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책만 보는 바보』 -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안소영 지음 / 강남미 그림
<보림>
12,000원


이책의 줄거리


오래된 책들에 스며 있는 은은한 묵향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어루만져 주고,
보풀이 인 낡은 책장들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아니, 스스로 나에게 다가오기도 한다.
울적한 내 마음을 옛사람들의 노래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낯선 섬나라의 파도 소리로 마음을 들뜨게 하기도 한다.
내 손이 그 책들을 뽑아 드는 것이 아니라,
방문을 여는 순간 내 얼굴빛과 표정으로
마음을 미루어 짐작한 책들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다가오는 것만 같다.

- 이야기 시작 중에서 -

읽꾼이 먼저 읽었어요

누군가가 살아온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참으로 진기한 것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상뿐만 아니라 하루 하루를 엮어 가는 삶의 진솔한 모습들이 때로는 흥미로, 때로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 마음을 두드립니다.
역사 속의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의 삶에 당당히 끼어 듭니다. 비록 역사책 속에는 단 서너 줄, 아니 한두 줄의 짤막한 말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인품과 학식, 그리고 꿈까지도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와 같은 줄기에 달린 형제이기에 가능하겠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친구간에 주고받던 마음들에 절로 흐뭇해지고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그들의 부유함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하루 종일 방안에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빛을 따라 상을 옮겨가며 책을 보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 깨우치며 책을 읽던 터라 막히는 구절이 나오면 끙끙 앓기라도 하는 듯 신음소리를 내다가도 그것을 스스로 깨우치기라도 하면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러댔답니다. 혼자 실없이 방안에 앉아 웃거나, 끙끙대거나, 고함을 지르며 온종일 책만 보는 그를 사람들은 간서치(看書痴)라 불렀습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이렇게 책만 보는 바보였습니다.
그는 풍열로 눈병에 걸려 눈을 뜰 수 없으면서도 책을 읽었던 책벌레였습니다. 밥을 먹는 것보다도 굶주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정도의 집안 형편이었기에 사지 못하는 책을 늘 남에게서 빌려 보았고 중요부분은 베껴 적었습니다. 이렇게 수만 권의 책을 읽었고, 베낀 책이 수백 권이었답니다. 그것도 아주 작은 글씨로(벗들은 파리 대가리 만한 문자라 하여 승두문자(蠅頭文字)라고 놀렸다) 베꼈으니 그 양뿐만 아니라 그 정성이 실로 대단한 것이었지요.

이덕무는 굶주릴 때, 추울 때, 괴로울 때, 아플 때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으며 배고픔을 잊고, 추위를 잊고, 자신과 자신의 자손들이 대대로 겪어갈 한스러운 처지를 잊고, 어머니까지 앗아가는 기침병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책을 읽었던 것이지요. 책은 곧 그의 삶이었습니다.
이런 일도 있었답니다. 엎어진 물이 방바닥에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어느 겨울 날, 이덕무는 추위를 잊으려 몇 편의 시를 외우고 또 외웠지만 홑이불과 독서열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어요. 그때 <한서>한 질이 눈에 띄었고 그는 두툼한 그 책을 이불 위에 올려놓아 빠져나가는 온기를 막았습니다. 순간 <한서>가 멋진 이불로 변했지요. 또 한번은 벽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등불을 위협하기에 <논어>로 바람막이를 하기도 했답니다. 책은 이렇게 양식으로, 이불로, 바람막이로의 역할까지 충실하게 해주는 삶의 뿌리였어요.

그가 책읽기에 몰두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서자라는 자신의 신분이었습니다. 양반이 할 수 있는 일은 서자여서 안되고, 농사나 장사 같은 것을 하려면 양반의 핏줄이라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스러운 자리가 바로 이덕무의 자리였습니다. 어찌보면 책을 많이 읽는다 해서 써먹을 데도 없는 신분이었지만 오히려 자신의 숙명적인 처지를 달관하고 살기엔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런 서자인 이덕무는 서른 아홉이라는 늦은 나이지만 벼슬길에 오르게 됩니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독서라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 것인지를 알고 신념을 잃지 않았던 그는 생을 바쳐 결국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았던 것이지요.

『책만 보는 바보』속에는 이덕무의 벗들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들 또한 하나같이 책만 보는 바보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겐 신분도, 나이도 벽이 될 수 없었습니다. 박제가, 유득공, 백동수, 그리고 이서구 등과 나누던 대화와 담장을 넘나들던 수많은 책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믿었던 그 마음들을 접하면 그네들이 그리워지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이덕무가 스승으로 섬겼던 담헌 홍대용 선생과, 연암 박지원 선생과의 인연줄을 훑다보면 어느새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책만 보는 바보였지만 그들은 결코 책 속에서만 머무르지는 않았습니다. 중국 사람들이 깨진 기와 조각 한 장, 똥거름조차도 알뜰하게 모아 두는 모습을 보면서 조선의 백성들을 생각했고 그들에게 좀더 이로운 것들은 하나라도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편안한 백성의 삶을 꿈꾸었기에 그들의 마음은 실학이라는 학문을 세상에 내놓게 됩니다.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리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들이 정말 빛날 수 있는 건 그 이름으로 어떤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있지요. 250여 년 전의 그 책만 읽던 바보들을 지금도 만날 수 있다면…….
지식도, 지혜도, 마음도, 독서량도 턱없이 모자라지만 책에 대한 열정을 닮고픈 마음 하나로 소중한 책들을 어루만져야겠습니다.

엄마 읽새님께

책만 읽는 바보들이 다같이 모여 술을 마실 때 박제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운명이란 게 어디 별것인가요? 저는 나를 마음대로 하려 드는데, 나라고 저를 마음대로 못하겠습니까? 단단히 얽어매어 놓은 사슬 한 겹이라도 내 반드시 풀고 말 것입니다.”

그들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렵니까?

=> 이어서 읽는 책

『미쳐야 미친다』 조선 지식인의 내면 읽기 - 정민 지음 <푸른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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