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문 분석 없이 무턱대고 도표부터 들여다보지 말라

등록 : 2013.03.11 10:32수정 : 2013.03.12 15:12

라파엘로가 그린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학당’ 모습. 자료사진

수시논술 ‘숨은 해법’

■ 도표분석의 정석

도표는 하나의 사례로 간주해야

도표분석을 어려워하는 수험생이 많다. 당연하다. 도표나 그래프는 일반 제시문과 달리 언어로 구성되지 않고 숫자나 선으로만 이루어진 자료이기 때문이다. 논술의 출제원리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수많은 데이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시간을 허비하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우선 출제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제자는 전체 논술 주제와 평가항목을 설정한 뒤 이에 걸맞은 제시문을 선정한다. 그 뒤 특정 제시문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도표를 찾는다. 따라서 도표는 다른 제시문의 주장을 뒷받침하거나 반박하는 근거가 된다. 도표의 이러한 특성은 고등학교 교과서만 살펴봐도 이해할 수 있다. 사회탐구 교과서에는 수많은 도표와 자료가 담겨 있다. 이 자료들은 특정 주장을 증명하거나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맥락에서 동원된다.

요컨대 도표는 특정한 주장을 지지하거나 반박하는 사례의 일종이다. 도표 자체를 뚫어져라 들여다봐도 날것의 숫자나 계량화된 막대, 그래프의 변동은 아무런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도표는 독립변수(x축)와 종속변수(y축)의 연관성 속에서만 그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그 의미는 또한 그 도표를 만들어낸 조사자나 연구자의 의도와 관련해서만 규정될 수 있다. 따라서 최초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데이터 속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바르게 이끌어낼 수 있다. 변수들의 내용과 그 관계가 선명해서 의미를 추출하기 쉬운 경우에도 문제 전체의 의도와 무관하게 의미를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도표를 분석할 때는 무턱대고 도표부터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역으로 평가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제시문의 주장을 먼저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주장과 일치하거나 반대되는 유의미한 데이터를 도표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사 논제에서 ‘도표를 분석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른 제시문을 평가(비판)하라’고 하더라도 그 요구사항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논제를 부정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출제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불필요한 헛수고를 덜고 출제의도에 부합하는 답안을 작성할 수 있다.


■ 도표분석의 실전 2013 수시 기출문제(연세대 사회계열)-두 문항 중 문제 2번만 다룸

‘긍정적 환상’은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까?

문제 2>제시문 (라)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1)을 평가하시오. (1000자 안팎)

(가)

가-1.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데모스테네스는 “자기를 속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은 없다. 우리는 바라는 것을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몇 가지 조사에 따르면 ‘자존감’뿐 아니라 ‘행복’도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관련이 없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현실 인식이 없다면, 우리는 그저 ‘바보의 낙원’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가 우월하게 보일 비교 기준을 선택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사실이 아닌 의견을 견지한다는 증거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와 자기의 미래를 ‘장밋빛 안경’을 통해 바라본다. 이러한 결론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기에 대한 긍정적 편향을 갖는 것이 정확하고 유효한 자기 평가를 하는 것보다 실제로 정신 건강에 더 좋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현상을 ‘긍정적 환상’이라고 한다. 자기에 대한 지나친 긍정적 평가와 미래에 대한 과도한 낙관적 신념, 그리고 자기 자신이 주변을 통제할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은 자신의 정신 건강에 더 유익하다고 한다. 긍정적 환상이 더 나은 육체적 건강, 그리고 역경에 대한 보다 나은 대응 방법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긍정적 환상을 더 자주 품는 학생들이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

(라)

시험을 치른 학생들을 ‘낙관성’과 ‘자기 능력에 대한 인식의 현실성’을 기준으로 네 집단으로 나누어 시험성적을 분석하였다. 다음 도표는 집단별 시험성적의 평균값을 보여준다. 성적은 점수가 높을수록 우수한 것으로 해석한다.


