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1 10:41수정 : 2013.03.11 10:41
김수연의 책과 껴울리는 시간
열쇳말 - 생명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
헤닝 엥겔른 지음, 이정모 옮김, 을유문화사
<왜 인간인가?>
마이클 가자니가 지음, 박인균 옮김, 추수밭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는 인간의 기원, 특징, 현재와 미래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독일의 르포르타주 잡지
에서 과학 저널리스트로 일했던 헤닝 엥겔른이 썼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물학 관련 저술을 해온 작가의 저력이 책 속에 살아 숨 쉰다.
저자는 진화생물학적 관점에서의 인간 탐구는 인간을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역설한다. 다만 하나의 입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신의 창조와 섭리를 믿는 이들과도 화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연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는 부분에 신이 개입할 여지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화생물학에 대한 편견을 제쳐두고 책장을 넘기게 하는 동인(動因)이다.
‘인간이 어디서 와서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은 누구라도 해봄직하지만, 이에 대한 대답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 헤닝 엥겔른이 이에 도전한 데는 꽤 오래전 발아한 호기심이 자양분이 되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생명의 신비>(Die Wunder des Lebens, 1962)라는 책을 읽으며 받았던 충격을 책머리에 적었다. 책에서 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상상화가 뇌리에 박혔고, 그들 생의 비밀을 풀고 싶었던 소년의 열망이 결국은 이 책을 쓰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10만년 전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 또한 헤닝 엥겔른처럼 호기심으로 무장한 존재였다. 호모 사피엔스는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급속히 거주지를 넓혔는데, 저자는 이들의 특징을 ‘넘쳐나는 창의력, 거역할 수 없는 호기심, 그리고 죽음을 무릅쓴 모험심’으로 압축한다. 지금의 삶이 판에 박히고 무미건조하다고 느끼며 자유를 꿈꾸는 현대인에게도 분명 이런 조상의 유전자가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에서는 호모 사피엔스 이전 초기 호미니드로부터 현생 인류에 이르기까지 긴 여정을 개괄한 후 현생 인류의 특징을 열거한다. 먼저 인간의 뇌는 다른 종의 뇌와 확연히 다르다. 신체에서 차지하는 상대적 크기, 좌우 반구의 비대칭성, 특정 영역의 두드러진 발달 등이 그러하다.
한편 이성 간의 사랑, 악에 대한 관념, 폭력의 기제, 다양한 감정의 표출, 환경의 영향 등에서도 독특한 면모가 있다. 책에서는 이들 각각을 하나의 장으로 독립하여 설명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미래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컴퓨터 과학자들은 조만간 인간의 수준에 다다른, 더 나아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기계가 등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계가 자의식을 갖고 감정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보는 인공지능 연구가들도 있다. 저자는 이 주장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인간의 존재 양상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에서 인류의 기원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조망했다면, <왜 인간인가?>는 ‘질적으로 다른 인간의 뇌’에 집중하여 깊고 넓게 파헤친다. 인지신경과학 분야의 대가 마이클 가자니가의 폭넒은 지적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인간의 특이성은 지구상에서 인간과 가장 닮은 존재인 유인원과 비교를 통해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된다. 먼저 두 발로 서서 걷기,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후두개의 발달 등 신체 기능상 차이가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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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뇌 구조 및 기능의 다름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차이가 있다. 인간은 관측 가능한 지점을 넘어서는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며, 그에 따라 사회적 상호작용 양상은 유인원과 확연히 구별된다. 또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능력이 있다. 추상적 상징과 그 상징을 조작하는 규칙으로 만들어지는 인간 언어 또한 뇌 구조 및 기능의 독특한 분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은 ‘협력’이다. <왜 인간인가?>에서는 ‘협력’을 진화의 관점에서 설명한 여러 이론을 제시한다. 집단선택이론, 혈연선택이론, 상호이타주의 등이다. 지난 연재에서 소개한 <초협력자>와도 함께 읽으면 좋은 대목이다.
윤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도 등장하는 전차 딜레마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는 흥미롭다. 이 상황에서의 가치판단은 철학적 논리로도 설명될 수 있지만, 뇌에서 감정적 반응과 연관된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을 통해 진화론의 논리를 적용할 수도 있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을 여러 분야의 시각에서 해석하는 대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미래 인간의 생존 조건이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 두 책의 저자는 같은 의견이다. 그런데 <왜 인간인가?>에서는 좀더 우려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마이클 가자니가는 생태계에 인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야기된 재난을 상기하며 인간 유전자를 개량하려는 시도에 잠재된 위험성을 암시한다. 또 인공지능 및 똑똑한 기계에 관심을 보이고는 있지만, 의식 있는 기계의 출현에 대해서는 좀더 회의적이다. 인간은 기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생명체라는 것이다.
<인간, 우리는 누구인가?>와 <왜 인간인가?>는 분량도 많고 다루는 내용도 만만치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후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룬 장을 다시 꼼꼼하게 읽거나, 가장 끌리는 주제를 골라 그것부터 천천히 읽어가는 방법도 써 볼 만하다. 마이클 가자니가의 인터뷰와 강연 동영상은 인터넷 검색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고 들으며 읽는 입체적인 방법은 배우고 익히는 데 꽤 효과적이다. 관심 있는 학생에게 권한다.
※ 껴울리다는 공명(共鳴)하다는 뜻입니다.
한겨레교육 강사, <통합 논술 교과서>·<유형별 논술 교과서> 공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