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한 선배, 되돌아와… 후배 살리고 주검으로

경주 |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 ㆍ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학회장 양성호·선배들의 희생

    17일 오후 9시6분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신입생들의 박수 속에서 동아리 회원들이 한창 공연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굉음이 들렸다. 천장이 무너지면서 눈이 폭탄처럼 쏟아졌다. 순식간이었다.

    “뛰어!”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학회장 양성호씨(25·사진)는 후배들과 함께 반사적으로 출구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미처 나오지 못한 후배들이 아직도 붕괴된 체육관에 있었다. 모두 발만 동동 구를 때 양씨는 다시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추가 붕괴로 무너진 구조물에 깔려 끝내 숨졌다.

    양씨는 해병대 출신이다. 현장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평소 정의감이 강한 성격이라고 했다. 양씨의 지인 신성민씨(28)는 “(성호는) 매사에 솔선수범하고 리더십이 있었다. 길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맞는 사람을 나서서 돕는 등 의협심이 강했다”고 말했다.

     

    창문 깨고 밖으로 나와 몇몇 후배들 안 보이자
    “정신 잃지 마” 외치며 시설물 헤치고 구조

    양씨뿐 아니라 먼저 나온 학생들도 손으로 눈을 파내며 친구를 불렀다. 무너져 내린 철골에 가슴을 짓눌린 부산외대 신입생 이연희양(19)은 당시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양은 “탕탕탕 하는 소리가 들려 이벤트가 시작된 줄 알았는데 친구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천장을 보는 순간 구조물이 떨어졌다”고 사고 당시를 기억했다.

    그때 선배들이 다가와 손을 잡으며 이양을 깨웠다. 선배들은 건물 더미에 깔린 이양을 발견하고 “살 수 있다. 정신을 놓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이양은 “선배들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고 했다. 일본어과 신입생 이요한군(19)은 “건물이 무너져 내리며 문이 열리지 않아 미처 건물을 나가지 못한 학생들로 혼란스러웠다”며 “밖에서 창을 깨거나 안에서 창문을 깨고 먼저 밖으로 나간 선배들은 후배들이 뒤따라 나올 수 있도록 후배들을 이끌었다”고 했다. 비즈니스일본어과 이승빈군(19)은 “무너진 천장 사이 공간에 넘어지거나 낀 학생들을 다른 학생들이 잡고 이끌며 사고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했다. 양성호씨는 부산침례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안치됐다.