■ 정석의 적용

출제의도와 관련된 중요 수치만 서술해야

제시문 (라)를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 (가-1)을 평가하시오.

논제에서는 (라)를 먼저 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1)을 평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논제에 충실하라는 금언을 기억하는 학생들은 먼저 (라)를 의미화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물론 도표를 선입견 없이 객관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출제과정을 이해한다면 (가-1)의 핵심 주장을 규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논제에서 요구하는 ‘평가’라는 과정이 주장의 타당성을 검증하는 과정임을 이해한다면, 평가의 대상이 되는 주장을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가-1)의 주장을 핵심어 위주로 정리해 보자. (가-1)에 따르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보다는 긍정적 환상이 행복을 가져온다. 즉, 정확하고 유효한 자기 평가보다는 자기에 대한 긍정적 편향(긍정적 평가, 낙관적 신념, 자신감)이 정신건강에 더 좋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긍정적 환상을 자주 품는 학생들이 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받았다.’는 마지막 문장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를 토대로 (라)의 도표를 분석해 보자. 고려해야 할 독립변수가 두 가지이기 때문에 다소 복잡하다. 즉 낙관성과 현실정의 정도는 종속변수인 시험점수(y축)에 각각 영향을 미치면서도 서로 구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는 (가-1)이 현실성과 낙관성을 대립적인 요소로 보면서 낙관성이 현실성보다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 데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이해의 편리를 위해 도식을 활용하면 다음과 같다.

(가-1)의 주장

낙관성〉현실성

낙관성→좋은 점수

(라)의 내용

낙관성+현실성→좋은 점수

이로써 (가-1)의 주장이 단면적이었다는 점을 비판하는 근거가 마련되었다. 이후에는 도표를 세심하게 분석하여 비판의 근거를 차근차근 추출해야 한다. 도표를 분석할 때는 모든 수치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출제의도와 관련된 중요한 수치만을 서술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숫자들을 더하거나 빼거나 곱하거나 나누는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라)의 도표에 따르면 현실성이 낙관성보다 시험점수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평균은 4.5이며 낮은 집단의 평균은 2.8이어서 그 격차가 큰 반면 낙관성의 정도가 높은 집단의 평균 3.5와 낮은 집단의 평균 3.8은 미미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낙관성과 시험점수는 오히려 반비례 관계를 보여주었다.
1947년 11월 팔레스타인 내 유대 독립국 설치 발표에 환호하는 텔아비브 시민들. 시오니즘도 미래에 대한 낙관을 기반한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런데 이 분석만으로는 심층적인 답안을 완성하기 어렵다. 분량을 채우기도 힘겹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도 추출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특이값에 주목해야 한다. 도표를 출제하는 의도는 특이값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지를 측정하는 데 있다. 따라서 도표의 전체적인 경향성에 주목하되 특이값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이를 찾아내지 못하면 합격할 수 없다. 이 도표에서 특이값에 해당하는 항목은 ‘낙관성이 높고 현실성이 낮은 집단’이다. 이 집단은 가장 낮은 점수를 기록했다. 그 이유를 심층적으로 분석해야 좋은 답안을 쓸 수 있다.

이제 분석 내용을 정리해 보자. 도표는 현실성이 낙관성보다 시험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낙관성의 영향을 무시해서도 안 된다. 낙관성이 시험성적과 반비례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경우에는 낙관성이 높을수록 더 좋은 결과를 거두었다. 요컨대 현실성과 낙관성 모두 시험성적에 영향을 미치며 둘 중에서 현실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지금까지 논제의 요구사항과는 반대의 접근 과정을 거쳤다. 2013년 연세대 도표 분석 문제는 도표만으로도 의미를 추출할 수 있고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평이했지만 예년의 문제들은 변수들의 연관성이나 의미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웠다. 그럴 경우 이처럼 비판이나 평가의 대상이 되는 제시문의 주장을 먼저 정리하고 그 내용을 근거로 도표를 분석해 나가는 방법을 시도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답안을 작성할 때는 논제의 요구 순서대로 작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불이익을 당할 수 있으므로 유념해야 한다. 분석 내용과 (가-1)에 대한 평가를 부드럽게 연결하는 일은 수험생의 몫이다.

