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 한 목숨인데 함부로 죽일 수 없지!' '이 잡는 노승' 관아재 조영석(1686년-1761년)


18세기, 종이에 수묵담채, 29.3 cm X 17 cm, 개인 소장

짚신을 신고 길을 가던 한 스님이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산들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 스님의 이마를 식혀 주었습니다.

'아니, 몸이 왜 이렇게 근지러울까?'

스님은 겨드랑이 밑을 뻑뻑 긁다 말고 옷고름을 풀어헤쳤습니다. 깨알같이 작은 이가 보였습니다. 그새 피를 잔뜩 빨아먹었는지 몸통이 온통 붉은 빛을 띄었습니다. 스님은 손톱으로 이를 뭉개려고 하다가 갑자기 멈추었습니다.

'이도 한 목숨인데 함부로 죽일 수 없지!'

이런 생각이 들자, 사람의 피를 빨아먹은 놈이지만 밉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문득 아침에 책에서 읽은 내용을 떠올렸습니다.


옛날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길을 나선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비둘기 한 마리가 갑자기 품 안으로 날아들었습니다. 깜짝 놀라 자세히 살펴보니,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비둘기의 두 눈은 겁에 질려 있고, 가슴은 두려움으로 콩콩 뛰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커다란 독수리가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내 먹이를 당장 내 놔!"

독수리는 붉은 눈으로 노려보며 말했습니다.

"안 돼. 나는 모든 생명을 구하기로 나선 수행자야. 산목숨을 그렇게 함부로 해칠 수는 없는 법이지."

독수리는 눈을 뒤룩거리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엉터리 수행자군. 내가 비둘기를 먹지 않으면 비둘기는 살지 모르나, 나는 배가 고파 죽을 테니, 이러나 저러나 산목숨 죽이기는 마찬가지지. 차라리 덩치가 크고 위대한 이 독수리님을 구하는 게 낫지. 그깟 비둘기 한 마리가 대수냐?"

독수리는 의기양양하게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말했습니다.

"정 그렇다면 비둘기 대신 내 몸을 뜯어먹어라."

독수리는 비둘기만큼 무게가 나가는 생고기를 떼어 내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수행자는 저울을 가져와서 한쪽에 비둘기를 올려 놓은 다음, 다른 쪽의 허벅지 살을 베어 내 올렸습니다. 비둘기가 훨씬 무거웠습니다. 고통을 참으며 이번에는 다른 쪽 허벅지를 잘라 내 저울에 올렸습니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번에는 장딴지를 도려 냈습니다. 차례로 온몸의 살을 떼어 냈지만 저울은 기울어진 채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온몸을 저울에 달았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무게가 같아졌습니다.

결국 비둘기나 사람이나 '생명의 무게'는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스님은 이를 잡아 죽이는 대신 살살 털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다음에는 남을 괴롭히지 말고 착한 일을 하는 생명으로 태어 나거라."

이렇게 말하고 나자 몸이 근지럽지 않을 뿐더러, 마음 또한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스님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떠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