받아서도 아니다. 모두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자신의 개성과 능력, 성향을 고려하고 오랫동안 고민해 선택한 것이다. 때문에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어느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과 노력으로 이겨낸다. 그리고 자신의 일 속에서 자아를 실현시키고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이들도 한번쯤은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고민을 했다. 그 이유는 바로 사회적 색안경이 이들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유치원 교사인 김영구(27)씨. 그를 처음부터 평범한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이 남자가 과연 아이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라는 호기심 반, 걱정 반으로 그를 바라본다. 항상 주시하고 있다가 잘하면 '음∼ 제법 하는군'이라고 넘기고, 막상 실수를 하면 '남자가 오죽하겠어'라고 낙인을 찍어 버린다. 주위의 눈길을 한 몸에 받다보니 어떤 일이든 여자 동료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또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상당하다. 그럴 때마다 '도망가고 싶고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다'고 토로한다.
이동수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과장은 이러한 심리를 "사회적인 편견에 의한 스트레스가 자아정체성을 공격해 자아정체감이 흔들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서 색다른 눈으로 보거나 거부감을 보일 때 자아정체감이 공격을 받아 '과연 나는 올바른 길은 선택한 것인가' 또는 '이 일을 계속 해야하는가'등의 갈등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는 욕구좌절이다. 욕구좌절은 실패가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물론 실패라는 것은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경쟁이 심할 경우 실패의 확률은 높아진다. 이러한 실패가 반복되면 욕구좌절이 찾아오기 마련. 더 나아가서는 자신을 평가 절하하게 되기도 한다. 특히 이색직업을 가진 이들은 주시하는 눈이 많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여기에 한번 실패를 하면 낙인찍히는 경우가 많아 이들에겐 심한 욕구좌절을 느낄 가능성이 다른 직업 종사자들보다 높다. 이러한 욕구좌절과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상실감이 밀려오면서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 된다.
긍정적인 사고가 최고의 명약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특히 사람들과 부딪힐 때 스트레스는 가장 심하다. 이색직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만약 사회적인 스트레스로 인해'자존심이 상한다' '일에 대한 부담감이 생긴다' '일에 대해 짜증이 난다' '이 일을 계속 해야 하나'등의 정신적인 압박이 지속적으로 생기면 적응장애에 빠질 수도 있다. 적응장애가 생기면 자기의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면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하다 결국은 목표의식이 없어지며 비관적인 성향이 강해진다.
그러다 보면 사람을 만나기 싫어지고 우울증이나 불안신경증에 빠지기 쉽다.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결국은 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며, 주위 사람들과 싸우는 횟수가 늘어난다. 스트레스가 있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증상이 재발하며 하나의 증상이 낫고 나면 변형된 다른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또 지나친 스트레스는 정신신체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정신신체장애는 심리적 압박이 영향을 미쳐 신체적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주로 면역기능이 약화되기 때문에 감기 등 감염성 질환에 걸리기 쉽고 원만한 신진대사가 어렵기 때문에 소화불량 등이 많이 나타난다. 정도가 심해지면 긴장성 두통, 편두통, 고혈압, 협심증, 관상동맥질환, 기관지 천식, 위· 십이지장 궤양, 과민성 대장 증후군, 류머티스성 관절염, 신경성 피부염, 월경통, 심인성 두드러기, 탈모증 등의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병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이색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긍정적인 사고라고 말한다. 주위의 편견의 눈과 일에 대한 스트레스 역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자극제로 이용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 주변상황에 깨어 있으면서 거기에 따라 상대방에게 해줄 것은 해주고 부담스럽거나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하지 않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좋다.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에도 혼자서 삭히기보다는 주위사람들과 많이 어울리고 동료나 상사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등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성(性)이 변한다(?)
이색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토로하는 또 한가지는 자신의 성향이 바뀐다는 것이다. 현재 유치원 교사인 김영구씨(27)는 일을 하면서 예전보다 많이 차분해지고 인내하는 법도 배우게 됐다. 또 가끔씩 자신이 부드러워졌음을 느끼게 된다. 친구들에게 '유치하다' '여성스러워졌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느낄 때 그는 뿌듯하다. 자신도 전문유치원교사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자간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현재 삼성의료원 간호사인 김낙주(39)씨와 전도진(34)씨 역시 3교대로 돌아가는 근무일정에 맞추다 보면 다른 직업을 가진 친구들과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10여 년 동안 병원 내에서 간호부의 여자간호사들과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여성화되는 경향이 높아진다는 것을 느낀다. 이들 역시 이러한 변화가 조직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간을 내 남자들과 어울려 남성적 성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여성으로 변해 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모든 인간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남자와 여자 두 성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 두개의 성 중 어떤 성향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남성적이다' 혹은 '여성적이다'라고 구분 짓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직업 때문에 성이 변하거나 근본적인 성향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오랫동안 한 문화 속에 살다보면 자연히 그 문화적 성격에 젖어들 듯 다른 성과 있는 시간이 많아 비슷하게 변해 가는 것이다. 또한 직업의 특수성도 영향을 미친다. 간호사나 유치원교사는 섬세함과 꼼꼼함, 부드러움과 상냥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일을 하면서 성격이 변해 가는 것이다.
도움말·이동수 삼성서울병원 신경정신과 과장, 유순형 유순형신경정신과 원장, 조은희 프로이드 신경정신과 원장, 김영구 경희유치원 교사, 김낙주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고두수 이대목동병원 간호사, 전도진 삼성서울병원 간호사, 임미화 코세스경호대 블루버드 팀장, 전선영 코세스 경호대 블루버드 팀원 출처:사람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