■예시답안

(라)는 낙관성과 현실성이 동시에 시험성적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실성은 시험성적과 양의 상관관계에 있다. 낙관성이 낮은 집단과 높은 집단 모두에서 현실성이 높은 집단은 현실성이 낮은 집단보다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특히 낙관성이 높은 집단에서는 그 격차가 2.5배 차이를 보인다. 이는 낙관성보다 현실성이 시험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크다는 점을 방증한다.

현실성에 비해 낙관성의 정도 차이는 시험성적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낙관성의 정도가 높은 집단의 평균은 3.5인 데 비해 낮은 집단은 3.8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낙관성이라는 변수와 시험성적이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 이유는 낙관성의 영향이 현실성이라는 변수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낙관성이 높다고 해도 현실성이 낮은 집단은 다른 세 집단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것이다. 한편 낙관성과 시험점수가 반비례 관계만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현실성이 높은 집단의 경우 낙관성이 더 높은 집단의 점수가 최고의 점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요컨대 낙관성과 현실성은 시험점수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이며, 두 변수 중 현실성이 시험점수와 더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여준다.

이를 근거로 할 때 (가-1)의 주장은 현실 인식의 중요성을 간과한 단면적인 주장이다. (가-1)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보다 낙관적 신념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즉, 긍정적 환상이 좋은 성적과 정신적 건강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희망을 잃지 않게 하며, 고단한 현실을 견디어 내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에 기반하지 않을 때 낙관은 근거 없는 희망에 머물 뿐 발전적 미래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이는 요행만 바라면서 나태를 합리화하는 태도로 이어져 결국 주체를 긍정적 ‘환상’에만 머물게 만든다. 하지만 (라)에서 보듯 현실성을 결여한 낙관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961자)


■ 주제의 심층이해

다음 제시문을 읽고 위의 문제에서 언급한 낙관성과 현실 인식의 관점을 활용하여 F라는 인물의 죽음을 평가해 보자.

언젠가 나는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과 위험한 자포자기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아주 극적인 사례를 보았다.

우리 구역의 고참 관리인인 F는 그 전에는 꽤 유명한 작곡가이자 작사가였다. 그가 어느 날 나에게 고백했다.

“의사 선생, 선생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었어요. 꿈에서 어떤 목소리가 소원을 말하라는 거예요.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말하래요. 그러면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해줄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무얼 물어보았는지 아십니까? 나를 위해서 이 전쟁이 언제 끝날 것이냐고 물어보았지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의사 양반? 나를 위해서 말이요. 저는 언제 우리가, 우리 수용소가 해방될 것인지, 우리의 고통이 언제 끝날 것인지 알고 싶었어요.”

“언제 그런 꿈을 꾸었소?” 내가 물었다.

“1945년 2월에요.” 그가 대답했다. 그때는 3월이 막 시작되었을 때였다.

“그래 꿈속의 목소리가 뭐라고 대답합디까?”

그가 내 귀에다 나직하게 속삭였다. “3월30일이래요.”

F는 희망에 차 있었고 꿈속의 목소리가 하는 말이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약속의 날이 임박했을 때 우리 수용소(유대인 포로 수용소)로 들어온 전쟁 뉴스를 들어 보면 그 약속한 날에 우리가 자유의 몸이 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 3월29일, F는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고 열이 아주 높게 올랐다. 3월30일, 그의 예언자가 그에게 말해 주었던 것처럼 그에게서 전쟁과 고통이 떠나갔다. 헛소리를 하다가 그만 의식을 잃은 것이다. 3월31일에 그는 죽었다. 사망의 직접적 요인은 발진티푸스였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송남권 논술칼럼니스트
최규윤 강남비상에듀학원 인문논술강사
안덕훈 이원장 학습전략학원 논술강사
어수창 청솔교육연구정보원 인문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